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는 삶이다 - 복지국가 전문가 이상이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도전
이상이 지음 / 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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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복지를 말한다.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이 아니라, 선거철에만 복지를 말한다. 그들에게 복지란 투표용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복지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미 당선이 확정되면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렇게 몇 년을 폐기처분되었다가 다시 선거철이 되면 또 나타난다. 이번에는 진짜라고, 꼭 실현하겠다고... 마치 양치기 소년 같이 또다시 복지를 들먹인다.

 

"복지가 나타났다! 복지를 이루겠다! 내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다!"

 

양치기 소년은 쉬지 않고 소리 친다. 그런데 아직 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세 번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딱히 다른 말을 믿을 것도 없다고 여기는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또 믿어준다. 이번에는 복지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복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하니 선별적 복지나 제대로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얼마나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양치기 소년은 거짓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거짓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거짓이 반복될 수밖에.

 

이 책은 복지전문가, 아니 복지국가 전문가인 이상이의 주장이 나타난 글이다.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겠거니 했다가 처음을 보고 놀랐다.

 

어린시절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고로 후천적 지체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자존감을 잃었던 학창시절, 공부로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들어가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던 젊은 시절.

 

자서전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처음 부분은. 그의 자전적 내용으로 책이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청년 시절을 거쳐 그는 보건의료정책의 전문가가 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화를 위해 노력을 한다.

 

그가 개입한 일만 해도 많은데, 그 중에 현대사의 격랑을 거쳐온 것들을 이야기하면 의료보험의 국민건강보험으로의 통합, 의약분업, 의료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하나로 등이 있다.

 

이렇게 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의료분야 만으로는 우리나라 복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그는 복지 전문가가 아닌 복지국가 전문가가 되기로 한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홍보하고, 정책을 강제하고 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세 축의 동시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X)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일이다.  ... 두 번째 축(Y)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풀뿌리 시민사회 속으로 확산하는 일이다.  ... 세 번째축(Z)은 복지국가 청치세력화이다.' (282쪽)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첫 번째, 두 번째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와 또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어느 정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축은 아직도 요원하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제1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 공약을 철회 또는 파기하는 데서 보듯, 야당의 적극적인 비판과 견인 없이는 이 정권이 스스로의 의지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어떻게 해서든 현 정부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치력을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280쪽)

 

그러니 여당이나 청와대가 잦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가도 야당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나 청와대에 대해서 제대로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복지정책은 자꾸 후퇴만 하고, 대통령의 공약을 하나하나 철회하고 폐기해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치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이는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선만이 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또 그놈이 그놈인, 양치기 소년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권을 양산할 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복지국가 정치의 기치는 장차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선거제도가 지금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출현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합의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복지국가 건설 과제는 꾸준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283쪽)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시민들 다수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선거제도를 개혁할 리가 없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사정을 그는 진보정권 10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민들의 힘이 있어야 정책을 강제할 수 있음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영화 정책을 펼쳐서 공공성을 해칠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영화나 공공성 파괴를 막는것은 결국 정치권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는 이 책에 언급된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가들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상이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를 창립하여 복지 담론을 만들어내고 또 홍보하고 퍼뜨리고,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다듬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우리가 살아야 할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읽으며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해 왔는지, 어떻게 복지가 확대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자.

 

여기에 더하여 그럼에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너무 좋게 읽었다. 한 사람의 일대기로 읽어도 좋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복지를 이룰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읽어도 좋은.

 

덧글

 

참... 이 책에서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복지 정책은 양치기 소년의 말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모두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보편적 복지 실현에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국민들도 증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증세를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세금 내기 싫어하는 국민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지금까지 얼마나 세금 운용을 잘 못했으면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로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면 세금 증세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 믿음, 지금까지는 정치권들에 양치기 소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국민을 비난하기 전에 정작 비난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 먼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 그는 보건의료 활동과 국민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 등으로 의료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었다. 1심 재판에서 유죄, 2심 재판에서 선고유예, 3심에서 무죄 파기 환송, 결국 최종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고, 재판 진행은 노무현 정부 때 계속 이루어졌다. 의료 공공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랬단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이런 국가보안법, 아직도 무섭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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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 - 21세기 노동해방과 녹색전환을 위한 적록동맹 프로젝트
김현우 지음 / 나름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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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

