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2
박건웅 지음, 최용탁 원작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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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다. 한국전쟁 중에 있었던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는데, 이 책은 그 사건을 물푸레나무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원작은 최용탁이 쓴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이다. 소설집 [벌레들]에 실려 있는 소설인데, 소설로 읽었을 때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만의 장면이 만들어지는데, 이 책은 그 소설을 만화로 그렸으니, 원작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보면 두 작품을 비교할 수 있다.


소설로 읽었을 때 막연했던 장면을 만화로 그렸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살벌한 장면. 사람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쏘아 죽이고, 확인 사살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사람 위에 다시 죽은 사람, 죽을 사람들을 집어넣는 만행.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지만 일어났고,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지만 잊힐 뻔했던 사건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들이 많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물푸레 나무의 시점에서 소설이 전개되고, 만화 역시 물푸레나무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물푸레나무는 이 비극의 현장 덕분에 중도에 잘리지 않고 큰 나무로 자란다. 그것이 나무에게는 좋은 일일까?


오히려 우리 역사의 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데 물푸레나무가 역할을 한다. 그 나무가 자신의 뿌리에 사람들을 영양분으로 삼았다는 말, 아직도 자신의 뿌리에는 그때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 장면은 역사는 과거로 영원히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소설로 읽으면 장면을 상상하는데, 죽음의 장면에서 만화는 수박이 깨지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칼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 만화는 흑백을 유지한다. 암흑시기를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 역사에서 벌어진 어두운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찬찬히 만화를 보면서 우리 역사를 살펴보는 일도 의미 있겠단 생각을 한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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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흔들고 있는가 - 한국인이 절대 알 수 없는 중국 기업의 허와 실
에드워드 체 지음, 방영호 옮김, 김상철 감수 / 알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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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어울리지 않는 나라 중국. 그래서 중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일 수도 있다. 정치체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경제에서는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을 지닌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공산주의 하면 폐쇄적이라고 여기기 쉬운데, 경제분야에서 어떻게 개방적일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덩샤오핑 이후에 개혁개방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세계 경제 변화에 맞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둘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체제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에서 민간 부분을 더 많이 도입하려고 한다. 기묘한 조화... 


이 상황에서 민영기업들이 약진하고 있으며 공기업을 넘어서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윈같은 사람들을 비롯해 중국 경제를 부흥시킨 사람들을 이 책에서 다뤄주고 있는데...


그들은 중국이라는 체제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방법을 알고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로 인해서 짝퉁, 모방의 나라 중국이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제조업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나라였다면, 이제는 가장 비중이 큰 제조업 국가가 되었다고 하니...


단지 제조업만이 아니라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활용한 기업들도 등장해서 성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중국에서 자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던 요인은 외국 기업의 활동을 정부가 막고 있었던 데에도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이티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구글, 유튜브 등이 중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그대신에 중국이 개발한 플랫폼, 프로그램들이 사용되고, 이런 회사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정치체제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치체제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이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면 세계에 중국을 개방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진출을 막으면서 자신들은 다국적 기업처럼 외국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면, 반발에 부딪힐테고, 곧 성장을 멈추게 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많음에도 중국인들은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 암울했던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가 망해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고 한다.


이런 믿음이 젊은이들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출하게 한다고 한다. 실패를 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고, 제시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가 굶주림으로 이어질 일도 없다. 그것은 수 년 전만 하더라도 매우 현실적인 관심사였지만 말이다.(245쪽)'고.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이것 아닐까? 우리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지니고 있지 않나. 사업에 실패하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이는 혁신적인 사업에 뛰어드는데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고 한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조차도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위험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자세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노년의 창업가들은 대부분 안정 같은 것을 얻기 위해 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면에 청년 사업가 제시카가 자기 사업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유의 영역을 확립하여 자기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다.'(245쪽)


초기 창업자부터 지금 창업하는 사람들까지... 중국에 많은 문제가 놓여 있지만, 그 문제들 속에서 자기들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독특한 국가체제에서 성장한 중국 기업'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치체제와 부딪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자율권과 주도권을 충분히 행사하면서 성장해 왔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 맞는 사업 운영을 했다고도 하고, 그래서 다국적 기업이든,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세계적 표준에 맞춰 중국에 진출하려 하지 말고, 중국의 기준에 맞게 자신들의 사업 전략을 짜서 진출해야 한다고 한다.


