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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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의 자전적 이야기. 각색은 많이 된 듯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에 이르러서야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초반부엔 내가 왜 자의식 만렙의 셀럽 작가(처음엔 그렇게 보였다...)의 넋두리를 읽고 있나 했는데, 어느 순간 전원의 분위기와 우아한 썅년의 아우라에 빠져들게 되었다. 존경의 의미다.
뭔가 전혀 예상과는 다른 그런 궤도를 그릴 것만 같은....

겪을 만큼 겪은 사랑, 질리기도 그립기도 한. 종국에 어떤 형태로 사그라드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의 벅참을 외면할 수 없는 여자의 진실한 고백같았다.

편지로 소환되는 어머니의 기억들은, 작가의 마음이랄까, 되살리려는, 되살려는 시도가 공감을 불러왔다.

그나저나 당신의 초대를 거절한다. 곧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울것 같기 때문에....라는 거절은 그야말로 멋지다. 멋진 엄마로 되살려 놓았다.

당신의 초대가 얼마나 감동적이지도 잘 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입니다. 왜냐고요?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서요. - 9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모성애는 또 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 25

그 어떤 두려움도,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우려조차도 이 글을 쓰는 것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출판하고 말 이 글을...... 오랜 세월 동안 나에 대해 아는 것들, 감추고자 애썼던 것들, 생각해낸 것들, 짐작했던 것들을 정리해온 이 종이 위로 달리는 내 손을 새삼 왜 멈춘단 말인가? 사랑이라는 재앙, 그 과정들, 그 이후의 일들, 이런 것들이 한 여자의 진정한 속마음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남성 작가들, 혹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째서 한 여성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쉽게 사랑의 속내 이야기를, 사랑의 거짓과 기만을 누설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까지도 놀라는 것일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폭로하면서 여성은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던 부끄러운 비밀들, 엄청난 사실들을 드러낸다. 그녀가 수치심 없이, 신이 나서 마음대로 조작하는 눈은 커다란 환등기가 되어 때로는 행복이, 때로는 불화가 휩쓸고 가는 여성들의 영역, 늘 똑같은 그 영역을 샅샅이 비춘다. 그리고 그 주위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진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곳은 빛이 가득한 환한 곳이 아니다. - 78

팔이 참 예쁘구나, 엘렌.
그녀는 우리 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고는 부끄러워했다. 왜냐하면 부인네들, 그리고 처녀들은 남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여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더욱 뿌듯해하기 때문이다. 약간은 거북해하기도 하지만, 실은 남자들에게 칭찬받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감동받고 좋아하는 것이다. 엘렌은 웃었지만, 이내 어깨를 들썩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나한테?
꼭 무슨 소용이 있어야 하는 건가?
엉큼하게도 나는 그녀의 질문에 또다른 질문으로 답했다. - 88

이해해주겠지? 이제 삼십 년 동안 지겹도록 나를 괴롭혔던 그놈의 사랑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슬프면 그냥 슬프고 기쁘면 그냥 기쁘고 그렇게 살려고 해. 요즘은 그래. 근사한 일이지. 너무 근사해. - 136

이 같은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저 말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가버려라! 나타나려거든 내가 알아볼 수 없도록 몰래 오기를. 창문으로 뛰어내려 땅을 디디고, 꽃이 되어 꽃을 피우고, 새나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소리가 되어 메아리쳐라...... 당신은 얼마든지 나를 기만할 수 있겠지만, 우리 어머니를 속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고통을 잊고 껍데기를 벗어던지길.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나의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내가 당신을 붉은 선인장 꽃이라 부를 수 있도록. 아니면 불꽃처럼 힘겹게 피어나는 또다른 강렬한 꽃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마귀를 쫓아낸 미래의 진정한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수 있도록. - 172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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