 

전환이 필요한 때임은 확실한데, 어떤 전환을 이루어야 하느냐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이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먼저 쓰였고, 영어로는 'just trasition'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이 어렵다면 조금 쉽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결합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녹색은 적색이다"라는 책도 있었고, "녹색희망"이라는 책도 있어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환경운동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이 '정의로운 전환'은 이를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킨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하여 사회를 위협하는 일자리를 그냥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자리를 사회에 유용한 일자리로 전환하는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자는 운동, 이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니 자동차 산업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겐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 자동차 노조에서 자동차 산업을 폐기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은 무엇인가?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이를 친환경적인 산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자동차 기술이 다른 교통 관련 기술에도 쓰일 수 있으므로, 이들의 기술을 친환경 분야의 기술로 전환하게 하여 고용과 환경을 함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이 우리나라에서 언제 시도가 된 적이 있었나? 적어도 전환까지는 안 갔더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의 단초를 보여준 일이 바로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영남권 건설 노동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협조 거부 의사를 밝힌 적이 있고, 반대 운동에 함께 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노동자와 송전탑' 참조)

 

건설 노동자들은 송전탑을 건설해야 하지만, 그 송전탑이 환경에도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건설 협조 거부 표시를 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함께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 즉 핵발전에서도 마찬가지다. 핵발전노조는 그들의 기술이 재생에너지 기술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하고, 환경 운동도 마찬가지로 "핵발전 폐기하라"에서 한 단계 나아가 핵발전을 폐기하고, 이런 발전으로 전환하면 노동자도 좋고, 시민들도 좋고, 자연에도 좋은 방법이 있음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사례들은 이미 외국에서도 많이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노동자들과 환경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될 일이고,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이들간의 만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노동운동 단체와 환경운동 단체에서 한 명씩이라도 서로 사람을 파견보내 인턴 근무를 하게 하자고. 돈이야 각 단체에서 대면 되니, 이렇게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내용 교류도 이루어지고 대안을 함께 마련해 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이 책 244쪽부터 248쪽 참조)

 

이것이야말로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단체의 지도부가 먼저 해야할 일 아니겠냐고. 지도부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문제부터 먼 과제까지 내다보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도부가 힘든 것이기도 하겠고.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 지은이가 한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좋은 말은 역시 입에 쓰다. 그러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이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걸기를 시도한 지은이의 말에 적극 응답해야 한다.

 

'... 민주성과 계급성을 잃지 않고 조직을 잘 지켜온 노동조합들이 지역사회 실천과 녹색전환에서도 앞장서고 있다.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미래를 선취하지 않는다면 궁색하고 외로운 방어 투쟁으로 끊임없이 후퇴하고 말 것이다. 후퇴가 아닌 공세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면 이제 거기에는 노동과 산업 자체의 전환, 우리의 살림살이와 유대 방식의 전환을 위한 모색이 함께해야 한다. ...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담아 적색과 녹색, 녹색과 적색의 씨앗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말 걸기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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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그 먼 길 - 우리 사회 아시아인의 이주ㆍ노동ㆍ귀환을 적다 우리시대의 논리 15
이세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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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라고도, 지구촌이라고도, 국경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살고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더 큰 의구심이 든다. 세계화시대, 지구촌이 맞아?

(국경 없는 마을, 말해요 찬드라. 아빠 제발 잡히지마, 완득이 등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바야흐로 다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농촌에 가면 다문화가정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이들은 결혼으로), 도시에 가면 공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아서 다문화 주거지역이 있고(이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서 집단 주거지를 이루고 있다), 서울에는 '지구촌 학교'라는 다문화 학교도 있다.

 

그런데, 다문화 다문화 하는데, 이 다문화는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 빨리 동화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많이 해석이 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 책은 이런 다문화 시대, 지구촌 시대에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주 노동자들은 있었을테고, 본격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 이 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말대로 연수생, 즉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싼 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들 중 대다수는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산업현장을 이탈해 불법 이주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산업연수생 제도는 고쳐졌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처우는 아주 조금 좋아진 정도지, 국제협약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들에게 아주 불리한 제도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합법으로 들어와도 곧 불법의 신세로 자의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전락하고 마는데, 이들은 이런 상태로 10년 20년을 우리나라에서 일해도 한 순간에 추방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의 삶. 그것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일이고, 이런 이들의 신분을 이용해서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는 다반사고,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퇴직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이들이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지만,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차별과 학대, 그리고 돈을 주지 않고 추방하는 그런 고통이 될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주민들은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당신들과 똑같이 빨간 피를 지닌 인간이라고. 우리를 피부색이나 언어로, 또 출신 국가로 차별하지 말라고.

