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 나의 이동권 이야기 나의 OOO 1
이규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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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규식의 이야기다.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결코 유쾌한 삶이 아니었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 비장해지기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이 과거의 일을 추억처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런 삶도 있다고. 과연 이런 삶이 당신들과 다른 삶이냐고. 우리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니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같이 살 수 있게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라고.


그렇다. 가장 힘든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했다. 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사회, 장애인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장애인도 자신들의 편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리고 이규식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공동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도 살아보고, 이동권 투쟁도 해보고, 탈시설 운동도 한 이규식.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었을 테니, 그가 겪은 고통은 이 책에 나와 있는 구절들로 우리가 체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직은 미약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시설들이 개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투쟁 중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이 있고, 저상버스 도입률이 50%도 안되고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있는 식당가에서는 장애인이 화장실을 가기가 힘들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여행을 할 때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비장애인도 여행을 할 때는 많은 불편을 겪는데,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은 더욱 심하다는 사실.


오죽했으면 그가 "나도 무계획 여행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274쪽)고 했을까. 비행기도 배도 불편함이 있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숙소부터 시작해 이동 수단을 마련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더 놀랄 만한 일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도소의 시설이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그야말로 감옥인 곳.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곳인데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있기에는 너무도 불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이규식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공공기관부터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로 생활공간을 국한시키지 말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탈시설활동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규식 같은 사람이 있어, 누군가 앞서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좋은 쪽으로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무용하지 않았듯이, 그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서 더 나은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생각해 본다.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라면 비장애인 또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일테니. 이규식과 같은 사람들이 계획을 짜지 않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그런 사회라면 다른 환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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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무죄다 - 검사 이성윤의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
이성윤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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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꽃.


검을 칼이라고 한다면 꽃과 대척되는 지점에 있다. 물론 검사할 때 검은 칼이 아니다. 칼이 아닌데, 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칼 앞에서 식물은 약하디 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칼로 아무리 식물을 베어내도 식물은 완전히 죽지 않는다. 죽은 듯이 보였다가도 어느 때에도 다시 살아난다. 그것이 바로 김수영이 노래한 '풀'이다. 식물이다. 꽃이다.


꽃의 화려함이 10일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화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고 지낸 세월을 생각한다면, 화려함을 봐줄 수도 있다. 또한 그 화려함이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존재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데, 어찌 화려하다고 비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자는 검찰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검찰이 지닌 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꽃에 대한 책을 썼다. 그것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야생화에 대한 글들도 있으니...


그를 아내는 '꽃개'라고 한단다. 꽃 냄새를 잘 맡는 개와 같다는 뜻이다.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꽃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리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꽃을 찾아낸다는 것은 집중력과 주의력이 있다는 뜻이다. 또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도 볼 수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 사람에게 닥친 일들, 이 책에서는 스치듯이 언급하고 있지만, 검찰의 핵심에 있던 사람도 이렇게 검찰에 불려다니면 힘들어하는데,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검찰은 그야말로 칼을 휘두르는 권력자일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꽃과 식물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그를 보면서, 우리도 역시 자연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


가끔은 하늘을 보라는 말, 이 말은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는 생활에서 잠시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 여유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생활에 지쳤을 때 자신을 잠시 놓아두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여유. 


그런 여유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자처럼 이렇게 나 아닌 다른 대상을 보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꽃을 찾아다니면서 꽃에게서 느낀 감정들, 그 꽃들이 지닌 속성,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꽃과 나무 사진들, 그림들이 눈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성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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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말 - 희망으로 연결된 SF 세계, 우리의 공존에 대하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콘수엘라 프랜시스 엮음, 이수현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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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소설을 써왔다는 버틀러. [킨]이란 소설로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나는 버틀러의 소설을 세 권 읽었는데,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버틀러는 세 종류의 독자가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SF팬. 흑인. 모두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세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는 버틀러의 삶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단 3년밖에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버틀러. 지나치게 큰 키로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버틀러.


그래서 어려서부터 소설을 썼다는 버틀러다. 그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소설이 주로 SF작품이었다고 하고, 그도 그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물론 많은 작품들이 거절을 당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 해왔다는 사실. 다른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글이 지닌 문제점을 파악하고, 계속 쓴 결과 지금처럼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는 버틀러.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하나로 규정짓기를 거부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킨]을 SF작품으로 보는데, 버틀러는 이 작품에서는 과학에 관한 표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로 봐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노예제 사회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소설을 쓴 것. 


이렇게 버틀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고 하고, 그런 결과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소설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더 많은 말이 필요없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읽어보면 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실린 시는 지금 우리에게도 유용하다. 그가 안타까워했던 미국의 현실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고 있는 이런 현실. 답답하다.

