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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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 안에는 보통 200페이지 이하의 책을 넣고 다닌다. 집에서 읽다가 만 책 중에서도 얇으면 가지고 다니고 두꺼우면 그냥 집에서만 읽는다. 무거우니까. ㅠㅠ 그런데 이기호의 이 소설은 얇고 잘 읽히는데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까워서 일부러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았는데도 너무 금방 읽혀서 속이 상했다. 아, 정말 몇 년 동안 계속 연재되었으면 지금부터라도 일부러 찾아 읽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재밌게 읽었는데도, 막상 이 소설이 어떤 느낌일지 설명하려니 고민이 생기더라. 뭐라고 딱 한마디로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또 한 마디만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아서 고민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여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동생이 둘째 아이(초2)에게 물었단다. "00이는 크면 엄마랑 결혼할 거야?" 유치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랄 때 많이 들어왔던 말이지 않아? 아들 가진 엄마는 아들에게 그렇게 묻고, 딸 가진 아빠는 딸에게 그렇게 묻고.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이상형이 정해지는 것처럼 여겼다. 아들에게는 엄마가 이상형, 딸에게는 아빠가 이상형. 그러다가 자식이 크고 결혼 상대자를 인사시키려 데려오면, "너는 아빠(엄마)랑 결혼하겠다며?!" 하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고. 이런 경우 아빠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더 크다던데, 뭐,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대목이다. 그만큼 아낌없이 키우다가 보니 애착이 심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가도, 온전히 내 품 안의 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때라고 인정해야 할 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암튼 아홉 살 조카 아이가 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뻔한 대답을 예상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 뭐 이런 거. 그런데 조카 아이의 대답은 엄마와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는 거다. 그에 또 나는 생각했지. '아, 엄마와 아들은 결혼할 수 없는 사이구나, 하는 걸 말하려는 거 아닐까?' 전혀 아니었다. 조카 아이의 말은 이랬다. 자기가 커서 결혼할 때가 되면 엄마는 너무 늙은 사람이 되니까 자기와 결혼을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아, 이런... ㅠㅠ 엄마와 아들을 결혼을 할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아는 것과 별개로, 가슴이 싸~해졌을 것 같다. 이때 느꼈던 감정이 뭐였더라, 하는 이야기를 여동생과 한참 했었다.

 

아이가 커가는 게 기적 같으면서도 슬퍼지는 일. 가족이 함께여서 행복하지만 힘든 시간.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되면서도 기대고 싶은 순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에 답답하면서도 안도가 되는 마음의 모순. 이 소설은 딱 그런 느낌이다. 여동생이 둘째 아이의 말에서 느낀 많은 생각을 듣고 공감했던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엄마가 너무 늙어서 자기와 결혼할 수 없다는 아이의 말에 드는 많은 생각. 아이가 자란만큼 부모가 늙는 것은 당연하지만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 슬퍼지고, 계속 아이로 있었으면 좋겠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대꾸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순간의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게 아쉽고, 또 아이가 자라는 게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점점 부모의 지분이 줄어드는 게 섭섭할 것 같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행복하고 아쉬운 순간이 동시에 찾아오는 그때.

 

그날 밤 늦게 서재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보니 아내와 세 아이들이 침대 바로 아래 좁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었다. 침대에서 자면 아이들이 따라 올라올까 봐, 그러다가 해여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아내는 항상 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다닥다닥 붙어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자니 무언가 뭉클한 것이 가슴 한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도 침대 위로 오르지 못하고 그들 틈에 살짝 모로 누웠다. 쌕쌕거리는 앙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아내의 콧김이 내 뺨에 와닿았다. 아이들의 살 내음과 아내의 살 내음도 와닿았다. 누운 자리는 좁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68페이지)

 

말 그대로 '유쾌한 기호씨네'이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도 조금은 어리바리한 아빠와 온몸과 마음이 중무장한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엄마.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게 취미인 큰아들과 중간에 끼인 둘째 아들, 존재 자체가 너무 예쁜 막내딸. 몸이 아픈 것을 말하지 않고 자식 힘든 일에 손을 보태러 오시는 부모님. 단순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족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더라. 소소한 그들의 일상에 웃다가, 어느 순간 보니 울고 있더라는 이상한(?) 이야기.

 

언제나 '가족'이 화두가 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거의 두 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고발 프로그램에서나 볼 것 같은 이기적인 집단이거나, 울고 웃다 보니 이렇게 함께해왔다는 훈훈함이거나. 당연히 기호씨네 가족은 후자다. 분명 살면서 힘든 시간이 있었을 테지만,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환히 보이게 한다. '이래서 웃을 수밖에 없군!' 아니면 '이렇게 울다 보니 우리 집 얘기였네!' 하는 공감이 저절로 따라오는 에피소드. 늘 양가의 감정이 같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가족이 사는 이야기는 웃음이 훨씬 많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도 한글을 다 떼지 못해서 걱정되는 건 그들의 부모가 아니라 나였다. 우리 자랄 때와는 분명 다른 요즘이지 않은가. '유쾌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지'라고 하는 건 마음속 말들이고, 현실 속 초등학교 입학생은 그게 아니니까. 과도한 교육열이 아니라 이제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 떼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기호씨 부부도 인정하더라.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속담을 말하는 아이에게 웃음으로 답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괜찮겠지. ^^

 

44편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늘 마지막은 있기 마련인가 보다. 또 다른 순간들이 오면서 그들의 시간도 흐른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에 담기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더 많을 거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기호씨 부부도 늙어가고, 부부의 부모님도 점점 더 약해지겠지. 그런데 아직은 그런 슬픔을 떠올리기 싫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조금 천천히 자랐으면, 우리가 조금 천천히 늙어갔으면, 우리의 부모가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들. 힘든 순간을 상쇄할 알콩달콩 세세한 순간들이 더 많이 쌓였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가족으로 엮인 우리가 서로를 보고 배우며 자라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한다. 슬픔보다는 기쁨이, 서글픔보다는 애틋함이, 눈물보다는 웃음이 차지하는 순간들이 계속 쌓였으면 하는 바람을 품으면서 읽게 되는 기호씨네 이야기다.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247페이지)

 

서툴지만 귀여운 아빠, 어설프게 전하는 마음이 기특한 남편, 마흔이 넘고서도 그저 막내로 존재하는 아들. 기호씨네 가정에서 그가 서 있는 자리다. 금방 '뻥'하고 터질 풍선만 불어대도, 뭔가를 뚝딱 해낼 것 같지만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여전히 배울 게 많은 아빠다. (이렇게 말하면 그의 아내는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아빠 기호씨가 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왠지 기호씨가 지금 모습 그대로 존재할 때 그 가족에게 웃음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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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2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아깝다,고 하신 얘기 격하게 공감합니다~~

구단씨 2017-06-21 16:30   좋아요 1 | URL
깔깔대며 웃다가 보니까 마지막 페이지였어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