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세상. 법에 있는 글자에 매여 그것대로 행동하려고 하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법 규정대로 하는 것과 법을 넘어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간발의 차이로 삭막함이 번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법을 넘어서는 사람들 관계... 그런 관계들이 사회에 퍼지면 그 사회는 너무도 따뜻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드는 것은 법이 판치는 세상이다. 자그마한 일에도 무조건 소송, 소송 하는 작태들을 보면...

 

학교에서도 훈계, 또는 지속적인 관계 개선 노력이 아니라 학폭이라는 규정에 따른 처벌만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소송이다. 법에 의존한다. 사람이 사람과 맞대고 해결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법 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법과 규정은 당연히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과 규정은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맞대고 해결이 되지 않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법을 불러오면 되는데...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서는 이 세상에서는 그런 기다림, 배려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이때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기는 시를 읽었다. 마음에 강한 울림을 준 시다. 세상에 이런 분만 있다면 얼마나 살 만하겠는가. 일부러 차에 부딪혀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말이다.

 

한 편의 이야기. 행복한 동화같은 이야기가 시로 펼쳐진다. 시인은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당연히 우리가 보게 되는 일이고, 겪게 되는 일임에도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질까.

 

이런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시를 보자.

 

참된 신자 조정환 할머님

 

새벽 두 시

우당탕 탕탕!

카트가 날아가고

노인이 날아가고

보안등도 없는 길목

어둠 속 체구 작은 노인네를

택시 기사는 물론 못 봤을 테지

"괜찮으세요!?"

사색이 돼 달려온 택시 기사

"아구구, 직진 신호 켜고

갑자기 좌회전하면 어떡해요?"

노인이 나무라자

"손님이 왼쪽 길로 꺾으라 해서……

용서해주세요. 저도 집에 팔순 노모가 계세요."

무릎 꿇고 울먹거리는 택시 기사

"나 좀 일으켜봐요."

택시 기사 부축 받고 일어난 노인

걸을 만하더란다

"됐어요. 이제 가봐요."

"아니, 병원에 가셔야……"

"아니에요. 일어나 걷잖아요.

됐어요. 가보세요."

"그럼 나중에라도 연락주세요..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전화번호 적은 쪽지 쥐여주고

꾸벅꾸벅 절하며 택시 기사는 떠나고

이틀 뒤부터 노인은

병원에 다니시고

"처음 며칠은 죽을 듯 아팠어.

독감도 겹치고."

"택시 기사한테 전화하시지요!"

"에그, 뭐하러?

쪽지 어디 뒀는지도 몰라.'

내 얼굴 울가망할 텐데

노인네 명랑한 목소리로

감복의 말씀 들려주시네

"늘 왼손으로 카트를 끌었었는데

어쩌면! 그때는 오른손으로 끌었을까?!

영락없이 내가 치일 것을

카트가 치였어. 그래서 살았지 뭐야.

하느님, 고맙습니다!"

 

2018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17년. 황인숙, 간발 전문. 17-19쪽.

 

 

 

    간발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 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놓친 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 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간발의 차이에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었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겠지

간발의 차이로

손수건을 적시고, 팬티를 적시고

 

2018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17년. 황인숙, 간발 전문. 15-16쪽.

 

 

간발의 차이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시집이다. 좋다. 오랜만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시는 이래야 한다.

 

읽으면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 이 시들이 그랬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1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