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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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어떤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참 힘들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주저하지 않고 덮으면 그만인데, 꼭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이미 이 내용으로 발행된 책이 여러 권일 테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감정이 일렁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좀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는 그날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누구 말처럼 그 날은 사고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날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늦은 아침을 먹다가 놀란 건 당연하고, 저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계속 TV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난다. 저런 일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는 놀람은 계속됐다. 내 가족이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종일 슬픔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희생자는 너무 많았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동생이자 언니 오빠, 아내이자 남편. 어디선가는 VIP 보고용으로 영상을 요구할 때, 누군가는 생사를 건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거다. 그마저도 불가능해 결국 수장된 채로 아직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세월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세월호의 외관이 저러할진대, 그 안의 많은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그건 언제쯤 이뤄질까. 지금도 뭍에서 자식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가 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 안에까지 들릴 것 같다. 어서 나오라고,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늦게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그게 언제쯤 이뤄질지 모르겠다. 간절한 바람으로 어서 빨리 엄마 아빠 곁으로 오기를 같이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매순간 형제자매를 그리워해요. 매일 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동생이고 언니고 형이고 아우인 그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기억하곤 해요. 그런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데 그만하라고만 해요. (330페이지)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이하여,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담은 기록이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은 11명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단원고 학생,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단원고 학생의 형제자매 이야기다. 사고 당시 십 대였던, 이십 대 초반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다.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들려온다. 어린 나이에 형제자매를 잃는다는 게 뭔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이 있지 않겠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고 당시 순간의 일들, 오보에 안심하며 가졌던 희망, 불안함이 들고 온 소식, 이해할 수 없는 절차와 방식의 태도들에 좌절하며 보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들은 '생존학생' 혹은 '유가족'이라 불렸다. 어떻게 슬픔을 견디며 지내왔을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된 말이 나온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라고 했다. 가족에게는 더 아프고 슬플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까 봐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득하다.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순간이 많기에, 그들이 다 말하지 못한 이유에 슬픔이나 불편함만이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어디 털어놓을 수 없던 속내를 시간이 조금 지나니, 누군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물으니 대답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모두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기를, 잊지 말아주기를...

 

세월호 이후에 저는, 어… 그냥 삶이 나눠진 것 같아요. 친구들을 잃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생겼고 배운 것도 성장한 것도 많아서, 더 나쁜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없는 삶을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전환? 그냥 삶이 다른 거. (315페이지)

 

어떤 때는 '이해할 것 같다, 잘 알 것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공감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눈다. 그게 어느 순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같은 경험으로 공유하는 슬픔과는 다르다는 거다. 기쁨보다는 같은 슬픔을 겪은 사이에서 생기는 유대감이 있다. 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슬픔을 언제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없는 마음을 보내다가도, 내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어 감히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저 공통으로 겪은 '슬픔', 소중한 사람의 '부재', 견뎌내야 할 '고통'. 대개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당사자의 아픔만큼 다가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히 잊힐 기억도 아니기에 더 그렇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하여 나온 책이나 소식들은 어른들의 눈과 입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뒤에, 옆에 있던 10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뒤로, 10대의 당사자가 품은 생각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가족, 생존자인 10대들의 마음을 듣는 좋은 기회를 열어준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기에 더 들어야 할 마음들이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이제 또 다른 시작일지 모른다. 밝혀야 할 것들,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잃어버린 친구들, 되찾아야 할 일상,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내일을 기다릴 희망, 아픔과 추억을 간직할 기억들, 진심으로 들어야 할 누군가의 마음, 상처 회복과 배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들의 마음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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