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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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와일드의「심연으로부터」: 심연에서 건진 예술가의 초상

 

 

 

   「심연으로부터」는 아일랜드 출신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의 긴 편지글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길다는 것 말고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선 이 글은 오스카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수감 중인 때에 쓴 글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과거 195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옥중기(獄中記)’라는 제목으로 수차례 번역이 되기도 했다(물론 삭제판을 원본으로 해서). 그리고 이 편지의 수신인이 와일드의 동성의 연인이라는 것도 이 글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편지글은 하루에 한 페이지만 쓰는 것이 허락되었고, 일단 쓴 편지는 소장에게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와일드가 출소할 때 소장은 모아놓은 편지글을 와일드에게 돌려주었으므로 수신인에게 발송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와일드의 내적 상태에 대한 고백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지도 모른다.

 

   오스카 와일드가 수감된 것은 그가 동성애를 했다는 혐의를 받아서이다. 즉, 이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불과 120여년 정도 전인 당시만 해도 청교도적 윤리관과 편협한 가치관에 사로잡혀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는 시대를 풍미하던 천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졌고 출소 후에도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 속에서 다시 작가로 재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와일드가 이런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영어(囹圄)의 나날을 살아갔는지, 이 글을 통하여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글이 연인에 대한 편지인 만큼 연인에 대한 와일드의 마음이 주로 이 글에 명백히 드러나 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뛰어난 예술가로서 와일드가 힘든 시기를 경험하며 예술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연인에게

 

   편지의 수신인은 앨프리드 더글러스라는 16살 연하의 시인이었다. 그는 와일드가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비추어보면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심이 부족할 뿐 아니라, 변덕이 심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와일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혹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편지의 서두는 더글러스에 대한 불평과 비난으로 가득하다.

 

이 편지 속에는 당신의 오만함에 깊은 상처를 낼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자주 나올 거야.(p.44)

 

……절대 혼자 있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성격, 지적이고 일관된 집중력의 부족, 불행한 사고로 인해 지적인 문제에서 ‘옥스퍼드적인 기질’을 갖추지 못하게 된 사실. (p.48)

 

……당신은 내 예술에 절대적인 재앙으로 작용했지.(p.49)

 

   이외에도 와일드는 더글러스가가 심한 낭비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사치스럽게 지출한 것들을 자신이 언제나 지불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와일드는 이런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의 강요는 점점 더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지. 당신의 더없이 비열한 동기,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욕구, 지극히 저속한 열정은 당신에겐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따라야 하는 법칙이 되어버렸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 법칙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가차 없이 희생될 수도 있었지. (p.54)

 

 

   와일드에 의하면 자신에 대한 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진 시점에 더글러스와 상의를 하고 싶던 때에도 더글러스는 몬테카를로에 데려다달라고 졸랐다. 더글러스는 그곳에 가서 와일드는 제쳐두고 도박에 열중했고, 호텔 숙박비와 도박으로 잃은 돈은 고스란히 와일드가 지불해야만 했다. (p.57 참조) 더글러스가 와일드에게 무심하게 행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와일드가 이 편지에서 언급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거의 와일드와 함께 있었던 기간 내내 이런 식의 행동으로 와일드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다른 예로, 더글러스가 인플루엔자에 걸리자 와일드는 작품을 집필하던 것도 중단하고 성심껏 그를 간호했다. 간호중에 와일드가 인플루엔자에 전염되는데, 회복된 더글러스는 와일드를 간호하기는커녕 와일드의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나날을 보낸다. 병상에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해도 거짓말로 일관할 뿐이었다. 와일드는 고통 속에서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p.71~74 참조) 그러나 와일드는 그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글러스의 큰형이 의문스러운 사고로 사망하여 슬픔에 빠진 더글러스에게 연민과 애정을 다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가 그와 헤어지려고 시도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와일드가 말하는 것을 보자.

 

내(와일드) 잘못은 당신(더글러스)과 헤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과 너무 자주 헤어졌다는 거야. 내 기억으로는, 난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당신과의 관계를 끝냈어. (p.58~59)

  

   이 문장이 블랙유머에 가깝게 여겨질 정도로 와일드의 마음은 심하게 더글러스에게 흔들렸던 것 같다. 혹자는 이해할 수 없는 변덕이라고 할지 모르나, 와일드가 극히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연인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연인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편지글 전체에 비추어보아도 명확하다. 와일드는 더글러스를 향해 수많은 비난과 질책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더글러스가 법의 처벌을 받기를 바라거나, 증오심을 드러내거나, 출소 후에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겠다고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글러스에게 감정적으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태도, 마치 서로 다툰 연인 간에 있을법한 그런 심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와일드는 직접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아주 길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내가 수감되기 전 당신과 3년간 치명적인 우정을 나누는 동안 당신이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 만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내 수감 기간 동안 당신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출옥 후에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야. (p.219)

