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의 기분 문학동네 시인선 41
박상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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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장에 읽히기 대기중인 책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왜이렇게 분홍분홍한가....

스치듯 페미니즘 서적 붐탓인가 싶다가도

제목을 훑어보니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분홍색 되게 싫어하는데....

방 책장에서 분홍색을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분홍색을 좀 더 자주 고르게 된다.

그런 기분이 숙녀의 기분일까.

숙녀라는 입에 붙지도 않고 왠지 찌르르한 단어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인 듯도 싶다.

그러나 이 시집은 필연적으로 분홍 분홍 샤라랑 샤라랑 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언어.

이십대 중에서도 일부의 여자 아이? 숙녀? 들만이(특히 나의 이십대는 절대....;ㅂ; 난 아무래도 학형에 가까운 캐릭터였으므로) 부릴 수 있는 변덕과 새침함과 창피스러움, 고단함, 굴욕이

40대에 접어든 아재?(비하하는거 아니에요) 시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스트랄함.

그게 또 나쁘지는 않고, 그런데 좀 기괴하기는 하고, 그럼에도 되게 샤라랑샤라랑 해서 갸웃갸웃 시집을 덮게 된다.

하지만 고개라도 끄덕이지 않으면
당장 나는 할 게 없어진다 - 좀 아는 사이 중.

조약돌이 길을 가르쳐주겠지만 이 땅은 가문비나무가 너무 높고 그늘이 깊고 종종 푸르고 씁쓸해 - 청춘 중.


2017. Feb.

여름의 에테르

길고 긴 계절의 편지를 쓰고 계단을 내려갔을 때였지, 코끼리 열차를 타고 온다는 라운지 밴드는 졸다가 가버렸고 담쟁이덩굴만 골목에 가득했어 난 여름의 마음을 담아 목각 인형을 풀어주었지 트로피컬 양산을 귀에 꽂고 잠자리 안경을 씌워주었어

떠돌이 악사를 찾아가, 산악 전차를 타고 다시 여행을 시작해

하늘나라 미술관에선 하트 모양의 펀치를 찍고 있었지 라일락의 마지막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어.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살아갈까 마음이 지워질 때까지 얼마나 더 꽃잎을 모아야 할까

아무것도 미운건 없었어 써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지워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나는 또 대문을 닫겠지만 눈길이 닿는 곳마다 만난 적 없는 눈망울과 이 여름의 공기와, 에테르의, 부서져 흩어지는 에테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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