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하늘의 손길이 부드럽게 어루만질 때

땅은 이제 해산할 때가 되었음을 안다.

몸 속 생명들이 나갈 수 있도록

굳고 단단하게 잠갔던 자신의 몸을

하늘의 손길에 맞추어 조금씩

부드럽게 열기 시작한다.

 

 

 

땅이 몸을 조금씩 열수록

흑백이던 온누리는

찬란한 천연색으로 바뀌고

싸늘한 숨만 내쉬던 하늘은

땅이 낳은 새 생명들과 함께

따뜻한 노래를 부른다.

 

 

 

땅의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여린 것들의

무구한 모습에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즐거움이 깨어나

우리는 절로 함께 벙싯거린다.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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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他)

 

 

 

 

남(他)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사람의 끝이라니

사람일 뿐이라니

이 가없는 거리

이 거리 없음

他(타)는 人也(인야)라.

남은 결국 나일밖에

나를 키우기 위해

나를 받치는

발판 ㅁ을 키울밖에

발판이 클수록 나 역시 커지고

남을 누를 때 나 역시 작아지니


 

 

남은

두려운 말

 


 

남은 사람이라

남은 바로

나라는

 

他는 人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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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감독

 

우리는 이를 시감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순간, 사제지간이 경찰과 범죄자의 관계로 전도되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관장하는 점수의 권능. 점수 앞에서 생명 없는 기계 수준으로 떨어지는 인간들, 그들을 누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랴.

 

머리 속을 텅 비워라!

오직 눈만을 크게 뜨고

허튼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웃지도 말고

믿지도 말고

다른 행동을 하지도 말고

오직 아이들만을 쳐다보아라.

 

 

믿음, 인간의 신뢰

점수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잠시도 쉬지 말고 감시 카메라를 작동시켜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총탄.

반사적으로 펼쳐지는 방탄복.

 

점수를 끄집어 내려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우리들의 믿음으로

알고 싶은 것,

알아야 할 것을

얼마나 알고 있나를

잘 알고 있나를

평가해 보는 것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몰랐던 것,

부족했던 것은

다시 보충하면 되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하면 되는 거지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좋은 학교 보내 줄 거야!

 

 

 

슬픈……

너무도 서글픈 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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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경쾌한 리듬에 맞춰

실낱같이 얇은 줄 위에

한 어릿광대

얼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안간힘을 쓰며 잡는 균형


까마득한 하늘,

까마득한 땅,

하늘도 땅도 아닌

줄 위.


두 발로 딛기엔

너무도 좁아,

얼쑤

풍악을 울려라.

하늘, 땅,

다 잊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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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눈처럼


사랑은

이처럼 왔으면


나에게로 

단 한 번에 오지 않고

이길 저길 다니면서

부드럽게

소담스럽게

하얀 미소를 띠고

나에게 닿았으면


격하게 

온몸을 내던지는

길은 오직 하나

나를 향해 돌진하는

비처럼

닿자마자

나를 상처내고

저도 상처받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나도 즐겁고

남도 즐거운

사랑은,

눈처럼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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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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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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