즉, 중국을 제대로 알고 진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해당하는 말일테다.


이 책은 이렇게 중국 기업들이 이류에 머물지 않고 일류로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는 이웃나라 중국.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니, 그만큼 우리도 중국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겠고, 특히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명심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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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왕홍으로 통한다 - 14억 중국시장의 크리에이터,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임예성.이혜진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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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홍'이란 말을 얼핏 들으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중국의 왕홍하면, 왕홍이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왕홍'은 사람 이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유튜버'가 사람 이름이 아니듯이. '왕홍'은 중국어로 인터넷을 뜻하는 왕뤄와 유명인을 뜻하는 홍런의 합성어(13쪽)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유명한 유튜버쯤 된다고 보면 된다.


개인방송자라고 해도 좋겠고, 이런 왕홍이 중국에서 많이 나왔고, 또 이들은 17조 원의 경제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외국 플랫폼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플랫폼으로 자신들의 인터넷 활동을 하는데, 여기에 왕홍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유튜버는 간접광고나 또는 자신의 방송 전이나 중간에 하는 광고 수입을 얻지만, 중국의 왕홍은 방송을 통해서 직접 제품을 광고하고 판매까지도 한다고 하니, 유튜브와 홈쇼핑을 합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왕홍이다.


이러한 왕홍에 대해서 쉽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중국에 유학가서 직접 왕홍 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기에 이해하기가 쉽다.


왕홍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해야 왕홍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왕홍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국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는 역할을 왕홍이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왕홍으로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고 있는 책이다.


중국을 짝퉁의 나라, 모방과 표절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중국은 이미 스마트 사회로 나아갔다고, 모방을 넘어서 이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거기서 14억 인구가 참여하는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왕홍, 중국의 유튜버... 우리나라 기업들도 중국의 왕홍들을 초빙해 기업과 제품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하니, 반대로 우리나라 왕홍들을 중국이 필요로 한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개인방송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니... 세상 어떤 일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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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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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글로 표현했다. 이런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층민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는 보지 않으려 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웰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의 삶이 누구로부터 온 지는 알 수 있게 된다고.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50-51쪽)


이렇게 내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즉,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내가 지니고 있던 편견을 깨야 한다. 편견은 어떤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 강화된다. 그래서 오웰은 자신과는 다른 계급의 사람을 만나보라고 한다.


나는 이상화할 수 없는 노동 계급 사람들도 얼마든지 보았지만, 노동 계급의 집은 가볼 수만 있다면 배울 게 아주 많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이상과 편견이란 게, 꼭 나은 건 아니어도 확실히 다르기는 한 딴 계급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5쪽)


흔들려야 한다.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빅 데이터가 주는 대로, 그 알고리즘에 의해서 내 취향에 맞는 것들로만 나를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나와는 정반대에 있는 존재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냥 만나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 우리가 이상화하는 노동자들이 실생활에서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섣불이 실망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오웰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영햘역이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피동적인' 역할로 축소시켜 버린다. 그는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다. ... 부르조아 출신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합당한 한계 내에서는 얻을 수 있다는 일정한 예상을 하고서 살아갈 수 있다 (67쪽)


중산층 이상, 부르조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다른 존재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오웰은 광산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가 꼭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이 1부가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2부에서는 오웰이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나온다. 계급 차별의 세계에서 그 차별을 없애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읽다가, 이 글을 보면서 아, 이래서 오웰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봉준호가 영화 [기생충]에서 표현한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래,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애기 힘든, 냄새. 나와 너를 명확히 가르는 이 냄새가 바로 계급 차별이었구나...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이 점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다고 해도, 또 그들의 삶을 흉내내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냄새'라는 점이, 이 책에서 오웰이 이토록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탄.


