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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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를 통해 읽게 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합본판'. 책 5권 분량이 한 권에 다 들어있다 보니 그 두께가 어마 무시하다. 대략 12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지라, 읽기 전부터 두께에 압도된다. 보통 이런 벽돌책을 읽다 보면 양에 지쳐 읽다 관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중간에 끊어 읽기도 수월하고, 내용 자체가 워낙 흥미롭고 재밌어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는!(물론 읽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렸을 적 많이 읽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만화책으로 접해본 것이 다인데, 줄글로 읽으니 색달랐다. 차례는 제1권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부터 제5권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까지,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그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제1권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합본판 전체의 서론, 도입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주제였다.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 깔고 들어가는 기본 지식이라고 얘기해야 할까..? 바탕이 되는 중요한 소재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는 파트다. 신화 속 신발의 의미에서부터 신화의 창조, 뱀 또는 뿔의 상징성 등 폭넓은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제우스 이전의 신, 그러니까 신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까지 실려있어 올림푸스 신들 이외의 신들의 일화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근간이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니 어렸을 적 만화책으로 읽었던 신화보다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읽는 동안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새로운 의미까지 함께 탐구하다 보니 지식의 폭이 훨씬 넓어진 기분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황당하게 재미있는 세계> -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티탄 열두 남매가 만든 세상, 신들의 전쟁, 올림푸스의 신들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우스가 꾸린 올림포스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아주 상세히 설명해놓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신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본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외에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신화들이 있기 마련. 특히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는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군 신화가 상징하고 있는 곰이나 호랑이가 그들을 숭상하는 사람들을 뜻하고 있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말하는 시작은 그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탄생과 나라의 탄생 정도랄까..?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지고 있는 원형성에 대해 조금 더 주목해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세계인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시초를,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탄생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제2권 :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주제가 '사랑'이듯이 이번 부분은 사랑에 관련된 신화가 담겨 있다. 이성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동성, 또는 동과의 사랑까지 폭넓게 담고 있는 것이 이 주제의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동과 사람과의 사랑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신화에는 황소를 사랑한 파시파에, 백조로 변신해 사랑을 나눈 제우스 등 현실에선 가능할 수 없는, 기이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랑이 존재한다. 그 사랑을 표면적으로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단다는는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나름대로 유추해가며 신화를 읽었을 때 조금 더 이해하기 수월할 것 같다. 신화는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재미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주제가 그 말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찌 할 수 없는 힘으로 이루어진 사랑이 바로 앞서 말한 현실에서 불가능한(거의 그런) 사랑이다. 사랑의 엔딩을 극단적으로 두 가지 - 즉 비극과 희극으로 나눈다면 신화 속 사랑은 대부분이 비극에 가까운 것 같다. 희극으로 보여도 비극으로 끝나는 상황이 너무 많다. 어찌 된 것이, 신화 속 영웅이나 왕들, 여왕이나 공주 왕자들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면 안 될 것 마냥 바람을 피우고, 사랑에 눈멀어 싸우고 때론 죽기도 한다. 신화 속의 사랑이란 이름 아래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자유라는 표현으로 다 얘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비도덕적이라고 칭할 수도 있는데, 신화 속 사랑이 뜻하는 것들을 현대의 의미의 사랑이란 잣대로 평가 내릴 순 없지 않을까? 그것들이 어떤 상징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면 그 비도덕성까지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비도덕적이란 생각은 이 부분에서 잠시 내려두자. 신화 속 무궁무진한 형태의 사랑은 그 자유로운 모습만큼 재미를 줄 테니!


제3권 :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떼려야 뗄 수 없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로 제3권,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파트다. 신의 존재 유무는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이 의미하고 있는 것, 신화라는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인간이 바라는 것, 인간이 생각한 것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 두 관계는 굉장히 집중해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 유무에 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이런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 실은 인간이 숨겨둔 교훈이 가득한 존재지 않을까? 


