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서로 위로하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선생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리라. 어떤 사람은 그만큼 선생들은 쪼잔해서, 먹을 똥도 없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하고, 선생들은 꽉 막혀서 배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냄새가 심해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뜻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선생 노릇 쉽지 않다는 것. 쪼잔하다는 얘기는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그만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고, 꽉 막혔다는 얘기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하면 그래서 선생들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쪼잔하든 구체적이고 자세하든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가 있고, 꽉 막혔든, 원칙에 충실하든 역시 상대에게는 구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에 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고, 교사들에 대하여 방학을 없애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교사들이 성추행을 했다는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있으니... 교사들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누가 교사를 인정하나? 우선 교사들을 지원해야 할, 이름도 참 교육지원청이라고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장학사(관)들이 있는 교육청은 여전히 교사 위에 군림하고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만 있고, 교육청 위에 있는 교육부가 과연 교사들을 믿고 있는지, 그들이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 현장 교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교육과 관련있는 이런 조직이 이미 교사를 무슨 종 취급하거나 죄인 취급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자존감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을 더 끌어내리는 집단이 있으니 바로 학부모(부모가 아니라 학부모다.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라는 광고가 있을 정도니, 우리나라에서 학부모란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강하다)들이다. 가장 교사들을 믿지 못하는 집단, 자기 자식들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게 교사들을 불신하는 집단이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학교를 시장으로 판단한다. 상품이 학교에 들어왔다. 자식들이 상품이라면 교사는 판매자다. 소비자자 원하는 상품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러니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사들은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성, 전인? 아니다. 오로지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일 뿐이다. 이것을 교사들이 만족시키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상품으로 교육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교사를 대하면, 그리고 교사를 존중하면 교육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없고 상품만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다. 학부모는 학교를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한 집단을 더하자. 교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들, 교사의 존재이유기도 하지만 교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교사들이지만 학생들에게 유독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모습이 바로 수업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수업을 해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있다가 아니라 많다.

 

최근에 교사들에게 온갖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 그리고 수업방법론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수업 붕괴라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방법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닌가.

 

이 책을 쓴 김태현 교사도 그런 방법론을 전파한 사람 중에 하나다. 교사들에게 수업 붕괴를 막을 방패를, 수업 혁신을 이끌 창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나름 열심히 활동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교사를 위로하는 글을 썼다. 수업 혁신, 아니 교육이 사는 길은 방법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수업을 살리는 길은 기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고, 온갖 교수법에 있지 않고 바로 교사의 삶에 있다고 하고 있다.

 

우선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고. 교사들은 누구나 어려운 길에 있다고. 밤하늘에 별이 있는데 별을 볼 수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듯이,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고 싶은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다고...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는 일은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우선 교사들 자신이 별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별을 가슴에 심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 내가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교사는 학생을 보기만 하고 자신을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교사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어떻게? 바로 이 책에서 그림과 시, 글을 통해서 교사들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딱히 어떤 방법론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지금 교사들에게는 방법론으로 대변되는 기술이 중요하지 않고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신들 삶을 보고 힘듦을 인정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교육활동을 하는 것. 그렇다. 이 책은 교사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사방에서 교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은 교사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냥 따스하게 교사를 감싸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리 교사들은 모두 힘들다고. 서로 손을 잡아주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교사들이 처한 상황, 고민을 알 수 있게 된다. 남 앞에 선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교사들은 남 앞에 서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앞에 서지 않는다. 교사들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바로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을 쓴 교사처럼 그림과 시 하나를 더하고 싶어졌다. 바로 이것이 학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시는 서정춘의 '죽편1'

 

 

학생은 이 그림에서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 처럼 전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 이들이 바로 학교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정중앙을 차지하며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교사는 화가다. 벨라스케스 자신을 그림에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뒷편에 그것도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벨라스케스가 그림을 남겼듯이.

