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고함 - 130여 년 전 한 아나키스트의 외침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홍세화 옮김, 하승우 해설 / 낮은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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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에 나온 글이라고 한다.

 

'상호부조론'으로 잘 알려진 크로포트킨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짧막한 글이지만 한 세기도 더 전의 글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도 맞는다.

 

'오늘 나는 청년에게 말을 건네려고 합니다. 마음과 정신이 이미 늙어 버린 나이 든 분은 이 소책자를 읽으며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들에게는 제가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29쪽)

 

이 말로 시작하는데, 이 시작 부분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청년들 중에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책을 읽으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 청년들이 사회에 관심이 있을까? 이건 크로포트킨이 생각하는 것 하고는 다른데, 그는 사람들을 믿었는데, 그 믿음으로 협동, 상호성, 자치를 이야기했는데...

 

왜 나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했을까?

 

아마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되기 전에(일제시대에는 일본어로 발간이 됐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데... 이 책의 앞부분에 홍세화의 글에서 본인의 아버지가 일본어로 된 이 글을 읽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고, 일제시대에 크로포트킨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가 되었으니) 우석훈이라는 경제학자가 유행시킨 책 "88만원 세대"에서 '그는 청년들이여, 토플 책을 버리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했는데, 그 반향이 미미했으며, 그 다음에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노혁명가인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가 출판되어 엄청나게 읽혔음에도 변화는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나는 이게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하는데)의 광풍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서로 단결하기보다는 각자 살길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능 수시시험장 풍경을 보라. 대학에 입학하려는, 이제 성인이 되려는 학생들이 대학에 시험을 보러 오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온다는 사실. 그래서 수시 시험날이 되면 학생 반 부모 반인 풍경이 펼쳐지는 우리나라 대학가 풍경.

 

도대체 성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십대의 끝에서 그들은 아직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청년들은 늙었다기 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늙었다. 대학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그 불안한 마음에 부모를 대동하고 시험장에 오는 모습, 그것은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라 실패는 곧 끝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모험을 하지 않는 늙은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은 학교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들은 소리는 대학 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 그랬기에 그들의 늙음을 탓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우리를 반성해야한다. 또 소수이긴 해도 수능을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대학을 거부하고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청년들은 이미 크로포트킨이 하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소수의 행동을 돌출행동으로 보지 않고 청년들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이 당연이 아닌 돌출이 되어 버린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이 책에서 크로포트킨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앞에 놓은 첫 질문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입니다.'(29쪽)

 

'그동안 쌓아 올린 지성이나 능력과 학식을 활용하여 오늘날 비참과 무지의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울 날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덕으로 타락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0쪽)

 

그렇다. 이것이 바로 청년의 의무이자 권리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권리,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의무.

 

이 다음에 그는 의사가 되려는 청년, 법조인이 되려는 청년, 엔지니어가 되려는 청년, 교육자가 되려는 청년, 학문에 전념하려는 청년, 노동자가 된 청년, 노동자의 가족인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에게는 그 위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바람직한지, 개인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공부를 하게 해준 사회 각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라고 당부한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일, 그것은 이 글을 시작할 때 홍세화가 자신이 평생동안 다짐했던 것 중에서 지켜왔다는 '장교가 되기 보다는 사병이 되자'는 말. 남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크로포트킨이 당부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남보다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남보다 좋은 위치에 올라 남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무엇이 함께 사는 길인가?를 고민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는 그의 당부.

 

이것이 어찌 130년 전만의 일이겠는가. 이런 당부는 지금 우리의 청년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크로포트민의 글이 워낙 짧은 글이라 책으로 내기 위해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부분에 홍세화의 글. 이것은 우리나라 상황과 또 그가 겪은 상황과 연결지어 읽으면 더 좋고,

 

그 다음에 크로포트킨의 글... 많이 생각하면서 읽으면 되고, 이것이 단지 신체적 나이의 청년들이 아닌, 세상이 올바르게 바뀌기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모두 청년들이라 할 수 있으니, 마음이 늙지 않은, 아직도 좋은 세상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이고, 특히 교육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고 적어도 이런 글이 있다는 얘기를 중고등학생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부분은 하승우의 크로포트킨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으리라.

 

이런 외침을 들은 청년들이 정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나 역시 늙지 않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내가 설 자리를 잘 찾아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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