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 LGBT(Q) 알마 해시태그 2
강병철 외 지음 / 알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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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할까? 그것도 사회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은 이런 증세가 더 심하다. 남 말을 듣지도 않고 또 남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릇된 행동이고 자기 행동만이 옳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여기에 더하면 종교인들도 그렇다. 자기 종교만 옳다. 다른 종교는 이단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잘못된 믿음일 뿐이다. 그들을 개종시키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같은 종교에서도 종파에 따라서 차별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관용과 사랑, 자비에 바탕을 둔 종교가 오히려 배제와 억압, 말살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한다는 종교는 더 그렇다.

 

이들에게 소수는 이단일 뿐이다. 고쳐야 할, 자신들을 따르게 할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종교인이나 정치인 시 신이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게 서로 보완해주면서 살아간다. 내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고, 내가 넘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고, 아름다운 사회고, 행복한 사회다.

 

자기만이 옳다고, 남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횡포다. 폭력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도 못하고 저지르는 폭력.

 

이런 폭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다. 물론 그들은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 다름을 너무 드러내지 말아라고 말할 뿐이다.그말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사회, 좋은 사회는 소수를 인정하는 사회다. 소수가 행복하면 다수 역시 행복하다. 사회에서 가장 밑부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성소수자는 여전히 힘들다. 그들을 이제는 대놓고 차별하지 않지만 - 아직도 인권 감수성이나 인권 의식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들, 집단들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발언을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몇몇 종교에서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 은연 중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마음이 아픈 글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배제, 차별이다. 이주원이 쓴 '고독의 반대말'이라는 글을 보면 직장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고립감,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사원 복지에서 배제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들, 차별적 규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전히 이들에게 갈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던가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성소수자가 없다. 내가 둔감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전히 내 행동, 내 말이 성소수자를 무의식 속에서 차별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 역시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머리에만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슴으로 그들에게 공감했다면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

 

그것은 토론에서 가끔 주제로 선택하는 '동성애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는 질문에 이미 나타나 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의 문제가 아닌데, 이것을 주제로 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이라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그들은 동성애자가 된다. 그러니 이들을 찬성, 반대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다. 그들 삶을 심하게 간섭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른 삶을 강요하는 것이다.

 

백조연이 쓴 '동성애 찬성 반대에 관하여'란 글을 보면 많이 반성하게 된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편견이 많다는 것.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생각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어,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에 관한 언어를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과학, 의학의 발전에 기대어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내용은 이 책에 실린 강병철의 '성소수자에 대해 의학이 알고 있는 것들'에 잘 실려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 말하기는 쉬운데, 행동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머리에만 머물러 있다. 가슴까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가슴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해줬다.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공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이제 눈 앞에 있는 길을 가면 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것이 인권이 살아있는 나라가 되는 길이다. 인권이 살아 있는나라는 좋은 나라고, 소수도 행복한 나라다. 소수도 행복한 나라, 그 나라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다.

 

적어도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이 정도 나라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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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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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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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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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수업이다. '젠더'를 생물학적인 성인 '섹스'와 비교해서 '사회적인 성'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무언가로 규정되면 이미 어떤 한계 속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젠더 수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바로 한계 속에서 나오는 것, 틀을 부수는 것,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을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남녀가 지니는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다.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가지고, 남녀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사회적ㅡ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틀 속에서 본성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형성되는데, 이것이 '다이어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다음에 사랑, 또 모성으로 논의를 확대해 나가는데...

 

본능에 가까운 정서라고 여기고 있던 것들이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제목이 '나의 첫 젠더 수업'이듯이, 젠더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 청소년들이 어떤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이 고정관념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번엔 직업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과연 일에 남녀가 구분되는 일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을 구분하고, 그렇게 교육했다면, 이제는 아니다. 일은 평등하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최초'라는 이름을 단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 '최초'들이 있어서 사회에 퍼져 있던 편견들이 하나하나 깨져가고 , 이제는 '최초'라는 말을 쓰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가정으로 돌아와 보면 어떤가? 라고 질문을 한다. 가정으로 돌아오면 사회에서 양성 평등이 많이 이루어졌고, 남녀 구별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는 차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이 말을 듣고 참 좋은 말이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맞벌이'와 '맞살림' (136쪽)이라는 말... 맞벌이는 많이 하는데, 아직도 맞살림은 거의 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 그러니 갈 길이 멀다.

