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자리'를 찾아보면 '국경을 지키던 일, 또는 그런 병사'라고 나온다. 그러니 수자리는 군인이라고 보면 된다.


  나라가 있으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헌법 39조에 국방의 의무라고 해서 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2항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군인들이 있는 곳이 군대인데, 군대가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죽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말이 있겠는가. 군대에서 갖은 고생을 했기에 군대는 생각만 해도 싫다는 말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이와 비슷하게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 제대하고 나서도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다고 한다. 악몽이라고... 얼마나 군대가싫었으면...


이와 반대로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이 있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지내보면 조금 성숙해진다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이때 사람된다는 말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따른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니... 하여튼 군대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군대에 관련된 헌법에 있는 2항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는 이 구절...


불이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예전에(지금도 그럴지도)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무엇이 불이익일까?


쉽게 군대 가산점이 있으니 불이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경제활동을 하는 만큼의 보상이 주어졌느냐 하면 아니다. 


요즘에야 병사들 월급을 인상해준다고,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지만, 2-30년 전만 해도 병장 월급이 1만 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최소한의 용돈을 주고 젊은이들을 군대에 잡아놓았던 시절.


헌법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군대에 있는 1년 6개월 동안 그에 합당한 보수를 국가가 지불해야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에 맞는다.


여기에 군대에서 자행되던 온갖 폭력들, 반인권적인 행위들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이익이다.


구타라는 말, 지금은 그것이 범죄로 인식되어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얼차려'라고 해서 구타는 일반적이었다. 오죽하면 '구타 없는 부대'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단장이 있었겠는가. 그것이 구호로만 그친 경우가 많았지만.


소원수리라고 해서, 군대에서 일어난 비리, 억울함 등을 호소하는 활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눈 감고 아웅하는 그런 요식 절차였다. 편지까지 검열당하는 군대에서 누가 용감하게 군대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반인권적인 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군대가 강한 군대가 되지 않겠는가.


이 시집은 시인이 군대에 가는 과정부터 군대 생활, 제대, 그리고 예비군과 민방위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쳐 아들에게 신체검사 통지서가 오는 것으로 끝난다.


한 사람이 군대에서 겪는 일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예전 군대가 이랬다고, 지금은 안 그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군대였으면 좋겠다.


군대가 없는 나라가 거의 없으니 (예전에 코스타리카가 군대 없는 나라라고 했는데, 더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군대가 적어도 이 시집에 나온 행위들을 더이상 하지 않는 군대였으면 한다.


'양조장집 아들은 무종을 받았고 / 산업과장 아들은 폐결핵이란다 / 무종을 받고 폐결핵이면 / 군에 가지 않는단다' ('신체검사' 중에서 17쪽)


이 구절은 다음에 '이 땅의 젊은이면 가야하는 군대'('영장' 중 20쪽)과 어긋난다. 원칙적으로는 다 가야하지만, 이상하게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앞의 신체검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반인권적인 내용을 보자.


'우리를 서로 마주 향해 세우더니 / 앞에 선 전우의 빰을 치란다' ('소등 이후' 중에서 48쪽)

'5초안에 식사를 못 마쳤다고 / 식기를 입에 물고 오리걸음 연병장을 수도 없이 돌았네' ('식사시간 '중에서 58쪽)

'사실을 사실대로 쓸 수도 없는 / 군사우편 서신검열 우리들 편지' ('첫 편지' 중에서 66쪽)

'내무반에 돌아오면 사나운 내무반장의 / 가학적 기합이 기다리고 있었다 /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성적(性的)인 학대를' (내무반 내무생활' 중에서 112쪽)

'현역병 제대는 무기한 연기되고 / 제대특명 조치는 금지되었다' ('제대명령을 기다리며' 중에서 149쪽)


이런 일들이 당시의 군대에는 비일비재했다. 헌법에 있는 말들은 그냥 말일뿐인 세상.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야 한다. 군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시집이었다. 한 편의 이야기. 이제는 할 수 있는 군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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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려 있는 건 다 꽃이지" (엄재국, 정비공장 장미꽃. '문' 중에서. 애지. 2006년. 100쪽)