 

왕으로 대변되는 학부모, 교육청, 교육부 관료들은 멀찌감치 있어야 한다. 그림 속에서 거울 속에 있듯이... 이들은 나서서는 안 된다. 그냥 지켜봐주고,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가 제대로 운영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명작으로 남듯이.

 

서정춘의 시를 보자. 그럼에도 교육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학교에 다닐 때 완성되지 않는다. 서정춘 시는 짧다. 그런데 시 속에는 긴, 긴 시간이 담겨 있다.

 

  죽편1

     - 여행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 동학사. 2002년 2판 1쇄. 18쪽.

 

교육은 그만큼 멀다. 수업 하나하나는 밤이 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가슴에 별을 심고 꽃을 피울 때까지 멀고 먼 시간, 긴 시간이 걸린다.

 

그 머언, 긴 시간을 보고 수업을 하는 교사, 그들이 삶을 보고, 삶을 사는 교사들이겠다. 이런 교사들에게 왜 지금 애들이 꽃을 피우지 않냐고 하는 사람, 이들은 교육을 모르는 사람이다.

 

교사에 대한 비난이 지금만큼 많을 때가 있었나 싶다. 하지만 이렇게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들어 하는 교사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 이런 책, 이런 책을 쓴 교사가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이 여전히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지도 모른다.

 

지치고 힘들고 우울함에 좌절에 빠진 교사들, 이 책은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ㅡ 우리 함께 하자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04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4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력 없는 교실은 어디 있나요? -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학교 폭력의 진실, 그리고 치유의 다독임
김국태 외 지음 / 팜파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직 교사들이 자신들이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폭력에 대하여 쓴 책.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책이 구성되어 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방관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자신들의 교육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학교 폭력이 통계상으로는 줄어들고 있다지만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빈도수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는데...
 
학교 폭력 가해자라고 해서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피해자도 어떤 특성을 꼭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것.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들에게 학교 폭력의 실상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인데... 문제는 과연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인가 뭔가에서 징계로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 또는 써오기 등을 징계의 한 분야로 결정하면 읽을까, 도대체 이런 책을 대상자들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 징계로 이런 책을 읽으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뀔까? 오히려 콧방귀를 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방관자는 혹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런 학교 폭력에 관한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다고 해도 자신이 목표로 했던 독자가 독자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체로 부모와 교사가 읽으면 읽었지. 그런데 이 책은 교사나 부모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3부로 나뉘어 있지만 각 부에 있는 첫번째 글은 하나로 연결이 된다.
 
가해자인 학생 편에서 서술한 글, 피해자 학생 편에서 서술한 글, 그리고 방관자 편에서 서술한 글. 이 글들이 각 부로 나뉘어 있는데, 차라리 이 글을 서문 격으로 하나로 묶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의 형식으로 계속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그냥 아이들 관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인물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제외하고는 다른 글들은 어른이 청소년에게 훈계하는 듯한, 가르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들이다.
 
그런 글들 우선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도덕적인 너무도 도덕적인(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흉내낸다면) 글들을 청소년들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많이 일어나는 학교 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라면 이 책이 그 목표를 달성했을지도 모르지만, 학교 폭력을 방지하거나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루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비록 어른들이 읽어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제 학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학교가 직장으로 연장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어른이 된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학교 폭력을 대상으로 책이 쓰였지만 학교 폭력은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직장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될 수 있는 가해자란 말을 누구도 되어선 안 될 가해자로 바꿀 수 있게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책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 그들의 14가지 특성에 대한 탐구
토드 휘태커 지음, 송형호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도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교사라면, 교사들이 훌륭해야 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온갖 교육정책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이 교육정책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교사다. 훌륭한 교사는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다른 교사들이 배운다면 교육이 실패할 일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자질, 어떤 행동을 하는 교사들이 훌륭한 교사일까? 이 책의 저자는 교사, 교장, 교수로서 자신이 경험한 바에 의해 훌륭한 교사의 특성을 14가지로 정리했다.