작가에게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작가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뭐든 타자기의 먹이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끔찍한 일이었다 해도 나중에 써먹을 수가 있죠. - P41

어떤 종류든 중요한 변화야말로 SF의 핵심이에요. - P59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두 가지가 필요해요. 제목과 결말이요. 그 두 가지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아직 시작할 때가 아닌 거예요. - P67

...소설을 읽고 싶어 한다면, 그 소설은 꽤 좋은 이야기, 이야기로서 독자들의 관심을 붙들 이야기인 쪽이 좋아요. 다른 수많은 소설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영화, 스포츠, 그 밖의 다른 오락물들과 경쟁해야 하죠. - P70

SF의 멋진 점 하나는 제가 파고들고 싶은 것은 뭐든 자유롭게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 P121

작가로서 제가 하는 일은 제 인생을 캐내고, 역사를 캐내고, 뉴스를 캐내고, 뭐든 거기 있는 걸 캐내는 거예요. 마치 온 우주가 광물이고 저는 그 안에서 금을 캐내야 하는 것 같죠. 그리고 물론 저는 제 글에서 제 인생의 조각들을 볼 수 있어요. 아까 이야기한 특성들로 말하자면, 당연히 저를 방해하기도 하고 저를 밀어주기도 하고 다른 일들도 해요. - P126

우리 모두가 훨씬 열악한 삶을 받아들인다면 훨씬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는단 말이에요. ... 문제가 실제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질 않아요. - P137

사람들은 정말로 하던 대로 하는 걸 훨씬 편안해하거든요. 그 하던 대로 하던 일들이 불가능해지기 전까지는요. - P139

많은 사람이 그저 우월감을 느낄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 자기 이익에 맞지 않는 투표를 하면서요. 딱 우리를 파멸시킬 근시안적인 행동이에요. - P157

작가의 글은 작가 내면의 감정과 생각과 믿음과 자아의 표현이죠. 직업 작가로서 글을 쓰는 방법을 익히기가 어려운 건 그게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해요. 거절은 정말 고통스러워요. - P168

독서는 그런 식으로 우물을 채워요. 상상력의 우물을 채워주죠. 그러면 그 우물로 돌아가서 채워둔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거예요. - P195

하지만 위험한 건 우리가 더 위계적일수록 우리나 다른 사람의 지성에 귀 기울일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거예요. - P234

글쓰기의 멋진 점은 세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계속 새로운 발견을 한다는 거예요. - P243

저는 책을 한 권 살 때, 이 책에서 아이디어 하나만 얻어도 제값을 하는 거라고 말해요. 책을 한 권 쓸 때는, 제가 단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영향이 좋은 것이라면요. - P254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를 때 마구잡이로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어요. - P288

(딜레이니의 말) 텍스트는 원래 선형적이지 않아요. 텍스트는 다중적이고, 정말로 읽는 사람,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쌍방향의 과정이죠. - P323

지혜와 선견지명을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라. 겁쟁이를 지도자로 고르면, 그 겁쟁이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에 좌우될 것이다. 바보를 지도자로 고르면, 그 바보를 조종하는 기회주의자들에게 끌려다닐 것이다. 도둑을 지도자로 고르면, 그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훔쳐 가달라고 내미는 꼴이다. 거짓말쟁이를 지도자로 고르면, 거짓말을 해달라고 청하는 꼴이다. 독재자를 지도자로 고르면,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노예로 넘기는 셈이다. (443쪽.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에 나온다는 시) - P443

조심하라.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내 말처럼 한다. 우리는 남에게 들은 말을 우리의 생각인 양 여긴다. 우리는 봐도 좋다고 허락받은 대로 본다. 더 나쁠 때는, 보라고 지시받은 대로 본다. 반복과 자만으로 인해 그렇게 된다. 뻔한 거짓말이라도 반복, 반복, 또 반복해서 보고 들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그 말을 내뱉게 되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옹호하게 되고, 마침내는 우리가 그 말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게 된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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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여름인가 싶은 날씨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중에서 춘추는 점점 짧아지고, 하동은 점점 길어지고 심각해지고 있으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두 계절은 뚜렷하고, 나머지 두 계절은 온듯 가버리는 현상이 만들어졌나 보다.


  이번호 편집자의 말 주제가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는데,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겹쳐 그러한 인연이 만들어졌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에 있는 만물들이 다 나하고 인연이 있어서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가끔 목이 잘린듯이 뎅강뎅강 잘라져 나간 나무들을 볼 때가 많다. 요즘은 두꺼운 가지 몇 만 남기고 다 잘라버려, 저 나무들에 언제 무성한 가지와 잎이 나올까 싶은 나무들도 있다.


나무들이 아니라 전봇대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잘라버린 나무들. 집 근처 공원 산책길에 자목련 나무가 있었다. 색깔이 특이해서 이 맘때면 예쁜 색깔을 자랑하던 자목련. 사람들이 자목련 나무 곁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사진을 찍다 하곤 했었는데...


올해 그 나무가 사라졌다. 분명 자목련 꽃을 피웠어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 왜 없어졌지? 자목련 나무를 봤던 자리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없어졌다. 뿌리째 뽑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그나마 나았으련만, 그럴 수고를 했을지 의문이다. 그냥 베어버렸다면, 왜?