  이것이다. 꽃 하면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왔을까 했더니 열려 있음에서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귀엽다고, 순수하다고 한다. 왜? 바로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이 있다. 안치환이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가사에도 이 구절이 나오는데, 이때 아름다운 사람은 열려 있는 사람이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우열을 가르는 말이 아니라, 꽃을 아름답다고 하니, 사람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사람도 꽃이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려면 열려 있어야 한다. 자신을 활짝 연 사람에게는 벌이 찾아드는 꽃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열려 있음, 이것은 곧 나의 것을 다른 존재에게 준다는 말이다. 내 것을 가져가시오. 맘껏 가져가시오. 이것이 바로 열려 있음이다. 꽃은 자신을 통째로 내어준다. 그래서 꽃은 아름답다. 또한 그런 사람도 아름답다.


시 제목이 '문'이다. 문은 열려 있기도 하고 닫혀 있기도 한다. 하지만 문의 기능이 무엇인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나. 안과 밖의 소통 창구. 


문은 닫혀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늘 열려 있기만 해도 안 된다. 열릴 때 열리고, 닫힐 때 닫혀야 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이 늘 활짝 열려 있지는 않다. 꽃도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 때 열린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문'이라는 시에서 아이를 꽃에 비유하고 있다. 아이의 말은 벌이다. 꿀을 발라 나르는 벌들. 그렇게 아이는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


엄재국 시집을 읽다가 만난 구절. 


"열려 있는 건 다 꽃이지"


마음을 열어야겠다. 꼭꼭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환대할 수 있게 활짝 열린 문처럼. 


어쩌면 시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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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다가 한 구절을 발견한다.


  그 구절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 구절뿐,


  그런데 그 구절이 왜 이렇게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 때문이 아닐까.


  많은 일들이 동영상으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동영상 중에서 한 장면이 멈춘 듯, 마치 사진처럼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런 사진처럼 남아 있는 장면.


좋은 장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황학주가 처음 펴낸 시집을 다시 복간한 시집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시는 다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그래야 시다.


한 시대가 지났다고 잊혀져서는 안 된다.


이 시집에서도 많은 시들이 다시 지금을 환기시키고 있지만, '단단한 벙어리를 깨고'란 시에 나오는 이 구절이 가슴 속에 들어와 박혔다.


'평화보다 잘 찍힌 불행은 역사에 많다'(황학주, '단단한 벙어리를 깨고' 중에서. 23쪽)


평화. 평화가 유지될 때 우리는 평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중국에서 태평성대라던 요 임금 때 누가 임금인지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그냥 평화롭기 때문에 특정한 장면으로 남길 필요가 없다. 그런데 불행은?


불행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불행은 우리의 눈을 잡아 놓는다. 그래서 불행은 사진으로 남는다.


평화보다 잘 찍힌 불행이라는 표현에서 그런 불행들은 결코 우리를 스쳐지나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방송되는 여러 일들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 그런 장면들이 하나의 사진처럼 남아 있게 되는데...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들으라고 했다가 온몸이 들려 끌려나가는 장면. 불행은 평화보다 잘 찍힌다.


이 시 구절이 확 들어온 이유가 이런 장면들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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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백석과 보낸 며칠간이라니... 제목만 보고, 백석 시를 읽고, 그 시를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녔으리라 생각했다.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음 속에 담아두려 하고, 좋은 시인을 만나면 그 시인의 시를 계속 찾아서 읽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백석이란 시인은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의 시를 구하기 쉽지만, 예전에는 재북시인이라고 해서 우리가 읽어서는 안 되는 시인이었다.


  그런 시인과 더불어 며칠을 지냈다니 시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시집을 펼쳐 제일 먼저 읽은 시는 제목이 된 '백석과 보낸 며칠간'. 백석 시도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고, 그러한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좋은 시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러한 마음이 절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백석과 보낸 며칠간 가난한 내 영혼에서 / 볍씨 같이 싹 트던 맑은 눈' ('백석과 보낸 며칠간'에서. 79쪽)


좋다. 이렇게 시를 읽으며 '맑은 눈'이 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을 읽는 이유가 그것일 수 있다. 척박한 세상에서 맑음을 찾는 마음, 그 마음이 시집을 찾게 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시 중에서 이 시, 누군가에게 이런 센서 등이 되거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맑은 눈뿐이 아니라 맑은 마음까지도 지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보자.


