조선시대 임금 중에 문장력(文章力)이 뛰어난 사람으로 세종대왕을 최고로 치고, 다음으로 정조를 꼽는다. 무예(武藝)를 생각하면 조선을 최초로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가장 뛰어나다. 그럼 다음 누구로 하면 좋을 것인가? 무예가 뛰어난 임금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조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가 장용영(壯勇營)이란 기관을 만들고, 직접 군사를 열병하여 지휘도 할 정도로 병무에 해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훨씬 무예가 뛰어난 것으로 기록된다. 사도세자는 직접 무예와 관련된 도서를 검토하고 제작하기도 하고, 실제 창과 검술이 뛰어난 인재였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무예를 뛰어넘어 문장력도 제법 있었다. 문무를 갖춘 왕이나, 문장보단 무예가 뛰어났다.

 

그를 노론에서 보자면 가시거리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똑똑한 것도 모자라 무예도 출중하면, 후에 왕으로 등극할 경우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왕은 현명한 임금은 몇몇 있지만, 그들이 있으면 어쩐지 권력층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임금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편한 용군(庸君)이기 바랐다. 최초의 용군인 중종(中宗)은 연산군 폐위에 대한 반정으로 임금이 되었지만,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갈등은 사림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시작하여 결국 조선망국의 원인이 되었다.

 

임금이 현명하거나 또는 침착하거나, 더 나아가 아주 무서울 경우 신하들은 곤란해 하였다. 조선은 농사가 주업이고, 많은 토지를 차지할수록 재산이 늘어 가는데, 그 재산은 대부분 착복의 결과물이다. 지방유림이 상소를 올려 농민이 어려움을 전하고, 수령의 가렴주구한 태도를 전달한다. 하지만 결국 상소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이미 그런 착복의 과정이 고관대신을 끼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하의 권력이 높으면 임금은 고민한다. 개혁을 추진하거나 문제 있는 정책을 수정하는 게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쟁의 역사도 한몫을 차지했다. 지배계급이 양반이었던 조선이지만, 양반이라도 모두가 지배계급이 아니다. 양반 안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일부고, 혹은 지방에서 대지주로 있는 자도 일부다. 많은 양반도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며, 때로는 훈장선생을 하며 글을 학동에게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의 사회성이 가장 혼란하던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와 병자호란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동아시아 관계성에 크게 요동치던 시기이다.

 

그나마 임진왜란 승전국가로 돌아갔지만, 병자호란은 그렇지 못하다. 병자호란의 상처는 수십만의 조선인이 청나라로 피랍되어 돌아오지 못한 채 한스러운 삶을 마감해야 했다. 일부는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았고, 도망친 자는 다시 송환되어 더 심한 고초를 겪었다. 인조시대의 조선은 비참 그 자체였다. 조선의 무예가 뛰어난 임금이 누구냐는 첫 머리의 질문처럼 인조시대에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효종(孝宗), 봉림대군(鳳林大君)이다. 사도세자가 입었다는 그 갑옷은 원래는 효종이 입은 방어구였다. 뛰어난 무관조차 입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그 옷을 효종은 임금이 된 후에도 자연스레 입고, 말 위에서 창을 휘둘렸던 무예의 왕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직접 전쟁을 참전하여 군사들을 지휘하지 못한 것이다. 조선임금 중 전쟁에서 몸을 다진 자는 이성계와 그의 아들뿐이었다. 그나마 전쟁에서 군사를 지휘하며, 적을 물리친 자는 광해군에서 끝이 났다. 효종이 집권하던 시기를 보면 북벌론(北伐論)이 유명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주독립국가로서 조선이 아니라 청나라를 허물고 다시 명나라를 세운다는 헛된 망상이다. 임진왜란 이후 재조지은(再造至恩)은 병자호란에서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에서 끝이 났어야 했다. 아직까지 조선의 사대부는 자신을 소중화(小中華)의 후예라고 하여 청나라에 대한 압력을 거부했다. 아니라 정확히는 외면하거나 도망치려 했다.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 이후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돌아오는 것을 대해 긍정적인 반응보다 오히려 두려워했다. 청나라 황제가 자신을 폐위하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말이다. 영화 창궐(猖獗)”은 미묘한 스토리와 소재를 역사적 사실에서 받아온다. 왕의 이름과 세자의 이름조차 다르다. 왜냐하면 창궐의 주인공은 강림대군으로 나오나, 그 실상은 봉림대군이다. 봉림대군과 소현세자, 그리고 2왕자의 동생 인평대군은 사이가 매우 좋은 형제였다. 특히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였다.