신화의 원형성을 앞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원형성은 제3권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합본판 전체를 보았을 때, 그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한 이야기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신화도 여러 번 등장한다. 서로 전혀 다른 대륙에 살고 있었음도 불구하고 비슷한 내용의 신화가 존재한다는거,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 사실이다. 전지전능한 신을 설정해두고 인간의 삶을 얘기하려 했던 과거 인류의 조상들의 상상력과, 폭넓은 세계관이 유독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제4권 :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앞선 3권까지는 '~의 12가지 열쇠'였다면 제4권은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다. 앞에서 주제에 맞게 여러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4권은 아예 제목부터 중심인물이 헤라클레스로 설정되어 있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 전설적인 인물, 헤라클레스의 일대기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신이 되기까지 험난한 여정 속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인간과 신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우스는 그를 인간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인물이 되길 바랐지만, 헤라의 무시무시한 (그러나 이해 가는) 질투로 인해 그는 처음 제우스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더 험난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헤라클레스의 이름부터 헤라의 영광이며 이것이 본명이 아니라는 점이 이 부분을 읽으며 제일 놀랐던 사실이었다. 워낙 유명한 헤라클레스인지라, 본명도 헤라클레스일 줄 알았는데 아마 나처럼 신화를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이 사실에 함께 놀랄 것이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힘으로 인해 아내와 자식을 때려죽이는 등 술만 마시면 포악해져 살생을 저지르는, 영웅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영웅이라고 하면 한 점 티끌 없이, 대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동안 배웠던 영웅적 일대기의 모습을 닮은 헤라클레스이지만 이런 부분에선 영웅이라고 보긴 또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발광한 이유 또한 신에게 있었으니, 그 자신만을 본다면 영웅이라고 봐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여러모로 복합적인 인물상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들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 아르고스의 왕 밑으로 들어가 행한 12가지 일들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지옥까지 갔다 오고 잠시 지구의 축을 들고 있기도 했던 헤라클레스는 그 여정에서 신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의 비상한 능력으로 12가지 과업을 훌륭히 완수한다. 그의 여정은 어떻게 보면 계획된 것이나, 계획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헤라에 의해 제우스가 의한 헤라클레스의 인생이 바뀌고 후엔 헤라의 영광을 얻고 올림푸스의 새로운 신이 되기도 하니 - 알다가도 모를 신화의 세계란! 읽을수록 흥미롭고, 분량이 줄어들어갈수록 아쉬웠다. 


제5권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 합본판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이아손이 금양 모피를 찾아 떠난 일대기가 담겨 있다. 아르고 원정대에 참여한 인물들이 걸출한, 당시에 한 주름 잡던(?), 유명 영웅들이라 이 일대기는 그 내용이 방대할뿐더러, 무척 풍성하다. 미지의 지역, 험난한 흑해를 넘어 금양 모피를 가져오기 위해 떠난 이아손과 그의 원정대, 즉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은 어떻게 전개되고 끝이 날까?


아르고 원정대는 앞선 제4권의 주인공이었던 헤라클레스도 등장한다. 비록 중간에 원정대에서 빠지긴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여기서도 꽤 위엄 있고 비중 있는 인물로 나온다. 개인적로 이아손보다 그 원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두드러지게 나온 것 같다. 물론 이아손 역시 비상한 재주를 가졌지만 말이다. 그를 돕는 조력자나 신들이 있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가 금양 모피를 얻어올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마지막 권이 항해기로 끝난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기가 끝났을 때, 나 또한 신화의 탐구라는 거대한 항해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던진 신화의 실마리를 나름대로 해석해가며 신화를 탐구하다 보니 이제 길을 걷다가도, 수업을 듣다가도 곳곳에서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과 내용에 저절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신화가 우리의 삶에 꽤 깊이 들어가 있다! 예컨대, 요즘 철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니체가 말하는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의 예가 바로 디오니소스다. 술을 통해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는 속박되지 않는, 초인적인 주체라고 할만하다.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이 나오고 교수님이 그 신의 탄생을 설명할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수업에서 이렇듯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이 예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신화는 알면 알수록 인간의 삶을 통찰하게 되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다. 



대략 한 달간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 합본판. 시험 기간과 겹쳐 시간이 빠듯했지만, 잠시나마 책 속 신화이야기로 도피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읽는 내내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웠던..! 사진 또는 명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들의 이미지를 대략 유추해볼 수도 있고, 현실과 대비하며 신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해보는는 시간은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를 참 행복하고 뜻깊게 만들어준 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 합본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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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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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편집자로 일한 캐런 리날디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출발한 이야기,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그녀가 서핑을 배우며 일어난 일들과 깨달음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책 표지의 서핑하는 이미지나, 제목의 색 등 바다를 연상할 수 있는 깔끔한 디자인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인 감상을 먼저 말해보자면, 이 책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뭐든지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을 버리면, 삶은 물론이고 하고 싶지만 못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진다. 캐런 리날디는 그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는 우리에게 외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일단 못하는 일에 도전해라!"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얘기인가 했다. 못하는 일에 도전하라니, 잘하는 일만 해도 모자랄판에..? 그러나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일단 뭔가를 해봐야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그 일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 일단 즐기면 되는 것이다. 허나 말이 쉽지, 사실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다. 어느 누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고 싶겠는가! 현대인들에게 실패란, 낙오한 자로 낙인찍히기 쉽상인데. 그래서 캐런 리날디는 자신이 형편없이 서핑하는 영상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며 못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즐거움을 찾는 것에 관한 글을 썼다.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는 이런 주제로 마흔살에 서핑을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우리가 각자 생각만 하고 실천은 하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겉으로 보기엔 서툴러도 일종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때, 우리 모습은 깨진 도자기 조각처럼 보인다. 그리고 드디어 우아한 순간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마치 깨진 부분을 옻칠로 잇는 것과 같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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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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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Journal de deuil

