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탈무드 - 하브루타 아빠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 하브루타 교육 시리즈
양동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하브루타'

 

요즘 많이 들리는 말이다. 예전에 교육방송에서 유대인 도서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도서관 하면 무조건 정숙, 정숙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대인 도서관은 떠들썩했다. 그런데 그 떠들썩이 남을 방해하는 시끄러움이 아니라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소리들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구난방이 아니라 주제를 향해 가는 소리들의 모음, 그러한 떠들썩함이 온 도서관을 채우고 있었고, 그러한 채움이 유대인의 지혜로 나타나는가 보다 했었다.

 

그러한 교육방식을 '하브루타' 또는 '헤브루타'라고 한다는데, 책을 읽어도 혼자 읽고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지 않고 꼭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교육방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은 유대인들은 토론에 능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게 된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무드'

 

이러한 하브루타 교육의 집대성이 바로 탈무드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탈무드지만 우리에게는 동화나 우화 수준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냥 이솝 우화 읽듯이 읽고는 재미있네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아주 가끔은 교과서에 실려 아이들에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더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사실 우화나 동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면들이 발견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읽느냐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 같은 동화라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삶에 방향을 다양하게 제시해주기도 한다.

 

탈무드 또한 마찬가지다.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성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고, 삶의 지침서 역할, 지혜를 얻어가는 도구로써의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자녀 교육'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하브루타'란 말이 많이 알려져 있어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 토론을 도입하는 가정이 많다.

 

자녀와 대화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자녀교육에 좋을까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는 것이 자녀의 지능발달에도 또 정서발달에도 좋다고 하니,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또 읽어주더라도 읽어주고는 거기에서 멈춘다. 더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면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책을 읽어주었으면 그 책에 대해서 자녀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교육을 탈무드를 통해서 하브루타 교육을 한 결과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탈무드 한 편 또는 두 편 정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에서 주제를 끌어내어 함께 이야기하는 것, 아무리 엉뚱한 대답이라도 인정해주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하브루타 교육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브루타 교육의 장점으로 자녀들의 지혜를 일깨우는 것도 있지만, 함께 이야기를 함으로써 가족간의 유대도 돈독해지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교육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아이에게 탈무드 이야기를 해주고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또 질문을 하는 과정, 결국 자녀를 동등한 이야기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브루타 교육 방법이다.

 

대화는 대등한 관계에서나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좀 낯설다. 아빠와 아이들이 이렇게 조곤조곤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이들은 독실한 신앙심으로 함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쑥쓰럽다는  이유로 이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가정환경이었다면 좀더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우리 아이들이 습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중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하는 공부기계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과연 다양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우선 아이들에게 진도 나갈 시간을 빼앗는다고 엉뚱한 아이라는 비난을 받을테고, 교사에게도 역시 시간을 뺏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많다.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보는 질문, 또는 그런 교육을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이건 가능의 문제가 아니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문제인데, 아직도 그런 교육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와 아빠가 조곤조곤 대화하는 이런 '토론 탈무드' 책이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우리나라 학교는

 

하급반 교과서다.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아이들이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교육출판기획실 편, 내 무거운 책가방, 실천문학사. 1988년 3판. 147-148쪽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다. 도대체 질문이 없다. 아니, 우리 사회도 역시 질문이 없다. 하급반 교과서는 학교의 저학년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나 전반에서 쓰이고 있다.

 

비판을 비난으로 다름을 차별로 만드는 사회 아니던가. 좀 다르다는 것을 못 견뎌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브루타'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입 다물고 사는 사회가 아니라, 도무지 질문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말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회, 그 말들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책

 

무언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하브루타라고 하면 대등한 대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가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아빠는 답을 알고 있고, 그 답으로 아이들의 대답을 유도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모습이 하브루타가 아니지 않은가. 하브루타는 답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대화를 통하여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아이들이 어리다고 해도 아이들의 답은 그 자체로 답이다. 아빠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답을 유도하면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답을 잘 찾기 위한 방편이 하브루타가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하브루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아빠는 너무 답에 매달려 있다. 아니, 본인이 끝에서 꼭 답을 말하려 한다.

 

그래서 대화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닫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 잘못 읽은 것인가?

 

동의하기 힘든 것들

 

이 책 224쪽에는 중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노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큰 자동차 회사의 노조들이 임금협상을 위해 극단적으로 자살을 하거나 그런 일이 있어요. 예전처럼 노동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고 좀 자제해야 돼요. 그렇다고 회사 편만 드는 것도 안 좋으니 서로 절충해서 살아야죠.'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중도는 힘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이고, 좋은 실천이지만, 힘없는 사람에게 중도는 포기요, 좌절이요, 죽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한 '예전처럼 노동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고'란 말, 노동환경을 과거와 비교하면 안된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 만해졌는데 무슨 불만이냐는 말과 같다.

