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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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오늘을 이야기하는데 한 글자면 충분했다. 그 한 글자의 힘이 이렇게 위대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의미를 함축한 단어들이었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그중 가장 의미 있게 들리는 건 ‘초’였고, 타인이 보는 우리 삶은 ‘개’였다. 불면의 밤으로 초대하듯 공유했던 건 ‘잠’이었고, 살벌한 전쟁터의 마지막 골인 지점 같은 ‘홈’은 욕심을 이루지 못한 서글픈 마무리였다. 가장 강렬했던 작품인, 억압과 방관을 당연하게 여기며 종용했던 ‘종’은 무서웠다. 떠올릴 수 없는 이름에 가슴 속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 ‘휘’, 물방울 놀이의 비극적인 마음을 대신 전하던 소리 ‘톡’, 소설처럼 말하는 연애가 되어버린 ‘못’은 그대로 비밀로 머물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아픔처럼 들렸다.

 

사는 동안 우리가 속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어였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 시작되는 감정과 괴리, 불화가 비극을 부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채워야 할 욕심과 우선순위가 불행을 일으키며 존재의 사라짐으로 끝맺는다. 불면증이라 여기는 시간은 무슨 일을 벌여놓았나... 세상의 온갖 슬픔을 한 글자로 말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결국 그 한 글자로 이야기해놓고야 마는 이 소설이 봄날의 눈부심과 대조적으로 서글펐다. 왜 우리는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을 공유하며 아픔을 나누는 게 아닌 각자의 마음과 욕심이 먼저 보이는 걸까. 그런 의문이 늘 따라다니는데도 그걸 무시하며 사는 동안 온갖 비극은 우리 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불행은 이어진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나 욕심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 그게 문제라는 것도 안다. 현실을 살면서 살펴봐야 하는 부분임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 역시 시사한다. 그게 뭐라고, 내 살에서 나는 피가 아닌 것처럼 내 일도 아닌데. 결국, 나만 아프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무사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원인인 걸까.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사는 곳곳에 자리한 그림자를 잘 못 보고 있는 건가. 흔히 ‘소외’라는 말로 그 자리에 자리한 그들을... 그들 안에 내가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이들의 비극이나 절망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유다. 가까이 있지만, 모른 척하듯 살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나와 친숙하게 자리하는, 어쩌면 내 삶의 일부인지도 모르는 것들.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대신해 누나가 그 자리를 채우며 내는 곡소리도 모른 척하고(「종」), 내 소유의 물건처럼 집안에 묶어두고 싶은 바람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한다(「개」).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봤음직 한 장면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개가 보는 인간 세상이 참 우스울 것 같다. 노인에게 시집온 타국의 젊은 여자,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하고 어두운 피부마저 아들에게 무시당하는 삶,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며 깊은 밤 마당의 한구석에서 하소연하는 목소리로 주인공 백구는 인간 세상을 본다. 노점상 할머니의 외침에 외로움을 공감하며, 애인과 헤어지고 유기견을 모으며 그 외로움을 잊고 기다림을 품은 여인의 울부짖음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렇게 흘러들어 간 어느 음식점 앞에서 마주한 인물의 반가움. 백구는 마치 고향을 찾아가든 오토바이 뒷좌석에서야 비로소 한세상 잘 구경한 것으로 느낄 듯하다. 세상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그런데도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실컷 보았을 백구의 마음에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외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안다. 어느 날 밤에는 할배도 죽고 일구도 죽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할배와 일구를 마당 깊숙이 파묻어주고 창고에 숨겨두었던 짐을 짊어진 채로 마당을 빙빙 돌아가다 대문 밖으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은 대야 가득 물을 담아 피부를 씻어내고 나면 체취가 없어지는 줄 알고 있지만, 구덩이가 될 때까지 그들은 오랜 시간 계속 같은 냄새를 풍긴다. 잊지 못한 옛 기억의 냄새를 코끝에 품고 산다. (116페이지 「개」)

 

자식을 천재라 믿으며 세상 모든 우월함을 부여받은 것으로 여기(「홈」)며 가슴에 홈을 새기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각을 부르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특히 「종」은 그 소리가 더 아프고 크다. 힘에 눌려 끌려가는 삶을 그렸던 누이가 베란다 한편에 자기만의 방을 만든다.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엎드려 닦아내고 자기 짐을 옮긴다. 그때야 비로소 누이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이 계기였을까. 하얀 발을 만지며 기도하던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건, 누이가 베란다에서 시작할 새로운 삶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을 자격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피 묻은 발바닥으로 낸 흔적은 이제 누구의 몫인가.

 

작가가 마지막으로 불러온 한 글자는 다시 수면 위로 오른 세월호였다. 있어서는 안 될 참사였다. 오보 속 혼란은 구조의 어려움을 더했으며, 간절한 바람은 비극이 되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주인공은 좀 더 어른 사회에 속한, ‘짧지만 긴 시간인 초(second)를 생각하며 고통을 공감하는, 어둠을 내쫓아 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초(candle)를 드는’ 사람이 되었다. 2017년 3월, 바다 깊은 곳에서 오른 세월호는 그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날 구슬프게 내리던 비, 살고 싶다고 외치던 소년의 목소리, 아직 제대로 떠나보내지도 못했다던 부모의 눈물. 그리고 이제 시작인 밝혀져야만 하는 진실들.

 

나는 북적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단편집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초였다. 짧지만 긴 시간. 어쩌면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갈림길 앞에서의 그 짧은 망설임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타오를 것 같은 초. 바람이 불면 금세 꺼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 가녀린 글자를 흰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 동안 망설이고 앉아 있을 때였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찬바람과 함께 하늘을 긁으며 내리는 그 비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여객선이 가라앉는 동안, 제주 바다의 성난 파도에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던 그 빗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46~247페이지 「초」)

 

한 글자가 뿜어내는 힘을 보여주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작가는 한 글자가 내는 소리의 힘을 글자 수와 반비례로 들려준다. 짧고 간단하지만, 그 흐름은 너무나도 길고 복잡한 세상 속 우리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저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오늘이 자기 모습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한 목소리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외치고야 마는 폭발을 이렇게 전한다. 위태롭게 지내온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바라지 못했던 삶을 이제야 비로소 찾았다는 듯이,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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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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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5: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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