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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평점 :
여자다움이란. 대체 뭘까?
결혼을 몇 년 후에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남자친구의 엄마에게 숟가락으로 이마를 맞더라도 예의를 갖추고 웃어야 하는 것이 여자다움일까?
(바로 얼마 전 들은 얘기라 생각이 났다. 이 이야기의 전말을 얘기하자면 길지만, 어떤 여성이 연말 회사일로 바쁘던 어느날 남친이 연락 없이 회사앞에 찾아와 식당에 갔더니 그의 부모님이 와계셨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여자분이 결혼은 몇년 후에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밥먹던 숟가락으로 여자의 이마를 때리며 내 아들 발목잡으려고 결혼을 늦게 하냐고 훈계했다나. 이 여성은 나도 집에서는 사랑받는 딸이다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후 남자친구에게 사과를 종용받았다는 이야기.)
위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참 기분이 뭣같아졌다.
결혼에 대한 당사자 간의 충분한 합의도 없었던 듯 싶은데, 대체 저 남자의 가족은 무엇이 그리 당당하여 어쩌면 완벽한 타인에게 저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가...
아.. 이 나라는 진정 여자에겐 지뢰밭이 아닌가... 라는 생각.
그러나 저 멀리 아일랜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 행해지는 남성 중심의 사제문화를 통해 결국 독실한 신자란 여성이 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대학시절 위대한 학자들에게 지혜와 영감을 받았지만 모욕도 동시에 받았던 경험, 핼로윈에 남장을 한 것 만으로 얼마나 해방감을 느꼈는지 등등.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다움이라는 사회적 굴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의 유명세는 영국 지상파 방송에 겨드랑이 털을 드러내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미적 기준에 반발했기 때문이지만 그 행위가 단지 일회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다.
꾸준히 의심하고 실험하고 새로운 각본을 무대에 올려보는 저자의 자세는 본 받을만 하지 않나 생각한다.
성장 배경에 기반해 경험과 이론을 이야기 하다보니, 무척 방대한 내용이고, 경험과 이론을 이야기 할때의 약간의 격차가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주제의 범위가 다소 넓어진 듯하기도 하지만, 빼놓을 수 있는 이야기를 넣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여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들(민주화, 빈곤의 문제 등등)에 밀려왔듯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와 규정짓는 것이 온당한지 조차 판단하기 이른 성정체성에 대한 문제들도 계속 이야기 해야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나를 만드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2017. Jan.
나는 여성이 의미있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에게서 의미있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세계에 대한 인식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에도 - 즉 인류의 절반이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음에도 - 헤겔은 인간의 조건에 있어 권위 있는 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이 남성 교수에게는 쉬웠을지 모른다. 그라면 헤겔이 다른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처럼 자신의 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그랬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 95
앞서 말했듯 스키마는 필요하고, 유용하다. 피상적 표지나 어렴풋한 관찰을 기반으로 자동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일상행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스키마에는 명백한 단점이 있다 암묵적 연상과제의 결과가 말해주듯 계급 인종, 젠더의 문제에서 그 단점은 배가 된다. 노동계급/중산계급, 흑인/백인, 남성/여성으로 코드화된 인물을 마주치면 우리는 사회화 및 경험을 통해 해당 인구학적 특성과 연관짓게 된 다양한 다른 특성들을 떵ㄹ린다. 다시 말해 우리의 스키마는 고정관념으로 기능하며, 실제 정보 대신 편견을 통해 사람들을 ‘읽게‘ 할 수 있다. - 114
쌘드라 벰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가 거의 모든 일에서 똑같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기관들이 부모 노릇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를 몹시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역설 뒤에 숨은 역사와 전통을 설명한다. 임신의 주체는 여성이며 육아 역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왔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떠나야 하는 것은 항상 여성이다. 벰이 보기에 이는 여성과 남성의 능력이 아니라 권력, 역사, 전통의 문제다. - 171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실제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의미에 대한 공인된 믿음의 체계에 연결되어 있다. 이 믿음들은 성차별적 고정관념이자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이 근원이다. - 172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한다고, 보다 상냥하게 굴어서 남자들도 이 운동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건 헛소리다. 우리의 의도는 남성의 특권을 해체하는 것이며, 여기에 설탕옷을 입힌다는 건 불가능하다. - 351
나는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마음 가득 사랑하는 것,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비록 내 감정은 정반대를 바랄지라도, 때로는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나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믿는다. -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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