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도담서림(道談書林) (kinye91 서재) &gt; 문학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774420113/category/2653770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6 Apr 2026 15:41:56 +0900</lastBuildDate><image><title>kinye91</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44201131137417.jpg</url><link>http://blog.aladin.co.kr/774420113/category/2653770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inye91</description></image><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미야자와 겐지 소설집 -은하철도 999를 생각하며 - [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 1934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5549</link><pubDate>Tue, 14 Apr 2026 0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55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046539&TPaperId=172155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14/94/coveroff/89980465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046539&TPaperId=172155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 1934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a><br/>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07월<br/></td></tr></table><br/>솔직히 이 책을 골랐을 때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상상했다.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을 했다고 했으니...<br>하지만 역장도 메텔도 나오지 않는 이 소설은 만화와는 좀 다르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은하를 여행하는 장면에서는 비슷한 면을 느끼기도 한다.<br>현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조반니라는 소년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꿈을 꾸게 된다. 그는 꿈 속에서 은하철도를 타고 은하역에서 출발해 남십자역까지 가는데, 이 열차에는 자신의 친구인 -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반니를 옹호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조반니의 친구라 할 수 있는 - 캄파넬라가 타고 있다.<br>캄파넬라와 같은 칸에 타고 은하를 여행하면서 여러 일들을 겪는데, 그런 일들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무한한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열차에는 여러 사람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는데, 여기에 이미 죽은 사람들도 등장한다.<br>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소설에서 직접 제시되어 있는데, 그들은 이미 죽은 엄마 곁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소녀와 소년 장면에서 의문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캄파넬라는?<br>소설은 마지막에서 캄파넬라가 왜 은하열차에 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조반니가 캄파넬라에게 '우리 끝까지 함께 가는 거다'라고 말을 하지만 순간 캄파넬라는 사라지고 없고, 조반니는 꿈에서 깨게 된다.<br>그렇다. 현실에서 외로움을 타고,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은하철도를 따라 여행을 하면서 다른 세계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소설.<br>그리 길지 않다. 이 소설집에는 다른 소설세 편이 더 실려 있는데, 일본에서 1934년에 출판된 초판본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br>미야자와 겐지가 완성을 하지 못한 소설이라 군데군데 알 수 없고, 삭제된 글자와 문장들이 있어서 그것을 []로 처리하고 있고, 또 그때의 디자인이라 세로로 인쇄되었다.<br>세로로 인쇄된 책을 읽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읽기가 되겠지만, 일본어가 세로로 쓰인 경우가 많으니, 일본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또 예전 우리나라도 세로쓰기를 많이 했으니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디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br>'은하철도의 밤'도 그렇지만 함께 수록된 '고양이 사무소'라는 소설에도 따돌림의 문제가 나오고, '바람의 마타사부로'는 1930년대 시골 마을의 일본 아이들의 순수한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br>'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인데, 비극으로 이야기를 맺지 않아서 좋다.&nbsp;<br>특히&nbsp;'은하철도의 밤'은 아이들에게 우주를 상상하고 경험하게 해준다. 현실이 막막할 때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 지닌 힘이기도 하고, 일본이 근대화되는 시절에 일본 국민을 계몽하려 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사상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겠지만...&nbsp;<br>당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에서 그가 살아남았다면 어떤 작품을 썼을지? 적어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다른 국민을 억압하는 그런 군국주의를 작가는 찬성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것은 이 작품집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데...<br>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에서 아이들이 적어도 그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꿈꾸며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br>예전 세로쓰기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은, 또 '은하철도 999'와 비교해보고 싶은 사람은 한번쯤 읽으면 좋을 소설집이다.<br>'은하철도의 밤'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br>'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괴로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겠지요.' (7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214/94/cover150/89980465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14943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다가가게 하는 헌정 소설집 -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3783</link><pubDate>Mon, 13 Apr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137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6276&TPaperId=172137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5/26/coveroff/k78213627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6276&TPaperId=172137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a><br/>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03월<br/></td></tr></table><br/>아리스가와 아리스. 솔직히 모르는 작가다. 일본 소설은 예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홍보해서 알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그리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정도만 읽은 셈. 기타 몇몇 작품이 더 있지만 일본 소설은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다.<br>그러니 추리소설(미스터리 소설 작가) 작가로 알려진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가 데뷔한 지 35년을 맞아 후배 작가들이 헌정소설을 썼다고 한다. 작가도 모르는데 헌정 소설집이라니...<br>출판사의 기획이지만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한 작가들이었다고, 게다가 이들은 일본에서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이미 인정을 받고 있다고.<br>이런 작가들이 참여해서 헌정 소설집을 낼 정도면 꽤나 알려진, 또는 문인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를 헌정하는 작품이라면 분명 추리소설일 테고, 소설집의 제목에도 '수수께끼'라는 말이 들어가니,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 여기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어느 정도 반영할 테니,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br>총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재미 있다. 읽으면서 범인을 추측하는 재미도 있고, 뜻밖의 반전에 감탄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살인 사건이라고 해도 잔혹하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따스함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br>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도 하니 따스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들에게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살인사건이 아닌 소설도 있으니...<br>우리에게 잘 알려진 '셜록 홈즈'시리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 또는 애거사(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생각해도 좋겠다. 아니면 만화로 나온 '명탐정 코난'을 생각해도 좋고.<br>각 작품을 읽으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찾는 재미도 있고, 그런 인물이나 내용을 통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이와 비슷한 작품을 썼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집이다.<br>특히 이 소설은 제목과는 반대로 거의 노골적이라 할 만큼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칭송하고 있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이다. 하, 이런 식으로 작가에게 헌정하는구나, 이런 칭송이 그리 거슬리지 않으니 이것도 재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고.<br>내용으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작품은 '클로드즈 클로즈'라는 소설. 여자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복 도난 사건. 이 도난 사건을 외부로 알리지 않으려는 학교의 방침은 좀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학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모습과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동기, 과정, 그리고 해결이 되었을 때의 결과 등은 마음을 잔잔한 감동으로 채운다.<br>여기에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통해서 그러한 소설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단서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끈기 있고 충실하게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작품인데, 한 사건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작품이다.<br>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이해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찾아가게 하는 과정. 다 읽은 다음에는 아, 이것이 단서였구나, 이 단서를 이런 식으로 꿰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작품들.<br>다른 무엇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고 싶어진다는 점, 그 점에서 헌정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작품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5/26/cover150/k78213627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5261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누구인가? - [처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06175</link><pubDate>Thu, 09 Apr 2026 12: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206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6043&TPaperId=17206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1/41/coveroff/k9921360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6043&TPaperId=17206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처단</a><br/>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03월<br/></td></tr></table><br/>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2024년 12월 3일.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리가 일구었던 성과들에 자부심을 가지던 때.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을 때, 그러한 자부심, 자긍심을 한 번에 무너뜨린 사건.<br>그건 사건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천만다행으로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니, 2차, 3차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br>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비상계엄 포고문에 나오는 '처단한다'는 말. 도대체 누가 누구를 처단한다는 말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자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려 했다.<br>하지만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자신들임을 그들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무속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었는데, 진정 무속을 믿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무속은 '인과응보'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란 결국'권선징악'아닌가.&nbsp;<br>악을 아무리 선으로 포장하려 해도 악은 악으로 밝혀진다. 이것이 권선징악, 인과응보다. 그리고 이 명제는 무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원한이 쌓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원한을 해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무속 아닌가.<br>그런데 무속을 믿는다는 자들이 원한을 쌓는다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다니... 무속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성공 이전에 이미 실패를 안고 있는 행위인데, 그것을 실행하다니.<br>이미 경제로 선진국, 문화로도 선진국이 된 이 나라 국민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고, 광장으로 나와 비상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했고, 주모자는 탄핵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했으니,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은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br>다시 소설은 2차 계엄으로 시작한다. 1차 계엄의 실패를 경험한 자들은 2차 계엄 때 국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서술. '총소리가 울렸다. 피가 튀었다', '총을 쏘았다','계엄군은 발포했다', '계엄군이 사격했다'와 같은 말들. 실제로 2차 계엄이 성공했다면 소설 속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br>이렇게 감정이 없는 행위를 하는 존재들에 맞선 사람들은 연대를 한다. 그들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농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자신도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더한 사람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려는 간호사 등등.<br>비상계엄에 맞서는 이러한 연대를 통해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임을 소설은 보여준다.&nbsp;<br>그들의 비인간성에 비해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사람들이 계엄군의 머리에, 어깨에, 다리에, 팔에 매달려 결국 그들을 포위하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이미 그들이 처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nbsp;법 심판 전에 이미 그들은 그들이 믿던 무속에 의해서도 처단되고 있는 것이다.&nbsp;<br>'죽은 자들이 일어섰다.&nbsp;반란군은 포위되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어야 할 국가와 국민에 항적한 반란군은 피해자들에게 소리 없이 산 채로 먹혔다.&nbsp;그리고 죽은 자들은 반란군이 남긴 총탄과 무기를 들고 원한을 풀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39-140쪽)<br>다행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 국민이 막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만약 막지 못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리라.<br>그야말로 처단 당해야 할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처단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리라.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비상계엄 말고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비극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이 겪은 비극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음을, 그러한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지 못했음을, 그것이 비상계엄을 초래한 것 이유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br>비상계엄 전에도 고통을 겪던 이들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비상계엄으로 더한 고통을 겪게 된다. 비상계엄을 이겨낸 우리는 이제 이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작가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서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결코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br>이렇게 만약 2차 비상계엄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재난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br>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처단당하는 것은 그들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br>이 소설 제목이 '처단'이다. 누가 처단되어야 할지 읽어보라.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해진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1/41/cover150/k9921360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51416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압도적 무기는 인류에게 재앙이다 - [크라카티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72223</link><pubDate>Wed, 25 Mar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722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172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off/k9626314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631496&TPaperId=171722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크라카티트</a><br/>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20년 07월<br/></td></tr></table><br/>광고 문구에 현혹되었다. '핵전쟁과 원자로 문제를 예견한 최초의 SF'라는 말에. 차페크 하면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작품에 쓴 사람 아닌가. 우리가 로봇이라는 말을 쓰게 한 사람이고, 로봇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한 사람이기도 하니, 이 소설도 그런가 하는 생각.<br>[절대제조공장](압솔루트노공장이라고도 번역이 되었다)을 읽어봐도 기계문명의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도룡뇽과의 전쟁]도 그렇고. 하여 이 소설도 기대를 했다. 차페크라면 핵무기와 비슷한 위력을 지닌 무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하는 호기심.<br>그런데 읽다보니 압도적인 무기는 나오지만 그것을 둘러싼 과정이 더 자세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주인공인 프로코프가 만나는 여인이 4명이다. 프로코프가 먼 길을 떠나게 하는 소포를 맡긴 여인, 소포를 들고 찾아간 집에서 만난 여인, 다시 그 집에서 나와 만난 공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소녀.&nbsp;<br>이런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여기에 압도적인 무기인 '크라카티트'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무기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 그것의 폭발력.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피해들.<br>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무기를 가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펼쳐지고 있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확보하려는 사람들. 그런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는 사람들.<br>그러나 프로코프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길 원하지 않는다. 그 무기의 해악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무엇이었는지, 또 만드는 법을 잊어버리는 결말에서는 그런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는 차페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br>그렇다. 지구를 위한다는,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무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보라. 이 무기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터진다. 사람들이 통제할 수가 없다.&nbsp;<br>통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기. 이 무기를 확보하려는 사람들. 한때 전세계는 서로 핵개발을 하려 했다. 핵억지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다 몇몇 강대국들이 자신들끼리 협정을 맺어 이제 다른 나라들이 핵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br>자신들은 수많은 핵무기를 지니고 있으면서. 이런 전력 비대칭. 이것이 몇몇 강대국들이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br>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공멸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 사용을 하지 않지만, 그에 준하는 무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다른 나라를 공습하는 현재 인류의 모습 아닌가.<br>그 무기로 누가 죽어나가는가? 이 소설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 영문도 모르고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야욕에 찬 사람들로 인해 이러한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다.<br>이 소설에서 나온 폭발력 강한 무기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무기들이 실제 전쟁에서 쓰이고 있으니, 차페크가 쓴 이 소설을 보면 이것은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될 수도 있다. 차페크는 이 점을 우려했을 것이고... 그가 원자폭탄의 개발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가 소설에서 쓴 크라카티트는 원자폭탄만큼의 위력이 있는 폭탄이다.<br>그리고 그는 이러한 폭탄은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에 소설을 통해서 이러한 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그동안 우리 인류는 얼마나 평화를 위해 나아왔는지...&nbsp;<br>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러한 무기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인류의 공존을 위해 또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쪽으로 과학기술의 방향을 잡도록 해야 한다.<br>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해 그간 읽어온 차페크의 소설과 다른 느낌을 주고, 전개가 조금 느리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런 사랑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인간들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사랑이 -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는 프로코프가 자신을 감시하는 인물인 홀츠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프로코프는 '홀츠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장애인 누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의 인생은 ... 나나 당신의 인생보다 열배나 더 중요해요.'(412쪽)라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 인류를 파멸로 이끌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차페크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무기를 둘러싼 이 소설의 내용을 현재의 우리가 참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br>이러한 무기를 확보한 사람들의 정의 여부를 떠나 무기 자체가 지닌 위험성을 우리가 인지하고, 그러한 무기들이 개발되지 않도록, 또 점차적으로 폐기되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핵폭탄의 피해를 이미 경험한 인류 아니던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참조할 만한 점이 있다.