 

그렇게 차이를 보기 전에 같은 사람임을 보라고. 그들은 절규한다. 그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도 사람으로,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꿈이다. 희망이다. 이건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 나라에서 3년 이상 일했다면, 아니 이 나라에서 기간에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받는 권리와 동등한 권리를 이들에게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시간과 초과수당 등의 임금을, 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교육받을 권리를, 쉴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 아니던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누구가 동등하다는 말이다.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꾸 돈 위에 돈 있고, 돈 밑에 사람 있다는 말로 이 속담이 바뀌어 들리는 것은 웬일일까?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돈에는 국경이 없고 차별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고 차별이 있으니, 지구촌, 세계화는 돈에만 해당이 되는지...

 

그래서 힘있는 나라에 온 사람들은 같은 이주민임에도 대우받고 존중받는데, 못 사는 나라, 힘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절절한 차별의 현장, 그러나 사람이 살아 있는 현장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나 역시 알게모르게 이들을 차별하는데 가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가만 있는 것이 차별에 가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적어도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시선을 피하는,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순혈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을텐데, 무슨 순혈?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36쪽

 

말을 바꾼다. 대동소이(大同小異)

 

그들과 우리는 이것이다. 화이부동, 같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우리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같고, 아주 적은 부분에서 다를 뿐이라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적어도 국경은 돈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없어야 한다고.

 

이 책은 그러한 국경, 마음의 장벽을 없애야 함을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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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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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험난한 세상, 자꾸 불안감을 조성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었다.

 

제목만 보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다. 그래, 지금 내가 받는 상처는 내 탓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나만 너무 상처받을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고 책을 골랐다.

 

그런데, 아니다. 개인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그러므로 작가도 나오지만, 그 작가와 짝이 되는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나온다. 작품과 사상의 조화. 그런 조화를 통해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분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 대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대안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작가가 제시한 협동조합은 지금도 많이 논의되고 시도되고, 실천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주요 운동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왜 그럴까?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해서? 아니면 실천력이 부족해서? 그도 아니면 자본주의 세력이 너무도 강고해서?

 

이것저것이 다 합쳐진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이 지지부진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요인은 불안감 아닐까 한다.

 

이 책의 3장에서 부르디외로 설명되는 이야기가 아마도 지금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가능성보다는 잠재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가능성은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이고, 실천을 의미한다면, 잠재성은 막연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이나 소시민들은 잠재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고 현재에 주저앉아버린다는 것.

 

그러니 그들보고 용기없다고, 또 생각없다고, 한심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즉 그들을 구별지워 그 틀 속에 가두워버린 체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하는 부르디외의 논의는 시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상처받으며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현재를 즐기기 보다는 잠재적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 "미생"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현재를 희생하면서, 현재를 불안하게 살아가는지, 미래가 가능성이 아니라 잠재성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미생"이 그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미생"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그 대답이 바로 4장에 있다. 보드리야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상징으로서의 선물. 바타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저주의 몫. 즉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증여, 선물.

 

우리는 그런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추구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한 '생산-소비 협동조합'(428쪽)일 것이다.

 

노동자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을'이되지만,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갑'이 된다. 그런데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도 노동자가 '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생계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 때, 그의 자유의지로 노동을 선택할 수 있을 때다. 그럴 때 노동자는 '갑'의 위치에서 생산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갑'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지금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위치에서도 노동자는 '을'이다. 자신이 욕망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조작된 욕망이 내 욕망인 것처럼 들어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소비조차도 '을'의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8명이 등장한다.

 

이상, 짐멜; 보들레르, 벤야민; 투르니에, 부르디외; 유하, 보드리야르

 

돈에서, 도시로, 다시 아비투어로, 그리고 그 현란한 자본주의의 극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들의 일로 내용은 이렇게 점점 넓고 깊게 전개가 된다.

