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연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1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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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거쳐 이제는 '연옥'에 도달한다. 여전히 길잡이는 베르길리우스다. 그는 연옥까지는 함께 할 수 있다. 다만 천국에는 함께 갈 수 없다. 아직 그는 천국에 이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연옥의 입구, 지옥의 비탈에서 통과에 그곳에 도착한 그들은 입구를 지키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연옥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

 

다시 지옥에 떨어지느냐 아니면 연옥에서 일정한 기간을 거쳐 천국에 이르느냐는 입구에서부터 시험된다. 단테는 사후 세계를 두루 볼 수 있는 특혜를 지녔기에 연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의 이마에 p자를 일곱 개 새기게 된다.

 

이는 인간이 저지른 죄악이라고 하는데...p는 이탈리아어로 '죄'  의미하는 'peccato'의 첫글자로서, 연옥의 일곱 비탈에서 씻어야 하는 오만, 시기, 분노, 태만, 인색, 낭비, 탐식, 애욕의 죄를 가리킨다 (316-317쪽 옮긴이 주에서 - 죄는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다. '탐식'에 빠져 있던 사람들과 '낭비'를 저지른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 있다) 고 한다.

 

즉 연옥에서는 지옥에 떨어질 만한 죄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통상 저지르게 되는 일들에 대해서 참회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옥은 곧 현실세계다.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이 어떻게 녹록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연옥편에서 천국에 가는 길은 가파른 비탈로 표현되어 있다.

 

또 각자의 죄에 따라서 짐을 지고 그 비탈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육신으로 연옥을 통과해 천국으로 가는 단테도 처음에는 힘들어 한다.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조차도 길을 몰라 물어봐야 할 지경.

 

현실의 삶은 이렇게 힘들다. 또 한 비탈을 올랐다고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비탈이 일곱 개나 있다. 하나하나 다 극복해야만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

 

삶에서 순간 방심하거나 포기하거나 하면 곧장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한참을 더 여기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옥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자기 행동으로 인해 한참을 연옥에 머물러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진실한 기도에 의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가를, 그래서 진실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함을 연옥편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테는 올라갈수록 이마에 새겨진 p자가 하나 하나 줄어들어가게 되고 비탈을 오르는데 덜 힘이 들게 된다. 그만큼 하나하나 욕망을 극복해갔다는 얘기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참는 것이 힘들다. 무언가를 할 때 첫걸음을 내딛고 그것에 성공하기까지가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수월해지기 시작한다.

 

작심삼일(作心三日)는 말, 결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삼일을 넘기기가 어렵지 한번 삼일을 넘기면 그 다음에는 좀더 쉽게 결심을 유지할 수 있단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결심을 실행하는데 첫비탈, 첫고비가 바로 삼일이라는 말로 볼 수 있는데, 이 비탈을 넘으면 좀더 가벼워진 몸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올랐다고 할 수 없다. 여전히 높고 가파른 비탈이 눈 앞에 펼쳐지니 말이다. 하지만 한번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자신감이 생긴다. 더 수월하게 실행할 수 있다.

 

우리와 비교해 생각해 보니 p자가 일곱인 것은 우리 전통에서 죽으면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곱단계에 다시 7을 곱하면 49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업보에다가 주변 사람들의 기도까지 합쳐져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때, 49일... 바로 연옥이 우리에게는 49재에 해당하지 않을까...

 

천국이냐 지옥이냐 아니면 계속 연옥이냐 하는 결정을 받게 되는 날 49일째... 그것을 49재라고 한다면 단테에게는 p자를 지워가는 비탈들 일곱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 비탈 오르기를 포기하면 연옥에 계속 머무르거나 아니면 지옥에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배경지식이 적어서 이 작품을 깊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너무도 많이 나오는 서양 문화 전통과 서양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 적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로마 신화, 성서, 이탈리아 역사와 인물, 기독교 역사 등등을 알아야만 한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을 읽을 때 지녀야 할 배경지식과 비슷하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 작품으로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고... 그냥 전체적인 틀을 따라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왜 단테가 이 작품을 썼는지, 그것은 계속 말하지만 지금-여기에서 잘 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연옥에서 헤매고 있는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보면, 그 점을 파악하면 실천한다면 독자로서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천국으로 간다. 연옥편 뒤부터 드디어 베아트리체가 나왔다. 베르길리우스와 교대해 단테를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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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17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대학 들어가기전에 <연옥>까지 읽고 아직 <천국>은 못 읽었는데...읽으려면 다시 읽어야할듯 하네요! 베아트리체가 넘 좋아서 짝사랑하는 애를 ‘베아트리체’라 불렀답니다 ㅋㅋ

2018-10-18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0-18 08:19   좋아요 0 | URL
그래서 고전인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