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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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타임이라는 말이 있다.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golden hour'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이 되는 골든 아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 골든 타임인 것이다. 골든 타임을 놓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지, 그것을 4월에 경험한 우리들은 이 말에 깃든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지니고 있는 생명들의 엄청난 무게에도 간혹 허공에 흩어지는 말로 전락할 때가 있다. 여전히 우리는 말로만 골든 타임, 골든 타임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들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죽어가는지 방송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방송보도에서도 이 정도로 많은데, 방송되지 않은 사건사고들까지 치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겠는가. 시간을 놓쳐서, 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이국종 교수는 아덴만 작전에서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일로 언론에서 많이 언급했고,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그가 외상외과 의사로 사고를 당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가끔 그는 언론에 나와 쓴소리를 했다. 우리나라 중증외상 환자들의 치료 실태에 대해.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대해. 그가 하는 쓴소리들이 마음에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해하게 됐다.

 

정말, 읽으면서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의료계와는 거리가 먼 나도 그런데 직접 현장에서 이 많은 일들을 겪고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중증외상 의료센터를 지정한다고 하니, 그동안 별 관심도 없던 병원들이 지원하는 행태. 그들이 지원해서 얻어간 과실은 환자들의 생명이 아니라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이 건강보험에서 수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남의 질병을 고치거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최소한 그들이 손해를 보게는 하지 않는 것이 의료 정책이어야 하는데, 일률적인 잣대로 보험 수가를 정해 지급을 하니,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면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게 된다는 현실이 책에 나와 있어 참담한 마음을 지니게 하고 있으니...

 

2009년, 외상외과에 혼자 있을 때 1년간 적자는 8억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2010년 정경원이 합류해서 열심히 진료하고 수술하니 8개월 만에 적자가 8억 원을 넘어섰다. 권준식 등이 합류하고 렐리콥터를 이용해 중증외상 환자의 집중도가 증가하자 적자는 더 늘어났다. 2012년에 기획팀장이 나를 찾아와 2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는 외상외과의 ABC 원가분석 보고서를 내밀었다. (337쪽)

 

사람을 살릴수록 병원은 적자를 내게 되어 있다. 어떤 병원에서 이런 치료를 좋아하겠는가.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하는 곳이다. 수익이 없더라도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이국종 교수와 같이 외상외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병원 고위 관계자들의 눈에 날밖에..

 

왜 이 책을 시작하면서 소설가 김훈을, 김훈이 쓴 칼의 노래를 언급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순신이 겪은 일을 생각해 보라. 그가 하는 일을 지배층이 지지해주었던가. 그들은 이순신의 공적을 자신의 것으로 돌릴 생각을 했지, 이순신에게 최적의 지원을 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가 이순신처럼 위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처한 현실이 이순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제도의 정비, 제도의 정착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를 이 책 곳곳에서 이국종 교수는 말하고 있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한다. 한 시간 이내에 수술에 들어가면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증외상 환자들을 한 시간에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교통편이 확보되어야 한다.

 

앰블런스와 같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도로가 정체될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또한 섬과 같은 벽지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의료진이 가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이동수단이 헬기라고 한다.

 

지금은 헬기가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국종 교수가 말하고 있는 이때(2012-2013년)에는 헬기를 사용하기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석해균 선장을 구출하고, 치료에 성공하면서 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전용 헬기를 많이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헬기도 헬기지만 문제는 외상 의료진을 확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1권에서 소수의 팀원만으로 외상의료센터를 꾸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과로에 시달리고 결국 하나둘 쓰러져 간다.

 

남을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어서 쓰러져 가는 현실, 그럼에도 인원 확충이나 장비, 물품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하며, 병원 고위 관계자들에게서는 곱지 않은 눈길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생색내기 정책을 펼칠 뿐이지 실질적으로 제도가 정착되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국종 교수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하는데, 거의 없는 현실에 힘들어 한다.

