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학교, 교육과 돌봄 사이'를 주제로 하고 있다.

 

  사실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보육기관, 탁아기관이 된 지 오래인데, 새삼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봄은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부모가 늦게 퇴근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머무르게 하는 것.

 

  이마저도 못하는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 가거나 학원에 가야 한다.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그런데 읽으면서 이게 과연 돌봄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은 부모나 또는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라고, 이들이 홀로 있으면 안 된다고, 늘 누군가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 바로 '돌봄'이 아닌가 한다.

 

위험사회에 도달한 이 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도 (비록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 집이고, 그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있고 싶을 때고 있고, 또 게임이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을 때고 있는데) 갈 수가 없다.

 

그건 돌봄이 아니라 방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밖에서 밤늦도록 놀아도, 친구들과 그냥 어두워질 때까지 놀아도 안 된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꼭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만 한다. 그것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옭죄어 오는 그 통제를 견디면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학원으로 자연스레 갈 곳을 바꾼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대학생이 되면 도대체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

 

돌봄, 돌봄 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그런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 이렇게 돌봄 운운하며 어른들 눈길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생활을 했던 아이들을 마냥 어린이로만 취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낮추자는데, 고등학생이 무슨? 하면서 반대를 하는 어른들... 돌봄의 틀에 갇힌 사람들 아닐까 한다.

 

그렇더라도 돌봄은 필요하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호에는 다양한 돌봄들이 소개되고 있다. 학교를 이용한 돌봄만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또는 공동육아와 비슷한 형태의 돌봄들 말이다.

 

'학교, 교육과 돌봄 사이'라는 주제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배움이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울 명심해야 한다.

 

학교에서 하는 일 중에 돌봄과 교육은 기본이 되는 일이다. 교육기관이 돌봄과 교육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이것이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밤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잠시 갔다 왔다가 다시 학교에 오는 초등학생들.

 

이들에게 과연 학교는 행복한 공간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호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돌봄이 지녀야 할 기본 원칙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돌봄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 다음, 학교가 보육, 탁아기관으로 전락한 것은 교육정책이 실패한 까닭이니,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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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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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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