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마음을 그린 서양미술 - 아티스트 박정욱의 서양미술 이야기
박정욱 지음 / 이가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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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심리학과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무의식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림에 화가 자신도 의식하지 않았던 어떤 요소들이 드러나 있고, 그것을 밝혀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알던 그림에서 어떤 무의식이 들어 있을까? 이런 호기심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의 마음을 그린 서양미술'이라는 제목은 책 내용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됐다.

 

그냥 간단하다. 우선 하나의 그림을 제시한다. 그 그림이 지니고 있는 의미, 특성들을 설명한다. 그 다음에는 그 화가에 대해서 시대, 성장배경, 화풍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끝이다. 여기서 그림에 어떤 무의식이 들어가 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화가는 시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시대 정신을 그림에 담을 수밖에 없다. 화가가 아무리 개인적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시대 정신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화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무의식 요소를 발견해 낸다면 그림을 더 다양하고 깊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석이라는 말보다 감상,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감흥이 다르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한한 감동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덤덤한 그림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순간 아닐까? 우리는 무의식을 통해서 그림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무의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이 책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다다.

 

'처음 읽기', '다음 읽기'의 두 단계는 이런 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처음 읽기'는 그림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학적 주제를 짚어가면서 그림이 담고 있는 정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다음 읽기'는 그림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통해 그림의 사회적 배경과 화가의 성장 과정 및 화법의 발전 과정을 등을 이해함으로써 화가의 개인적인 감정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이는 그림과 더욱 친숙해지는 과정이다. (6쪽)

 

이 말로 무의식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다고 하면 안 된다. 다만, 이렇게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모르던 부분, 마음에 와닿았지만 설명하지는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께 될 수도 있다.

 

그래 이러면 됐다. 자꾸 그림에 대해 알아갈수록, 화가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림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림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또 느꼈던 감정을 설명하지 못했는데, 설명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화가 개인에 대한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화가의 스승, 화가와 함께 활동했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그림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화가도 있고, 처음 보는 그림도 있고... 아무튼 그림에 대해서, 화가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뒷부분에는 현대미술, 추상주의 미술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있어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갈수록 현실을 재현하는데서 멀어지는 현대미술... 어쩌면 우리들 마음이 그렇게 분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그렇게 분열된, 파편화된 그림들을 그리고 향유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대세로 떠오르는 지금, 그림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공지능에게 정형화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우리 인간이 따라갈 수가 없을테니.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자신도 정확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 세계를 발견해나가는, 창조해나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무의식은 그냥 막 나오지 않는다. 의식을 딛고 나오는 것이 무의식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거나 무의식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세계를 넓고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은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목과는 다른 책 내용을 통해서... 이런저런 사정을 다 떠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게 그림의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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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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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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