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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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책을 함부로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든다. '포르노그라피아'라니... '유토피아'가 우리가 갈망하는 세상이라면, 포르노그라피아는 그렇다면 포르노를 갈망하는 사회라는 뜻 아닌가. 선뜻 집어 읽기 민망한 제목이다.

 

하지만 우리가 '포르노'를 거부한다고 해도 '포르노'는 이미 우리 일상에 너무 깊게 들어와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포르노 세계다.

 

물론 포르노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니다. 가상으로 연출된 세계다. 인간이 지닌 가장 적나라한 몸만을 욕망하는 세계를 화면을 통해서 교묘하게 잘 보여주는 세계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이 지닌 욕망을 배출하고자 한다.

 

화면을 통한 배출, 그러나 많은 세계에서 포르노는 금지 구역이다. 여기에 접근하면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육체적인 향락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릴지라도 현실 세계에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포르노 세계다.

 

금지되니 더 욕망하게 된다. 은밀하게 유통되던 포르노가 이제는 대놓고 버젓이 유통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유통이 성적 일탈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과연 우리 인간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포르노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포르노가 미성년들에게 또는 유약한 정신을 지닌 - 그럼 포르노다 아니다 판단하거나 유통해도 된다 안 된다를 판단하는 법조인들과 윤리학자들은 강하고도 높은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지, 원... 그들이 벌이는 비도덕적인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는데... -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쪽과 아니다 오히려 이런 매체를 통해서 해소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쪽으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지닌 책을 들고 다니기엔 좀 그렇다. 아직 정리가 안 된 분야기이 때문이다. 제목이 민망하긴 하지만 읽어보면 '포르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인간이 지닌 욕망에 대해서, 그 파멸적인 모습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소설일 뿐이다. 물론 포르노가 인간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인간이 지닌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바로 젊음, 그래서 젊음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구다.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에게는 절대를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완전함, 충만함에 대한 갈망. 말하자면 진실, , 총체적 성숙 등에 대한 갈망이지요. 이 경우 인간에게 요청되는 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포르노그라피아』에서는 인간의 또 다른 갈망 하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더욱 은밀한, 어떤 의미로는 법에 배치되기도 하는 것으로, 미완성, 불완전, 열등함, 젊음 등에 대한 욕구입니다. (299쪽)

 

독일군에 점령당한 폴란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참 이상하게 전개된다.

 

성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음에도 자꾸만 포르노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유는 바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오던 관계인 헤니아와 카롤을 어른인 나와 프레데릭은 이들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즉 이들은 젊음의 욕정을 거리낌없이 발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약혼을 했든, 안 했든 그들 젊음은 이미 육체의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헤니아와 카롤은 그들 각본에, 그들 시각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건 어른들 욕망에 맞지 않는 그런 행동이다. 이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욕망에 따라, 즉 젊음이라는 불완전한, 완성되지 않은, 그래서 어른에 비해 열등한 욕망을 발산해야 한다. 거리낌없이. 그래서 프레데릭은 세세한 각본을 짜서 이들을 자기 구미에 맞게 움직이게 한다.

 

이에 대한 희생양으로 알베르트를 삼는데... 헤니아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이미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른이기 때문에 같은 어른인 나와 프레데릭의 관심을 끌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가 헤니아와 카롤에 의해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또다른 어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여기에 이런 욕망은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독일군에 대항하던 사람, 시에미안을 죽이는 일에 이들을 가담시키는 것에서 어른들이 지닌 욕망을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알베르트, 도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그는 자신이 시에미안을 죽이고 카롤의 칼에 죽는다. 이것으로 소설이 끝나는데...

 

젊음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음... 그들이 불완전하게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갈망, 그 갈망을 이루기 위해 젊은이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치밀함. 그리고 그것을 은근히 즐기는 어른들의 모습.

 

성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포르노가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어른들의 욕망을 가감없이 그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 제목이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숨겨져 있는 어른들의 욕망,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는 그런 욕망을, 전쟁 중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인간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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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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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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