여기서 우리는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진짜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부르조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진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이나 지성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172쪽)


이렇듯 냄새는 자연스레 몸에 밴다. 어찌할 수 없는 나만의 특징. 이 특징은 계급을 가른다. 그래서 계급 간의 거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오웰은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예절, 나의 어투, 나의 억양, 심지어 나의 독특한 몸동작도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 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 삶에 대한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217쪽)


이 부분에서 강남좌파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이 민중을 위한다고 하면서 과연 민중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오웰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그냥 민중들을 위한다고만 하지 않았던가.


시혜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주는. 함께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그런 방식. 오웰의 말에서 왜 진보가 정작 진보가 위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을까 하는 의문에 답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냥 당신과 나는 같은 존재라고 하면 누가 그들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 민중을 위한다고 한다면, 결과는...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존재들에게서 찾는다.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고, 계속 민중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웰이 1930년대에 예견했던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한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 길을 함께 갈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 역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 길을 함께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 바로 오웰의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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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7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예요. 광부들의 삶을 너무 생생하게 잘 그려놓아서 전율했던 생각이 나네요.

kinye91 2022-05-07 08:3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책은 지금도, 앞으로도 유용할 것 같아요. 당시엔 광부라면 지금은 수많은,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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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이라는 말이 책 표지에 나와 있다. 따뜻한 신념... 좋다. 그러나 누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신념인가? 소년범으로 재판정에 나선 아이들을 재판하는 판사... 그의 신념은 법에 따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일. 이런 판결에 앞서야 하는 일은 소년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


그러니 여기서 따뜻한 신념이란 법대로가 아니라 소년을 위한 판결이란 뜻을 지니고 있고, 작은 기적이라는 말은 그런 판결에 따라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소년들이(이때 소년은 성별의 개념이 아니라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 대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소년들이 있다는 말은 그렇지 못한 소년들도 있다는 말이고, 따라서 그냥 기적이 아니라 작은 기적이다. 작은 기적이라고 해도 기적은 기적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어렸을 때 사고를 치는 아이들을 보면 예전 어른들은 아이 때는 그럴 수도 있지, 그것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어른이지라고 하면서, 마을 전체가 또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어른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라는 말보다는 꼰대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


이런 어른들을 보면서 그들 역시 안 걸리면 돼 또는 나만 잘살면 돼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또는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들이 없었을 때 더 많이 나타난다.


아이 때는 여라 가지 일을 시도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못해서, 또는 충동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경우는 많았고... 하지만 제대로 살아가는 어른이 있다면 그런 일은 순간의 충동으로, 일탈로 끝나게 되는데...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일회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판사는 법대로만이 아니라 이들 소년들을 우선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들이 저지른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발성으로 끝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죄에 합당한, 비행에 합당한 징벌을 내리기보다는 앞으로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고, 법관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일을 한 판사가 있다. 천종호 판사.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판결을 내린 사람. 판결을 내린 뒤에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을 찾아가고 만나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살피는 판사.


이런 판사가 있었기에 작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판사의 진심을 알게 되는 아이들이 있고,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나오게 된다. 물론 여기엔 판사 혼자만이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상담센터부터 시작해서 이들에게 가정 역할을 하는 단체까지 다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모두 함께 해야 소년들이 변할 수 있다. 그것도 모두가 아니지만 변할 가능성이 늘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일을 판사만이 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한다. 오죽하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고 했겠는가. 그러니 미안해 해야 할 대상은 우리 어른들 모두다. 그래서 책 제목에 '우리가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갔다.


그때 우리는 어른들이다. 그런데 미안해 하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는 사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일으킨 소년들을 직접 만나는 사람들이다. 왜 이들이 더 미안해 해야 하는지... 오히려 미안해 해야 할 대상은 우리 사회에서 소년 범죄 또는 소년 비행을 저지르는 존재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먼저 우리들이 정치를 잘못했다. 이제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사과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들 정치인들이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 다음에 아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은 기적이 아니라 더 큰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판사 개개인의 노력, 이와 더불어 청소년과 관계있는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고 그들이 먼저 소위 비행청소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소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그 미안함을 자신들의 정책을 통해 바꾸려 한다면 천종호라는 판사가 일군 작은 기적이 더 큰 기적으로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는 가슴이 찡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서, 비행청소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색안경을 벗어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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