<br>덧글<br>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오탈자들이, 또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 점은 많이 아쉽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81/45/cover150/k9626314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681457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여기서 얼마나 더 나아왔나? - [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61629</link><pubDate>Fri, 20 Mar 2026 1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616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839185&TPaperId=171616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38/15/coveroff/k5628391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839185&TPaperId=171616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a><br/>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09월<br/></td></tr></table><br/>'헤드 헌터' 생소한 말이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아 연결해 주는 직업이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 이직을 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직장과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서로 맞아떨어지게 하는 역할, 그러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챙기는 직업.<br>이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연결해야 한다. 연결이 되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기업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의 능력, 조건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br>연결하기 위해서는 양쪽을 다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면접을 보기도 하는데, 이때 정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 흔히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능력에 별 차이가 없다면? 경력이나 능력이 비슷하다면 무엇을 볼까? 외모? 아니다. 학력이다.<br>학벌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학벌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지금도 그러냐고? 아니라고 답할 수가 없다. 여전히 학원에서는 대학들의 순위를 무슨 노래 가사처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br>대학 서열이 의대로 인해서 흐트러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의대도 그러한 순위에 따라서 판단을 하니,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모던 하트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데, 영어로 modern heart가 아닐까 하는데, 현대적 사랑 또는 현대의 열정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인데, 현대의 사랑이 무엇일까?<br>제목만 보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직장. 좋은 직장은 무엇일까? 연봉이 높은 직장. 요즘에야 워라벨이라고 해서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연봉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좋은 조건이 바로 연봉과 직결이 되니까.&nbsp;<br>이직을 하는 이유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테고,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학력이다. 학벌이라고 할 수 있는...<br>능력만 있으면 되지라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말인지를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 회사에 딱 맞는 사람임에도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뽑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br>여기에 미연 자신도 학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고, 자신이 만나는 상대로도 좋은 학벌을 지닌 사람을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br>게다가 미연의 제부는 어떤가? 여동생인 세연이 결혼한 사람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그럼에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빈둥대고 있는 인물, 빈둥대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없는, 집안일은 자신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그런 인물.&nbsp;<br>미안해 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에게 반한 이유는 바로 학벌이다. 이 학벌이 가정생활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학벌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 미연의 가족, 또 미연이 연결해 주는 회사들의 인사 방침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미연이 사랑한다고 느낀 태환이라는 사람에게서도 이런 학벌의 후광이 자리한다.&nbsp;<br>소설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학벌을 꼬집는다. 학벌에 가부장적인 모습까지 겹치면 참 대책이 없다. 이 대책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에 제법 나오는데,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학벌 하나로 인정받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어떤지를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학벌 좋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br>결혼과 직장. 이 두 가지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인습에서 벗어났으면 싶은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개정판에 실린 작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br>인공지능 시대, 세상에 인간 중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인공지능을 앞설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해야 할 이 시대에 여전히 학벌, 학벌한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할까.<br>학벌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우리 역시 놓으면 안 되겠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38/15/cover150/k5628391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381513</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작가는 갔지만 작품은 계속된다 - [엔딩은 있는가요 - 정아은 추모소설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57333</link><pubDate>Wed, 18 Mar 2026 1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573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006&TPaperId=171573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64/74/coveroff/k6220325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3006&TPaperId=171573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엔딩은 있는가요 - 정아은 추모소설집</a><br/>장강명 외 지음 / 마름모 / 2025년 12월<br/></td></tr></table><br/>정아은. 내게 정아은이란 작가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저자로 기억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야지 했는데, 작가가 세상을 뜬 줄은 모르고 있었다.<br>그러다 알라딘 책 추천에서 '정아은 추모소설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어, 이 작가가 세상을 떴구나, 이 작가를 추모하는 문인들이 작품을 냈구나, 읽어봐야지 생각을 하고 책을 구입했으나,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br>우선 정아은 작가를 잘 모르고 있고, 그가 쓴 소설을 읽은 것이라고는 단편소설 하나밖에 없었으니, 작가를 잘 모르는데, 추모소설을 먼저 읽는다는 것이 조금 망설여져서 그랬는데...<br>그래도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아도 작가를 추모하는 소설들을 읽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 추모소설이니까 정아은 작가와 관련이 있는 작품들이겠고, 제목이 '엔딩은 있는가요'니, 끝이라고 하기보다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이 작품들을 통해 정아은 작가의 작품에 다가가자고 마음 먹고 읽기 시작.<br>작가는 갔지만 작품은 남고, 또 그의 뜻을 이은 작가들로 인해 그의 작품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추모소설집답게, 소설을 쓴 작가가 정아은 작가와의 인연을 산문으로 쓴 글이 함께 실려 있으니...<br>그러한 산문을 읽으면서 정아은 작가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그를 추모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니, 작가들이 각자의 작품으로 이렇게 추모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그의 소설을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br>이 소설집에서 '전두환'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있는데, 정아은 작가가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담으려 했다는 점, 그리고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해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으니...<br>이 중에 정명섭이 쓴 '돌을 던지다'를 보면 옛날 풍경이 되살아난다. 무슨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왔다고 학생들을 동원해 길거리에 세워두고 박수를 치게 하던 그때의 모습.<br>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하는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국민 위에 군림했던 그 시절의 모습.&nbsp;<br>그런 대통령에서 돌을 던지고 싶어하는 아이들. 이런 소설이 바로 정아은 작가를 추모하는 방식이겠다.<br>따스한, 절로 웃음이 나오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정아은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고, 유고집을 내려는 출판사 이야기가 나온다.<br>김현진이 쓴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오만과 판권'이라 했는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정아은 작가가 '오만과 편견'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내려는 출판사의 모습과 좋은 작가를 독자들 곁에 있게 하려는 노력들을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이 험난할 텐데, 그것을 따스하게 웃음지며 읽을 수 있다.<br>이렇게 정아은 작가와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 소설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집이다.<br>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정아은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니, 그래, 작가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와 얽힌 이야기, 또 그와 관련된 소설들을 읽었으니, 이제는 정아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br>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아 있으니... 또 그를 이어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있으니, 문학엔 엔딩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64/74/cover150/k6220325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64747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에레혼 -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 [에레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51005</link><pubDate>Sun, 15 Mar 2026 08: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510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0400&TPaperId=171510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814/40/coveroff/89349804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0400&TPaperId=171510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레혼</a><br/>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01월<br/></td></tr></table><br/>에레혼. 영어로 nowhere를 거꾸로 쓴 제목이다. 없는 곳, 유토피아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곳은 결코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nbsp;<br>그냥 현실과 다른 곳.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책이 1870년대에 쓰였다고 하니, 참 오래 된 책이기도 한데,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생각해도 될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br>[걸리버 여행기]와는 다른 점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레혼에 대해서 결코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지 않는다.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당시 종교적인 신념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을 전도하겠다는 생각도 소설에서 드러나고 있으니..<br>물론 당시 종교가 우세하던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시의 종교를 다른 존재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비판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하지만 당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러한 소설을 썼을 테니...<br>우선 이 사회에서 커다란 범죄는 질병이다. 세상에 병에 걸리면 감옥에 가야 한다니... 그것도 횡령보다도 더 심한 범죄라고 하니... 질병을 사회에서 차단하는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해야겠다. 감옥과 병원이 하는 역할이 바로 '격리'에 있고, 이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br>그러니 질병이 범죄가 된다는 소설의 설정은 이제 질병은 사회에서 격리되기 시작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횡령과 같은 경제적 범죄가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당시 산업혁명으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질병에 걸린 사람은 노동력을 상실할 테니, 이것은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용납하기 힘듦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결국 범죄란 그 사회의 필요에 반하는 행위가 해당한다는 점...&nbsp;<br>여기에 기계를 폐기한 사회가 바로 에레혼인데, 이렇게 기계를 파괴한 사회를 등장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넘어 기계에 의존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br>지금 현실에서 기계는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되고,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기계에 대한 구절... 이 문장은 현재도 유효하다.<br>'기계에게 영향을 미치고 기계를 만든 것이 인간이듯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기계다. 인간은 현재의 다양한 고통을 겪거나 아니면 점차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의해 스스로 대체되는 것을 보는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해야 하며, 그러다가 들짐승이 인간과 비교가 되지 않듯 인간도 기계와 비교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275쪽)<br>그래서 기계를 파괴한 사회가, 어떠한 기계를 사용하는 것도 범죄가 되는 사회가 바로 에레혼이다.<br>또한 소설에는 육식을 금지하는 내용과 채식까지도 금지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결국 이것들을 지나치게 규제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고기를 금지한다고 해도 이것이 부자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음을, 어치피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규제가 없어도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빈부격차를 비판하고 있는 장면도 있다.<br>소설을 읽다보면 에레혼이 유토피아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설의 주인공은 에레혼을 동경하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시 에레혼으로 가서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로 데리고 오는 것 정도이니까.<br>그렇다고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잘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에서 미래란 과거와 현재가 품고 있는 상태라고 하니,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과거를 현재에 들여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br>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를 향할지, 디스토피아를 향해 나아갈지 그것은 바로 현재에서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래는 현재에 의존하고 현재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묵인에 의해서만 살기 때문에 그 존재는 인간의 삶에 가득한 소소한 타협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거에 의존하며,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269쪽)고 소설에 표현된 말처럼.<br>이러한 소설과 같이 우리가 참조할 과거가 이미 있으니... 백 년도 전에 나온 소설. 이 소설에서 '기계, 교육, 먹을거리'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814/40/cover150/89349804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814405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을 생각하다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31435</link><pubDate>Thu, 05 Mar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31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094438&TPaperId=171314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7/36/coveroff/89930944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094438&TPaperId=17131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a><br/>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09월<br/></td></tr></table><br/>너무도 유명한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오래 전 작품이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nbsp;<br>좋은 문학 작품은 시대를 앞서가면 앞서갔지 결코 뒤따라가지 않는다. 조지 오웰이 쓴 [1984]를 보라. 그냥 상상에 불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나? 어쩌면 이 소설처럼 세계가 전쟁으로 나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요즘 세계 정세를 보면 이도 확신할 수 없지만 - 온갖 기술로 인간을 감시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br>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데이터로 남아 그것을 이용한 인공지능이 이미 실제 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상태. 여기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되기도 했는데, 이런 점들이 이미 많은 문학 작품에서 그렸던 세계 아니던가.<br>그러니 이 소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나오지는 않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 나오는 안드로이드가 이런 말을 하기 때문이다.<br>'우리는 기계죠. 병뚜껑처럼 찍어낸 존재예요. 내가 실제로, 개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던 거죠. 나는 단지 한 기종의 견본일 뿐이었어요.' (285쪽. 안드로이드인 레이철의 말)<br>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에게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쓰일 당시에는 이런 말도 입력에 의한 기계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결망이 극도로 적은 시대에 작가가 살았으니까.&nbsp;<br>하지만 지금은 1,000억 개의 신경망이 연결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우리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작중 인물인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의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소설에서도 이미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br>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의 생사를 걱정하는 점, 또 화성에서 지구로 탈출해 온 점. 그리고 자신들이 인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점 등등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nbsp;<br>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감정, 정서'를 인간의 조건으로 삼고, 안드로이드들은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고...<br>'자기가 하는 말의 실제 의미에 대한 정서적 자각도 없고, 감정적 분별력도 없지. 오로지 개별 용어에 대한 공허하고, 형식적이고, 지적인 정의定義뿐이야.'(287쪽. 릭 데카드의 생각)<br>하여 소설에서는 인간들은 황폐한 시대에 동물들과 함께함으로써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반면에, 안드로이드들은 그러한 동물들을 죽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지도어라는 요즘으로 치면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에서는 특수인으로 나오는 사람이 거미를 발견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반면에 안드로이드들은 거미의 다리를 자르는 행위를 한다.&nbsp;<br>이는 다른 생명체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레이철이 릭의 집으로 가 염소를 죽이니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가 바로 이런 생명에 대한 사랑, 또는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br>하지만 릭이 제거한 안드로이드 중에도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지닌 존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페라 가수로 살아가는 안드로이드는 음악을 사랑한다. 또한 레이철은 또다른 안드로이드인 레이철에 대해서 분노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릭은 레이철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이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생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설은 고민하는 릭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기계라고만 정의하기 힘듦을 보여준다.<br>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의 하루 동안의 일을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화성에서 탈출해온 안드로이드 여섯을 모두 제거하는 릭. 그런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데, 결국 인간은 고민하고 후회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것도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것이 비록 생명이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기계일지라도 마음을 주는 것이 바로 인간임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br>이는 흔들리는 릭의 아내를 통해서, 그러면서 결국 릭과 아내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그런 공감을 통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고 있는데...<br>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그것을 계속 개발하려는 거대 기업의 모습도 소설에 나타나고, 무엇보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세대 또 미래 세대들이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7/36/cover150/89930944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7367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낯섬, 관계 맺기의 시작 - [양면의 조개껍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02530</link><pubDate>Fri, 20 Feb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1025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030732&TPaperId=171025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24/77/coveroff/k4820307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030732&TPaperId=171025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양면의 조개껍데기</a><br/>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08월<br/></td></tr></table><br/>'낯설게 하기'란 말이 생각났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아니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한 것이, 또 SF라고 평가받는 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낯설게 하기'다.<br>낯설다는 말은 곧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nbsp;'나'라는 자아가 있고, 이 자아와는 다른 '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낯섬이 일어난다.&nbsp;즉 낯섬은 다름을 인식하는 행위다. 다름을 인식해야 변할 수 있다.<br>남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을 인식한다고 해도 나와 남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나의 다른 부분으로만 여긴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nbsp;변화는 다름의 인식에서 오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갈등은 낯섬과 마주쳤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br>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즉 삶이 변화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삶이 전개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br>예측불가능성, 이것이 낯섬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낯섬은 불안을 동반한다. 