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는데 웃음이 절로 나온다. 상황이나 말들이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그냥 읽어도 좋다. 굳이 머리를 쓸 필요도 없다.

 

  이런 시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욕'이란 시다.

  우리가 쉽게 '개새끼'라고, 좀더 순화하면 '개자식'이라고 쓰는 욕을 시인은 아버지의 말을 빌려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아버지의 욕, 60-61쪽)이라고 표현한다.

  댓돌에 벗어놓은 운동화를 물어뜯을 존재, 그것은 바로 개다. 옛날 마당있는 집을 떠올리면 상상이 될 것이다. 개들이 얼마나 많은 신발을 물어뜯었는지.

 

  그러므로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이라는 욕은 '개새끼, 또는 개자식'이라는 욕이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욕이 아니라 웃음이 피식 나오게 하는 욕이다. 이런 말을 쓰는 부모 밑에서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갔으리라.

 

그러니 시집에 나오는 언어들이 어렵지 않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말들이다. 시에 나오는 소재들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한참을 생각해야 나오는 것들이 아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늘상 우리가 만나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그것들에 시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

 

시인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 시인 가족 이야기, 시인 자신 이야기 등등 많은 것들이 모두 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시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 자체임을 깨닫게 한다.

 

학교, 튼튼한 담장을 치고, 누구의 침입도 거부한다는 듯이 철문을 잠그고, 각종 감시카메라에, 경보장치에,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배타적인 존재로 마을에 군림하는 그 학교를 그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웃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두부장수는 종을 흔들지 마시고

행상트럭은 앰프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크게 써서 학교 담장에 붙이는 소사 아저씨 뒤통수에다가

담장 옆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날린다

공일날 운동장 한번 빌려준 적 있어

삼백육십오일 스물네 시간을 울어대는

학교 종 한번 꺼달란 적 있어

학교 옆에 사는 사람은 두부도 먹지 말란 거여

꽁치며 갈치며 비린 것 한번 맛볼라치면

버스 타고 장터까지 갔다 오란 거여

차비는 학교에서 내줄 거여 도대체

목숨이 뭔지나 알고 분필 잡는 거여

호박넝쿨 몇개 얹었더니 애들 퇴학시키듯 다 잘라버린 것들이

말 못하는 담벼락 가슴팍에 못질까지 하는 거여

애들이 뭘 보고 배울 거여 이웃이 뭔지

이따위로 가르쳐도 된다는 거여

 

이정록, 정말, 창비. 2013년 초판 7쇄. 86쪽.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오히려 공동체와 멀어지는 교육을 하고 있다. 아니다. 교육을 한답시고 말로는 온갖 도덕, 윤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해서 신고를 하면 상점을 준다든지, 자기 반이 아닌 다른 반에 들어가도 벌점을 준다든지, 서로를 믿지 못해 점점 감시카메라는 늘어나고, 교실 문은 이동할 때마다 꼭꼭 잠근다든지...

 

학교 시설을 한번 쓰려고 하면 온갖 규제들, 절차들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고 마는 경우. 도대체 학교와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요즘은 학교 운동장 개방이나 시설 개방 등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학교는 굳건한 담장으로 외부와 학교를 가르고 있다.

 

학생들이 한번 등교하면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런 모습이 아닌가.

 

이웃들이 학교에 항의하는 이 시를 통해 학교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알 수 있고.

 

이 시처럼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은 경쾌하다. 경쾌하면서 우리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 벙싯거리게 된다. 좋다. 각박한 세상, 따스한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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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7-10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의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를 읽으면서 배시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
동시라 그런 줄 알았는데, 일단 이정록 시인 보관함에 keep 해 둡니다.

kinye91 2018-07-10 10:13   좋아요 1 | URL
이정록 시인이 쓴 시들 중에 어머니와 관련된 시들은 저절로 웃음이 배어나오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