 

젠더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쓰는 '혐오의 말'을 인식하는 일이다. 혐오의 말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양성평등으로 가기 힘들다. 이런 '혐오의 말'은 파농의 말을 빌려 '수평 폭력'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주변에 있는 약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수평 폭력'이다.

 

가부장적 사고에 빠져 있거나, 남녀는 달라야 한다는 사고에 빠져 있는 경우,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 이런 '수평 폭력'을 휘두르기 쉽다.

 

그러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젠더 박스'에 갇혀 살지 모른다. 자신은 갇힌 줄도 모른 채.

 

어쩌면 이 '젠더 박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관점으로 재단하는. 자기 관점에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침대.

 

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없어져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젠더 박스' 또한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좀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아니,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하고, 남과 함께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박스에 갇혀 있으면 다른 사람과 제대로 연결될 수 없기에. 우리나라 청소년들 공부다 뭐다 해서 자꾸만 박스 속으로만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된다. 이 책은 그런 청소년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젠더 박스를 벗어나라고 말을 건다.

 

젠더 박스에서 나와야지만 너는 너답게 살 수 있다고,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그래서 우리는 우리답게 서로 연결되어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덧글

 

프란츠 파농은 20세기에 살았던 알제리 사람이에요. 학자이자 의사이며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때 독립 투쟁을 이끈 지도자이기도 하지요. (181쪽) 라고 되어 있는데,

 

파농이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한 것은 맞지만, 알제리사람은 아니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알제리는 그가 활동했던 나라이지 조국은 아니다.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쿠바에서 활약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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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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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5: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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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차례가 온다면
세스 고딘 지음, 신동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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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 차례가 온다면' 가정이 아니다. 당신은 차례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당신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차례는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 차례다.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는 당신은 어쩌면 제논의 역설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 머리 속에서는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금방 따라잡는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제논의 역설을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실행이다. 움직이는 일이다.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이 점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는 일은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생각에서 온다. 왜냐하면 실행하지 않은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이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생각만 하면 결국 행동할 수 없다.

 

차례만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온 줄도 모르고 보내버리게 된다. 세스 고딘은 이 점에 대해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당신 차례는 이미 왔다고.

 

선택은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지 않는다고. 바로 당신이 지금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청년세대들이 지금은 삼포를 넘어 오포, 또는 다포세대라고들 하는데, 이들 역시 두려움 때문에 포기를 하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것들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예측하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되니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는 일, 이제는 너무도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실패, 실패, 실패...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때 성공이 어느 새 다가오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실패하면 일어서기 힘들다. 그만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히다. 패자부활전. 없다.

 

토너먼트 경기처럼 한 번 패배하면 그냥 퇴장해야 한다. 리그전이 아니다. 한 번 져도 다음에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젊은세대들이 도전을 꺼리게 된다.

 

머리 속으로 온갖 상황을 그려보고, 성공할 확률이 70-80%는 되어야 행동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드니까.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니까.

 

아무리 이런 책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도, 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해도, 당신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해도, 두려움과 함께 하라고 해도, 대가가 너무 크다.

 

치명적이다. 그러니 안전한 길로만 간다. 따라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대로, 다른 사람이 주는 대로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생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살아간다고 하기보다는 살아진다고 하는 편이 가까운 삶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뿐인 삶. 수동적으로 주어진 대로만 살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미래는 머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상상일 뿐이다.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바로 실천, 행동이다. 지금 바로 하는 행동이 바로 미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고. 지금이 바로 당신 차례라고 이 책은 말한다.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 다포세대가 된 청년들에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지,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 먼저 행동하라고, 두려움을 잠시 미뤄두고 움직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변화가 시작되니까... 여전히 힘든 일이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지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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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부리 아래의 돌 -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들을 위한 비망록
김호정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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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국가조작 사건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직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읽으면서 분노가 치솟고, 그러다가 한숨이 나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77년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 우리나라에 간첩 사건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특히 재일교포들을 대상으로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는 등,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고, 많은 사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무죄로 판명되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고, 역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는 말. 브레히트 시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 다음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는 구절이 있다.