불안을 안정으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해소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따르게 된다. 이 갈등이 바로 우리 삶이다.<br>그러므로 SF소설은 낯섬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설을 통해서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이 다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br>균일하고 평평했던 안정적인 삶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변화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두려움과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는 다르다.&nbsp;<br>현실과 다름을 인식하고 읽어가서 실제 삶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 이렇게 다른 삶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다.<br>김초엽 소설집을 읽으면서 낯섬, 다름, 그러면서 단순히 관광객이 아닌 내 삶에 그러한 낯섬을 끌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관광과 여행을 구분한 사람이 있었다. 관광은 보고 지나침, 여행은 내 삶에 끌어오기였던가?)<br>적어도 같음만을, 단일함만을 추구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할까? 낯섬이 작동하기 위해서 '나'를 인식해야 하듯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내 삶, 내 사고방식을 생각했다고나 할까.<br>나를 알지 못하면 낯섬을 경험할 수 없다. 낯섬이란 바로 '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먼저 '나'를 생각한다. '나'를 생각하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생각한다.<br>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니 나와 같지 않음을 생각한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면, 존재들은 모두 다름을, 심지어 '나'조차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나와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뭐,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작품을 읽으면 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김초엽 소설들처럼 잘 읽힌다.<br>잘 읽히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소설의 끝에 가서 더, 더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어쩌면 계속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br>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세상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고민할 수도 있다.<br>그러면서 하나의 답이 없음을, 나 자신도 하나가 아닌데 어떻게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br>세상에는 여러 삶이 있고 그러한 삶의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되니, 이 삶이 옳다 그 삶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음을...<br>다만 관계를 통하면 자신만의 삶을 유지할 수는 없음을, 관계란 바로 낯섬에서 발동하고, 낯섬은 나와 너를 인식한 상태에서 서로가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잃으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관계의 시작임을 생각한다.<br>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다른 책에 수록된 작품이 네 편이다. 아마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소설, 어디에서 읽었는데, 어디였더라? 찾아보기도 했으니까.<br>예전 습관대로 소설집 뒤를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소설집으로 단편 소설들을 엮어서 낼 때 그 소설들이 처음 발표된 지면을 알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인데... 없다. 작가의 말을 읽어도 추천의 말을 읽어도 읽은 작품이 어디에 먼저 발표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런...<br>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분명 읽었는데... 찾아볼 순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그 결과 종이책으로만 이야기하면, 먼저 출판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br>'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자이언트북스. 2023년)'양면의 조개껍데기' (팔꿈치를 주세요]-큐큐. 2021년)'달고 미지근한 슬픔' ([다시, 몸으로]-래빗홀. 2025년)'비구름을 따라서'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허블. 2025년)<br>여기에 '진동새와 손편지'란 소설은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의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고 이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타이포그라피로 써서 전시도 했다고 한다. 이 전시 영상이 있는데... 이것도 보면 좋을 듯하다.<br>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 (http://www.k-s-t.org/vibrating-birds-and-handwritten-letter/about.html)<br>여기에 덧붙이면 이 책을 산 이유 중 하나가 비정기 무크지가 있었기&nbsp;때문이다. 출간될 때는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서야 읽었으니...<br>한편 한편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이 낯섬이고, 이 낯섬을 통한 관계 맺기는 결국 우리 삶은 과정에 있고, 늘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br>한마디 더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편하게,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은 '소금물 주파수'였다.<br>작가의 고향인 울산과 고래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존재들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낯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와 남의 관계 맺기의 시작임을 또 그것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어서.<br>판매되지 않는 이 무크지에 실린 김초엽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 대해 한 말을 끝으로 인용한다.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br>'편협한 한 개인의 몸에 갇혀 살아가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경계 밖을 이해하고자 갈망하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한계가 우리가 지닌 희미한 빛이자 가능성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여기 담긴 소설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nbsp; &nbsp; &nbsp;(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 기념 무크지. 12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24/77/cover150/k4820307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24772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개‘ 이시봉을 통해 본 인색함 없는 삶 -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85144</link><pubDate>Wed, 11 Feb 2026 1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851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0700&TPaperId=170851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off/k4020307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0700&TPaperId=170851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a><br/>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7월<br/></td></tr></table><br/>우선 이시봉이라는 이름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 또 이 책의 광고를 보고는 이시봉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아니라 개다.<br>그럼 주인공이 '개'겠네. 개의 일생을 다룬 소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개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다. 스페인, 프랑스, 한국이라는 세 나라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시간도 중세 시대부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가 공존한다.&nbsp;<br>집에서 함께 지내던 개가 유럽의 유명한 혈통의 개란다. 그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이 개의 혈통과 보존에 힘쓴 사람이 스페인의 권력자였던 고도이라고 하면서,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에 프랑스로 유학갔다가 이 개의 부모를 데리고 오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박유정-김상우, 정채민), 그리고 현재 이시봉을 둘러싼 사건이 전개된다.(정채민이 대표로 있는 앙시앙 하우스와 이시봉을 키우는 이시습과 친구들, 박유정의 아들 김태형)<br>세 가지 사건이 잘 연결이 되어 박진감 있게 전개되고 있어 소설은 순식간에 끝부분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그런데 끝부분이 무언가 좀 아쉽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벌일까에 대해서 명확한 결말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인데...<br>명확한 결말은 나오지 않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이를 다른 존재로 확장하면 사랑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br>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개들을 통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첩되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재산 싸움도 펼쳐지니...<br>사랑하는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또 사랑하는 대상을 자신의 마음에 맞게만 하려고 하는 것도 역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상대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것, 그러한 사랑을 받는 존재를 소설의 서술자라 할 수 있는 이시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br>이시습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든 외할머니는 네가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는 말로 사랑을 표현한다. 믿음, 상대를 나의 기대에 맞추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br>이러한 할머니의 사랑이 이시습이 이시봉을 사랑하는데, 또 자신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사랑과 반대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소설 속 정채민이나 김상우의 모습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이 먼저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결코 자신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br>이를 소설에서는 이시습의 입, 또는 김상우의 아내였던 박유정의 입을 빌려 '인색하다'고 한다. 인색함이란 무엇인가?<br>'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만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하는구나. 그게 인색한 거구나' (493쪽) - 이시습의 생각.<br>이것이 이시봉과 같은 혈통의 개를 키우고 분양한다는 앙시앙 하우스의 수의사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는 그 회사의 대표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br>바로 이 인색함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시봉과 이시봉의 혈통을 이야기하고, 그 개들을 들여오게 되는 과정에서 '박유정-김상우, 정채민'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다.&nbsp;<br>'박유정이 생각하는 인색이란, 마음이나 생각이 오직 하나뿐인 것이었다.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는 아무것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 (338-339쪽)<br>결국 인색함이란 '홀로'와 연결이 된다. 남을 나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나'를 중심에 놓고 내 이익에 도움이 될 때만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 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내치는 것. 그것이 바로 '홀로'이고 이는 상대를 나와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자세다.<br>이런 인색함과 대비되는 것이 따지지 않고 사랑을 주는 것. 그러니 이시봉은 함께 살았던 이시습에게도, 정채민에게도 사랑을 준다. 명랑하고 투쟁 없게.. 이 투쟁 없는 삶이라는 말이 왜 들어갔을까 생각했는데...&nbsp;<br>이 소설에서 투쟁은 인색함과 연결이 될 수도 있겠구나 했다. 물론 '투쟁'은 필요하고, 사랑과 연결이 될 때가 많다. 사랑이 없으면 투쟁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투쟁은 필요하고, 이는 이시습의 아빠가 투쟁의 현장에서 빠져나오지만 그 미안함으로 자신의 뒤를 이어 노조 간부가 되는 후배 이시봉의 이름을 따서 강아지 이름을 이시봉이라 지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다.<br>사람 이시봉의 투쟁은 사랑이 들어 있는 투쟁이다. 그러니 인색함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과는 다르다. 이를 구분해야 한다. 개 이시봉의 투쟁 없는 삶은 인색함이 없는 삶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고...<br>이러한 이시봉으로 인해 또 한 명의 사람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되는 모습도 소설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그건 이시습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던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던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 소설의 말을 빌리면 인색하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만을 보는 사람이니까) 일명 '리다'가 그렇다.<br>'리다'의 아버지는 '리다'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고양이들을 죽이기도 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 이외에 다른 존재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인색함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대부분 외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비친다. 정채민의 경우도 그렇다. 이게 인색함이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br>결국 소설은 개-이시봉을 통해 인색함이 아니라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여러 사람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색함이 없는 투쟁을 하는 이시봉-이시습과 친구들, 인색함으로 무장한 투쟁을 하는 정채민과 그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인색함 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br>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이시봉과 관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그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홀로일 수는 없다는 것, 홀로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이 관계의 바탕이 바로 사랑임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br>최근에 읽은 [신영복 다시 읽기]가 생각났다. 신영복 선생은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때 존재론을 인색함으로, 관계론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함을... 그것이 사람의 삶임을 소설은 이시봉-이시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68/cover150/k4020307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92680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11가지 이야기 -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80990</link><pubDate>Mon, 09 Feb 2026 1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809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5175&TPaperId=170809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79/9/coveroff/89546951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5175&TPaperId=170809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a><br/>김의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09월<br/></td></tr></table><br/>'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나온 첫번째 소설집이다. 현실은 점점 팍팍해져 가는데, 그런 현실을 과연 문학이 제대로 반영하고 있나? 또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문학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를 고민한 끝에 나온 작품집.<br>작가들이 우리 현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 읽는 사람에게 현실을 보여주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어떤 희망을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이 결코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희망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 찾기를 또는 위안을 받기를 바라고 썼다고 할 수 있다.<br>'기획의 말을 대신하여'에 이런 말이 있다.<br>'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11-12쪽)<br>어떤 현상인가? 팍팍한 현실이다. 이를 '새로운 재난'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무어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이라는 인식이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점점 양극화되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작가들이 모여 각자가 바라본 현실을 작품으로 썼다.<br>이 소설집에는 11편의 소설이 실렸다. 다양한 직업들이 나오지만 공통된 점은 이들 모두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각 작품을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 작품 속 인물들이, 비록 이 작품집이 2023년에 출간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br>전세 사기라 할 수 있는 일을 겪는 인물,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발표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셋집도 마음 놓고 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마음 놓고 살(파고 사다의 살이 아니라, 거주한다는 의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br>말보다는 실행, 이것이 정부에게 바라는 것인데... 집값 안정,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 집이 아니라 내가 빌려 살 집도 구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얘기해야 한다. 기껏 빚내서 빌려 산 집(특히 전세)에서 전세금을 돌려받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사람들, 이 소설은(정진영, 숨바꼭질) 그나마 돈이나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br>젠세나 월세도 얻지 못하고 2호선 전철에서 자야 하는 배달 일을 하는 주인공 (주원규, 카스트 에이지)는 더욱 힘든 처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게으르냐면 그것도 아니다. 배달일을 하고, 밤에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한다. 그는 오후 3시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럼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그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잘 집도 없고 애인의 집에서도 자지 못하고 결국은 2호선 순환선을 타고 몇 시간 동안 자기 위해 첫차를 타는 인물에게 어찌 네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br>개인의 탓이 아님을, 그것이 네 선택이었으니 누굴 원망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을 나간 학생이 사고를 당했을 때, 그런 현장을 선택한 것도 너니까 그건 너의 자기주도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황여정, 섬광)<br>과연 자기주도권일까? 환경이 그러할 수밖에 없도록 내몬 것 아닐까? 그 현장이 열악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된 환경에서 과연 자기주도권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br>너무도 당연하게 또는 무책임하게 자기주도권 (다른 말로 하면 주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을 지니라고 하지만, 어디 그것이 개인에게 맡길 수 있는 문제일까? 개인에게 가해지는 환경의 압력을 살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소설은 제시할 수 없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현실이 이렇다고...&nbsp;<br>이러한 현실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최영의 소설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에서 만나보게 된다. 같은 카페에 있는,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에 속해 번역일을 하는 사람과 영상 번역을 하는 사람, 단행본을 번역하는 사람)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다른 번역일을 하는 환상을 품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nbsp;<br>이들은 같은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일 속에서도 다른 이의 일들에 환상을 품고 있다. 물론 자신이 아직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이렇게 비슷한 환경 속에 녹아 있는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오해를 하고 있는 존재들일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br>그러면 이들은 누구인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없어도 곧 대체 가능한 존재들 아닌가.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학습지 교사 등등.&nbsp;<br>첫소설에 나오는 '우리는 순간접착체 같은 거네요?'(35쪽)라는 말이 마음에 아프게 와닿았다. 필요할 때만 쓰는. 그러나 늘 함께하지는 않는 그런 존재.<br>순간접착제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비정규직이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precarious과 노동계급proletariat'가 합쳐진 말이라고)가 되겠다. 즉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양산하고 확산시키는 사회. 아파트 단지에 있던 벤치와 나무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듯이 그렇게 한 순간에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존재들. 그것이 우리 현실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집이다.<br>그럼 이런 작품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지? 다른 건 몰라도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잘못된 것이 내 잘못만이 아님을. 또 우리는 이렇게 한번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아님을 작품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우리 각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할 문제다.<br>이렇게 이 소설집은 우리나라가 지니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nbsp;월급사실주의란 말에 어울리는 소설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79/9/cover150/89546951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79094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폴란드 좀비 : 격리된 병원에서... - [브로츠와프의 쥐들 : 병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70749</link><pubDate>Wed, 04 Feb 2026 1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707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034308&TPaperId=170707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49/79/coveroff/k8720343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034308&TPaperId=170707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로츠와프의 쥐들 : 병원</a><br/>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br/></td></tr></table><br/>우선 이 편이 카오스와 철창에 이어서 사건이 전개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하긴 읽지 않고 책이 출간된 순서를 생각하면, 그것도 지금까지는 세 권이 번역되었으니, 당연히 마지막 권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br>한데 앞장을 넘기자 이런 말이 책에 있다. 소설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은 [브로츠와프의 쥐들: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의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단독적인 서사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일러두기에 쓰여 있다.<br>어라, 그럼 이 편이 끝이 아니네... 첫부분을 보자마자 시간은 다시 사건 발생 당일로 돌아가 있다. 1963년 8월 9일 금요일 20시 27분부터 시작하니,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시간 정도 지난 뒤다. 끝은 1963년 8월 12일 월요일 19시 57분이니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의 시간보다도 짧다. 그 소설에서 잠깐 언급한 장면이 이 편에서 펼쳐진다.<br>그렇다면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명 [브로츠와프의 쥐들:철창]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 시작하긴 했지만 소련군이 들어와 약탈하는 장면으로 끝나고, 그곳 시립동물원이 있는 큰 섬에서 아렌지코프스키 의사가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nbsp;<br>햐, 이거 다른 편이 있다면 번역이 되길 또 기다려야 하네 하는 아쉬움... 그렇지만 이번 편은 앞의 두 권과 달리 조금 짧다.