 

책의 뒷표지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의 해법을 사람에게서 찾는다.

희망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 발생시 예방에 집중한다.

학생에게 높은 기대치를, 자신에겐 더 높은 기대치를 갖는다.

교실 안의 최대 변수는 교사임을 알고 있다.

모두를 존경으로 대한다.

긍정적인 태도를 공유하려 애쓴다.

관계개선에 힘쓰며 먼저 사과할 줄 안다.

사소한 소란은 무시할 줄 안다.

매사에 계획과 목적을 갖고 행동한다.

우수한 학생을 항상 염두에 둔다.

노력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결정은 피한다.

학력평가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변화를 이루는 감정의 힘을 안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꽤 중요한 것들이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좋은 교사도 있었지만,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교사가 되었을까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런 교사들을 통해서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질이 부족한 교사들이 많다. 여전히 발생하는 성추행, 폭력, 비리 등을 저지르는 교사들이 학교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교사들만 보고 학교 현장을 비판하면 교육은 더욱 나빠질 뿐이다. 드러나지 않아도, 또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좋은 교사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아야 할까? 좋은 교사들을 보아야 한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서 다른 교사들도 변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누가 할까?

 

단위 학교에서는 학교장이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능력있는 교장,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교장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나온 훌륭한 교사의 예를 교장에 적용하면 훌륭한 교장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는지, 교사를 대하는지, 학생을 대하는지, 학부모를 대하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 그런 점을 전파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와 행동이 자리잡게 해야 한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교장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저자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경험들이 좋은 사례가 된다.

 

이와 함께 좋은 교사들의 특성을 알려야 한다. 그들이 힘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좋아진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인지, 이 책이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꼭 이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14개의 특성은 기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이 이런 책을 읽고 자신의 행동, 자세를 돌이켜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하니, 또 교육의 책임은 교사에게 있으니...

 

학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들의 단점을 보지 말고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학부모의 긍정적인 태도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사 역시 학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겠지만.

 

결국 이 책에 있는 14개의 특성을 지닌 교사들, 모두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개를 지니고 있는 교사들은 학교에 충분히 있다. 이렇게 충분히 있는 교사들을 우리가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될 때 교육은 좋은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교사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김현희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박일환의 청소년 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에 나오는 세 편의 시가 생각났다.

 

'찔리십니까? 찔리시냐고요? 찔리실 겁니다'

 

그런데 만약 교사들이 찔렸다면 이런 책이 나왔을까? 아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이 찔리냐고 교사들에게 외쳐도 교사들은 찔리지 않았나 보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사로 10년을 근무한 교사가 학교의 현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도대체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들이 많은지를.

 

교사 개개인을 놓고 보면 이상한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상한 교사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머리를 보면 신경질을 내던 어떤 교사를 예로 들었는데, 그렇게 이상한 교사들이 학교에 한두 명 있다고 해서 이상한 선생들이 많을까 라는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은 이유를 이 책은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도나 구조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 뉴스에서 교권추락에 대해서 많은 기사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는 여전히 교사가 권력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교사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런 구조다.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교사들은 전권을 휘두른다. 많이 완화되었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학교 현실에서는 여전히 교사의 강압이 통한다. 학생들이 이 강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동조해주는 교사를 만나긴 힘들다. 그만큼 교직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이런 평범한 교사들, 보통 교사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줄도 모르고 그 권력을 행사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권력에 취해 있으니, 자신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는 것들이 학생의 처지에서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21세기, 개성 운운하면서, 민주시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학교에서는 여전히 두발, 화장, 염색을 잡는다. 똑같은 옷을 입혀 놓는다. 똑같이 행동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학생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학생이다. 통제되어야 할. 여기에 교육은 작동하지 않는다. 토론? 그런 거 없다. 교칙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한단다.

 

그 교칙의 정당성, 시대적 유용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교사들이 대다수다. 불합리한 교칙이라도 준수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또 그대로 행동하는. 이들 교사들에겐 '시민불복종'이란 없다.