 

노동환경은 늘 현재의 문제다. 지금 노동자들이 견디기 힘들면 그것은 좋지 않은 노동환경이다.

 

235쪽에 '친구를 사귈 때는 나보다 한 단계 높은 친구를 사귀고, 여자를 사귈 때는 나보다 한 단계 낮은 여자를 선택하라는 말이야.'라는 말. 이상하다.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내가 나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좋다. 이런 이야기는 뒤에 나오니 더 말할 것이 없는데, 문제는 여자에 관한 얘기다.

 

자기보다 한 단계 낮은 여자를 선택하라는 말, 이거 여성 비하 아닌가? 이 글이 나오는 장의 작은 제목이 '여성 상위'이고 여성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왜 이런 말을 굳이 삽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친구건 여자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좋은 일은 친구건 여자건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간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를 둔 가정에서 해볼 만한 교육방법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시도해 볼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토론 교육이 강조되고 있고,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고 있는 이 때 이 책의 세세한 내용보다는 그 방법론을 배워서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내용을 100% 믿고 따르지 말 것. 그것은 '하브루타'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볼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잘 읽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 지치지 않는 독서교육을 꿈꾸는 보통 교사들의 새로운 교실이야기 배우는 사람, 교사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독서 교육, 요즘은 읽기 교육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책이라면 종이로 만든 책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전자책도 나와있으니, 책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사람책" 읽기라고 해서 특정한 사람을 모셔다 그 사람에게 질문하고 이야기 듣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으니...

 

글을 읽는다는 의미의 독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읽는다는 의미로 읽기 교육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과연 읽기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을까? 학교에서 학생들은 주로 교과서나 읽지 다른 책은 읽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들, 그 좋은 책들이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 쓴 채 한 해에 단 한 번도 학생의 손길을 느껴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 교육을하겠다고, 읽기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나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지치지 않고' 하는 읽기 교육을 하겠단다.

 

"지치지 않음"

 

교사가 가장 먼저 지녀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무언가를 제대로 읽어내는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읽기의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신뢰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와 기다림 속에서 지치지 않아야 읽기 교육은 성공한다.

 

그러니 이들이 목표로 삼은 "지치지 않기"는 제대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하자고 한다.

 

정규 수업이 아닌 특별히 따로 시간을 내는 수업은 십중팔구 교사들을 지치게 해서 지속적이지 않게 된다.

 

하여 지치지 않고 읽기 교육하기의 첫 번째 원칙은 정규수업시간에 하기다. 교과서가 만능이 아니고 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이 때에, 교과서를 잘 재구성하고, 시간을 내서 정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한다면 교사가 시간 부담을 덜 가지게 되고, 수업 부담도 덜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말 것이다. 책을 많이 읽히겠다는 일념으로 이것저것 좋다는 책은 다 읽히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

 

한 해에 몇 권만 제대로 읽혀도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하여 이들 교사들은 집중적으로 몇 권의 책을 모둠별로 읽히고, 또는 개인별로 읽히고,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발표하고 자기의 삶과 연계시키는 방향을 모색한다.

 

그렇게 읽기 교육을 해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시나브로 변해갔으며, 읽기의 즐거움, 또는 읽기의 효과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책하고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체육 교과에서도 읽기 교육을 시도했고, 그 시도가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는 이 책의 사례를 보면, 역시 읽기는 우리네 삶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번째는 조금 잔인하다 싶기도 하지만 평가와 연관짓는 일이다. 학생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를 배제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 평가와 함께 가지 못하는 읽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학생들은 참으로 바쁘다. 힘들다. 이들에게는 동기가 없는 수업은 자는 시간, 쉬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평가와 연계해야 한다.

