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이런 소녀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소녀들.

 

  일명 공순이라 불리던 소녀들, 그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꿈들은 학교를 떠남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자신들의 꿈을 점점 지워가야 했던, 그리고 무자비한 대우들... 소녀들은 소년들에 비해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60-80년대 우리나라 모습이었다. 이런 소녀들, 우리나라를 지금으로 끌어올린 소녀들을 이기인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성 착취까지 당해야 했던 소녀들.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가려 했던 소녀들을 말이다.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1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소녀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런 소녀들의 몸을 탐내는 곰들(소녀들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 연작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첫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 오래된 삽

 

오늘은 피가 나서

하루 쉰다

 

자빠진 삽에게 일 안하냐고 묻지 마라 

 

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 2005년 초판 3쇄. 8쪽.

 

이 시 하나면 된다.

 

쉬는 것도 마음대로 쉴 수 없었던, 연차, 월차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생리휴가라는 것을 받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

 

그렇게 일을 하다 스러져 가는 소녀들. 이들을 보고 전태일은 얼마나 마음 아파했던가. 그런데 70년대가 저물어가고 8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소녀들이 있었다는 것.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쉬면서도 눈치를 보는 그런 상태... 지금 이 소녀들이 모두 사라졌을까? 아니다. 이들은 다시 청년 비정규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를 읽으며 다시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생각한다. 이런 소녀들이 과거에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 그냥 흘러간 과거였으면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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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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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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