 

외부 지원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현실, 이들은 거의 초인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연 이렇게 해야 할까? 이것이 이 책을 쓴 이유일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그냥 사그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놔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

 

생각 못했던 참담한 의료 현실이었다. 외상외과 의료센터를 만들고, 그들을 치료하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초기에 겪는 어려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할텐데... 과연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2권을 읽어봐야겠다.

 

1권을 읽으며 느꼈던 분노가 2권에서는 좀 누그러지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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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이론총서
강은숙.김종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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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비극이라니... 누구에게나 속하기 때문에 누구나 막 사용해서, 결국 누구나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의 비극은 우리들 삶을 힘들게 한다. 공유재는 우리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유재를 사적으로 (시장 원리) 쓰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유재이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공유재를 관리하는 것도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가권력이 관리한다고 하지만 이 관리에는 너무도 많은 단계와 비용, 그리고 관리하는 사람에 대한 또다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유재의 비극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누구도 쓸 수 있기에 누구나 써서는 안 되는 그런 공유재를 다함께, 또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노력을 한 사람이 엘리너 오스트롬이라고 한다. 공유재에 대한 연구, 단순한 강단 연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

 

이 책은 오스트롬이 쓴 "공유재의 비극을 넘어서"을 읽기 쉽게 해설해 놓은 책이다. 요약본이라고 해도 좋은데, 우리나라 학자 두 사람이 오스트롬의 책과 논의를 정리해주고 있다.

 

오스트롬의 논지를 요약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까지 생각하게 하는 책인데... 작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유재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새만금, 강정 마을, 4대강을 들 수 있겠다. 이 공유재를 국가 주도로 개발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던가.

 

이런 공유재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려 할 때, 또는 공유재를 국가가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추진해 나갈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말고도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공유재 개발을 추진할 때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를 이들 문제가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문제가 심해지고 있는 미세먼지 역시 공유재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공기는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데, 이를 오염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공유재의 비극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스트롬이 쓴 책 "공유재의 비극을 넘어서"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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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 우리는 왜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가
김소영 외 지음, 홍성욱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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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어떤 것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붙였다. 이제는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다고, 뒤쳐지면 안 된다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교육도, 경제도, 사람도...

 

그런데 그렇게 호들갑을 떤 지 몇 년 -아마도 2016년부터 이 말이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하루만 지나도 확확 바뀌는 이 시대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냥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든지, 그런 시대에 맞는 일자리, 또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는 말만 나오고 있다.

 

그만큼 실체가 없다. 무엇이 4차 산업혁명이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추상적이다.

 

그냥 그 시대에는 일자리가 많이 없어질 것이고, 기계가 또는 인공지능이 일을 대부분 할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실업자가 생길 것이며, 과학기술이 뒤떨어진 나라는 도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을 '혁명'이라고 하나? '혁명'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들의 삶이 더 좋아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여가 시간이 더 생겨서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실업자가 생기고 비정규직이 더 늘어난다면 그것이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나?

 

성장, 성장만을 외치며 앞으로 달려오기만 했던 전세계에 어쩌면 사람들이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일보다는 여가를 더 누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혁명'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발전,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그 혁명에 대해서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고 언론, 정부에서 계속 강조를 하는 것을 보니... 결국 이것 역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마이너스(-힘들게)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이 플러스(+풍요롭게)가 되도록 하는 방향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지구촌이라는 지구에서도 마찬가지. 뒤쳐지는 나라는 더 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오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변화를 추구해야 함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뭔가 이상하다? 왜 우리나라만? 이 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요란한 구호들이 과거에도 있어왔음을...

 

박근혜의 창조경제나 문재인 정부에서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또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박정희 정권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부터 추진되는 일들이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과학기술의 발전보다는 이윤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인 과학이 발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술만 발전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 4차 산업혁명이라 이름하든 다른 이름을 쓰든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토대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 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없이는 자체 발전은 힘들다는 것.

