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비공개로 ‘절망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보는 거다.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슬쩍 책 제목을 언급하며 주변 이웃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아, 진짜. 그 책 나랑 안 맞더라.' 하면서 말이다. 육두문자 섞인 욕을 대놓고 쓰지는 못하겠어서, 그 책이 왜 그렇게 별로였는지 혼자 적고 혼자 누르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그동안은 게을러서 아예 그런 목록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작성하고 싶더라. 누구에게 대놓고 전달할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제목, 이런 표지, 이 작가의 글은 피해야겠다.’는 나만의 기억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기껏 골라서 읽은 책이 ‘절망’의 기분을 안겨준다는 게 슬퍼서 자꾸 곱씹게 된다. 가만 안두겠어! (이미 읽고 나서 기분 나쁜데 가만 안 두면 뭐 어쩌려고? 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려고?)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런 느낌(별로였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책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취향인가 하는 고민, 그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보려고 하는 노력, 무슨 목적으로 그 책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하는 확신이나 이유 같은 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특히 외형만 보고 골랐던 책에서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던 것 같다. 책이 목적이 되지 않고 다른 이유가 책을 고르는 목적이 되어버리니, 그 책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특히 책의 디자인, 책의 제목 때문에 골랐던 경우 후회할 때가 많았다. ‘어머, 이 표지 너무 예뻐!’라던가, ‘무슨 책의 제목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라는 듯한 호기심과 호들갑에 맞이했던 책들. 말하고 보니 모두 예쁘다는 이유로 골랐던 게 되어버렸네. 쩝~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외형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어느 날 가슴을 파고 들어온 제목에 설렐 수밖에 없는데, 역시 사람이나 책이나 외형보다는 내면의 것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산문집 <책이 입은 옷>을 읽으면서, 책의 외형을 대하는 마음이 더 오락가락해졌다. 독자가 아닌 작가가 보는 책의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를 듣고 보니 책의 외형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거다.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 이렇게 다른 느낌을 받는 건가 보다. 그동안 줌파 라히리의 작품을 펼친 적은 많았으나 완독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작품이 어떤 느낌이라고 한마디로 말하는 건 어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작품 분위기가 어떤 느낌일 것이다.’ 라는 추측은 가능하게 됐다. 시니컬하고, 담백하다. 뭔가 할 말 다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지나고 나서,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라고 머리 콩콩 찧어가며 후회하거나, 끝까지 말해도 관철될 수 없는 일에 양보하면서 속상해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의 말을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책의 표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가 그랬다. ^^

 

완벽한 표지는 뭘까?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대부분은 우리의 옷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표지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날짜가 새겨지고 난 뒤 특정한 시간 동안에만 사랑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면 옛날 번역을 다시 번역해야 하듯 표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바꿀 필요학 있다. 책에 활력을 주기 위해, 책을 좀 더 현실감 나게 하기 위해 새 표지를 입어야 한다. 새로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 것은 바로 원래 언어로 적혀진 오리지널 텍스트다. (책이 입은 옷 79페이지)

 

'책이 입은 옷'이라는 제목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책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특히 그녀가 자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작가로서 그녀가 책의 표지에 많은 관심과 애착을 두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가 자라면서 겪었을 많은 혼란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의 미국 소녀처럼 입기 원했던 그녀에게 엄마는 인도 전통 의상을 강요했다. 엄마의 사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미국에서 사는 인도 사람, 이방인으로 보였을 그녀가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을지 저절로 그려진다. 때와 장소에 맞게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일은 일상인데, 그녀에게는 그 '옷을 고른다.'는 고민이 계속됐다.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 옷으로 남들이 보는 나를 생각한다. 옷과 책표지. 다르지만 닮은 두 가지를 작가는 참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책이 입은 옷 25페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책표지와 그녀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책표지의 의미는 닮았으나, 독자와 작가의 차이만큼 다른 점도 있더라. 예쁘고 책의 내용과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 표지를 보면 만족스럽고, 책표지와 내용이 다른 느낌이어서 와 닿지 않는다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한 건 독자의 마음이다. 내가 쓴 글의 많은 것을 표현해주는 이미지를 표지로 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내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못해서 포기해야 하거나,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만족스러운 표지를 만나는 건 작가의 기쁨인 것 정도의 차이. 둘을 모두 만족하게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다. 어떨 때는 책표지가 충동구매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글과 책표지가 하나의 길로 독자에게 가는 길은 꽤 어려운 듯하다.

 

<책이 입은 옷>은 작가의 글과 책표지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작가와 표지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책표지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글 쓰는 과정이 꿈이라면 표지는 꿈에서 깨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글과 표지의 만족도가 같아지는 게 어렵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작가는 글과 책표지를 자신의 성장 과정의 옷 입기와 연결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보게 되는 인식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나로 보이는 유니폼이어서 좋은 점, 또 그렇게 일률적이어서 찾기 어려운 차이점들을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작가는 어렸을 적 도서관에서 봤던 '발가벗은 책'을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도서관 이용자들이 많이 공감할 듯하다. ^^ 내가 찾던 책이 비치 중인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사서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한 거였다. 책표지가 있던 상태의 책 색깔만 생각하고 찾다가, 책표지가 벗겨진 채로 서가에 꽂힌 책을 못 본 거였다. 작가는, 자유롭게 책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꺼낸 말이겠지만, 나는 나의 실수담으로 더 와 닿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모든 책을 책표지를 입은 채로 비치해달라고 하면, 책의 비닐커버를 씌우는 또 한 번의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서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못하겠던데, 그건 도서관만의 차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 도서관은 본관 포함해서 5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같은 책도 어느 도서관에서는 커버를 벗기고 비치해놓고, 어느 도서관은 책표지 그대로 비닐커버 씌워서 비치해놨더라는. 각 도서관의 입고 담당자가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많은 도서관의 책은 줌파 라히리가 말한 것처럼 옷을 벗은 책 상태로 비치되어 있을 거다.

 

표지의 역할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할 감정을 떠올려본다. 작가가 말하는 책표지의 상업적인 역할도 충분히 공감한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아름다운 표지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것. 책과 표지가 말하는 게 달라 진실과 거짓이 대립할 수도 있기에 작가는 바란다. 표지가 자신의 책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해주기를.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보는 책과 표지의 관계로 작가가 평생 겪어왔던 갈등을 연결하며 하는 이야기에 불편함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그 갈등을 계속 확인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표지가 단순히 책의 의미나 내용을 반영하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오늘날 표지는 책에서 또 다른 비중을 차지한다. 표지는 미적인 목적보다 상업적 목적이 더 크다. 표지가 책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한다. (책이 입은 옷 41페이지)

 

 

 

 

 

 

 

 

 

 

 

나는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을 읽었으나 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마리몬드 콜라보 버전으로 나온 책표지가 예뻐서 사고 말았다.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이미 읽었지만 굳이 사고 싶기도 했어, 가끔 생각나기도 했거든, 그런데 굳이 살 필요까지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지 않았는데, 이번 표지는 너무 예쁘잖아, 그러니 이번에 사야 해, 원래 다시 읽고 싶었던 거잖아?!' 이런 마음으로 그 책을 사는 것에 후회나 충동구매보다는 기쁨과 만족을 끼워 넣었다. 절망의 리스트를 열심히 작성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표지의 상업적 목적에 충분히 빠져든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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