<br>300쪽 조금 넘으니, 700-900쪽에 달하던 전편들과 달리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앞의 소설들도 속도감과 긴장감이 넘치지만 분량이 하루에 읽기에는 좀 많았는데, 이번 권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br>아니, 하루 만에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비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철창]에서 교도소로 가는 도중에 병원을 지나가면서 그들은 문 앞에 붙어 있는 글을 읽게 된다.&nbsp;<br>"들어오지 마시오.&nbsp;모두 죽었음."&nbsp;<br>자, 이제 우리는 왜 이들이 이런 글을 붙였는지를 소설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정신병원. 이곳 역시 격리 된다. 그리고 여기서 감염자가 발생한다.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하지만 사소한 실수, 무관심 등이 겹쳐 좀비는 확산된다.<br>게다가 식량도 떨어져 가고, 간호사들과 위생사들 또 조리사들도 한 명 한 명 죽어나간다. 남은 사람은 수십 명의 환자들과 책임자인 니엠추크 과장뿐.<br>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의사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환자들을 위하는 일이 될까?<br>이는 존엄사 문제와도 겹친다. 어떤 것이 환자를 위한 길일까? 니엠추크 과장은 '모든 의사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우선 해를 끼치지 말라'이다'(313쪽)는 철칙을 깨기로 한다.<br>그동안 그는 이 원칙을 지키려 애썼고, 비록 의식이 없는 환자,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게다가 조리사와 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감염병은 확산되고 구조될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뿐이었다'(313쪽)는 표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br>그런데 그는 환자들의 최후를 보지 못한다. 자신도 죽임을 당하기 때문인데... 죽임을 당하기까지 그와 병원관계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이 편에 담겨있다.<br>여기서 재앙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나타나는데, 겁을 먹고 무조건 도망치려는 사람과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br>그것도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특히 의사나 간호사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니엠추크 과장이 비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가 지닌 책임의식, 재앙에서 도피하지 않고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려는 마음은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nbsp;<br>그럼에도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않는다는 것, 재앙의 순간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호사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데...<br>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분노했던 것은 이러한 전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권력자들은 제 목숨 하나 건지려고 안전한 곳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피신했다는 점. 그 이후에 그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br>지금까지 읽었던 세 권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리'였다. 책임자는 도망치고, 그 책임을 떠맡은 '대리'들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펼쳐보이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당시 권력자들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br>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질적인 위험의 순간에는 제 자신의 안위만을 먼저 생각하는 권력자들... 전쟁 통에 먼저 도망가버린 대통령을 만났던 적이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러한 권력자들의 모습은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br>권력자들이 국민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남는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재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br>소설은 폴란드 좀비들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이 대처하는 여러 모습들, 권력자들의 비겁함,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r>만약 다음 편이 있다면 빨리 번역이 되기를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49/79/cover150/k8720343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49796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폴란드 좀비 : 재앙에 맞서거나 이용하거나 - [브로츠와프의 쥐들 : 철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68596</link><pubDate>Tue, 03 Feb 2026 14: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685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1327&TPaperId=170685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7/20/coveroff/k4420313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1327&TPaperId=170685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로츠와프의 쥐들 : 철창</a><br/>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9월<br/></td></tr></table><br/>1권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이라면, 그런 혼란 속에서 당황하며 좌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생존하려는 모습이 펼쳐진다.<br>소설의 속도가 1권에 비하면 빠른 편인데, 세 군데서 사건이 진행된다. 한 곳은 교도소, 또 다른 한 곳은 1권에서 지휘권을 잡고 군인들을 지휘하기 시작하는 비에드지츠키 소령이 들어간 시립동물원이 있는 큰 섬, 또 한 곳은 교도소에서 내보내져 소련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의도됐으나 탈출에 성공한 잔인한 사형수들이 은거하게 되는 광장의 은신처다.<br>교도소에서도 역시 소장은 피신을 하고 교도소장 대리를 맡은 사람이 나온다. 권력을 쥔 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대리를 맡은 대위 역시 이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선택을 한다.&nbsp;<br>즉 죄수들을 내보내고 교도관들의 가족들을 교도소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곳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좀비가 발생하면 사태는 급속도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br>교도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겪은 끝에 간신히 좀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물론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다.&nbsp;<br>공공기관이 재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데, 자신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만을 보호하는 기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nbsp;당장 내 가족의 안위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고. 그것이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교도소 대리 소장이 하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범죄자들을 풀어주고, 사형수들은 가둬서 내보냈다고 하지만, 다른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였다.&nbsp;<br>이런 행동을 공공기관이 한다면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겠는가? 각자도생이라고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협동이고, 책임을 지는 기관의 대처여야 한다.<br>이런 점에서 소령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nbsp;소령이 있는 큰 섬에서는 전열을 정비하고 좀비들에 대처하기 시작한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대피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서서히 좀비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좀비로 변한 원인이나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도 하게 되는데...<br>반면에 좀비보다도 더 지독한 지옥이 펼쳐지는 곳이 사형수들이 탈출한 도심이다. 이들은 생존자들을 붙잡아 좀비를 유인하는데 쓰거나 자신들의 노리개로 삼는다. 이들은 이러한 재앙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은 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br>좀비의 지옥에 이들의 지옥이 더해져 그곳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참담한 고통을 겪게 된다. 재난 상황에서 재난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공공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인간성을 상실한 작자들이 판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br>그들은 잔혹하게 행동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 협조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내어놓게 하는 자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nbsp; 이들의 잔학함에 치를 떨면서 읽게 되고, 언제 어떻게 이들이 파멸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살아남아 다른 사람들을 지옥에 빠뜨릴 것인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br>이렇게 떨어져 있던 세 곳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소령이 지휘하는 군인들이 교도소와 연락이 되고, 간신히 살인자들에게서 탈출한 소녀가 범죄자들의 음모를 알려 그들을 소탕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죽은 사람들도 좀비가 되는지 실험을 하는데...이때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한다. 그 살인자들, 사형수들을 좀비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이용하는데,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br>비에드지츠키 소령은 내켜하지 않는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그런 비인도적 행위에 동원할 수는 없다는 쪽이고, 의사인 아렌지코프스키는 어차피 사형수들이고, 이들의 죽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쪽이다. 이런 논의는 정의와 공리의 문제로 다룰 수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br>다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적인 복수극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러한 드라마를 보고 통쾌하게 여기게 만드는지도 모른다.<br>이 소설에서 범죄자들이 저지른 짓은 죽어 마땅한 짓들이다. 그 장면을 읽으면 이들이 그냥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총살이나 교수형은 이들에게 너무도 자비로운 형벌이라는 생각. 이들이 사람들에게 저지른 짓은 좀비들에게 먹히기 전에 온갖 공포를 겪는 것으로도 대체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br>2권의 마지막엔 소련군이 들어온다. 그런데 해방군이 아니라 약탈자로서... 이제 좀비에 더해 또다른 위기가 시작된다. 아직 좀비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간은 2주가 지나 있다. 3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br>끔찍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두려움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위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가는 사람도 있고.&nbsp;<br>3권을 기대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7/20/cover150/k4420313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77204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폴란드 좀비 : 재앙이 시작되다 -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66422</link><pubDate>Mon, 02 Feb 2026 17: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664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6275&TPaperId=170664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47/15/coveroff/k21203627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6275&TPaperId=170664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a><br/>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2월<br/></td></tr></table><br/>1963년 8월 9일 금요일 19시 50분.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한 격리병동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폴란드에 출혈성 천연두가 유행하게 되고, 정부는 환자들을 격리하게 된다. 격리를 통해서 전염병을 차단한다는 발상, 이거 몇 해 전에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리 역시 겪었던 일이다.<br>격리로 일정 시간이 지나 전염병이 잡히면 좋겠는데, 여기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변이가 생긴다. 사람들이 죽어도 죽지 않는 상태로 변하게 된 것. 단지 그런 상태로 변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게 변한 존재들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br>격리병동에서 시작된 이 재난은 브로츠와프 전체로 번져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곧 변한 존재, 처음에는 변질자라고 하지만 나중에 좀비로 이들에 대한 규정이 확정이 된다. 그런 존재를 눈으로 목격하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게 된다.<br>팔다리가 분리되어도 죽지 않고 그 팔다리가 따로 움직이면서 공격을 하고, 머리가 짓이겨져도 움직이면서 공격하는, 총알이 몸을 뚫어도 죽일 수가 없는 그런 존재들. 살아있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해서 그들과 같이 만들어버리는 좀비들.<br>그렇다. 수많은 좀비 영화, 소설들이 그렇듯이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팔다리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좀비는 없었는데...&nbsp;<br>경찰이 대응을 하다가, 군인이 출동을 하고, 전염병 전문의들의 조언으로, 이들을 고온에서 태워버리고자 한다. 화장, 말이 좋아 화장이지, 그냥 소각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br>즉, 과거에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위험물이 된 존재들이니 아무런 거리낌없이 소각하려 한다. 한데,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들을 태우는 연기 속에 전염 요소가 들어 있는 것.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는 전염.&nbsp;<br>연기를 마신 사람들도 좀비가 된다. 이제는 군인이나 경찰로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니까. 아직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nbsp;<br>대책은 없는데 전염은 계속 되고, 이때 해결하려 나서야 할 정부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되든, 군인들이 어떻게 되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들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생각을 한다.<br>그런 목적으로 군인과 경찰을 이용하는데, 이는 부패한 정권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정부를 갖지 못한 나라에서 위기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폴란드의 권력자들은 소련의 눈치를 보고, 국민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여기는 모습이 소설에서 나타난다고 하겠다. 이게 어디 폴란드만의 문제였겠는가.<br>책임감 없는 자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재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자신들만 피란을 가고, 한강 다리를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작자들. 이런 지도자연하는 작자들이 이 소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도시 하나를 폭탄으로 완전히 날려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br>이것이 부패한 권력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때 전염병이 브로츠와프만이 아니라 폴란드 전역에, 아니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부패한 권력자들 역시 좀비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런 권력자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사라지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권력자들은 재난 상황에서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br>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킬 사람은 누구인가? 소설은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인물들이 대부분은 죽는다. 많은 인물들 중에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누구일까? 이들은 과연 이 재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전개가 급박하게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사람을 죽인다고나 할까. 수많은 인물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죽음의 잔혹함이 말로 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계속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작품을 이끌어가게 될 것인데...<br>소설의 전개로 보건대 군인들과 경찰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전염병 전문가, 일반 시민들 몇몇들이 다음 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들은 쫓기고 있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제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 아니 어떤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그 점을 다음 권에 넘기고 있다.<br>첫권이 7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겨우 12시간이 지났다. 브로츠와프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제 부패한 지도부는 없다. 이들은 좀비에게 당했다. 그렇다면 이 재난을 해결할 사람은 누구인가?<br>바로 이 점을 찾아가는 것이 폐쇄된 사회였던 1960년대의 폴란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작가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군인이라도 같은 군인이 아니듯이, 경찰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하는 군대, 경찰이 있다면,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군대, 경찰도 있다.<br>여기에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명령에만 따르는 자들, 또 다른 사람들을 가학적으로 다루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로 인해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져가게 되는지를 몇몇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br>이렇게 첫권은 1963년 8월 10일 토요일 07시 50분에서 끝난다. 딱 12시간이 지났다. 이 12시간의 사건이 750쪽에 담겼다. 브로츠와프와 그 외곽지대에서 벌어진 일들로...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건들, 급속도로 퍼지는 좀비들. 어떻게 될 것인가?&nbsp; 이제 다음 권을 기대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47/15/cover150/k21203627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47153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가만한 날들을 맞이하기 위해 - [가만한 나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56773</link><pubDate>Fri, 30 Jan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567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9743&TPaperId=170567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361/50/coveroff/89374397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9743&TPaperId=170567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만한 나날</a><br/>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02월<br/></td></tr></table><br/>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읽은 소설은 소설집의 제목이 된 '가만한 나날'이다. 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는데...&nbsp;<br>가만한 나날이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가만하다'가 무슨 뜻이지? 가만 있어처럼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 대책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고 쓸 때처럼 속수무책일 때, 또는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br>이 세 가지 뜻이 모두 소설에 들어있지 않은가.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았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깊게 살피기 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바로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br>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서 상사들의 지시에 어떤 토를 달지 못하는 상태. 그렇다. 가부장제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위계를 따지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직장에서도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br>마찬가지로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기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정말 가만히 있는 나날들이 연속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하지만 세 번째 의미는 좀 다르다.<br>조용하고 은은하다는 의미는 격정적인 순간을 넘어서서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았다는 의미, 그래서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쪽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br>그렇다면 가만한 나날이라는 말에서는 남에게 휘둘리는 삶에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만한 나날'에서 주인공은 자의든 타의든 그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고,(회사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해 떠났다고 하지만, 아마 그 회사가 계속 잘나갔더라도 주인공은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 회사에 다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br>이런 인물들이 이 소설집에 많이 등장한다. 함께 살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사람, 직장에서 만난 상사를 통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사람 등등.<br>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이가 모두 20대에서 3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제 사회에 갓 발을 들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지, 그 시작이 얼마나 힘든지를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br>소위 흙수저라고 하는 사람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녹록치 않은 사회. 그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br>하여 그들의 삶이 평온하다는 의미를 지닌 가만한 나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그렇지 않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361/50/cover150/89374397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361507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커트 보니것의 단편소설들 - [멍청이의 포트폴리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49368</link><pubDate>Tue, 27 Jan 2026 11: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493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4910&TPaperId=170493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44/92/coveroff/89546449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4910&TPaperId=170493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멍청이의 포트폴리오</a><br/>커트 보니것 지음, 이영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03월<br/></td></tr></table><br/>첫소설을 읽다가 이거, 정말 다윈상 후보에 대한 이야기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자신의 생명을 거둘 수도 있는 호기심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야기. &lt;'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gt;라는 소설,<br>다윈상이 무엇인가? 위키백과를 참조하라. 하여간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다윈상 수상자는 그래서 살아 있지 않다- 수여하는 상 아닌가.<br>다윈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br>이 소설 제목이 재미 있는데, 영영사전에서 timid(소심한)과 Timbuktu(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 위치하는 단어가 time(시간)이라고 한다. (7쪽)<br>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릴 수가 없다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nbsp;<br>이런 시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정말로 죽을 때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러한 죽음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말 죽어가던 사람이 깨어나서 하는 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실험을 하고자 한다.<br>그런데... 결과는, 아마도 다윈상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 지나친 호기심. 