 

이제 우리나라는 서양을 추격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4차 산업혁명 논리는 결국 서양 추격논리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저런 점을 고려하건대,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는 논리가 사회 전체의 발전, 이익으로는 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유령'이라고 하는 거다. 아직은 제대로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냥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정부는 이것을 받아 이렇게 하겠다는 구체적이지 않은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지적.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펼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조금 시일이 지난 책이지만 읽어보면서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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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 '정체성'이라는 질병에 대하여
김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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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그리 편한 책은 아니다. 문학평론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시류를 비판하는 책도 아니고... 어떤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말이 솔직하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을 도서십진분류표에 따라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그 책 속에 여러 내용이 들어있을 때는 더 그렇다.

 

책을 쓸 때 저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다. 목적이 없더라도 글이 자신에게 왔다고 하는 저자들이 있더라도, 대개는 어느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분야, 저 분야에 모두 속하는 책들이 나올 수 있다. 아니 나와야 한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어느 한쪽으로 반듯하게 잘리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참 다르게 이해되기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 편향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편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것도 한사코... 나는 불편부당한 사람이라고, 내 글은 불편부당하다고,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자신에게 여러 편향이 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공정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양, 글도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지는 양 그렇게 여기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도 어느 한쪽에 고정시키려 한다. 이 때 동원되는 것이 바로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을 반대 편에 놓음으로써 자기 자리를 마련한다.

 

봐라, 난 이 쪽에 있다. 저들과 다르다. 이렇게 자신을 자리잡게 하기 위해 상대를 설정한다. 특히 이 상대는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보다 못한, 아니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역시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을 이 책에서는 비체 -非體-(앱젝트abject) 라고 한다.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쓰레기가 되는 존재라고 한다. 이들을 자기 바깥에 규정함으로 자신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목이 의미하는 바다.

 

'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러운 것, 즉 내가 배제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를 규정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우리를 지킨다는 말을 '정체성'이라고 하면 이런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내 '정체성'은 긍정적이고 도덕적이고 올바름이고 정당성이 있다. 그런데 '정체성'이란 상대를 전제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긍정적이고 도덕적, 올바름, 정당성이 있으려면 상대는 이 반대에 있어야 한다.

 

상대는 나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런 존재가 앱젝트(비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이런 존재들을 찾아낸다면 바로 '빨갱이, 친일파'일 것이다.

 

제목이 되는 글은 바로 이런 논의에서 나왔다. (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오지 않은 '전후 戰後')

 

차분히 읽어보면 수긍이 가는 면이 많다. 우리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체들을 동원했는지,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즉 나는 나라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나 역시 복잡한 여러 존재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나를 우리와 묶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길이 바로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체성' 논의는 우리가 비판하는 파시즘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다. 국가주의가 문제라고 하지만 '정체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주의' 논리에 함몰될 수 있다.

 

결국 '네 칼로 너를 치리라'라는 말은 같은 논리로 상대를 비판한다는 말이다. 굳이 니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괴물과 싸우는 이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네 칼로 치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도 같은 처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상대에게 모든 것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를 보는 것, 철저하게 나를 인식하고 상대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

 

상대를 비판하기는 쉬운데 자신을 돌아보기는 힘들다. 내 밖에 있는 적을 상정하고 적을 공격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을 공격하는 자신이 적과 같아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나 역시 '정체성이라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점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한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분류하는 적과 나를 가르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당연하게 여기면서 더 고민을 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 문제제기, 받고,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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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명절연휴 잘 보내시고요 맛난거 많이 드십시오^^ㅋ

kinye91 2019-02-0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카알벨루치님도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다
캐스린 H. 앤서니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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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꼭 필요하다. 자칫하면 내 잘못이야 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고 좌절할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공간의 문제라고, 제도의 문제라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고 해도 지속적으로 내가 접하는 공간이 나에게 차별을 가한다면? 그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능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간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 책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다수 디자인된 것들이 오른손잡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왼손잡이들은 많은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이런 불편함이 학교에서는 학습능력 저하로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디자인의 문제... 그냥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처칠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꼭 처칠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건물을 빚고, 나중에는 우리가 만든 건물이 우리를 빚는다." (385쪽)

 

이런 사례로 여자 화장실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 토론회를 할 때를 들고 있다. 토론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 각 후보들이 화장실에 갈 시간이 되었을 때, 꼭 늦게 나타나는 사람은 바로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는 것.