 

청나라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형은 외국문물에 눈을 뜨고 새로운 바람을 접했다. 동생은 그런 바람보다 오히려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했다. “창궐의 강림대군을 보면 단지 봉림대군의 무예만 받은 것 같다. 사실 강림대군의 형의 정신은 효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백성의 고통을 무척 생각했다. 심양에 끌려가서 어려움을 겪은 조선의 백성을 위해 노력했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려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신망이 있었고, 게다가 신문물을 전파하려 했기 때문에 인조에게 가시거리였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미묘하다. 하지만 그의 시체를 염을 하러 간 왕실의 친척이 말하길 온 몸이 퍼렇게 물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독으로 중독되어 사망하면 그렇다. 독살의 가능성이 높으나 인조는 장례식조차 신속히 진행했고, 추후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는다. 아들 내외, 손자까지 다 죽는다는 사실은 이상하다. 하지만 조선의 효종은 이렇게 탄생한다. 권력에 집착하던 임금, 억울하게 죽은 형, 그리고 그 유지를 받아야 하는 효종, 영화에서 소원세자가 죽자 강림대군이 인천 제물포로 온다. 그리고 창궐의 습격을 받은 후 박종사관 일을 만난다. 강림대군이 궁으로 가면 세자가 되고, 다음 왕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실제 역사에서 봉림대군의 동생 인평대군은 인조의 동생의 아들로 입양된다. 인조의 동생이 어릴 때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의 왕은 선조처럼 명종의 후사가 없을 때 종실에서 뽑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실부인에게 나오지 않은 왕은 권력이 미약하고, 종실에서 뽑힌 왕은 더욱 그렇다. 인조는 거기에 많은 콤플렉스를 겪었다. 아버지는 인조의 형제 1명이 역모에 연루되어 죽게 되자, 그 일로 너무 슬퍼 죽고 만다. 할아버지 선조는 자신만의 왕권을 위해 기축옥사를 일으킨다. 신하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고, 다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갈린다. 서인은 숙종에 이르러 노론과 소인이 확실히 구분되어진다.

 

인조는 서인의 지원을 받아 왕이 되었다. “창궐이란 영화는 역사적 소재에서 찾아냈지만, 그런다고 그 설정은 모두 피해갈 수 없다. 조선의 절대적 악 김자준, 그의 소재는 어딜까?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인조반정에 가장 활약한 인물은 이귀와 김류이다. 특히 김류는 인조시대 영의정이 되어 많은 업적을 남긴다. 하지만 병조호란의 여파에서 그들은 광해군 시대보다 훨씬 덜어진 행동을 보여줬다. 김류의 이름이 생각난 이유는 병자호란 당시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강화도로 피신한 왕족을 호위하던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호위업무에 태만하고 게다가 왕족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강화도마저 청군에 함락된 이후 그는 그 죄를 물어 사약을 받았다.

 

김류의 아들 김경징이 영화 창궐의 김자준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이유는 김류가 서인의 영수이고, 최고 권력에 있었던 점, 김경징이 만일 그때 사약을 받고 죽지 않았으면, 김자준이 연기한 병조판서를 할 정도의 나이였던 점이다. 인조가 집권할 때 서인의 집권시기이고, 서인에서 김씨 성을 가진 권력자는 김류였다. 물론 김류의 아들은 역모까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행한 행동은 역적질이었다. “창궐에서 김자준의 직책이 병조판서라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병조판서(兵曹判書)는 군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장관이다. 무관의 임명부터 병력의 작전권까지 잡고 있다.

 

조선 최고 권력자는 왕이나, 왕 혼자서 모든 업무를 못한다. 영화에서 내금위장의 지시가 없으면 병력을 다시 궁으로 올 수 없다는 말처럼 어명(御名)을 받을 수 없거나 조치할 수 없다면 직책의 재량권으로 실행해야 한다. 병조판서가 무기와 병력을 관리감독하기에 병조판서의 승인 없이 병력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김자준이 왕궁 내 무기를 숨기고,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요건은 바로 병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뒤 조선의 왕권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인조는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면 그 누구도 용납지 않았고, “창궐에서도 그렇다. 아들인 소원세자가 청나라에 대한 타도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장면을 본다면, 오직 그 자리만을 위할 뿐이다. 김자준의 반란은 거기서 부터이다. 청나라를 우러러 보는 왕이고, 게다가 권력만 집착하며, 후궁과의 애정을 탐하는 왕이라면 아무 쓸모없다는 점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세상을 보지 못하는 왕이라면, 결국 조선에서 그런 왕은 없는 편이 좋다.