나무와 맺었던 인연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한 순간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그 자리에서 예쁜 꽃을 피웠던 자목련이 이렇게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니...


서운하면서 화가 났는데, 이번 호에서 이와 비슷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자연과의 관계를, 인연을 함부로 대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에, 그런 존재들이 대부분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자리에 있다는 씁쓸한 현실에 마음이 상했다.


한창 화사한 봄꽃들이 제 자태를 뽐내고, 그러한 봄꽃들로 인해서 우리들 마음도 함께 환해지려는 이 때, 마음의 등불을 꺼버리는 행동들을 하다니...


전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나 보다. 윤은성 시인의 글 '쓰지 못하는 사람'에 전주천에 있던 버드나무들을 베어버린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버드나무는 시민사회와의 소통 절차가 필요했음에도 새벽에 불시에 잘려나간 것으로, 이 일은 전주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홍수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베어냈다고 하지만 버드나무가 홍수 피해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를 전주시는 제시하지 못했다.' (63쪽)


시에서 이런 행위를 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위는 자연과 시민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지도 않았다면, 자연과 교감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인연을 소중히 여길 수가 없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와 관계 있는 일을 하기 전에 여러모로 따져보았으리라.


길을 걷다가 흔히 보게 되는 다 잘린 나무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함부로 뽑힌 식물들, 그런 존재들을 더는 보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 자리를 누리고 있는, 인연을 맺은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소중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이렇게 이번 호를 읽으면서 자연과 사람의 인연을 생각했다. 나는 과연 나와 인연을 맺은 존재들을 소중히 여겼는지, 그 존재들에 내 마음을 주기는 했는지를...


봄이 가고 있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빅이슈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존재들이 있음을 생각한다. 그 존재들이 내게는 소중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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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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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부분부터 뭐야?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번역으로 읽어서 원문의 문체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번역문에서 독특한 문체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인데, 탁-탁-탁 하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짧은 문장들이 계속 나온다. 이토록 간결한 문장들이 연속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같은 단어들, 같은 문장들이 반복된다. 상황도 반복되고. 


음악에서 도돌이표가 있는 듯이 소설은 계속 나아가다 돌아가고 또 나아가다 돌아가고, 반복, 반복의 연속이다. 이런 문장들 속에서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첫부분을 보자. 짧은 문장. 반복되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이런 부분이 또 계속해서 나온다. 자꾸 앞으로 돌아가, 돌아가 하는 듯이. 도돌이표. 불안에 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도돌이표와 같지 않을까, 그런 점을 표현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문장들의 반복이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불안 증세로 내 왼팔, 내 손가락이 쑤신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8쪽)


인물이라고 해봐야 겨우 셋인데, 아니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둘인데,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와 '크누텐'


'나'는 시작부터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런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글을 쓴다. 글쓰기가 치유의 한 방식이지만, 여기서 글쓰기는 치유가 되지 않고, 그의 불안감을 계속 심화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불안감을 계속 떠올린다. 왜 불안한가? 별것도 아니다. 그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는 것. 이 소설이 지닌 장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치는데, 뒤로 가면 '크누텐'이 서술자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상하게 다른 인물인데도 이들의 서술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비슷하다. 둘다 무언가 모를 불안에 차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감정을 안으로 안으로 들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나'도 그렇고 '크누텐'도 그렇다.


이러니 이들은 어릴 적 친구라고 해도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다. 나와 크누텐의 관계만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잘 관계 맺지 못한다. 무언가 계속 어긋난다. 크누텐의 아내와 만나는 장면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만남을 크누텐에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크누텐도 마찬가지다. 무언가가 관계를 맺는데 실패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안으로만 들어가는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트하우스라는 낡은 곳,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그래서 어린 시절 그들의 피난처이자 놀이터이기도 했던 그곳이 나오지만, 그 보트하우스처럼 '나'도 '크누텐'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쇠락해갈 뿐이다.


보트하우스는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장소가 되는데, 그들에게 의미가 있던 그 장소가 이제는 그냥 쇠락한 공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만큼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불안들도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마음 졸이고, 불안에 떨던 많은 상념들이 삶에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관계는 파탄날 뿐이다. 크누텐이 아내와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때문이라면, 그런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보트하우스처럼 그 자리에서 그냥 낡아갈 뿐이라는 것, 자신의 삶을 갉아먹을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점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가 변변한 일자리도 갖지 않고,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연주일을 하던 것에서 이제는 집 안에만 처박혀 글만 쓰는 일은 관계의 파탄이다. 외부와 연결돼 있던 끈을 놓아버리고 만 것.


하여 인물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런 짜증을 작가는 짧은 문장들을 경쾌하게 배치함으로써 누그러뜨리고 있다.


이들의 우유부단함, 관계맺기의 실패 등이 경쾌한 문장으로 소설을 끝까지 읽어가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문장이 짧고 경쾌했다는 사실은 남을 것 같다. 


자신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생각들의 늪을 작가의 문장처럼 날렵하고 경쾌하게 벗어던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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