 

왜냐, 남자 화장실보다 멀리에 배치되어 있었을 뿐더러, 여자 화장실은 멀고 찾기 힘들고 숫자가 적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것.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이 힐러리 클린턴의 게으름 때문일까? 이것은 디자인 문제다. 구조와 제도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여성에게도 이런 차별이 적용되고 말을 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한 차별을 받아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여성 화장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고치려고 실천해서 비율을 2:1로 하는 법안도 마련했다고 한다. 일률적인 비율이 아니라 수요에 따른 융통성 있는 비율로 역차별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여성 화장실을 늘리려는 운동이 있었는데, 아직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새로 짓는 건물들은 여성 화장실에 대해서 고려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①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ㆍ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3. 3. 23., 2014. 11. 19., 2017. 7. 26.>)

 

이 책은 그런 침묵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소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다수가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에 디자인의 함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디자인의 함정을 알고 고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자신이 지적한 사항들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행동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우리의 권리를 알고 살자. 디자인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디자인에는 우리의 삶을 변질시킬 힘도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디자인에 의해 차별당할 수도 우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디자인은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다면 변화는 우리 손에 있다. (386쪽)

 

참 많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몇몇은 이미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것들도 있었다.

 

가령 아동보호 차시트... 이것을 미국에서는(우리나라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좋은 제도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정면 충돌 시험만 한다고 한다. 차가 정면 충돌만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를 차시트에 앉혀도 측면이나 좀더 빠른 속도에서 정면 충돌이 일어나면 아이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측면 충돌 실험도 해야 하고, 속도도 더 높인 실험을 통과한 차시트를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여기에 더해서 병원 문제를 짚고 있는데, 응급실, 노인을 위한 응급실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병실의 개선도 필요하고, 이런 문제는 꼭 환자들만이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병원 디자인이 폭력이라는 것.

 

소방관들은 어떤가? 남성들이 대다수였기에 여성 소방관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방서 구조라는 것, 참... 반대로 남성 간호사들은 어떤가?

 

여기에 한 가지 더. 아,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를 치게 했던 지적... 연설할 때 원고를 올려놓는 연단. 세상에 무겁기는 왜 그리 무겁고 높기는 왜 그리 높고, 어떤 것은 사람을 가리기도 하는, 신체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 연단의 획일성.

 

이것을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고, 원고나 노트북을 놓을 수 있고, 또 여성들은 가방을 놓을 공간도 만들어 놓은 연단을 만들었다는 것. 작은 부분 같지만 이것들이 해결되면 성평등에 한발 또 신체 평등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된다는 것. 그렇다. 평등은 큰부분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화장실에 가방이나 물건을 놓을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버스나 대중교통의 의자를 개선하는 것. 아이들이 자연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학교 건물을 디자인 하는 것,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로 환경을 만들어놓는 것, 걷고 싶은 계단을 만드는 것.

 

계단을 이 책에서는 좋게 평가하고 있다. 사람들을 걷게 만들기 때문에 근력 운동에도, 또 비만을 줄이는 데도 기여를 한다고 한다. 다만, 계단을 사람들이 접근하기 편하게 또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어떤 계단은 오히려 관절에 무리를 주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다. 이런 계단을 정비하는 것도 소수를 배려하는 디자인일 것이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은 문제점만 나열하지 않고, 대책을 제시하고, 이미 대책을 만든 곳이 있다면 소개해서 따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아무 생각없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 여성과 아동, 또 신체가 보통에서 벗어난 사람들, 소수자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작은 부분, 그런 부분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디자인, 그런 디자인이 도입되도록 하는 것. 결국 모두 사람의 몫이다.

 

깨어있는 사람들. 나만 편하면 돼가 아니라, 어, 이건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겠네... 또 왜 이것이 나한테 불편하지? 나만 그런가? 나만이 아니라 누군가도 불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쳐야지 하게 하는 책. 그런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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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