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는 아이였다. 그 웃는 모습 때문에, 눈웃음친다고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웃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웃지 못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웃고 싶은 일에 웃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커가면서 점점 웃음은 줄어들었다. 웃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이유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웃음에 인색해졌다는 것밖에는... 웃음이 줄어들었던 그때, 같이 줄어든 게 있었다. 웃는 것만큼이나 우는 일도 많지 않았다. 슬프고 아프면 울어도 되는 거였는데, 점점 그 울음마저도 자유롭지 못했다. 울면 안 되는 순간이 많아진 거다. 남들이 볼까 봐, 혹시 그 눈물에 계산이 있다고 생각할까 봐, 자존심이 상해서. 혼자 참 많이도 계산했다. 계산기를 마구 두드려보니 울면 안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진 건, 감각이 둔해져서이기도 하다. ‘그게 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감정에 파고들었을 때, 울음은 약해지고 사라졌다. 울 여유가 없다고 여겼던 거다. 사는 일에 치여서 눈물 따윈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날들. 어떤 이유로든,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눈물은, 일상에서 그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런 눈물이 그리워지는, 한번 울고 나면 속이 좀 풀리고 시원해질 것 같은 날이 있다. 습관이란 게 무섭기도 하지. 이상하게도 그런 날마저 눈물은 잘 나지 않더라는. 그럴 때는 눈물도 감정도 너무 메말라버린 삶에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어느 순간을 버티고 넘어가는 일에 눈물이 답은 아니지만, 눈물이 풀어주는 게 분명 있다는 걸 아는데도 울지 못하는 것도 답답하고, 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일상이 마냥 아쉬워서... 그런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서였나. 『아주, 조금 울었다』의 저자 권미선은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아니, 어쩌면 그 누군가와 같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것처럼 눈물이 필요한 순간을 풀어냈다.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오롯이 혼자’일 때 꺼내놓을 수 있는 마음을 들려준다. 혼자여도, 뭐가 잘 맞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외로워질 때 같은, 이대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순간의 마음을 드러낸다. 밀려오는 감정이 모두 외로움이라는 종착역으로 가 닿으려고만 애쓰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하나도 안 괜찮은 마음으로 남아있을 때. ‘어떻게 하지?’ 라는 물음에 터져버린 답.

 

 

그냥 혼자여도 괜찮았는데,

누군가를 찾았을 때 대답이 없다는 건,

외로워지는 일이다.

그땐 진짜 혼자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럼, 원래부터 혼자인 존재는 외롭지 않을까? (아주, 조금 울었다 15페이지)

 

 

말들이 아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거든.

우리는 잘 모를 때 말을 더 많이 하게 돼.

잘 모르니까 애쓰는 거야.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아주, 조금 울었다 32페이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울고 싶을 때, 울어야만 하는 때를 그대로 확인하는 기분이 들어서 순간순간 울컥해지는 문장들이 담겼다. 안 되는 거 아는데도 쉽게 포기가 안 될 때, 헤어졌다는 걸 인지하는데도 문득 생각나서 힘들 때, 일상이 버거워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계속 아플 때. 일부러 찾지 않아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그리움, 외로움의 시간이 콕콕 파고드는 순간들이 덩어리가 되어 올 때. 오지 말라고 해서 안 올 감정도 아니고, 머물지 말라고 해서 떠날 감정도 아닌 것들을 해결할 방법이 되기도 하는. 애써 참았던,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을 버리면서 느슨해지는 일이 필요할 때 ‘조금’이 아니라 ‘많이’, ‘펑펑’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혼자인 시간에, 혼자이기 때문에 울어도 되는 거 아니었나? 꼭꼭 닫아두지 말고 문고리 하나 살짝 풀었더니 쏟아지는 건 자동. 차마 다른 사람 앞에서 꺼내지 못한 진심이, 나와 마주하게 된 순간에 고백처럼 토해져 나오고야 마는, 그렇게 울어도 되는 일이었던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봐주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지.

 

 

그녀는 펴지지 않는 우산을 손에 들고,

길 한복판에 서서 그렇게 울었다.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살다 보면, 그렇게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울어야 한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울지라도 못하면 도대체,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울고 나면, 그리고 비가 그치고 나면

그녀의 인생에도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주, 조금 울었다 161페이지)

 

 

참아야 하는 게 많아지는 인생에서, 어느 순간 눈물도 참아야 할 목록에 담아져버렸다. 누가 참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참다 보니, 뭔가 자꾸 쌓였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쌓이기만 했다.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전에, 미처 꺼내놓지 못한 진심을 마주하고 싶을 때 울어도 좋겠다고, 아마도 작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문장들에서 번져 나오는 건 깊은 곳에서 끌어낸 마음들이었다. 누구에게나 그 마음이 읽힌다는 건,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거, 아닌가? 들어달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마음 때문에 공감하는 거니까. 눈물 섞인, 물기 가득 촉촉한 문장으로 마음을 읽는 시간을, 이렇게 풀어놓는다. 울어도 좋은 거니까, 안심하고 둑 터지듯 실컷 울어보라고...

 

 

이런 부족의 이야기가 있다.

카리브 해에 산다는 그 부족은 여자가 남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언제든 새로운 남자와 함께 살 수도 있다.

만약 새로 살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

여자는 지금 함께 사는 남자의 짐을 싸서 문 앞에 놓아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자는 그 보따리를 보고 안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그래서 떠나야 한다는 걸.

그럼 남자는 보따리를 안고 울면서 어머니 집으로 되돌아간다.

 

속수무책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이별의 순간들이 있다.

 

그녀의 마음에는 이제 그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울면서 떠나고 있었다. (아주, 조금 울었다 108~1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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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18-01-2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바껴서 또 사고 싶어지는 간사한 마음이;;;;

구단씨 2018-01-26 17:17   좋아요 0 | URL
아, 표지가 바뀐 건가요? 저는 원래 표지가 이런줄 알았어요.
도서관에서 읽어서 원래의 표지 디자인을 몰랐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