호기심이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생명을 없애기도 하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예전에 몇몇 알던 다윈상 수상자들을 떠올렸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br>소설집 제목이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도 다윈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다. 다양한 내용의 소설이 묶여 있다. 아마도 커트 보니것 초기 단편들을 모아놓은 듯하고.<br>마지막 소설인 '로봇빌과 카슬로우 씨'는 미완성작이니... 내용이 중간에, 아니 어쩌면 시작 부분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에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모르니, 작가가 구상한 소설 중에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br>여기에 '마지막 태즈메이니안'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고, 그의 신랄한 사회비평이 담겨 있는 글이니,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커트 보니것의 관점을 알 수 있다.<br>제목이 된 소설을 보면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이 멍청이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인물은 우리가 좋은 의미로 쓰는 '바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바보 의사 장기려처럼... 또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김수환 추기경처럼. 또한 바보 소리를 들었던 어떤 정치인처럼.<br>자신이 받았던 것을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려 하는 사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보니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br>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br>자신이 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드러나게 행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고 멍청하다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좀더 좋아짐을, 또 그런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nbsp;<br>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소설집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44/92/cover150/89546449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644929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소설로... -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46624</link><pubDate>Mon, 26 Jan 2026 09: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466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038345&TPaperId=170466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03/47/coveroff/k6120383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038345&TPaperId=170466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a><br/>김동식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5월<br/></td></tr></table><br/>'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br>이건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직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여기에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담긴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br>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귀천이 없을까? 힘듦과 쉬움이 있고, 수입이 많음과 적음이 있지만 그것으로 귀천을 따지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br>직업에 귀천이 있다. 그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인 작가들이 모여 그러한 현실을 소설로 썼다. 이 책이 세 번째 책이다. 2023년에 첫 책이 나왔고, 해마다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올해 나오면 네 번째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되겠다.<br>월급사실주의, 노동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 문학이 작가의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것도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있는 문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br>그런 바람이 이루어졌느냐는 것을 따지기 전에 이러한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현실을 만나고, 간접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br>나만 힘든 삶을 겪고 있구나 하는 위안을 느끼는 동시에, 이러한 힘겨운 삶이 내 탓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 문학은 그렇게 현실에 참여하게 된다.<br>이 소설집에 황모과가 쓴 '둘이라면 유니온'에서 약간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계엄 선포하기 전에 모인 국무회의 장면이다.<br>회사에서 일하며 느꼈던 일들을 쓴 소설. 비록 노조를 결성하지 않았지만 둘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런 행위가 노조를 결성한 행위라고 여기기로 했다는 소설 속 인물.(215쪽) 이 인물은 그 회사에 더 이상 있지 않고 나온다. 자신의 양심으로 계속 있기 힘들었으니...<br>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왔던 소설을 쓰기로 하고, 나중에 작가노조에 가입을 한다. 하, 소설에서는 작가노조가 금속노조 지회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작가도 철(금속)을 이용하니까... 현실에서 이렇게 소설 속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br>검색해 보니 2025년에 작가노동선언을 발표했던데... 노조로 아직 공식 출범한 것 같지는 않지만 조만간 작가노조가 출범하겠지. 노조에 대한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역시 특정 권력집단과 언론이 조장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nbsp;<br>이 소설에서 임원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 '이 겨울, 기시감에 시달리며 '회의실의 피터들'을 떠올렸다. '회의실의 코끼리'는 회의중에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 일들을 비유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승진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무능하거나 승진한 뒤엔 반드시 무능해진다는 것이 '피터의 법칙'이다. 리안과 나는 회사 회의실에 피터들뿐이라고 말했었다. 그걸 떠올리니 12·3 내란의 밤, 국무회의 분위기도 할 만한다. ...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코끼리가 된 피터들의 표정은 지겨울 정도로 친숙하다.' (212-213쪽)<br>그렇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 피터가 되기 싫어 회사를 나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고, 회사원의 처우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피터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노조를 결성할 수밖에 없고. 회사를 나와 작가가 된 이후에 작가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br>이런 소설들이 바로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이 쓴 소설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노동현장을 소설로 보여주는 것, 그런 부당함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최근 '쿠팡 사태'를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쿠팡 사태 이전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면,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br>세상에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라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nbsp;<br>이러한 현실이 직장을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 인종차별을 알게모르게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 문제도 있지만, 외국으로 나간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돌봄노동자들, 비정규직, 방송의 윤리 문제를 생각하는 방송인, 시각장애인,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노동자, 중증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를 지 작품집에서 각 소설가들이 다루고 있다.&nbsp;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바꿔야만 하는 현실. 사람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그러한 환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br>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에서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니,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의 작품,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br>올해도 작품집이 나오길 기대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303/47/cover150/k6120383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303472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아하, 서정춘이라는 시인!!! - [서정춘이라는 시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39680</link><pubDate>Fri, 23 Jan 2026 08: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396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534996&TPaperId=170396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217/83/coveroff/k8725349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534996&TPaperId=170396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정춘이라는 시인</a><br/>하종오.조기조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8년 10월<br/></td></tr></table><br/>짧은 시. 시의 길이가 짧다고 시에서 느끼는 감흥이 적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시에서 번져오는 깊은 울림. 마음을 물들이는 시들. 그런 시들을 쓴 시인 서정춘.<br>짧게 쓴 시들만큼이나 시집도 많이 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첫 시집이 28년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 나머지 시집들은 아주 빠르게 나온 셈인데...<br>그는 평소 자신은 세 가지에서 짧다고 '삼단(三短)이라 했다는데,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서정춘 전'에서. 29쪽)고.<br>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던 삶. 마부였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시에 반해 시집을 필사하면서 시 쓰기를 갈망했던 시인.<br>주소를 바꿔 투고를 하는 바람에(?) 신아일보에서 시로 당선이 되었다는 시인. 그 전에 용꿈을 꾸었다고... 신아일보에는 시조를 보내고,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려 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두 작품의 주소가 바뀌었다는데.<br>이 책에 실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의 심사평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아, 참...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br>'선자와 성명 중의 두 자가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혹 있음직도 한 오해가 염려되지 않은 것도 아니나, 출중한 것을 그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 씨와 선자는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먼저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157쪽)<br>이렇게 이 책은 이런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서 후배 시인들이 기획해서 내었다. 1부에는 서정춘이 등장하는 시들을 - 와, 이토록 많은 시인들이 서정춘이란 시인에 대해서 시를 썼다니, 그의 짧은 시와 대조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길고도 길구나!-, 2부에는 서정춘 시에 대한 해설을, 3부에서는 서정춘의 사진들과 서정춘의 시에 장사익이 작곡을 했다는 노래 악보와 당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기사 등이 실려 있다.<br>그리고 마지막에 서정춘의 연보가 실려 있는데, 이 연보가 그냥 연대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서정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연보에서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피아노 최씨와 외팔이 장씨), 그는 외팔이 장씨를 통해 정지용, 백석 등의 시인을 알게 되고, 외팔이 장씨가 '너는 이미 시인'(172쪽)이라 했다고...&nbsp;&nbsp;서정춘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면 이 연보를 먼저 읽고, 2부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1부로 넘어가면 좋으리라.&nbsp;<br>이 책에서 서정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김성동이 한 말... 하, 이 정도의 시인이었단 말이구나, 서정춘이란 시인은.<br>&nbsp;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nbsp; 시단에 떠도는 말 듣고 이 중생이 말하였다.&nbsp; "북에 소월이 있고 남에 목월이 있다면 그 가운데 용래가 있다."&nbsp; 다시 말하겠다.&nbsp;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 (109쪽)<br>이 책을 읽으면 서정춘의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몇 권 그의 시집이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시집들이 있다. 품절된 시집인데... 그러한 시집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br>이 참에, 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죽편'이란 시에 곡을 붙인 장사익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죽편]의 첫 시인 '30년 전 - 1959년 겨울'이란 시가 장사익의 읊조림으로 들어가 있다. 장사익은 죽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인생은 여행인가? 검색하면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링크를 걸어둔다.<br>EBS 스페이스 공감 - 263회 장사익 - 여행 - YouTube]]></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217/83/cover150/k8725349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217831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이야기로 불러낸 사람들 - [소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37597</link><pubDate>Thu, 22 Jan 2026 1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375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6076&TPaperId=170375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99/coveroff/89329060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6076&TPaperId=170375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외</a><br/>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05월<br/></td></tr></table><br/>'소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br>사람이 소외되었다고 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br>&nbsp; 이 책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만민보 시리즈-두 권까지는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나오지 않은 듯. 그리고 이 책들은 절판이 되어 지금은 읽기 힘들어졌다. 세풀베다가 이 책에서 했던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노회찬 재단에서 기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있다. '6411의 목소리'로 대변된다-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듯)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nbsp;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다.<br>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환경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br>세풀베다의 다른 소설들도 이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짧게 그 사람들 (때로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도 나오지만, 그 고양이는 세풀베다 작품인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주인공 고양이 소로바스다)을 소개하고 있다.<br>슬프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위해 사는 삶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는 것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br>첫 이야기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br>'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 죽어가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고 외치는 사람. 그 사람은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이 그 사람뿐이었을까? 또 강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소외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br>이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런 사람들이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세풀베다는 이 책을 썼다.<br>왜냐? 이야기하는 게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소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br>하여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문장 앞에 있음을 '그들 모두와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돌멩이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13쪽)고 세풀베다는 이 책의 첫부분에서 말하고 있다.<br>그러면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두 여자의 이야기, 칠레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를 끝까지 지킨 그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br>지하 감옥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여자.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어' (16쪽)이다. 심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동료를 보호한 그들.&nbsp;<br>25년 후 그들은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상처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그들을 사랑스럽고 자랑스레 바라보는 세풀베다의 시선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br>'그들은 1960년대의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같았다. 사랑과 생각이 모두 반항적인 소녀들 같았다. 그들은 영혼과 희망을 함께하는 동료였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나의 영원한 소녀들을!'(19쪽)<br>어찌, 이런 사람들을 소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을지언정 민중으로부터 또 역사, 진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육체는 늙었을지라도 정신은 영원한 청춘이다. 이를 세풀베다는 찬미하고 있다.<br>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짧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린다.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세계를 우리가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 눈에 보이는, 남 앞에 나서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했고, 또 우리를 소외되지 않게 했다.&nbsp;<br>칠레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런 기록의 힘,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이 되고, 민중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함을 우리 역시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다.<br>그럼에도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남에게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옛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겪게 되는 민족 참상의 현실을 '잃어버린 섬'에서 보여주고 있다.<br>한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으로 변하는, 그래서 결국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리로시냐' 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자의 선동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소외다. 이런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br>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결코 이들은 소외되지 않았음을, 세풀베다의 이 책을 통해 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살아오고, 또 미래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임을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99/cover150/89329060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999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과거를 재연만 하는 삶에서 자유의지를 지닌 삶으로 - [타임퀘이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18020</link><pubDate>Tue, 13 Jan 2026 1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18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018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off/89546889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8977&TPaperId=17018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임퀘이크</a><br/>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br/></td></tr></table><br/>우주는 팽창한다. 계속 팽창하던 우주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수축을 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시간이 뒤로 간다. 그런데 수축도 계속 하지 않고 딱 10년만 한다. 그리고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br>우주가 팽창하는 것을 시간이 앞으로 가는 것으로, 수축하는 것을 시간이 뒤로 가는 것으로 상상하고, 이 수축이 빅뱅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나 인간들은 인식하지 못할 순간이라고 상상한다.<br>[타임퀘이크]는 그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시간이 10년 뒤로 갔다. 인간은 그 10년 동안 똑같이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삶을 재연하는 인간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온다.<br>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10년 간의 관행이 몸에 박혀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뜨린다. 이 혼란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킬고어 트라우트다.<br>물론 그 역시 우스꽝스럽게 그 혼란을 수습하지만, 우스꽝스러우면 어떠랴? 혼란이 멈추고 인간들이 다시 자유의지로 살아가게 되면 좋은 것이지.<br>그럴까?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하지만 과연 자유의지가 제대로 작동할까? 그 자유의지에는 이미 자유라고 믿게 하는 강제가 숨어있지 않았을까?<br>자유의지가 있다면 인간들이 과연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타임퀘이크 때, 분명 과거이고, 자신은 과거로 돌아갔음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연배우처럼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있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보니것은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타임퀘이크 이후에도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br>'실제 인생에서 사람들은 타임퀘이크 후 재연 기간처럼 변화하지도 않고, 실수를 저지르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사과하지도 않는다.'(214쪽)<br>아마도 보니것이 10년이라는 타임퀘이크를 상정한 것이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지금-여기를 잘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위해서.<br>타임퀘이크라는 상상을 통해서 보니것은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의 미국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소설에서도 나왔던 장면들, 또 그의 또 다른 글에도 나왔던 사건들,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br>보통 일상에서 겪는 일들, 또 그때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현재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재연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을 통해서 우리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하고 있다.<br>하여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보니것이 말하고 있듯이 작가를 생각하게 된다.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1990년대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미국이라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그대로 가면 안 된다고 여기고 풍자를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려고 했던 작가를 말이다.