 

대신 평가는 기존의 얄팍한 지식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과 관련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 평가들은 글쓰기와 발표로 이루어졌다. 글쓰기는 읽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효과가 있으며, 발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읽기 교육을 시도한 교사들. 이들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 교사들, 자신들이 학교에서, 그것도 아주 다양한 학교에서 해왔던 읽기 교육의 사례들을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자신들의 활동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읽기 교육이 그래도 그들을 교사로 있게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지치지 않고 독서 교육 하기"

 

이것이 진정한 독서 교육, 읽기 교육이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는 읽기 교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육 빅뱅 - 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서
이철국 지음 / 민들레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라고 하는 책인데, 빅뱅이라는 말이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말이고, 천문학계에서 쓰는 용어이니 교육을 자연과학의 눈으로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앞표지에는 또 이런 멋있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이제, 어린왕자의 심미적인 별과 천문학자의 핵융합하는 별이 만나야 한다'

 

별은 곧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만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교육이 (특히 대안교육은 더) 인문학 쪽에 치우쳐 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과학적 지식이 교육에 들어와야지만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문과에서는 과학 쪽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과학과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벌써 반쪽은 십대 후반에 과학 공부와 관련이 없어지고, 또 이과라고 해도 과학 공부가 진정한 과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 힘든 지경이니, 또 다른 반쪽인 이과에서도 과학은 멀어진, 안드로메다 성운에 해당하는 그런 공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가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교육 역시 한 쪽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 교육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추구하는 과정이기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함께 가야만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요즘은 "빅 히스토리"라고 하여 과학과 역사, 문학, 철학이 하나로 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융합, 융합 하는 요즘 자연과학을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주장하고 있는 이 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자연과학의 이론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주 탄생, 생명 탄생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질문이 철학적 질문, 종교적 질문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원핵 세포들에게는 죽음이 없었는데, 진핵 세포들로 진화하면서 함께 모여 죽을 수 있게 된 상태가 바로 우리 생명체들이 탄생한 순간이고, 이런 탄생은 죽음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239-245쪽 참조)

 

가장 종교적이고 철학적일 것 같은 죽음에 관한 질문 마저도 자연과학으로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교육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가야 함은 당연한 일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된다.

 

대안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지은이가 자신의 교육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인지를 말해가는 가운데, 각 장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고 있다. 끼워넣고 있다기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작은 제목들이 있는데 그 중에 마음에 와 닿은 제목.

 

모든 아닌 세상에 딱 한 명이다  

빛과 같은 아이들-역자역학에 따른 교육관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는 나를 이해하는 지름길

초신성같은 대안교육

 

이런 제목들만 보아도 교육이 과학과 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모두 자신들만의 별이듯이, 아이들 역시 자신들만일 수밖에 없음을... 과학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고 있으며,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초신성의 폭발로 인한 결과이니, 우리 교육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대안교육의 역할이라고, 이렇게 과학과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 하면 어렵다고, 지겹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데, 이 점에서는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그런 관점을 깨야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교육에 들어올 때 바람직한 교육이 된다고 하는데... 문,이과를 통합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지금 정부의 정책이 방향은 옳을지 모르는데, 그 방향으로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이런 책, 참고해야만 한다.

 

교사들이 읽으면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 책이다.

 

과학 쪽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지식의 편향은 결국 사고의 편향을 낳으니, 나도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 상처 - 학습 부진의 심리학 : 배움의 본능 되살리기, 개정판
김현수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누구나를 막론하고 공부에 대한 상처가 있다.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 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 대로 제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오죽하면 학업성취는 높으나 학업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상태를 유지하겠는가. 그런데도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스스로 교육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최소한 12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조금 낫다. 이들은 인정이라도 받고 지내니 말이다. 이와 반대로 공부 못하는 아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저기서 야단이나 맞고 잔소리나 듣고, 어떤 말을 해도 핑계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고, 이들은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닌, 안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속으로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으면서도 드러난 성적에 대해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일부러 "공부 안 해!", "공부 왜 해?"라고 하면서 멀리 달아나려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공부 못하기를 바라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되고, 공부를 해도 해도 이상하게 제자리 걸음을 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또 출발선부터 다른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이 책 207쪽을 보면 가정 환경에 의해서 공부에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가정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습에서 어떻게 돌봄을 받겠는가. 이들은 지능을 떠나서 이미 환경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학교에 오게 된다.

 

학교는 이러한 불평등을 고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내용들 역시 어느 정도 경제적 우위에 있는 가정에 속해 있는 아이들에게 유리하지 않은가.

 

이런 점을 두루 살피면 공부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가정 환경은 우선 좋지 않다.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학습에서 뒤떨어지게 된다. 한 번 뒤떨어진 학습 능력을 있는 집 아이들은 어떻게든 만회할 수가 있는데, 없는 집 아이들은 만회할 방법이 없다.

