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시간이라는 것은 뭘까. 우리의 하루를 표현하는 단위이자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삶을 채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간을 보고, 정해진 약속이나 일 처리 같은 것도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뛰고 움직이는 시간이 우리 삶 전체에 깔렸음에도, 시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단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다. 시간과 돈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기도 하는 일에 저자의 여행 같은 설명이 답을 내놓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가장 뜻이 많은 단어라는 ‘시간’은 다양한 방면에서 그 의미가 있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그렇구나!’ 하는 공감의 끄덕임이 나온다. 역사나 철학에서부터 계속 발전해오는 산업까지, 시간이 개입하지 않은 곳은 없다. 모두 15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시간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처음 태양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던 우리가 어떻게 표준시간제를 채택하여 살고 있는지, 산업혁명 후 빠르게 진행된 시간혁명을 이야기한다. 점점 더 정확하게 시간을 알 수 있게 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언급한다. 우리가 항상 인지하지 않았어도 우리 삶 깊숙하게 자리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시간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인간 이외의 존재가 어떻게 시간을 파악하는지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그저 인간보다 덜 진화하거나 다른 동물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시간’을 주제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동물은 시간 개념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면이 강하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의 감각에 의지해 우리가 아는 시간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무기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인간에게만 적용하는 하루의 계산법 같고, 시간의 활용에 따라 부와 권력의 차이가 생기도 하는 현대의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존재니까 말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길고 짧은 감각마저 다르게 다가오는 걸 보면, 무기임을 넘어서서 겁이 나는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쁠수록 더 빠르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물음에 물음을 더하는 저자의 설명들이 더 가깝게 와 닿는 이유다.

 

우리는 시간이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여기거나 영화의 단골 소재임을 알고 있다. 혁명기 프랑스에서 시간이 멈추는 일이 그럴듯하게 보였다면 그것은 각관주의와 열정을 위해, 그리고 다른 혁명, 즉 운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야만 하는 욕망일 것이다. 기차 한 대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단단하게 만든 믿음이 가는 물건이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기차는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55페이지)

 

처음부터 시간이 정확하다는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오차범위도 넓었을 테고, 어디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철도의 발전으로 더욱 정확한 시간의 개념이 생겼다. 철도는 발전하면서 문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마차가 다하지 못한 시간 절약과 대량 운송으로 점점 교통 기능으로의 자리가 커졌다. 그러다가 보니 더욱 정확한 시간 조정표가 필요했고, 표준시가 만들어졌다. ‘정확하게’라는 말이 무엇인지 더 깊게 자리 잡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 개의 노선을 연결하는 최초의 일반 승객용 철도 시간표는 1839년에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표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중략) 옥스퍼드 지역의 시간이 런던의 시간보다 5분 2초 늦고 브리스톨 지역의 시간이 런던보다 10분, 엑서터 지역의 시간은 14분 늦었다면 열차 승객들은 도착지에서 시곗바늘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중략) 시간 조정표를 제공하는 마차회사도 간혹 있었지만 대개 신뢰성이 떨어지는 회중시계나 휴대용 시계를 보고 시간차를 대강 짐작했었다. 그러다가 철도가 도입되면서 여행자들의 시간 개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정확성’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69~70페이지)

 

사상 최초로 영국 전역에 표준시가 도입되어 철도 회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기차 시간표를 만들었다. (71페이지)

 

정확한 시간의 개념과 확인이 필요하면서도, 시간은 추상적인 존재라는 건 변함없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시간의 모습과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유를 바라지만 현실 속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고, 또 바쁘게 살아가면서 얻어야 할 삶의 필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없는 일. 시간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시간에서 멀어질 수도 없는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좀 더 애쓰면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실시간보다 약 0.5초 늦다고 한다.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 신호를 뇌로 보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뇌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 시간차를 교정하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한 후 결심을 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여 눈으로 보거나 듣기까지는 항상 생각보다 늦다. 따라서 인간은 늘 지금(now)보다 뒤에 있으며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429페이지)

 

시간에 물리적인 의미를 두지 않고, 시간에 속박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우리는 시간에 맞춰 달리고 움직이는 삶을 이어왔다. 저자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이제는 조금 늦추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며, 이제는 그 시간이라는 공을 우리에게 던졌다. 분침 없는 시계의 아이디어를 언급하면서,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일을 넌지시 추천하는 것만 같다. 지금처럼 경쟁에 둘러싸여 시간을 걷는 게 아니라 뛰는 것처럼 살아온 사람에게 느긋한 쟁기질은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내려놓고 우리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면 저자가 말하는 ‘도시를 떠나 밭에서 쟁기질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걷는 일을 떠올릴 수 있다. 문명이 우리에게 주는 온갖 방식의 편리함과 발전된 세상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의 단점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의 역사’가 아닌 ‘시간의 관계와 감각’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무거울 것 같은 주제를 흥미롭게 이끌면서 시간에 대한 편견을 사그라지게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저자가 들려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계속되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 속 사건들이 아닌 인간의 삶에 초점이 맞춰있다.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의 영향이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흐르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묻는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분침 없는 시계의 아이디어가 언급되었던 그 순간 이미 우리는 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직진으로 달리던 삶 옆에 다른 시간의 삶도 있음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심스레 말하는 책이다. 과거로 가려고 애쓰는 시간의 감각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저자의 권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8-03-14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인간만(?)이 하는 추상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이 같이 출현했고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그리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것도 좀 신기해요. 이 책 궁금했는데 시간 다루는 다른 책들과 큰 변별점은 안 느껴지는군요. 전개 내용보면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랑도 좀 겹치는 듯도 보이고.
시간(관리까지)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런 대중서가 꾸준히 나오는가 싶습니다.

구단씨 2018-03-15 13:02   좋아요 0 | URL
시간의 개념을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서 보는 듯했어요.
제가 읽기에는 뭔가 에세이 분위기가 강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