 

'시민불복종'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말이고, 실제 학교에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될 말이다. 학생들이 이런 불복종 운동을 하면 학교엔 비상이 걸린다. 비상사태는 진압되어야 한다. 재빨리 진압하려고만 한다. 학생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을 징계하기에 급급하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 판단력이 없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 파괴가 요즘 대세인데... 학생들을 정해진 시간까지 꼭 등교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단지각이라고 해서 벌점을 주거나 다른 징계를 한다.

 

근무 유연성, 이런 거 학교에는 없다. 출결을 점수로 매기는 조직이 바로 학교다. 세상에? 성실히 학교에 나오면 좋기는 하겠지만, 나오지 않는 것이 무슨 죄라고 점수를 깎는단 말인가. 마치 학교에만 앉아 있으면 허수아비라도 모범생이 된다는 듯이... 그렇게 출결로 학생들을 움켜쥐고 있는데도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데, 출석을 강조하는 초기 산업혁명 시기의 행동들을 버젓이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교사들이다.

 

이런 보통교사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교사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사회와의 거리 역시 멀어진다.

 

학교만큼 변화에 둔감한 곳이 있을까. 교사만큼 변화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직업이 있을까. 그냥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내는 교사들이 많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들은 문제교사다.

 

학교를 시끄럽게 하는 교사, 교사를 불편하게 하는 교사, 그들은 다른 교사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이상하게도 학교를 일찍 그만둔다.

 

정년까지 남는 교사들,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교사들, 장학사, 장학관이 되는 교사들, 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교사가 아니다. 학교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교사가 아니다.

 

그냥 주어진 체제에 안주하고, 잘 적응하는 교사들이다. 동료관계가 좋은 교사, 특히 윗사람들과 관계가 돈독한 교사들이 그런 교사들이다. 그런 교사들만 살아남게 된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에.

 

그러니 자연스레 이상한 교사들만 득시글하게 된다.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선생'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선생(先生)'이라 함은 먼저 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나다는 말, 시간적으로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깨닫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말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말로 행동으로 지식으로 하여튼 무엇으로 나에게 감명을 주는 사람,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선생'이다.

 

이런 사람이 학교에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선생'이 아니다. 그냥 교사일 뿐이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그런데 교사들이 자신들을 선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우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선생이 아닌데 선생으로, 아니 선생님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망. 이상한 교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권위와 존경을 강요하고 있으니...

 

절절하다. 이 책. 교사들, 읽으면 찔릴 것이다. 아니 찔려야 한다. 그런데, 안 찔릴 수 있다. 나이 든 교사 - 모두가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더 젊은 교사들도 많다. 진짜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대다수는 이렇다는 얘기다 - 는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 젊은 교사는 읽을 시간이 없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고민해봐야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보통교사로 살아가려 한다. 이렇게 보통 교사들이 학교에 득시글하게 된다. 찔릴 수가 없다. 이런 보통교사들이 바로 이상한 선생인지도 모르면서.

 

교육부 장관, 교육감, 교장, 교감부터 또 나이 든 교사들부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찔려야 한다. 정말로 교사들이 찔리지 않으면 학교 변하지 않는다.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교육청, 쓸데없는 연수 하지 말고 이런 책 학교에 보급해서 교사들에게 읽으라고 권장이나 했으면 좋겠다.    

 

찔리는 교사가 많이 나오게... 그래야 학교가 바뀔 수 있으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04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아온탕아 2017-07-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단에 있습니다. 흥미롭군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리뷰만 봐도 벌써 찔리기 시작하는데 큰일입니다 ㅎㅎ

kinye91 2017-07-05 09:52   좋아요 0 | URL
교사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요. 교사들이 함께 읽고 서로 토론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한 선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문제를 알고 있다면 해결책을 찾으려 할테니까요.
 