 

이들은 계속 학습 부진의 상태를 쌓아간다. 점점 더 쌓여가는 학습 부진. 그런 학습 부진이 이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아 더 이상 공부의 세계에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 도대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에 학교에서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학습 부진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해진 교과 시간, 교과 시험, 많은 학생들, 부족한 시간 등등이 이 아이들이 제자리 걸음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이 점에서 아이들에게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부 상처를 지닌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쓴 책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당연한 이야기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공부 상처를 준 것이니, 우리는 다시 당연한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떨 때는 답이 가까운 데 있고, 너무도 상식적인 것에 있을 때도 많은데, 아마도 공부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공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아이의 특성에 맞게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왜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하는가 부터 파악을 하고, 아이의 성향이 어떤가 알아간 다음에, 아이에게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선정하게 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고, 그 다음에 이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갈 수 있도록 해나가는 것.

 

무엇보다 아이와 신뢰관계를 쌓아야 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공부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일일텐데, 더 나아가서는 공부가 성적과 다르다는 점, 지금은 성적이 좋지 않을지 몰라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다는 것 자체가 큰 공부라는 점을 아이들이 알게 해주는 일,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상처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사람들은 결국 상처를 준 어른들이지 않을까? 결자해지라고, 묶은 자들이 풀어야 한다.

 

해결책은 아이들이 지니고 있지 않다. 어른들이 쥐고 있다. 그 어른들이 외면하고 있을수록 아이들의 공부상처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학습과 관련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공부상처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방법과 더불어, 정말로 성적과 공부를 혼동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 교육과정? 아하! 교육과정 재구성! - 교육과정 재구성 워크북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12
박현숙.이경숙 지음 / 맘에드림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육과정에 관한 책이다. 사실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낯설다. 학교에 다닐 때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를 배웠지 교육과정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교과서만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그런 학교였다.

 

그런데 교육학을 배우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도구에 불과하고. 즉,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단을 목적인 양 착각하면서 학교 생활을 한 셈이다.

 

이것이 교육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일일까? 교육학을 아는 사람들은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답답해 했던가?

 

아니, 그들도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만 잘 가르치면 자연스레 교육과정을 가르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교과서를 재구성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교과서에 나온 순서대로, 그 내용대로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게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현주소 아니었던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러나 너무도 한심하고 서글픈 사건이 있었지. 바로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문제(작년 문제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답이라고 주장하던 교육부가 소송에서 지고 말았지.(올해 가을들어 판결이 났다. 수험생들은 어쩌라고) 

 

이미 세상은 교과서의 내용과 다른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답이 없음, 그러니까 모두 정답이라는 판결이 난 것.

 

만약 교과서를 신봉하지 않고 교육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교육과정에 대한 인식을 교육부에서조차도, 교육과정 평가원에서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교과서만을 맹신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교육과정에 대해서 알까?

 

만들어지는데 몇 년이 걸리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교과서를 맹신하는 그런 교육이 지금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점을 보면 이 책은 참 선구적이다. 이 책은 교과서를 말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을 말한다. 교육과정에 의해 교과서는 언제든지 재편성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과간에도 통합, 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일들을 교사들이 해야 한다고 한다. 주장뿐이 아니라 실제로 학교에서 통합 수업을 실시했다.

 

이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미 현대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파묻히는 사람을 넘어서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가 아니라 통섭, 융합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학교가 따라가려면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된다.

 

다른 교과 교사들과 교류하여야 한다. 함께 의논하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이 책에서는 교육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인간상에 도달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자료가 교과서이며,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교사이고, 그 과정에 펼쳐지는 가장 작지만 일상적인 단위가 수업인 것이다. 27쪽.

 

교육과정은 한 인간이 민주 시민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의 과정을 학교급별로, 교과별로 정한 항목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29쪽.

 

그러므로 교육과정은 독립된 존재로 있을 수 없다. 교육과정은 끝없이 함께 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목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목 교사들과 교류하고 연구하고 협력하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시흥에 있는 장곡중학교에서 교과통합 수업, 즉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교과가 함께 모여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그런 수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직접 수업한 자료들까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서 다른 학교에서도 참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진정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학교 수업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떻게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통합수업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니, 교과통합 수업에 관심 있는 교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덧글

 

이런 교육에 관한 책, 특히 혁신학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교육이 참 성공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잘 하고 있는 학교가 많은데, 왜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도는 꼴찌이며, 아직도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는 학교가 많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게 교사들만의 노력으로 가능할까? 무언가 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교육감이 바뀌고, 그 교육감의 정책에 따라 지원이 이루어지면 되는 교육활동이 아니라, 늘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지 않나. 교육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제대로 된 교육제도를 정착시킨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내내 들을텐데 말이다.

 

또 교사들에게만 맡기면 교사들이 나중에 지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이런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어떤 일에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일은 안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많은 것이 해결되어야 하고... 정말로 많은 것들이 교육 분야에서 논의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