            센서 등


  저 소녀 성능 좋은 센서 등, 소년이 다가가자 환히 켜져

  소녀의 웃음은 빛난다. 소년이 떠나면 곧 꺼질 것이다.

  나도 꽃 피는 봄이면 내 마음도 탁 하고 켜져 오래 환했다.

  옛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센서 등, 아버지가 기술자로

  울산공단에 오래 있다 돌아오는 발소리 동네 입구를 울리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어머니는 탁 켜져 목련꽃보다

  화사하게 빛이 났고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 각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가졌기에 사람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면

  환히 켜지거나 캄캄하게 꺼지기도 해, 불야성의 도시라도

  사람이 쉼 없이 자동으로 꺼졌다 켜졌다 하기에 아름다워

  지금도 누가 다가가는지 멀리서 탁 하고 켜진 환한 얼굴이 보여


김왕노, 백석과 보낸 며칠간, 천년의시작. 2022년. 76쪽.


아름다운 시다. 소녀만이 성능 좋은 센서 등이 아닐 테다. 소년도 역시 성능 좋은 센서 등이다. 아니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성능 좋은 센서 등이 된다. 그가 오면 그를 위해 빛을 내는 센서 등. 그가 없을 때는 그를 기다리며 빛을 감추어두고 있는 센서 등.


누군가에게 이런 센서 등이 된다는 것, 사랑하는 일이다. 꼭 누군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반응하는 그런 센서 등을 지닌 사람.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밖에 없다. 그는 다른 존재들에게 빛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렇게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것이 시인이 바라는 세상이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어떤 시에는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황발이'80-81쪽) 어떤 시는 세상을 살아낸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아직도 아름다운 일몰이여'-26쪽, '장엄한 일몰'-106쪽)


무엇보다 우리도 빛을 낼 수 있음을 시를 통해 알 수 있으니 그것이 즐거운 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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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를 읽으면서는 딱 한 낱말, 이 말에 꽂혔다. 그리고 이 말이 바로 표지 사진과도 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녹명(鹿鳴') 사슴이 운다. 또는 사슴의 울음소리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보니 이런 말은 없다. 한자가 다른 말들만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녹명'이라는 말을 '공명(共鳴)'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까 했지만, 약간 다른 느낌을 준다. 공명은 공감이라는 말과 비슷하다면 녹명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이 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다. 솥이 여럿이란 말은 음식을 홀로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함께 나눈다는 말이다. 녹명이 바로 그런 말이라고 한다.


'녹명은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함께 나누기 위해 다른 사슴들을 부르는 울음소리랍니다. 대개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는 것마저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울어 울어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나눈다네요. 녹명은 저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말입니다.'(김인호,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구례 산동 사포마을 다랑이논 선정-, 85쪽)


정말 아름다운 말이다. 이런 녹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이 있다.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다른 존재들에게 따스함으로, 표지 사진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고도 따뜻함으로 다가가겠다.


삶창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바로 이런 일 아니겠는가 싶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 나만 갖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갖자고 하는.


그래, 좀 있는 사람들, 이 녹명이란 말 좀 듣고 명심했으면 좋겠다. 함께 나눌 때 기쁨은 배가 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이번 호는 이 한 낱말로 꽉 찼다. 그것이면 됐다. 곧 각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확정될 테다.


국민을 위한다고 나오겠다는 사람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자신들이 먼저 먹이를(사슴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발견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나왔을 거다.


자신이 발견한 먹이를 함께 먹자고, 그렇게 사람들을 부르겠다고, 녹명(鹿鳴)을 실천하겠다고. 그런 사람들인지 아닌지 우리가 판단해야겠다.


사슴처럼 함께 먹자고 우는 사람일지, 하이에나처럼 남이 먹다 남은 음식 더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일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녀야겠다. (하이에나에게는 미안하지만 통념이 그러니 하이에나가 용서해주길)


'녹명'이란 한 낱말. 바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하이에나가 아니라 사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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