 

마지막에 '선녀와 나무꾼'으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넘어섰지만, 이제는 상징가치가 우세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 상징가치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증여, 즉 선물이라는 사실. 이것은 바로 '공동체'에서 가능한 일이고,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생산-소비 협동조합'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이 연결이 되지 않을까 한다. 생계 문제에서 노동자가 벗어나게 하는 것. 그 때에서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여유에서 올 수밖에 없으니, 정작 노동자에 대해서 글을 써도 노동자들이 읽을 시간이 없고, 읽지도 않고 오로지 지식인들만 읽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즉 노동자들에게 잠재성이 아닌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려면 그들이 최소한 생계 문제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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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책을 부른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하는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를 읽다가 보게 된 책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한겨레21에 연재된 내용을 대충은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냥 뭐 기자들이 한 달 동안 일터에 가서 노동자 체험을 한 책이네 하고 만 기억이 있다.

 

7-80년대에는 '농활'이라고 하여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이 되면 농촌에 가서 농사 체험을 하고, 또 나름대로 농민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하는 활동이 있었고, 농활과 상대적으로 '공활'이라고 하여 공장에 들어가 노동체험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활동도 있었다.

 

이런 '공활'체험만이 아니라 아예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공장으로 들어간 대학생들도 많았다. 이들을 일러 학출이라고 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위장취업으로 공장에 들어가 노조를 만드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87민주화 투쟁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그 때 들불처럼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라는 한국노총에 상대가 되는 노동자 단체도 생겨났고...

 

그런데, 이와 반대로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할 일을 다했다는 뜻이던가, 공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노동활동가들이 공장에서 나와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학출이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학출이라고 할 필요도 없이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해 지고 있는데도 노동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나라에서 모두들 노동현장으로 떠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노동현장을 자의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때문이고,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을 신성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은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그들에게 노동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는데... 사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땅콩 회항' 사건만 하더라도, 아버지 잘 만나서 고생을 모르고, 노동현장의 힘듦에 대해서 한 번도 경험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노동이 힘들다, 노동현장이 열악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한 번 경험한 것만 못하다고, 기자들이 그런 현장을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서 그 결과를 기사로 내보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생생한 노동현장의 어려움이, 그 현장에서 죽도록 일을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은 노동이 생활이 아니라 생계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결국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은 절대로 신성한 노동이 아니었다. 노동의 신성성은 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들이 경험한 노동은, 이들이 만난 노동자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아니 때우는,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그러한 일이었고, 사람들이었다.

 

이게 특정한 직업 이야기라고? 아니다. 이들이 어디에서 일했는지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간다. 이들이 일한 곳은 우리가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추상적인 인식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기자들이 경험한 것과 같이 구체적인 노동현장, 살아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음식점에서 일하기가 첫번째로 나온다. 음식점에서 일해봄으로써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여성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니, 고용한 사람에게 당하는 무시, 손님들에게 당하는 무시, 그리고 일을 마치고도 집에 들어가 다시 집안일을 해야 하는 고통이 잘 나타나 있다.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은 식당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겠지만, 크나큰 홀 서빙을 단 한 명이서 하게 하는 그런 식당일, 게다가 주인의 사적인 일까지 시키는 식당의 모습이 단지 특이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모습이라니...

 

식당에 가서 재촉하지 말것,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작지만 이것이 대안이라고 하니 그래, 거창한 사회구조 운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엔 마트에서 일해보기, 마석 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해 보기, 난로 공장에서 일하기 등이 나오는데, 그 힘듦은 대동소이하다. 구구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도 열악한 환경, 제대로 된 대우가 없는 점, 그들에게 주어지는 최저임금,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책이 나온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나 올랐을까? 이 때에 비해 채 2000원도 오르지 않았다.

 

선진국에 들어선다고 광고하면서도 생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최저임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데, 전태일이 분신할 즈음에는 근로기준법이 최대의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최소의 기본적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에 맞추려는 노동현장도 꽤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없는 사람들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하면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노동현장의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안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노동현장이 보여주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자, 문제가 이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보라.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해결책은 우리 몫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

 

덧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이들의 노동은 생계를 떠나 생활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예전에 근로기준법이 했던 역할을, 기본소득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더 많은 고민이, 실천이 필요하겠지. 지금 기본소득 문제를 정책으로 밀고나갈 정당이 있을까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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