 

   그러나 이 편지의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와일드가 출소하기까지 그는 와일드에게 편지 한통도 쓰지 않았다. 대신 와일드는 심연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고 자신이 예술가로서의 혼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예술가 와일드

 

   「심연으로부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다른 것은 감옥이라는 일종의 지옥에서도 꺼지지 않은 예술가로서의 불빛이다. 평소 유미주의의 사도로 자처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여주던 그로서 이런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을 갉는 고된 노동과 처벌이 일상인 감옥에서 이런 섬세한 정신은 오히려 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니, 이런 처지를 고려하면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명백히 감옥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에게는 단순히 파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삶과 예술 모두에서 지고한 전형이 될 수 있지……고통에 비견할 수 있는 진실은 세상에 없어. 때로는 고통만이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삶의 비밀은 고통이기 때문이야. (p.153~154)

 

 

   그에게 고통은 예술에서의 진실로서 거의 유일한 진실이기도 하며, 삶의 비밀도 바로 고통으로 파악된다. 즉, 고통은 그의 예술론에서 거의 근본적인 자리에 있는 개념으로 자리매김 되며, 이런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현모습은 완전한 예술가의 고뇌하는 영혼일 수 있다. 그런데 ‘예술가는 오직 표현을 통해서만 삶을 상상할 수 있’다.(p.170) 따라서 현재 창작을 할 수 없는 와일드는 예술가로서의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論’을 통하여 예술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다.

 

 

   즉, 그리스도는 자신을 고통의 인간의 이미지로 구현했다. 자신을 통하여 예언이 실현되도록 함으로써 하나의 아이디어(이를테면 이사야의 예언)를 하나의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이 예언의 실현은 본질이 예술과 같은 것이다.(p.172 참조) 그리스도는 상상력에 의해서 로맨스의 중심인물이 되고(p.174 참조), 낭만적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연민을 가진 존재였으며, 사상이나 도덕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의해 인간의 삶이 희생되는 것을 거부했다. (p.180 참조) 상상력에 의해 일깨워지지 않은 이런 시스템은 속물주의적인데, ‘상상력은 단지 사랑의 발현’이기 때문이다.(p.181 참조) 그리스도는 상상력과 사랑으로 충만했고, 그의 삶은 한편의 시와 같다.

   이런 사유를 바탕으로 와일드는 유미주의적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기를 바라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와일드는 출소 후 수도원에서 머물기를 희망하기도 하고, 죽기 전에 세례를 받는다. 이런 와일드의 모습은 단지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지친 남자의 모습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와일드는 출소 후 거의 창작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이것만으로 영혼이 예술가인, 너무나도 예술적 영혼을 지닌 그의 모습을 단정 짓기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 예술과 진실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술에서의 진실이란 결국,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내면을 표현하는 외형, 인간의 모습을 한 영혼, 정신이 충만한 육체, 형식이 내용을 드러내는 삶”이 아닐까? (p.172)

 

   감옥이 와일드를 한없이 피폐하게 했지만, 이런 예술에서의 진실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심연으로부터」자체가 증명한다. 그토록 어떤 책도 읽지 못하고 종일 계속되는 중노동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술에서의 진실을 완전히 실현했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그는 이 진실을 평생 간직했고, 이 진실이 육화(肉化)된 사람으로 살았다. 「심연으로부터」에는 앙드레 지드가 쓴 글도 함께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지드는 와일드가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한다.(p.248 참조) 그러나 이런 평가에 상관없이 와일드는 자신이 말한 예술가의 모습을 지키려 평생 노력했고, 예술가로 죽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결어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서는 그가 살아있던 시기부터 수많은 악평과 의도적인 험담이 가하여졌고, 그의 스캔들은 자극적인 가십의 주제로 애용되기도 했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하였고,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훌륭한 번역으로 출간된 「심연으로부터」를 통해 이런 오해가 해소되고 와일드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기를 바란다. 로마시대의 시인 테렌티우스는 말했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어떤 것도 나에게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와일드 역시 인간으로서 인간의 예술적 본질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았고, 이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인간’이었다. 그는 예술을 실현하는 삶을 살았고, 그의 삶은 한편의 시와도 같았다. 심연에 있어도 건져 올릴 수 있는 그런 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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