 

김자준은 분명 역적이고, 난을 일으킨 절대적 악이나, 지금에서 보면 절대적 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악이라도 그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시대 많은 사대부들은 인조가 청나라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인 이유로 산림에서 나오지 않았다. 광해군이 저지른 패륜을 징벌하기 반정을 일으켰으나, 그들 역시 패륜을 저지르고, 권력을 탐했으며, 백성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 상소문에는 작금의 시기는 혼군(昏君, 광해군)보다 더 어렵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내용도 있었다.

 

백성의 위하는 왕과 신하는 거의 없었다. “창궐을 보면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어도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오히려 역도라 말한다. 강림대군이 사실을 고해도, 주변 신하들은 왕의 귀와 눈을 속인다. 백성이 오직 기다리는 것은 조정의 조치뿐이다. 영화 초반부 강림대군은 왕좌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청나라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한다. 무예에 능하기에 큰칼을 잡고 호탕한 모습으로 살려 한다. 그러나 백성은 다르다. 그는 왕자이고, 일반적으로 군()이 아니라 대군(大君)이다. 지금 왕의 아들이나, 다음 왕의 동생이다.

 

절대 권력자의 최고 측근이다. 백성들은 강림대군에게 영웅의 자각을 가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다. 그가 영웅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가 영웅이길 바라던 민중과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백성뿐만 아니라 아버지까지 창궐로 변하여 무참히 죽자, 더 이상 그 고통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거는 백성을 보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백성들에게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을 무리라고 말하나, 그런 바람조차 묻거나 대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이다.

 

한자 중에 성()은 귀 이(), 입 구(), 임금 왕()의 합한 회의문자이다. 임금이 귀를 열고 말을 하면 위대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임금이 들어야 할 것은 백성들의 말들이며, 그것 말을 들으면 거기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곧 왕의 책무이다. 왕의 시작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물포 관아에 가자 모든 관리를 도망치고, 거기에 남아주고 같이 있던 자는 오직 강림대군이다. 웹툰의 내용이 약간 생략되나, 제물포 관아에서 모든 사람에게 감자를 나누어줄 때 한 소년(영화 마지막에 병력이 오는 것을 알려주던 소년)이 강림대군에게도 전달한다. 강림대군은 그 감자를 받을 때, 학수가 가지고 온 육포를 그 소년에게 준다.

 

왕좌에 대해 관심은 없지만, 인간적인 삶을 좋아했다. 초반 모습에 강림대군은 상스러운 말을 하고 다소 품위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자의 체통보단 그저 한 사람의 남자, 또는 남동생으로 살아가는 게 좋은 사람이다. 영화는 창궐이란 악귀가 나타나 사람을 헤치는 것에 대해 해결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강림대군이 일개 왕자가 아니라 왕의 재목으로 커가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김자준이란 인물을 보면 왕의 자리는 권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래 따지면 인조가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왕의 재목이란 권력을 가진 자만이 아니라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자이다.

 

지킬 수도 없는 약속만 하고 나간 강림대군은 스스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오는 점에서 효종이란 인물의 탄생을 영화 창궐에서 보여준다. 물론 효종은 젊은 나이에 단명 하는 안타까운 왕이다. 술과 여색을 멀리하며, 무예에 늘 정진했다. 하지만 당쟁의 역사에서 남인과 서인의 투쟁이 시작되고, 그가 죽은 후 예송(禮訟)에 대한 논쟁은 한 당파의 사대부들을 피로 숙청하는 복수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김자준은 영화 창궐에서 패배하지만, 김자준의 옆에서 곡학아세를 하던 관리는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창궐은 왕의 자세, 혹은 정치 권력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백성들이 말을 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예상하기 좋은 식으로 잘 흘러갔다. 이야기 스토리가 복잡하지도 않고, 단순한 점이 많았다. 단지 액션에서 강림대군 역할을 맡은 현빈 씨의 노고가 아주 컸다. 실제로 자신이 했는지 대역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액션이 너무 많았다. “부산행이란 영화처럼 물리적으로 좀비는 이길 수 없는 것으로 나오는 것보다, “청궐처럼 약점이 있는 편이 좋다. 무조건 도망치는 것보다 거기에 대항하는 편이 영화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