배우는 법을 배우기
시어도어 다이먼 지음, 원성완 옮김 / 민들레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공부한다고 한다. 학교에만 있는 시간도 어마어마한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 또다시 수업을 받는다. 여기에서 끝나면 좋겠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숙제라든가, 복습 또는 예습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공부를 한다.

 

정말로 엄청나다. 하긴 4당5락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도 옛말이다. 예전에 이 4당5락이라는 말은 고3에나 적용되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중학생들에게도 이런 말이 적용이 되니, 학생들은 너무도 긴 시간을 공부에 투여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랜 시간 공부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적은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지는 못한다.

 

결과 중심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문제를, 원리를 이해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몇 점을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깨우침 없이 그냥 외우기만 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평균이 90점이 넘는 학생들도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를 조금만 바꾸어도 이해를 하지 못해 틀리는 경우도 많고, 긴 시간을 공부한다지만 그것은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뿐이고, 머리 속으로는 다른 행위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한 마디로 시간 때우기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부를 배움으로, 권리로 여기지 않고 노동으로, 의무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할 뿐이다. 여기에 성찰은 없다. 오로지 더 집어넣어야 할 뿐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에 할애한다.

 

그냥 밀어넣는다. 오답노트? 왜 틀렸는지 고민하고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틀린 문제 적어놓는다. 다음에 또 틀린다. 또 적는다. 또 푼다. 또 틀린다. 또 푼다. 이번엔 맞는다. 왜? 원리를 이해해서? 아니, 그냥 문제 풀이까지 외워서이다.

 

그러니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맞힐 수가 없다. 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교육, 학생들의 현주소다. 배움이 없는 오로지 결과만 있는 공부의 결과.

 

이 책은 그 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성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라는 제목으로 노래 부르기, 운전하기, 테니스 치기, 피아노 연주하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신체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잘하려고도 해도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더 좋아지는 것이 불가능한 활동들이다.

 

무엇보다 맹목적으로 연습하는 것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동작을 덜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결과를 의식하는 순간 몸이 경직되고, 이는 나쁜 습관으로 굳어져 더이상의 발전이 없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결과에 치중하기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과정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잘게 쪼개야 한다. 즉, 광범위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달성가능한 목표, 그것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목표들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잘 이해하고, 그 신체에 맞는 작은 과정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굳었던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자신의 몸이 변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커다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추려 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고 하는데...

 

지금의 성적중심주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배움에 도달할 수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찾기보다는 몇 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몇몇을 빼고는 목표에 도달할 수도 없다. 참 지당한 말인데...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우선 자신을 경쟁의 대열에서 빼내어야 하는데, 주변에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그렇게 할 시간도 별로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라.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그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 간신히 외워서 학점을 따는 대학생들도 많은데, 이들도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되돌아보며 선택하고 노력하기가 힘든데...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공부를 하는 중고생들은 자신의 성찰하면서 배움에 대해 고민하기는 더 힘들다. 이들에게는 두 달에 한 번 다가오는 시험, 그리고 점수, 입시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지내왔다. 그렇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니 배움이 아니라 성적을 받기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저자도 안타까워 하는 듯하다. 비록 성적이 아니라 신체활동과 관련된 배움을 이야기했지만, 수학이나 과학, 국어, 영어 과목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배움에 실패하는 경우는 학생들 책임도 있지만 가르치는 교사들 책임이 더 크다는 말. 교사들 역시 점수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잘 배우지 못한 결과를 분석하고, 학생들이 배움에 다가설 수 있게 구체적인 과정을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옳은 비판이다. 이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교육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몇몇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육활동으로 실패한 많은 학생들에게 주목해야 한다는 말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결국 배움은 학생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교사들도,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교사, 그런 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런 교사들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럼에도 노력하는 교사들이 있음을,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학생들의 욕구뿐만이 아니라 교사들의 욕구도 반영된 것이라 생각하니,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는다.

 

이제 다시 배움에 대해서, 정말로 배우는 법에 대해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