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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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잉카, 벨리시아, 롤라, 오스카 데 레온 가의 놀라운 삶 이야기.

3대에 걸쳐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를 뚫고 나오는 대서사이다.
성녀에 근접한 라 잉카와 그녀의 생명력 강한 타락한 딸, 타락한 딸의 요즘 자녀들. 되게 평범한 구성이지만, 독재와 혁명, 환상성이 끼얹어지니 매우 강력한 이야기가 된다.

후진국의 독재자의 나라, 가족의 결속이 중요한 문화인 나라라는 배경은 피부색 다르고 기후가 다른 지역 일지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넘쳐나기 때문이겠다.

세대에 걸친 어떤 ‘저주’에 얽혀있는 가문, 그 안에서 가까스로 찾아가는 삶의 희열의 순간... 흡인력이란 이런 것인가 다채롭기 그지없어.....

그런데.

작가여, 전형적인 남성성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폭력적이고 억압하는 문화를 비판하고 싶은거 아니었나?

사실 이 책은 오래 전 부터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았던 그야말로 책장 안 터줏대감같은 묵혀놓은 책이었다. 이제 좀 읽어볼까 싶은 참에 작가 주노 디아스가 ‘미투’ 가해 지목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쨌든 읽었고.... 이렇게 마음에 드는 서사를 완성한 남성 작가가 추행으로 고발되었고... 나는 이 아이러니, 현실의 양면을 어찌 생각해야할까를 또 고민해 봐야만 했다.
작가와 작품은 절대 별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 터라 더욱... 만족스러운 책이어서 더 씁쓸한 것.
..........

- 도미니카 가정에서 완벽한 딸이란 완벽한 도미니카 노예를 좋게 부르는 말일 뿐. 평생 자식이나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말이라곤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엄마 밑에서, 언제나 의심뿐이며 자식의 꿈 같은 건 갈가리 찢어놓고 짓밟는 엄마 밑에서 자란다는 게 어떤 건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 아이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저항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를 깡그리 죽여 없애는 그런 엄마. 하지만 나도 이제 괜찮은 척하지 않을 테다. - 74

- 그녀 세대는 앞으로 혁명을 시작할 세대였지만, 당시에는 산소가 부족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아무런 의식이 없던 사회에서 의식에 다가가던 세대.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합의하고 선언했으나 늘 변화를 갈망했던 세대. 생의 막바지에, 암이 그녀를 산 채로 집어삼킬 때 벨리는 그들이 당시에 얼마나 덫에 갇힌 심정이었는지 말하곤 했다. 마치 바다 밑에 갇힌것 같았어. 그녀의 말이었다. 빛도, 아무것도 없이 대양 전체에 짓눌린 기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분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저 위에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있은 채. - 103

- 인생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버린다. 누군가 나한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 246

-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다는게 믿어져? 두 사람의 마지막 토요일 밤 밀회에서 그가 경이롭다는 듯이 물었다.
난 믿어져, 그녀가 뱃살을 움켜쥐며 슬프게 말했다. 우리는 시계니까, 아벨라르. 그 이상은 아니지.
아벨라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이야. 우린 경이로운 존재니까, 미 아모르. - 280

- 지금 내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롤라와 통화하면서 오스카가 말했다. 정확한 단어는 아마 위기겠지만, 눈을 뜰 때마다 떠오르는 건 분노야. 오스카가 학생들을 아무 이유없이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어머니에게 꺼지라고 소리 지르고,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삼촌 방에 들어가 벽장에서 콜트 권총을 꺼내 제 관자놀이를 겨냥하고, 기차역 철교를 생각한 게 모두 이때였다. 침대에 누워 남은 평생 엄마가 자신의 밥을 지어줄 - 오스카가 없는 줄 알고 엄마가 삼촌한테 얘기하는 걸 들었다 - 끔찍한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것도 이 때였다. 엄마는 말했다. 그럼 어때, 녀석이 곁에 있기만 해도 난 만족이야. - 314

-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했는데도 충분하지 않았어. (...) 롤라는 그 끔찍한 땅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우리가 아직 연인이던 마지막 며칠 가운데 어느 날 밤, 롤라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천만 명의 트루히요야. - 377

- 그 오랜 기다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건 이본이었다. 뭐라고 부르지? 글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 389

2018.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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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퓰리처상 받은 작가인데 미투로 날아가 버렸네요...

hellas 2019-01-03 22:38   좋아요 0 | URL
퓰리처를 받았든 말든. ㅡㅡ 처신을 그렇게 했다면 작품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일? 그게 잘 될리가.... 있을까 싶네요. 미투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행동 때문에 망하는 거죠 뭐. ㅡㅡ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