<br>'어떤 예술작품이건 그건 두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의 절반을 차지해. 작품은 우리에게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얘기해주거든. ... 그림이 유명해지는 건 그것의 그림다움이 아니라 인간다움 때문이야.' (222-223쪽)<br>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보니것의 소설이 유명해지는 것은 그의 소설이 지닌 소설다움이 아니라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지닌 인간다움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라는 것. 그의 인간다움이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고 거기에 우리도 응대를 하고 있다는 것.&nbsp;<br>(작가와 작품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지만, 작품에는 작가가 담겨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적어도 보니것의 소설에는 보니것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는 작품에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까지도 수시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br>그래서 보니것의 소설이 읽히고, 그의 신랄한 풍자가 감탄을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그를 모르면 작품 속에 들어있는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뭐 이런 작가가 있어 하고 작품을 접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br>이렇게 보니것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니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말이 지닌 신랄함이라든지 통쾌함 등을 만나게 되고, 단편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br>모자이크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이 또는 퀼트 작품처럼 조각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으니... 이 [타임케이크] 또한 그렇다.<br>재연배우처럼 살아가는 타임퀘이크가 일어난 10년 동안의 일이나 타임퀘이크가 끝나고 반복된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때의 일들이 짤막짤막하게 실려 있어서 읽는 속도가 붙는다.<br>또 전에 그의 작품을 읽었다면 친숙한 구절이나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하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곳곳에 풍자가 숨어 있으니 그것을 찾는 재미도 있고.<br>무엇보다 보니것 소설은 재미 있게 읽으면서도 무엇을 더 생각하게 해주는 힘이 있으니... 그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겠다.<br>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를 생각하게 되니, 이 소설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돌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디지털 세계(당시는 텔레비전 시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에 대해 물성을 지닌 책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닌가 한다.<br>'교묘한 타산이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해서, 그 무게와 질감으로, 그리고 통제에 대핸 멋진 상징적 저항으로, 책은 우리의 두 손과 두 눈을, 그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정신의 모험 속으로 이끈다.' (240쪽)<br>보니것의 소설이 그렇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67/27/cover150/89546889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672702</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재미 있는 커트 보니것 소설 읽기 - [카메라를 보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15773</link><pubDate>Mon, 12 Jan 2026 07: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157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60088&TPaperId=170157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377/28/coveroff/89546600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60088&TPaperId=170157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카메라를 보세요</a><br/>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br/></td></tr></table><br/>역시 보니것이야! 읽기가 재미있다. 반전이 있으니, 섣불리 결말을 예상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은 어떤 결말로 끝날까 궁금증을 지니고 읽어가면 어느새 놀라운 결말이 다가온다.<br>그렇다고 가볍지가 않다. 서술은 가벼운데, 들어있는 내용은 무겁다고 해야 한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전달하는 능력, 보니것이 지닌 재주라고 해야겠다.<br>첫소설 '비밀돌이'를 보면 참...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러한 인공지능이 개발이 되어 인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이 소설을 읽다가 경기도교육청인가 어디선가 개발했다는 AI영상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br>교사들이 지닌 속마음을 인공지능이 풀어준다는 발상인데, 그것이 교사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흘러서 문제가 되었던... 즉 말에 드러난 속뜻을 해석해주는 영상이었는데ㅡ 그것이 상대에 대한 비하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펼쳐지는데 참, 뉴스에서 봤던 내용을 보니것이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아무 문제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안 좋은 면을 파헤치는 그런 기계. 그 기계로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데...<br>그런 기계를 만들어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물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을 망가뜨리는지 몸소 체험한 다음에 기계를 묻어버린다. 소설에서는 묻어버릴 수 있다. 또 보니것이 살았던 시대는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이니까, 상상 속에서 그러한 위험을 간파한 인간이 위험을 피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낼 수도 있다.&nbsp;<br>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그것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에서처럼 묻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고 믿고 더욱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br>그래서 이 소설이 더 소중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개발한 기계가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망칠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니...<br>소설의 결말은 더욱 섬뜩하다. 땅에 묻어버리는 기계가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br>"'다시 보자. 개자식아. 다시 보자고.'" ('비밀돌이'에서. 42쪽)<br>우린 이러한 비밀돌이를 다시 보고 있다. 인간에게 편리함과 빠름을 선물해준다는 이유로. 하긴, 이 비밀돌이처럼 '이야기할 사람!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비밀돌이'에서. 25쪽)이 필요해서 만든 기계가 과연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해준다고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br>그냥 우리 자신의 고민을, 어려움을 피하게만 해주는 것이 아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조그마한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세를 지니게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악용이 되어 안 쫗은 쪽의 말들만 계속 듣게 해서 우리의 인식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nbsp;<br>과연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기계를 만들어 곁에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 지금 우리는 기계와 대화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공간에 대한 고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이 소설을 통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br>'개미 화석'이라는 소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비꼬고 있는 소설인데... 독재가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서 예술을 하거나 또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또는 비판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입을 틀어막히고, 행동에 제약을 받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br>개미학자를 주인공으로, 개미들의 화석을 통해 어떻게 독재가 성립하게 되는지, 또한 같은 사건(화석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정권의 구미에 맞게 해석을 할 수 있음을, 그것에 반하는 증거 또는 추론을 하는 사람의 입을 어떻게 막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br>그때는 소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지금은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소련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소련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br>이러한 소설들, 많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짧고 경쾌하게 진행되지만 내용은 깊고 무겁다. 하여 소설을 읽으며 현대 우리의 생활을 살필 수 있게 해주고 있다.<br>이 소설들과 더불어 두려움이 인간이 지니는 감정이고, 이 두려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즉 두렵다고 마냥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 극복하려는 모습을 지녀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br>'신문 배달 소년의 명예'와 '우주의 왕과 여왕'이라는 소설이 그런데, 두려움에 갇힌 사람은 결국 자신을 망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렵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명예와 또 한 단계 성장하는 자신을 선물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br>이 두 소설의 결정판이 바로 '에드 루비 키 클럽'이란 소설이 아닐까 하는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내용의 소설. 아무리 권력을 지니고 있어도, 사람들을 매수해도 결국 진실은 가릴 수 없음을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br>이 소설집 좋다. 재미있다. 그냥 읽어보면 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377/28/cover150/89546600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3772869</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이토록 따스한 좀비들이라니!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9600</link><pubDate>Fri, 09 Jan 2026 09: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96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032998&TPaperId=170096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25/80/coveroff/k24203299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032998&TPaperId=170096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a><br/>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br/></td></tr></table><br/>좀비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에 감염병이 급속도로 퍼져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이 좀비들이 사람들을 죽이는(감염시키는) 상황. 힘 있는 자들은 우주선을 타고 제2의 지구로 탈출을 하지만...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좀비가 되거나 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br>감염되어 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기억이 없다. 그래서 좀비는 무섭다. 자신도 자신과 함께했던 사람도 모두 알지 못한다. 좀비도 먹어야 산다고 하면, 먹기 위한 본능만 남아 있는 존재다. 이래서 좀비는 무섭다. 무섭기도 하지만 슬프다.<br>자신의 기억을 잃은 존재는 더이상 자신일 수 없다.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좀비는 슬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br>하지만 천선란의 이 좀비 연작에서 좀비는 다르다. 사랑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좀비가 되어서 비록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는다.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아름답다.<br>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모습. 그러한 좀비를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 이들의 관계에서 좀비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상대의 상태가 변했어도 그냥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br>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함께하고 싶을 뿐이고, 그렇기에 서로를 해치지 못하게 다른 좀비나 인간들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그런 과정이 세 편의 연작소설에 실려 있는데.... 세 소설에서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면 이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이었다.<br>첫 번째 소설인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옥주와 묵호가 등장하고, 두 번째 소설인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에서는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둔 딸과 자폐인을 딸로 둔 엄마가, 세 번째 소설인 '우리를 아십니까'에서는 동성 부부가 나온다.<br>소수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들은 세상이 재난에 빠진 상태에서도 서로를 챙긴다. 인간일 때도 그렇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좀비가 되었을 때고 그렇고.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은 좀비가 되기 전에 그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고,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좀비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br>분명 상황이나 상태는 달라졌음에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장면을 두 번째 소설인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에서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행방불명이 된, 그래서 결국은 좀비가 된 아빠가 만나는 장면은 마음이 찡해진다. 이들은 서로를 잊지 않고 있음을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게 한다.<br>(은미는 그것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다. 어둠 속의 두 실루엣은 마치 서로를 끌어안는 것만 같다.-221쪽)<br>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 어려운 환경을 함께 헤쳐나왔던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겪는 재난 상황은 이미 자신들이 겪었던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좀비든 아니든, 그냥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자신이 곁에 있어 주어야 하는, 또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br>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호하려 하고 함께하려 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순탄치 않지만 이들은 헤쳐나간다. 이겨나간다.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서로의 사랑으로 그 어려움들을 견뎌내고 이겨내 왔으니까.<br>하여 좀비 3부작이라고 하지만 사랑 3부작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 소설집은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까. 어떤 어려움에도 서로를 간직하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br>이들의 이토록 아픈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 소설. 천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따스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소설집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25/80/cover150/k24203299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25805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사랑, 영원으로 가는 길 - [영원을 향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7597</link><pubDate>Thu, 08 Jan 2026 1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75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030301&TPaperId=170075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47/4/coveroff/k0720303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030301&TPaperId=170075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원을 향하여</a><br/>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07월<br/></td></tr></table><br/>필멸의 존재이기에 불멸을 꿈꾸는 인간. 그러나 불멸의 존재가 되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생물학적 몸을 지니고 있으면 불멸할 수가 없다. 세포는 죽음으로 향해 가니까. 불멸하기 위해서는 세포를 바꾸어야 한다. 무엇으로? 죽지 않는 존재로... 그런 존재가 있을까?&nbsp;<br>지금까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노화를 늦추거나 또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냉동해서 다음 시기로 치료를 넘기는 방법 뿐이다.<br>하지만 지금까지 불가능했다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법은 없다.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뇌만 남기고 또는 뇌에 기억되어 있는 기억들만 다른 저장장치로 옮기고, 육체는 언제든 개조하거나 바꿀 수 있게 한다면, 또 기억도 이 장치에서 저 장치로 계속 옮겨 저장해서 영원이 보존되도록 한다면, 그때는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br>안톤 허가 쓴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불멸이 영원이라면, 이 소설 제목이 '영원을 향하여'니까 인간이 불멸의 존재를 꿈꾸는 내용일까 추측을 했지만, 아니다. 소설에서 인간들은 불멸을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인간이니까.&nbsp;<br>그렇다면 '영원을 향하여'는 무엇일까? 죽음을 향하여 간다는 말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죽음에 이르니까. 하지만 죽음이라고 하면, 그 이후 세계를 알 수 없기에 영원이라는 말을 쓰기엔 뭔가 좀 미진하다.<br>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영원이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나노봇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한다. 또한 나노봇으로 자신들의 기억도 보존된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나노봇으로 돌아온 인간이 과연 그 전에 몸을 지닌 인간과 같을까?<br>기억이 같더라도 전의 존재와 후의 존재가 같은 존재일 수는 없다. 분명 다르다. 소설 속 인물도 그 점을 느낀다. 따라서 그들은 불멸을 추구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다만 이들은 무언가를 계속 남기려 한다.&nbsp;<br>이 남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기록을 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무엇을 느꼈는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다른 존재에게 넘겨 계속 기록하게 한다.<br>기록, 언어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언어로 이루어진 것 중에 인간다움의 한 요소로 시를 꼽는다면, 이 소설에 시가 그토록 많이 인용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br>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인물에게 문득 시 구절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한다. 시 못지 않게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록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첼로연주자인 것이 이를 대변한다.<br>뭉뚱그려 이야기하면 예술이다. 예술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주고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예술 역시 기록되지 않으면 전승이 되지 않는다. 하여 기록함, 기록됨이 소설에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몇 백 년이 흘러도 지속된다.<br>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삶은 영원히 기억이 되는데,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기록으로 우리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나 하니, 이런 기록을 담당한 언어는 인간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br>그러니 '언어'는 인간이 영원을 향해 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이 왜 기록을 하면서 기억하려 할까 하면 바로 그것이 사랑이다.<br>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행동이 기록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런 절실한 마음이 기록이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은 영원을 향해 가는 길이다.<br>영원을 향해 가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 이르게 하는 것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언어와 사랑이 함께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br>수 백 년에 걸친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각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을 목차에 따라 정리하면 '말리 -&gt; 용훈 -&gt; 엘렌 -&gt; 파닛 -&gt; 로아 -&gt; 델타 -&gt; 크리스티나'&nbsp;<br>여기까지가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사람(? 사람의 형체를 지닌 나노봇? 이들을 엄밀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인간의 몸이 아닌 나노봇으로 바뀌었기 때문)들이라면 그 이후의 기록은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이어지게 된다. 아피나라는 존재가 그 책임을 지게 될 텐데...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br>하여 지구에서 기록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말리에게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사랑, 한용훈은 남편인 쁘라섯에 대한 사랑, 엘렌은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파닛은 한용훈과 또 시에 대한 사랑, 로아는 그의 두 엄마에 대한 사랑이 있고, 델타와 크리스티나는 파닛의 나노봇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br>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기억되게 하는 것이 언어로 기록된 공책이기에, 이 공책에 쓰인 내용들이 이어지면서 영원을 향하여 가게 된다.<br>지구에서 마지막 기록자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티나에게 아피아가 하는 행동은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아니 지구 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이들이 남긴 기록은 계속 살아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br>'그녀(아피아)가 방주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그녀는 동의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델타가 남긴 공책에 내(크리스티나) 생각을 써 넣으면 아피아가 나의 일부를 방주로 가지고 돌아가 방주가 언젠가 지구의 궤도를 떠나 여러 세대에 걸친 피할 수 없는 여행을 떠날 때 나의 일부가 별들 사이에서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하려 애썼지만 아피아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고 명백히 이것이 공책에 들어가야 할 이야기의 다음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하얀 밤 내내 잠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썼다.' (227-328쪽)<br>이렇게 기록은 영원히 남게 되고, 이들이 살아오면서 지녔던 사랑도 영원히 남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으로 영원을 향해 가게 된다.<br>소설의 끝부분에서 말리가 엄마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한용훈이 누군가를(분명 쁘라섯이다) 보고 달려가는, 영혼이라도, 그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바로 이들은 이렇게 영원을 향하여 간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br>'그는 이제 달린다. 빛을 향하여. 그리고 곧 그는 자기 자신의 서사에서 달려나가, 시의 손길에서 달려나간다. 영원을 향하여.'(352쪽)<br>서술자의 변주가 소설에서 엘렌이 말하는 '모차르트의 주사위 게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전개가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에 '모차르트의 주사위 게임'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왜 그가 기록자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어울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br>그렇게 변주를 통한 조화. 재이 있게 읽은 소설이다.&nbsp; 특이하다고 생각한 점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영어로 소설을 썼고, 이를 소설가인 정보라가 번역했다는 점. 