 

살아남았기에 강한 것이지 결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들이 무죄로 판명되고, 국가 폭력으로 인정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았다고 강한 자가 되었을까.

 

많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결코 강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틀린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떨어져 버렸고, 사람들을,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면 자기 가족들이 당하는 피해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이들이 어떻게 강하단 말인가. 이들은 살아남아서 더 약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된 그들에게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의 힘이다. 진실의 힘이다. 역사는 진실을 배반하지 않으니까. 그것이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 책 역시 이런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간첩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냥 사람답게 살고자 할 뿐이었는데... 그냥 친근한 사람들끼리 어울렸을 뿐인데...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이들은 간첩이 된다. 누구는 거물급 간첩이 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이 사람과 어울린 사람들은 그에게 동조, 방조, 협조한 사람이 되어 모두 실형을 받는다.

 

석방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도 있지만 지병으로 숨진 사람,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지 못하자 자살한 사람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이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세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흘러가다...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다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이 책을 엮은 김호정 선생이 자신 아버지의 일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억울함을 해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 기록들을 찾아보고 진실을 밝히고 결국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나가고 있다.

 

어려운 재판 용어보다는, 또 막연히 억울하다는 심정 토로보다는,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이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고문과정과 그것을 용인하고 실적만 쌓으려는 검찰들과 진실을 밝힌다기보다는 정권 눈치만 보는 법원까지.

하나 더 추가하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적극 협조한 검찰에서 파견된 조사관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속한 조직이 한 일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이들은 간첩이 맞다고 항소까지 하는 검찰들도 있고, 또 고문이나 조작에 관계되었던 사람들이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런 내용도 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억울한 사연들, 나중에 밝혀진 진실, 그러나 보상받을 수 없는 세월. 40년 가까이 지나 현재 판사가 과거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에 사과를 하지만, 이들의 억울함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제 이런 조작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됨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데.

 

그런 기억을 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은 나왔다.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우리가 걷는 발부리에 이들을 기억하는 표지 하나 세우기 위해. 그래서 막 달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우리가 걸어갈 길을 살펴보라는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그런 희생을 우리가 모르쇠 하면 안 됨을. 또 잘못한 역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은 그렇게 발부리에 하나의 돌을 놓는다.

 

덧글

260쪽에 아주 사소한 오타... 용비어천가가 나오는 장면에서 책에 나오는 구절은 용비어천가 1장이 아니고, 2장이다. 1장은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 고성이 동부하시니’라고 하고, 2장이 바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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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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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다시 말이 칼이 되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혐오표현은 말이 칼이 되는 것이다. 상대를 해치려고 입에서 나가는 말들이 바로 칼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칼이 된 말을 쓸 때가 많은데, 이것들이 바로 혐오표현이 지닌 위험성이다.

 

왜 그런 표현이 위험한지, 왜 그런 표현이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하게 하는지 자신은 생각도 못하고 한 말이 혐오표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부정한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야 하면서. 하지만 혐오표현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입을 떠나는 순간 사회적 존재가 된다. 이렇게 사회적 존재가 된 말이 칼로 작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서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쓰는 표현이 혹 소수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닌지, 우리가 흔히 자라면서 들어왔던 말들 가운데 혐오표현이 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말이 칼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

 

지금 자신이 뱉은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 칼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칼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바로 이런 책. "말이 칼이 될 때"

 

이 책은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그리고 혐오표현이 왜 문제인지, 또 혐오표현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 고민한 내용을 정리해주고 있다.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과 표현의 자유가 상충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리해주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이 상당히 많이 나돌고 있는데, 여전히 이들을 처벌하는 법조항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여러 나라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들을 참조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혐오표현을 막을 방법을 법이나 제도 또는 사회, 문화적인 압력을 통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대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사람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으니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만큼 혐오표현은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아주 위험한 흉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혐오표현인지, 왜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혐오표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가 있고.

 

우리 사회의 관습이라는 말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로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차근차근 혐오표현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한 말과 자신이 지닌 생각이 혐오표현에서 얼마만한 거리에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 점을 명심하면 된다. 내가 한 말이 칼이 되면, 그 칼은 언젠가는 다시 내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그 칼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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