Roland Barthes



" 프랑스가 사랑한 현대 사상가 롤랑 바르트, 그가 어머니를 잃은 이후 2년간 써내려간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상실의 슬픔 "


감각적인 디자인에 확 꽂혀 바로 받아 본 책은 슬픔과 죽음, 시간과 애도에 관한 작가 나름대로의 고찰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일기를 엮은 책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근 2년간 그가 두서 없이 써내려간 메모들을 읽으며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우울의 감정에 빠졌던 것 같다. 특히 죽음,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한때 내가 죽음에 관해 이유 없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 책이다. 그가 말하는 '애도'는 애도라는 단어 하나의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뜻을 포함한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정확히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애도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가 말하는 것, 애도와 슬픔을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했다는 것.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 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11.21.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잃음이 꼭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누군가가 떠나간 자리가 더 큰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경우 어머니의 죽음이 큰 역할을 했지만, 내가 그의 일기를 읽으며 생각한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것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지나간 인연을 너무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고,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에게 그것들은 절대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그 자체이다.

그의 메모를 모아둔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날짜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데, 같은 날에 여러 개의 메모를 쓴 것도 있고 며칠을 건너 쓴 것도 있다. 어제의 고민이 그 다음날의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은 이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결말이 없고 끊임없는 질문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독자 또한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유명 작가라는 점,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게 어머니를 읽고 쓰게 된 애도의 과정이 담긴 일기라는 점뿐이지만 그런 것들을 넘어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기'라는 서술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애도 일기>에서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적고 있는 이 메모가 문학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막 적은 일기가 사후에 엮여 책으로 출판된다니,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마음은 후반부에 가선 조금 달라지는데, 그는 그의 개인적인 작품이 남는 것보다 어머니, 자신의 마망과 관련한 기억과 글들은 자신이 죽고 나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기에- 글을 씀으로써 이를 남겨두고 싶어 한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애정은 일기 속에서도 여러 번 엿볼 수 있다. 부끄럽지만..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그의 태도에 정말 감동했다. 순수한 고뇌와 글을 쉽게 여기지 않는 그의 모습은 내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쓰인 글을 경계하기', 어쩌면 그가 막 휘갈겨 쓴 메모도 그 고뇌에 바탕해 있는 심도 있는 글이 아닐까?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애도의 과정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지나간 떠난 이들에게 나는 과연 최대한의 슬픔을 표현하고 아파했는지, 그래서 잊혀지진 않더래도 잘- 보낼 수 있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든다. 그 슬픔을 글로써 승화해나가며, 마망이 죽은 1년간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그리움으로 가득 써내려간 그것들을 어찌 가볍게 읽을 수 있을까. 그 어떠한 글보다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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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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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이 담겨있는 웅진 지식하우스의 '초예측 부의 미래'. 2019년 초봄에 방송된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 2019: 거짓된 개인주의를 넘어서>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에 금박의 글씨로 제목과 석학들의 이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책의 구성도 이 순서대로 흘러가는데, 질문과 답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서술이 어렵지 않아서,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경제 분야에 굉장히 취약한 편인데, 전문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를 몰라도 전혀 지장 없이 읽을 수 있었다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 경제와 자본주의, 뒤이어 이어지는 에필로그를 통해 던져주는 그와 관련된 생각해 볼거리들이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초예측 부의 미래'는 단순히 취업과 같은 눈앞에 닥친 문제에서 벗어나, 앞으로 미래 사회를 이끌어나갈 청년층들에게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GAFA(가파 : Google, Apple, Facebook, Amazon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라고 불리는 대기업들이 점령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성장할 기업들과, 옮겨갈 부와 새로운 개념의 가상화폐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를 설정해나가야 되는지 그 실마리가 담겨있다. 대기업이 점령한 세상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었는데, 당장 사용하고 있는 sns와 검색엔진, 물품들 대부분이 가파,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기업에서 나온 것들인 것을 알게 되고 적잖이 놀랐었다. 과거와 달리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개인의 정보 또한 그 홍수에 떠밀려 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 격언처럼, 세계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대기업들은 끊임없이 지식을 모으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힘을 가지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앞으로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책에서 등장하는 의견들은 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책에서만 봐도 전문가들마다 똑같은 주제에 관해 의견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방면에서 의견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론 유발 하라리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의견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전공 수업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는 학자들과 또 최근 철학을 열심히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의견들이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에필로그 부분에 칸트의 자율 이론을 가지고 설명한 부분도 꽤나 집중해서 읽었고!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전공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다채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뭐든 만능을 추구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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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습관 : 승률을 높이는 15가지 도구들 - 경기장 밖에서도 통하는 NBA 슈퍼스타들의 성공 원칙
앨런 스테인 주니어.존 스턴펠드 지음, 엄성수 옮김 / 갤리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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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하는 습관의 저자, 엘런 스테인 주니어는 전 NBA 코치이자 스포츠&비즈니스 분야의 코칭 전문가로, 유명한 NBA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활동한 유명인이다. 이런 그가 수년간 지켜본 NBA 스타들의 성공 원칙에 관해 쓴 책이 바로 이 책! 이번 달 갤리온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 