읽기 전에는 작가인 안톤 허가 미국에 살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47/4/cover150/k0720303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470404</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관찰자 - [철의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0756</link><pubDate>Mon, 05 Jan 2026 0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70007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6617&TPaperId=170007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67/37/coveroff/89546566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6617&TPaperId=170007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의 시대</a><br/>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06월<br/></td></tr></table><br/>남아프리카공화국이 배경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있던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그런 시대.<br>철의 시대라는 제목은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들의 모습을 철에 비유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저항을 한다. 철이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강철은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br>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물론 경찰들이 흑인 소년들을 가차없이 총으로 쏘아죽이는 장면 등에서, 흑인들의 집이 불타버리고 그들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그런 점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생활에서 흑인들이 겪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이 소설에서 찾기는 힘들다.<br>왜냐하면 소설의 서술자를 늙은 백인 여성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암 선고를 받고 죽어가는 여성, 지식인이었던 이 여성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찬성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br>소설은 이 커런이라는 여성이 암 선고를 받고 돌아오면서 집 근처에 있는 부랑자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두 손님. 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어떤 계시와 같다고 여겨 부랑자를 쫒아내지 못하고 그가 근처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br>그리고 가정부로 흑인 여성이 있는데, 소설에서 커런에게 플로렌스로 알려진 흑인 가정부의 이름을 커런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br>함께 지내는 가정부의 이름마저도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 이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의 결과 아니겠는가.<br>서로 간에 지니고 있는 불신. 이 불신은 거리에 있다. 함께 지내도 백인과 흑인이라는 거리. 이 거리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차이가 난다.<br>플로렌스의 아들 베키가 총에 맞아 죽은 장면. 집들이 불타는 장면에서 커런이 하는 말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다. 이때 다른 흑인이 하는 말은 당신은 고작 그런 말밖에 못한다고, 흑인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고.<br>너무도 명확한 거리. 지식인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들은 흑인들처럼 싸우지 않는다. 멀찍이&nbsp;떨어져 있을 뿐이다.<br>그럼에도 수치심을 지닌다. 이렇게 흑인들이 핍박을 받게 한 사회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당시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편지로 표현이 되어 있는데...<br>그렇게, 한 늙은 백인 여성의 눈으로 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그런 사회가 끝나고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믿고 싶은데...<br>소설을 읽으며 차별의 한복판에 있는 존재들과 그것에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폭력은 안 된다고, 죽음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커런에게 흑인 소년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그들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br>다른 선택지가 있기 위해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발간된 몇 년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었다.<br>이 소설은 그렇게 되기까지 흑인들이 겪었던 차별을 늙은 백인 여성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지닌 지식인들... 그들이 함께 행동에 나서면 차별이 더이상 지속되지 못할텐데... 소설은 커런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었으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67/37/cover150/89546566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673777</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사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78717</link><pubDate>Sun, 28 Dec 2025 1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787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032240&TPaperId=169787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36/7/coveroff/k65203224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032240&TPaperId=169787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a><br/>정보라.최의택 지음 / 요다 / 2025년 12월<br/></td></tr></table><br/>사기, 사기...<br>사기는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없는 사람을 더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기다.<br>하긴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은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권력층의 집을 턴 사람을 대도(大盜)라고 했겠는가? 그만큼 있는 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일은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하려고 하지 않는다.<br>이 점을 보면 사기는 정말 나쁜 범죄다. 다른 범죄들도 나쁘지만 없는 사람을 더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으니...<br>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벌어졌던 전세 사기 사건을 생각해 보라. 간신히 돈을 마련해 전세 들어 갔더니 사기란다. 전세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하늘이 무너진다. 그런데 솟아날 구멍이 없다. 이 솟아날 구멍, 사회가 국가가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br>국가에 기대고자 하지만 국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사기를 당한 사람은 속절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br>이 소설, 포항 앞바다 유전 개발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유전 개발이 얼토당토 않는 일이었음이 밝혀진 지금, 작가의 말처럼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들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 수 있다.<br>사기꾼들은 기회만 있으면 그 틈을 노리고 덤벼드니까. 이 석유 시추 사업은 최종 실패로 결정되었는데 만약 계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돈을 투여하면서 계속 추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분명 사기꾼들이 달려들었을 테고, 많은 없는 사람들이 이 사기에 말려들었을 가능성도 있다.<br>이렇게 소설은 개연성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물론 개연성이 있다고 해서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난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들이 발생한다.<br>피해자라고 하지만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 피해자임이 분명한데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 보라. 이 보라에게 돈을 맡겼다가 다 날린 의택은 그야말로 경찰에서도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보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이들이 만나 주민등록증을 통해 본인들을 확인하기 전까지 메신저에서는 마이크와 존이라는 이름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br>의택(마이크)이 보라(존)에게 연락해 천안역에서 만나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포항으로 가기로 한다. 포항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다. 결정적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그들과 맞설 어떤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br>하지만 이들은 간다. 갈 수밖에 없다.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소설 속 의택의 말처럼 더 이상 내려가 밑도 없다고... 이들에게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도 사치다.<br>결말보다는 이 과정이 소설에서 흥미를 돋운다. 어떻게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인 이들이 포항까지 가면서 맺게 되는 관계. 그렇다. 보라 역시 패해자이고 약자임을 의택은 안다. 또한 보라는 의택과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든 피해를 만회해줘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br>이러한 감정들을 지니고 이들이 도착한 포항. 포항에서 만나게 되는 사건. 그리고 결말.&nbsp;<br>한번 당한 사기 피해를 복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사기꾼들의 모습에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br>경쾌하게 진행되고 있기에 읽는 속도가 이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에 가는 속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게다가 포항에 도착해서 움직이는 과정의 묘사 속에 포항까지 가는 길에 있는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국도를 만날 수도 있고.&nbsp;<br>무엇보다 이런 사기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바라면서 읽게 된다. 이들의 여정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더라도 결코 사기 피해는 소설 속처럼 웃음을 주지는 않으니까. 그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크니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36/7/cover150/k65203224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636074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가고 있지만 과연 가야만 할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 - [멋진 실리콘 세계 - STS SF 앤솔러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74284</link><pubDate>Fri, 26 Dec 2025 0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742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032324&TPaperId=169742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53/76/coveroff/k8520323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032324&TPaperId=169742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멋진 실리콘 세계 - STS SF 앤솔러지</a><br/>단요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br/></td></tr></table><br/>[멋진 신세계]<br>올더스 헉슬리가 쓴 소설. 이 소설집을 보면 우선 헉슬리의 소설이 떠오른다. 제목이 이 소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낱말이 겹치니 그 소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멋진'과 '세계'<br>헉슬리의 소설에서 새롭다는 뜻을 지닌 '신'자 대신에 지금 우리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실리콘'을 넣어 '멋진 실리콘 세계'라고 했다. 이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에 이 제목을 가진 소설에서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br>그렇다면 헉슬리 소설을 읽은 사람은 이 소설이 우리가 맞닥뜨릴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예측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은 소설집을 읽다보면 맞아떨어지고... 물론 그 세계가 정말 멋진 세계인지는 모르겠지만...<br>소설들을 읽어보면 '멋진'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헉슬리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어찌됐든 앞으로 우리가 만날 세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고, 또 과학기술의 발전을 뒤로 돌릴 수도 없으니...<br>이 소설집에 나온 세계 중에 우리가 받아들일 세계와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를 구분하면서 읽는 것도 즐거운 읽기가 되겠다.<br>우리나라 작가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중국 작가로 [삼체]를 쓴 류츠신의 '중국 태양'이란 작품이 있고, 일본 작가인 후지이 다이요가 쓴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이 있다.<br>이 두 외국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미래 세계는 부정적이지 않다. 과학기술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고, 그것이 인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단지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는다.<br>'중국 태양'을 보면 지구에 닥친 기후 문제를 인공 태양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이 무엇일까? 또 그러한 기술에도 인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nbsp;<br>하다못해 거대한 인공 중국 태양도 관리하는(청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라 도시로 온 수이와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수이와라는 한 사람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데...<br>후지이 다이요가 쓴&nbsp;'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은&nbsp;블랙홀이 지구로 돌진하는, [삼체]와 비슷하게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파괴할 목적으로 블랙홀을 쏘아보내는 내용이 전개되지만, 그 과정에서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거기에 투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nbsp;<br>물론 이 소설은 반전이 있는데, 인류를 구원하는 행위를 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AI로 밝혀지지만, 그럼에도 거기까지의 과정만 보면 우주를 상상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br>그렇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단요가 쓴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에 보면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과 비슷한 새로운 출생의 모습을 지닌 사회가 그려진다.<br>인적자원생산계획이라는 계획으로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여기에 복무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데, 그런 세상에서 생물학적인 부모라는 역할은 필요 없어 진다.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세상,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러나 저항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와 물리력을 지니고 있는 정부. 승부는 뻔하다.<br>이렇게 뻔한 승부를 지속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죽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없기에 더 불안해 한다. 죽음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br>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죽음을 연기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그러한 모습을 담은 소설들이 제법 있다. 우다영이 쓴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역시 그런 소설 중 하나다. 뇌를 통한 생체 이식.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만 몸은 새로 받아 죽음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뇌 역시 무한하지 않기에 뇌에 있는 정보들을 옮길 다른 조직체를 만들 수밖에 없는데...<br>과연 그러한 생명 연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의 결말 부분은 그 점을 생각하게 하는데,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노화라면 그것도 지구의 기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세상이 되었을 때 그러한 기후에도 끄떡없는 피부 이식이 가능한 사회라면... 그것도 신체의 나이를 자신이 원하는 때로 돌릴 수 있는...<br>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조시현이 쓴 '슈거 블룸'이다. 와. 이 소설은 더 끔찍한 미래를 보여준다. 피부를 이식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피부를 재활용한다는 것. 즉 외양이 다른 존재에게 입혀진다는 것인데, 주로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자신이 알던 존재가 비록 본질은 다르지만 주변에 계속 있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br>잊을 권리와 잊힐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는 잊을 권리도 잊힐 권리도 찾을 수가 없다. 과연 이런 세상을 맞이하고 싶은가?<br>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성, 우연이 삶의 한 요소라는 것, 어떨 때는 불합리해 보이는 감정이 바로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때로는 자신이 손해를 볼지라도 남을 위해 행동하는 일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윤여경의 '당신은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와 장강명이 쓴 '동물+친구*로봇'이라는 소설이다.<br>물론 두 소설은 좀 다르지만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고, 이제 가상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그러한 가상 세계의 존재 역시 우리와 같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 전윤호가 쓴 '멋진 실리콘 세계'다.<br>그런 세계가 과연 멋질지는 읽어보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조차도 그런 인공 존재에게 의지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과연 그 세상의 중심은 인간일끼?<br>자, 편리함과 익숙함에 안주한 인간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이 인물과 같지 않을까?<br>'...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와 보냈다.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여자친구건 직장 상사건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사람과는 같이 대화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도 많다.&nbsp;AI는 그렇지 않다. 대화하다보면 한마음이 된 것 같고 다른 잡생각이 사라진다.&nbsp;AI는 은근히 잘난 척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속여먹으려 하지 않는다.&nbsp;AI와 시간을 보내면 피곤할 일도, 화낼 일도 없다.' (전윤호, '멋진 실리콘 세계' 중에서. 321쪽)<br>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오르지 않는가. 인간이 사랑을 해서 태어난 사람을 야만인(야생인이라고 해야 하나)savage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인공적 존재와 지내다 보면 나와 인공적 존재의 차이가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무의미하게 된다.<br>어차피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미 와 있는 세계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과학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br>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이 소설집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53/76/cover150/k8520323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537666</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제사, 마음을 잇는 - [제사를 부탁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65499</link><pubDate>Mon, 22 Dec 2025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654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1005&TPaperId=169654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09/2/coveroff/89546910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1005&TPaperId=169654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사를 부탁해</a><br/>박서련 지음,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 2023년 02월<br/></td></tr></table><br/>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제사. 엄격한 형식을 고수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일. 부모의 제사만이 아니라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낸다는 종가집 맏며느리.<br>잊을 만하면 제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부모의 제사를 함께 모셔도 명절 두 번에 네 번의 제사가 되는데, 부모를 따로 모시면 명절 두 번에 여덟 번의 제사. 그러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때는 잊을 만한 시간도 없다.<br>간소하게 지내면 괜찮겠지만 어디 그런가? 특히 종갓집에서는 더 심하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한다면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못 견딜 일이 된다. 얼마나 부담이 많이 되면 제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곤 할까?<br>하지만 제사가 지니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또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이 제사라고 한다면 형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br>살아 생전 본인이 좋아하던 음식 중심으로, 또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시간도 조정하고 한다면 제사를 고인에 대한 애도 표현으로, 즉 고인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br>누군가의 부담이 아니라 고인과 관계 맺었던 사람들이 고인과 자신들의 마음을 잇는 시간으로 제사를 활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제사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nbsp;<br>이 작품은 그러한 제사를 대행하는 사람이 나온다. 집안일을 대행하듯이, 제사 역시 집안일 중 하나니까 대행을 할 수 있다. 주관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니까.<br>그런 설정, 지금 제사 대행업이 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음식은 해주는 업체가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직접 절까지는 아닐 테지만, 소설에서는 절까지도 하는 대행업을 하고 있다. 하긴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면야 뭐.<br>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겠지만, 제사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고, 이런 추세 속에서 가족들이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제사 대행업체를 통해 제사를 지내는 일도 생길 수 있겠다.<br>아이들 돌잔치, 부모님들 회갑잔치(요즘은 거의 하지 않지만 더 연세가 드시면 잔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팔순 또는 구순 잔치 등)와 각종 상조회를 보라. 많은 집안일이 대행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그러니 제사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br>마음을 다해 제사를 치러주는 인물을 통해서 결국 제사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br>앞부분이 '둘이 먹다 하나가'라는 박서련이 쓴 소설이고, 뒷부분이 '죽어도 모르는'이라는 정영롱이 그린 만화다. 소설은 제사 대행업을 하는 수현의 관점에서, 만화는 죽은 정서(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영란)의 관점에서 전개가 된다. (소설에 나오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br>같은 사건을 다른 두 화자가 서술하고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도 소설로 읽어도 좋고, 만화도 만화로만 봐도 좋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더욱 좋고. 물론 책의 순서대로 소설부터 읽어야 한다. 수현이 정서의 집으로 가고,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까지가 소설이니까. 그 다음 부분이 만화에서 더 이어지니.<br>두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과 만화가 잘 연결이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여는 장면을 만나면서 감동을 받게 된다. 제사 역시 그렇다. 제도와 형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 즉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점을 소설과 만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br>하여 작품은 제사의 문제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일, 그것은 또 산 사람들의 마음과도 잇는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식으로서의 제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대행업체에 맡기든 본인들이 직접 하든지 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제사가 되도록, 산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제사가 아니라 산 사람들의 마음도 풀어주는, 그래서 죽은 사람의 마음이 당연히 풀리는 그러한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br>이 책에서 더 좋은 것은 소설가와 만화가, 그리고 편집자가 이 작품을 위해서 주고받은 내용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창작일지'라는 이름으로. 