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사람, 혹은 이미 부부가 된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 사실, 그다지 관심 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냥 궁금해질 때가 있거든. (이 책을 읽으면 특히 더, 그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어~!) 프러포즈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서로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결혼날짜까지 다 정해진 상태에서 굳이 공식적인 프러포즈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을 했었거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익숙해진 관계처럼 그냥 흘러가는 분위기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 그러면서도, 언젠가 정말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먼저 말해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 나는 진짜 애교가 꽝인 인간이라 평소에도 무뚝뚝함이 넘쳐흐르지만, 그래서 (뻘쭘) 별건 아니고, 딱 한 문장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싶었지. 그냥 "같이 살자"고 말해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 누가 먼저 하라고 정해진 건 아니니까, 내가 먼저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잖아? 괜찮아, 뭐. 암튼 내 맘이 그렇다면 참지 말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어. 근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더라고. 곧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 프러포즈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프러포즈가 있었는지 말이야. 나처럼 무뚝뚝 심드렁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거 말고 말이야. (왜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이따가 말해줄게) 이벤트 대행사에 의뢰했는지, 아니면 며칠을 머리 싸매고 자기만의 색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순간을 만들었는지 하는 그런 거. 아, 원래 진심만 담으면 되니까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진심을 담은 그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느냐고.

 

 

 

 

 

 

 

 

 

마중 나와 주겠어? 어떤 모습으로든 좋아.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많이 슬플 것 같아.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예식장에 갈 거야. 가서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26페이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 대. 4년 4개월 후에... 알파 센타우리에서 오는 여자 친구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해야 해. 아, 4년 4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니? 안 되겠다.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 남자는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광속 우주선을 타기로 했어. 광속을 돌파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두 달 동안 우주에 있다가 지구로 돌아오면 딱! 결혼날짜에 맞출 수 있다, 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 그녀가 탄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서 두 달 늦게 도착한대. 그에 남자는 두 달 늦게 지구로 돌아가는 다른 배로 갈아탔어. 그런데 그게 망할 일이 되어버린 건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좋니. 갈아탈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도착이 한참 늦어진대. 지구에 도착하면 3년은 지나 있을 거라는데, 어떡해?!

 

남자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달라고,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물론 그녀는 그를 버리지 않았지. 다만, 문제가 조금 더, 조금씩 더 생겼을 뿐이야. ㅠㅠ 3년, 11년, 그렇게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지연되고 있어. 이렇게 슬픈 일이 왜 생겨야만 하는 거니? 왜 이러는 거야 자꾸!!

 

도대체 이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왜 이렇게 됐을까. 만나기는 하는 거야? 왜 자꾸 만남이 어긋나기만 하는 거지? 멀쩡하게 잘만 굴러가던 배가, 꼭 이럴 때는 작정이나 한듯 고장 나고 그러더라. 그래서 자꾸 바라면서 읽게 되잖아. 이 짧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이 만날 수는 있는 거냐고 물으면서 읽게 되잖아. 지구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달라서 그런 것도 알겠어.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배에 오른 것도 알겠어. 좀 더 빨리 만나고 싶어서 배를 갈아탄 것도 알겠어.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수천 번을 만나도 만났을 시간을 만들어줘야지. 안 그래? 왜 그렇게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거냐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면서 기다린다는 게 어떨 거로 생각하기에 자꾸 훼방을 놔? (가만 안두겠어!)

 

이번에는 그녀가 왔을까? 이번에 도착한 배 안에 혹시 그녀가 있을까? 그는 계속 시간을 셌어. 하나, 둘... 기다림에 애가 타서 그랬지. 그렇게 시간이라도 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결국, 그는 시간을 세다가 멈췄어. 잊었어. 일 년, 십 년, 몇백 년이 흐르면서 다 잊고 말았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셀 수가 없어졌어. 하지만 여전히 항구에 나가는 걸 멈추지도 않았어. 그럴 수 없었어. 시간을 세던 것을 잊었지만, 그녀가 올 거라는 바람을 놓지는 않았거든. 그는 여기에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76~77페이지)

 

 

손바닥만 한 이 책을, SF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어. 나도 모르게 자꾸 같이 기다리게 되더라고. 그가 기다리는 그녀를 보고 싶었거든. 너무 많이 어긋난 그 순간들이 어쨌든 끝을 봐야 하잖아. 몇 백 년이 더 흘렀어. (그때까지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나이를 먹었겠지? 만나도 괜찮을까? 서로 많이 변했을 거잖아. 외모부터 많은 게 변해 있겠지? 앞으로도 달라질 거잖아.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그가 하는 말은 이런 거였어. 하루하루, 10년 전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내일도 모레도, 아주 먼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건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바람으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의 마음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더 보고 싶었나 봐. 그를, 그녀를.

 

(만났어? 만났을까? 못 만난 거야? 뭐야?)

 

아, 이거였어! 작지만 크고, 가볍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있어서잖아. 더 무슨 말이 필요해...

 

 

:)

결혼을 앞둔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맘에 드는 프러포즈가 생각이 안 나던 차에,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는 SF소설 작가에게 프러포즈용 소설을 한 편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에 작가는 흔쾌히 쓰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설을 읽고 녹음을 하고 그녀에게 들려주고. 뭐, 그렇게 프러포즈는 성공했다는 얘기. 남자가 직접 이 소설을 두 권 만들어 한 권은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소장하고 다른 한 권은 작가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이 소설은 태어났다. 아마 처음부터 출간용은 아니었겠지? 그런데도 이렇게 출간된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

뭔가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게 참 괜찮은 방법이구나 싶기도 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의 감정이 녹음된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날 거잖아. 그것 역시 진심일 테고. 아, 그런데... 그럼 목소리가 좀 예쁘면 참 좋겠다. 흠흠. 큼큼.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들리는 내 목소리가 녹음된 목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어떠냐고. ㅎㅎ

 

 

 

눈에 들어오는 신간 한 권을 보고 궁금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니 김보영이다.

어디서 많이 봤던 이름인데 무슨 책이었더라? 궁금증이 계속 머리 속에 두둥실 떠돌기만 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장르도 SF다. 내가 즐겨 읽는 취향도 아닌데 작가 이름이 낯익어서 검색해보니 김보영이네.

전작 목록을 보다가 알았다. 지난 번에 읽은, 손바닥만한 그 작은 책의 작가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얼마나 몰입해서 읽었는지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야 말았는데...

그때 생각했다. 아, SF도 조금씩 즐기는 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겠구나.

물론 그 이후에도 그 장르를 많이 읽지는 않았다. 여러 권 읽을 때 한권씩 끼어들 틈을 준 것뿐이다.

 

그렇게 내 취향의 눈길을 옆으로 돌리게 해준 작가의 새책 소식이 반가웠다.

 

 

 

 

 

 

 

저 이승의 선지자.

저승에 물리적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 불명의 생물의 모습까지?

소개 글이 전부이진 않을 터, 김보영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우주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월요일이다.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이 보여줄 삶의 한 모습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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