 처음 책을 받아 보았을 때,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책의 디자인이 눈길을 확 끌었다. 글씨도 크고 또렷해서 한눈에 들어온 책! 다시 보니 2019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네. 사실 이런 분야의 책을 요 근래 정말 많이 읽은 터라 내용면에선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게 읽었다. 운동엔 젬병이라 농구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 문외한인 나도 쉽고 재밌게 읽었으니 다른 독자들도 겁내지 않고 읽어보시라. 


 스포츠와 비즈니스 세계 사이의 관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니 연관되어 있다기 보단, 스포츠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둘의 분야가 완전히 달라 처음엔 "세계 최거 선수들의 경기에는 인생의 기술이 담겨 있다!" 라는 슬로건을 보고 정말 궁금햇었다. 차근히 읽어보니 아 역시 성공하는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던. 내가 지금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스포츠나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고 실천해 볼 수 있는 팁들이 가득 담겨 있는 책.


 책의 중간중간엔 유명인들의 명언이 담겨 있는데 이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로운 주제로 들어가기 전 리프레시 되는 느낌이랄까? 엘렌 스테인 주니어의 승리하는 습관은 크게 선수 & 코치 & 팀, 총 3개의 구성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기 때문에 세 역할 모두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고, 구성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한 후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두께가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리하기 어렵지 않아 좋았다. 책에서 강조되는 부분도 아주 쨍한 개나리색이라 확실히 눈에 띈다.


 한 부분이 끝날 때 다 정리하는 페이지까지 있어 전체적로 책이 너무 깔끔하단 느낌이 들었다. 읽었던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상기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니 더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고! 학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웬만한 전공 서적보다 깔끔한 것 같다. 이런 책으로 수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 부분이 끝날 때 다 정리하는 페이지까지 있어 전체적로 책이 너무 깔끔하단 느낌이 들었다. 읽었던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상기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니 더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고! 학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웬만한 전공 서적보다 깔끔한 것 같다. 이런 책으로 수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용적인 부분에선 아직 내가 어떤 팀에 속해있거나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개인적로 실천할 수 있는 마음가짐 등이 인상 깊었다. 나의 단점과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장점은 극대화, 단점은 인정한 후 강해져라는 조언을 읽으며 나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꽤 오래 생각해봤으나,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싫든 좋든 비즈니스 세계에 들어가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텐데 아직 나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mbti나 성격 테스트 말고 진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정리해보았다. 


우선 나의 강점은 한번 일을 배우면, 그 일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수년간의 알바 생활의 과로 나온 강점이다. 지금껏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어딜 가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습득력과 활용 능력, 일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강점인 것 같다. 두 번째로, 시간적으로 늦는 일이 별로 없다. 약속 시간은 웬만해선 철저히 지키려 노력한다. 항상 마감에 닥쳐서 제출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래도 이 또한 나의 장점! 세 번째로 나는 계획과 정리를 정말 잘한다. 체계적으로 우선 순위를 나누고 일을 처리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매사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나의 약점은 너무 예민하다는 것이다. 이게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선 예민함이 독이 될 때가 많다. 예민한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자주 우울해한다. 또 어떤 일에서 대표를 맡았을 때 굉장히 권위적고 빡빡하게 굴 때가 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예민함 + 완벽주의적인 측면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앞에서 세게 말해놓고 뒤에 가서 또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이 또한 약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점은 더 극대화하고 단점은 인정하고 강해져라는 솔루션에 맞게 정리해보면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나 어떤 직책을 맡았을 때 권위적으로 굴 수 있으므로 나의 능력안에서 많은 것을 펼칠 수 있는는, 책임자가 따로 존재하거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평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잘 맞을 것 같다. 약속한 바를 꼭 지키는 성미는 비즈니스 관계에서 더욱 빛날 듯 하고, 예민하다는 약점은..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처럼 책에서 나온 방법대로 정리를 해보니 나에 대해 조금 더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외에도 멀티태스킹보다 한 가지 일에 고도로 집중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과, 모든 일에서 기본의 중요성 등 설명과 함께 자가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책 속에 정말 많다.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과를 거두고 싶은 사람, 또 지금보다 더 나은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간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은 사람 모두 추천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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