그것 역시 좋았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br>짧지만 긴 울림을 주는 소설과 만화다. 좋았다. 이런 작품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br>이 작품집 중 소설에 나오는 한 부분을 인용한다. 진정한 제사란 바로 이런 것. 화려하고 형식, 규격에 맞는 제사가 아니라. 하, 이런 제사. 누가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br>&nbsp;'제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사상 앞에 이부자리를 편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는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에 상을 차리고 제사상을 받으실 시어미니 묘까지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온 후에는 상 앞에 자리를 갈고 잠깐 누웠다 다시 어머니 묘에 간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도 전에 제사가 끝난다. 어느 해에 제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유식한 학자가 그 집 앞을 우연히 지나다 부부를 보고 무슨 짓이냐고 묻는다. 남편은 대답한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신 소원이, 내가 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이루는 것이었으니 아내와 사이좋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마땅하고,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밤길을 다니지 못하시니 모시러 갔다 다시 모셔다드리는 게 이치지요. 학자는 그들의 제사야말로 가장 훌륭한 제사임을 인정하고 만다.&nbsp;&nbsp; 제사란 그런 것이다. 결국은 마음이 으뜸이고 형식은 거들 뿐.'(44-45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09/2/cover150/89546910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090265</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나‘는 ‘사랑과 결함‘을 모두 안고 있는 존재 - [사랑과 결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47465</link><pubDate>Mon, 15 Dec 2025 09: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474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932005&TPaperId=169474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96/coveroff/k9729320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932005&TPaperId=169474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과 결함</a><br/>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07월<br/></td></tr></table><br/>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한다. 그 사람에 대해 맹목적이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눈이 먼다는 말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말과 통하는데, 이때의 판단은 남에게도 해당되지만 자신에게도 해당된다.<br>그래서 이러한 맹목적인 사랑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또 표현도 하지 않은 채 상대에게 나를 알아달라고만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신을 몰라주면 서운함을 느끼고, 그 서운함이 지나치면 상대에 대한 미움, 증오로까지 가게 된다.<br>증오는 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증오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미움으로 증오로 변할 수는 있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움과 증오가 가장 쉽게 발현되는 관계는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일 수밖에 없고, 그 점을 이 소설집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br>소설집에 실린 '그 개와 혁명'은 이러한 미움을 잘 극복한 상태의 가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상대가 지닌 결함을 감쌀 수 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즉 결함보다는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따라서 이 소설은 유쾌하고 발랄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죽음이라는 장면에서도 그러한 점을 느끼게 해주는데, 이는 결함을 모르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함조차도 사랑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br>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 '우리 철봉 하자'와 '내가 머물던 자리'다. 결함이 도드라지는데, 그렇다고 결함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 결함을 딛고 나온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 따라서 결함이 미움과 증오로 가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서로의 결함들이 보이고 연결이 되면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된다.<br>함께 철봉을 하는 장면이나 트럭을 함께 타고 나가는 장면은 그래서 희망을, 밝음을 전해준다. 결함보다는 사랑을... 미움과 증오가 사랑으로 감싸이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br>'팜'이라는 소설은 '그 개와 혁명'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한때 운동권이었던 아버지와 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딸. 여전히 딸이 아버지를 받아들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서로의 결함을 감싸는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br>'분재'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소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적절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렇다고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 상대를 사랑하기에 배려한다고 하는 행위들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할머니(차연)-엄마(수진)-딸(윤재)의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br>그냥 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관계는 없다고, 아무리 가족이라도 표현을 해야 한다고, 자신의 결함도 드러내고 또 사랑도 드러내야 한다고, 그래야 결함을 사랑이 감쌀 수 있다고.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니까 더 많이 표현해야 한다는 점을, 차연이 식물들에게 쏟는 관심, 말들을 딸인 수진에게 했더라면, 마찬가지로 수진 역시 딸인 윤재에게 했더라면, 이들의 관계는 더 돈독한 관계이지 않았을까.<br>물론 소설에서 이들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거리'가 느껴진다. 물리적 거리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가 많이 느껴진다. 무엇이 그런 심리적 거리를 느끼게 할까 했더니 바로 이런 표현들이다.&nbsp;<br>'차연은 주말마다 오는 윤재에게 부러 오지 말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손주가 오면 일단 좋은 음식을 먹여야 했다., 그것뿐일까. 몸단장도 해야 했다.' ('분재' 중에서. 255쪽)<br>가꾼다? 손녀 앞에서. 이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 교육과는 상관없다. 왜냐하면 이미 손녀도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성인인 손녀 앞에서도 단장을 하고 요리도 자신이 해야한다고 여기는 것, 이것이 '거리'다. 결코 편하게 마음을 놓아버리는 만남이 될 수 없는 관계.<br>이렇게 비틀어진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 이 소설집의 제목이 된 '사랑과 결함'이다. 어른들의 사랑과 결함이 오롯이 자신에게 전해졌다고 믿는 인물.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우세하게 전해졌을까? 자신의 현재를 만든 것이 사랑일까 결함일까? 그것은 모른다.<br>다면 이 소설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여기는 고모(순정)가 동생의 아내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이 다른 쪽으로 바뀌었을 때다. 그만큼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텐데... 그러한 순정의 모습은 바로 벽(턱)에 부딪히는 로봇청소기로 나타난다.&nbsp;<br>나는 쓸모가 있는데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느냐고, 자신의 온몸을 벽에 부딪히는 청소기. 그것은 사랑을 주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고모 순정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것은 다른 가족을 바라보는 순정의 관점이 왜곡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왜곡되어 있다고 하기보다는 오래되어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바꾸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br>상황이 바뀜에 따라 자신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 그것이 바로 벽에 부딪히는 로봇청소기와 같은 모습으로 고모(순정)이 행동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니 가족 간에도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행동, 다른 말을 해야 한다. 과거에 했던 것처럼만 하면 안 된다. 그건 결함이다. 변화, 그것이 사랑이다.<br>무엇보다 이 소설집에서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시절(초등학교), 우리는 계절마다(중학교), 그 얼굴을 마주하고(고등학교)'는 한 여자아이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가장 가까운가? 우선 가족, 그리고 친구다. 그런데 이들과 관계맺기에 실패하면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br>가족끼리도 결함을 감싸주기가 쉽지 않은데, 친구 사이에서 한번 드러난 결함은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한때로 그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음을, 자신의 결함을 보지 못하고 상대의 결함만을 보았을 때는 더더욱 힘들어짐을 잘 보여주고 있다.<br>3부작 중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얼굴을 마주하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힘들게 살아온 일들이 남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br>'여태껏 나는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이런 식이었구나. 이게 나였구나.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중에서. 133쪽)<br>그렇다. 상대의 결함은 잘도 보았으면서 자신의 결함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 결함을 알았을 때, 그 다음의 삶은 달라진다. 내 결함을 알면 상대의 결함을 감쌀 수 있는 마음의 빈공간이 생기기 때문인데, 그래서 어두우면서도 어떤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br>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객관적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상대의 결함을 결함으로만 여기지 않고 감쌀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전체집합 속에 결함이라는 부분집합이 있다는 것. 결함을 아예 모른 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사랑의 한 부분집합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 아닐까.&nbsp;<br>이 소설집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96/cover150/k9729320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69601</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종말이 다가와도 사랑이... - [종말까지 다섯 걸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34097</link><pubDate>Tue, 09 Dec 2025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34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030339&TPaperId=16934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62/1/coveroff/k0920303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030339&TPaperId=16934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종말까지 다섯 걸음</a><br/>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8월<br/></td></tr></table><br/>아주 짧은 소설들. 이 길이를 지구의 종말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그만큼 지구의 종말까지 남은 기간도 짧지 않을까?<br>우주가 탄생한 지가 약 138억 년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지구는 한참 뒤에 태어났고, 그 지구에 인간이 나온 것은 더 얼마 되지 않는 시간.<br>우주의 나이로 보면 갓 태어난 아이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우주에 늦게 온 자가 우주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는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하고 있는 일 아닐까.<br>그런데도 종말을 부정한다. 지구에서 살아갈 날이 무한하다고 여기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점점 지구는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래서 우주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개척하자고 하는데...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자고 하고도 있는데...<br>[종말까지 다섯 걸음]이란 소설 제목을 봤을 때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떠올렸다.<br>'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nbsp;<br>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과정을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인류의 종말 앞에서도 과연 이 과정을 밟을까.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하는데... 소설집은 이 과정을 약간 다르게 표현했다.<br>'부정-절망-타협-수용-사랑'<br>이러한 다섯 단계를 통해 다른 내용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이 주제들의 맨 앞에 실린 소설은 연결이 된다. 연작소설로 봐도 된다. 그렇지만 나머지 소설들은 딱히 연결이 된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종말이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br>그냥 각 주제의 처음에 실린 소설 제목을 보면 '종말을 부정하고 - 종말에 절망하고 - 종말과 타협하고 - 종말을 수용하고 - 마침내, 종말을 사랑하고'로 되어 있다. 이 소설들에서 각 장의 주제가 만들어졌다고 보면 되는데...<br>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예정이란다. 그때 지구는 파괴될 것이고, 모두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 소행성을 폭파한다는 영화 '아마겟돈'과 같은 일은 불가능하니, 인류가 지구에서 벗어나는 길밖에는 생존의 방법이 없다.<br>우주선을 만든다. 방주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를 보라. 모든 생명체가 탈 수 있는가? 아니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탈 수 있다.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면 우주선에 탈 수 있는 존재와 타지 못하는 존재를 어떻게 가를까?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br>배제된 사람들은 이판사판이 된다. 어차피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나만 죽을 순 없다가 된다. 그럼 선택받은 사람들은? 우린 살 수 있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가 된다. 저들과 다른 우리가 생겨난다.<br>이때 죽기살기로 덤비는 사람들이 우주선을 파괴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인간은 또다른 우주선을 만들어낸다. 물론 탑승 정원은 대폭 줄어든다. 이 줄어든 인원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nbsp;<br>이미 첫 선발 때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우주선 기지로 왔다. 그 다음에는 제비뽑기다. 추첨으로 결정하면 된다. 그 전에 자발적으로 남을 사람을 모집한다. 그리고 추첨. 과연 추첨은 공정한가?<br>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추첨 역시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도 권력과 이익이 개입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우주로 나아가는 사람들. 남은 사람들. 이제 남은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br>마지막 소설에서 남아 있는 사람의 '사랑과 행복'이 펼쳐진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욕망하지 않을 때 그 자체로 사랑을 찾고 행복할 수 있음을...<br>종말까지 남은 시간의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하루하루가 충만했고 행복했으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nbsp;<br>'아직도 우리에게 삼 일이나 있다는 거야.'(208쪽)라는 말에서 이들은 종말까지 충만한 나날들을, 사랑으로 넘치는 나날들을 보낼 테니, 그 나날들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br>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아니다. 어차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그 끝을 거부할 수는 없다. 끝을 거부할 수 없다면 현재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현재에 살아야 한다.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사랑해야 한다.&nbsp;<br>그러한 사랑으로 현재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 종말까지 다섯 걸음이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 다섯 걸음이나 남았으니까. 그동안 사랑할 일이 너무도 많으니까.&nbsp;<br>하여 이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지구의 종말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류세라는 시대 개념을 만들자고 할 정도로 인간이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는데, 지구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데, 이때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할까? 마지막 소설에서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br>이렇게 연결되는 다섯 소설말고도 마음을 울리는 소설들이 있으니, 찬찬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62/1/cover150/k0920303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620190</link></image></item><item><author>kinye91</author><category>문학이야기</category><title>우주의 똥구멍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 [챔피언들의 아침식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18685</link><pubDate>Tue, 02 Dec 2025 12: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74420113/169186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993&TPaperId=16918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31/37/coveroff/k7620309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0993&TPaperId=169186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챔피언들의 아침식사</a><br/>커트 보니것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챔피언들의 아침식사라는 제목을 생각한다.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예상한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소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br>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어쩌고 저쩌고'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기타 등등이라고 하는 etc.가 소설에 나오기도 하니, 왜 이렇게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까?<br>수많은 이야기를 이렇게 섞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읽다보면 이야기가 연결이 되기도 한다. 작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목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br>먹고 자고 싸기. 인간이라면 누구도 해야만 하는 일. 먹는 일을 제목이 대변한다면, 그렇다면 나머지는? 자는 일은 이 소설에서 찾기 힘든데 싸는 일은 찾기 쉽다. 왜냐하면 '어쩌고 저쩌고'만큼 특색있게 다가오는 말이 '우주의 똥구멍'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br>등장인물의 말을 빌려보면 '이곳은 우주의 똥구멍이야(224쪽), 이곳은 우주의 똥구멍이 분명해요,'(265쪽)라고 한다. 똥구멍은 싸는 곳.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목이라면 소설 속에 나오는 똥구멍은 싸는 곳이다. 무얼 싸지?<br>당연히 소화가 되지 않은 것을 싼다. 소화가 되지 않은 것? 과다 생산된 것. 필요 없음에도 필요하다고 광고해서 남들로 하여금 사게 하는 것. 그리고 곧 쓰지 않게 되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 버려진 다음 자연스레 분해가 되지 못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에 더 해를 끼치는 것.<br>소설에서는 그러한 예가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인 드웨인과 관련된 일들이 그렇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싸버리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nbsp;<br>그렇다면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끝모를 성장을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우주의 똥구멍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성장, 성장하는 미국 또는 지구의 나라들로 인해 더욱 살기 힘들어지는 지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br>자기들이 편하자고 썼다가 버린 것들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트라우트는 슈거크리크의 범람을 막는 콘크리트 홈통에 자신의 예술적인 발을 담갔다. 그러자마자 수면에 떠 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물질이 발을 코팅했다. ... 한쪽 발을 물에서 꺼내자 플라스틱 물질은 공중에서 즉시 마르며 진줏빛의 얇고 타이트한 단화로 변해 그의 발을 감쌌다.'(302쪽)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br>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피해는 잘 알려져 있으니, 보니것은 그런 미래를 선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때의 성장, 발전이 지닌 위험을 내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위험이 어디 플라스틱 뿐이겠는가. 그는 미국 사회가 지닌 많은 모습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노예제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인간이 그러한 노예 또는 기계와 별반 다름이 없음을 비판하고 있다.<br>그러니 이러한 미국 사회는 '우주의 똥구멍'일 뿐이다. 그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자신들이 먹는 것이 소화가 되지 않고 똥으로 변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br>성장과 발전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구에서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현실이니,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똥구멍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nbsp;<br>이런 똥구멍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곳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보니것은 비관적이었다가 생각을 바꾼다. 이 장면이 소설 속에 있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nbsp;<br>예술 역시 자본의 먹이로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자본에 먹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을 잃지 않는, 기계로서 존재하지 않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음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는데...<br>너무도 짧은 이야기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작가가 직접 등장해서 자신의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장면까지 사실주의 소설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 전개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낯설기도 한데... 그럼에도 비사실적인 표현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표현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가 계속 겪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br>다시 제목을 생각한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자본과 성장이 결국 먹는 것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작가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모하게 먹어치운 것들이 결국은 배출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제목인 아침식사와 소설 속에 나오는 똥구멍이라는 말이 연결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br>작가는&nbsp;'챔피언들의 아침식사'라는 표현은 제너럴 밀스사에서 만든 아침식사용 시리얼 상품의 등록 상표다.(17쪽)라고 해서 다른 오해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자본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br>'아침식사용 시리얼'이라고 하지 않나? 기본적인 먹는 것조차도 거대 기업이 잠식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 먹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그렇게 우리 삶으로 들어와 우리를 삶으로부터 더욱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을 보니것은 비판하고 있다.<br>계속 보니것 작품을 읽고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다음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작품 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겹치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지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31/37/cover150/k7620309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31379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