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반다나 시바/에이미 굿맨)의 글을 제목으로 삼았다.

 

  1%란 누구인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으로? 바로 자본으로... 그들은 자본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한다. 자본에게는 안 되는 것이 없다.

 

  사실 자본으로 안 되는 것이 많아야 정상이다. 자본보다 소중한 존재가 얼마나 많은가. 자본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존재 역시 너무도 많고.

 

  그럼에도 자본은 세상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자신들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그게 자본이다. 그리고 이런 자본에 충실한 제도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또한 1%들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탈을 쓴 기술관료들이다.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소수가 차지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특허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존재하던 것들까지 특허 신청을 해서 자본이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존재들 아니던가. 그래서 1%밖에 되지 않는 존재가 99%들을 옥죄고 있다. 자본이 춤출수록 대다수 사람들은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니 이런 1%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이번 호 표지 인물인 반다나 시바다.

 

그는 다국적기업, 특히 유전자조작을 하는 식품회사에 맞서 씨앗지키기를 실천하고 있다. 씨앗조차도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1%들에 맞서야 한다고... 씨앗은 특허로 제한될 수 있는, 자본으로 치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이것과 맞물려 '농본주의를 말한다(1)-농민이 보는 현대사회의 이상함'(우네 유타카)을 참조할 수 있다.

 

그는 농사는 결코 자본주의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농사를 농업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농업에는 자본이 스며들 여지가 많다고. 그렇게 다시 농본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미 한물간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농사는 우리 삶의 토대이므로, 우리는 농사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런 근본 원칙 중 하나가 대농이 아니라, 소농 중심의 농사일테다. 중국에 널리 퍼져 있던 소농들이 어쩌면 농사의 미래일지도 모르는데, 중국이 근대화 되면서 또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중국도 대농으로, 기계농으로 가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그러면 세상은 더 큰 재앙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다. ('중국은 지구를 살리는 모델이 될 수 있을까' - 에바겔로스 발리아나토스)

 

하지만 1%들은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또 큰힘을 발휘하는 관계망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지구 곳곳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지구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제주도에 신공항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대다수의 제주 도민이 아니다. 그들은 공항을 건설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얻는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우려한다' - 고권일)

 

신공항으로 관광객이 더 많아지면 제주도는 하수나 쓰레기가 포화상태를 넘어 넘쳐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도 생활쓰레기들을 제대로 처리하기에는 이미 처리 용량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또 천혜의 자연이 파괴되는 것,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제주공항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공항건설인가 묻게 된다.

 

어디 제주만이겠는가? 농촌이나 산촌에서 벌어지는 토지 강제 수용을 보라. 소수를 배불리기 위해 오랫동안 살아오던 터전을 강제로 빼앗아 가버리는 현실. 그것도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토지 강제수용이라는 폭력' -박성윤)

 

그것도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기도 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토지를 수용하고 있는지... 이익을 보는 사람 따로, 쫓겨가는 사람 따로인 세상, 이런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 녹색평론의 주장이다.

 

이런 것들이 1%들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1%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러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1%의 독점을 막기 위해 정치개혁도 하고, 또다른 수많은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 1%에 속하는 집단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기도 하다.

 

1%에 속할 수도 없고, 그들이 이익을 얻는 동안 오히려 더 곤란한 지경으로 내몰릴 것이 뻔한데도 1%에 동조해서 그들이 더 기승을 부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1%들은 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녹색평론]과 같은 책이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을 치워버리라고... 감은 눈을 뜨리고. 우리는 눈을 뜨고 세상을 바로 보아야 후세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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