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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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왠지 저자의 글은 어디서도 본 적 없지만, 좋은 글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죽음과 삶의 파트로 나누어진 글은, 책으로 엮여 나오기 전에는 뒤섞인 순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경험과 기분을 정리하며 쓴 글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무력할 때도, 어이없을 때도... 하여간 여러 감정이었을 것일테니까.

그래서 차라리 그런 매일의 기분을 느끼듯 이런 저런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초반의 죽음에 대한 기록에서 강렬하고 무겁게 다가오던 그의 글들이, 후반에 가서는 갑자기 틀어져 보게된 개그콘서트마냥 우습기도 하고 허무한 기분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매우 마음에 드는 글이다. 하나의 직업으로 밥벌이 수단으로만 의사라는 자리를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이는 저자의 깊은 사색이 충분히 반영되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나의 아쉬운 마음은 기껏 내 마음 속의 한포인트 정도의 점수차이일 뿐이니까.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 를 읽을 때는. 좀 많이 힘들었음. ㅜ.ㅡ

그는 의료진을 안심시키고 무난하게 퇴원했다. 가족들도 그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그는 오늘 있을 가족 모임과 저녁 메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직접 운전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복도식 아파트 7층에 있었다.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그는 아내에게 잠깐 바람을 쐬겠다고, 먼저 잠시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퇴원하면서 챙긴 짐을 들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가 마지막 장소로 점찍어두었던 문 앞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두 발이 허공을 디딘 순간, 그는 자신의 성공을 직감했을 것이다.
죽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오히려 살고자 하는 열망처럼 보였다. 그는 가면을 쓰고 나간 사람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들어온 사람이었다. - 19, 죽고자 하는 열망 중.

명징한 우울과 죽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것은 비참함이 예정되어 있는 나의 운명을 암시하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곧 나는 마음속에서 불처럼 번져나가는 우울과 열망을 느꼈다. 우울은 확실히 다양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깊은 우울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깊이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깊이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 22, 죽고자 하는 열망 중.

이어진 의료진의 익숙하고 신속한 처치에도 환자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심장은 누르는 대로 눌리기만 할 뿐, 자발적으로 돌아올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양쪽 폐는 혈흉으로 가득찼고, 굵은 흉관에서는 고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피가 끊임없이 꿀렁거리며 흘렀다. 심폐소생술의 압력으로 핏덩이가 번져, 나는 온통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핏덩이가 의료진의 옥가지와 신발을 적시고 끝내 바닥에까지 고였다. 갈비뼈가 부서졌고, 폐가 부서졌고, 심장이 부서졌고, 결국 그녀는 통째로 부서져버렸다. 완벽하고 압도적인 급사였다. 도저히 손쓸수도 없는 외상으로, 그렇게 그녀는 단숨에 죽어버렸다. - 39, 죽음에 관하여 중.

˝최선을 다했지만, 갑자기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중환자실에서 걸어나갔다. 머릿속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나는 방금 있었던 찰나에 전 생애를 사요해버려, 이제 남은 생야가 없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까마득했다. - 101, 치밀하고 압도적인 스위치 중.

2016.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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