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
김보라 지음, 스폰지 그림 / 돋을새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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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문장 그대로다. 말하자니 치사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참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병이 날 것만 같은 마음을 어쩌랴. 이럴 때 다른 방법은 없다. 쏟아내야 한다. 풀어야 한다. 속사포 욕이라도 마구 쏴줘야 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을 풀어내는 그 화끈함이 시원하게 들린다. 여기에서 방점은 사소하다는 것에 있다. 뭘 그 정도로 그러냐, 별로 큰일도 아니구먼, 그냥 넘어가지 속 좁게 군다, 는 말들이 나올 상황들이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하기에 일상이나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라 그 여파가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 사소한 일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이 되고야 만다. ~? 그런 시간이 쌓여, 참고만 있자니 이 성격에 죽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들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듯 수다 삼매경에서 나올 법한 얘기인데, 저자의 말에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정말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나 혼자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은 내 방 안에서 나 혼자만의 일상이 가능할 때 얘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겪어가는 일은 많은 배려와 이해를 동반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을 말한다. 깨알같이 화가 나게 하는 일들이 끝도 없이 풀어져 나오는데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뒤 없이 화만 내서도 안 되는 게 살아가는 처세술 아니겠나. 눈치껏 재주껏 어디 그 화를 풀어내 보시라.

 

어떤 일에 화가 나냐고?

공공장소를 개인장소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여긴 당신들 안방이 아니므니다. 먹는 사람과 뒤처리하는 사람 따로 있을 때 분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나는 식기 세척기가 아니라고요! 약속시각 몇 분쯤 습관적으로 늦거나 아무 미안함 없이 취소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돌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시각에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쯤 늦게 와서 복수해줄 겁니다. 집 없는 설움에 울게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대궐 같은 집에서 당신을 내려다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이제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요? 예전의 55사이즈가 지금 44사이즈도 안 되는 거 알고 있나요? ㅠㅠ 누군가의 값진 노동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판단하지 마세요. "~나 해야겠어요."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사라져가는 서점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출판사를 호구로 아는 거래처나 독자에게 섭섭합니다. 우리는 책으로 통하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피곤하다고 방바닥과 이불로 돌돌 말린 주말을 보낸 것이 너무 허망해서 화가 납니다...

 

, 끝이 없다. 괘씸해서 화가 나고, 속상해서 화가 나고, 서운해서 화가 나고...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매일 살아가는 오늘이 기쁘면서도 그 깨알 같은 화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사는 게 그렇지,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건 한 번쯤 터져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은 화, 혹은 가슴 속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쯤 이런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한번 말한다고 해서 화 내게 되는 그 많은 원인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이런 타이밍 한 번 맛보는 거로 생각하면 어떨까. ^^

 

자의 에피소드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노약자 전용석이 아니라 노약자 우선 좌석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공감했다. 혹시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가도 노인분이 타면 바로 일어나면 되는 좌석인 거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 다니는 이곳에도,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정말 자리 양보하기 싫어지게 하는 노인분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자리 양보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가 싫어진 적도 있다. 언제였던가. 노인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알아서 일어나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내 옆에 와 떡하니 서서 요즘 것들은 자리 양보도 할 줄 모른다는 둥, 아이고 팔다리허리어깨야 하면서 몸의 여기저기를 두드려대면서 굳이 바닥에 주저앉는 할머니. 저자도 말했지만, 노인분이 타면 자리 양보 안 하는 사람 거의 없다. 노인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한 것처럼 배우고 자랐기에 나 역시 아무리 피곤해도 서서 간다. 그런데 저런 노인을 만나면 저 일어나는 거 안 보이세요? 할머니 같은 분들 때문에 자리 양보하기 싫어져요.” 라며 굳이 한마디 하고 일어난다. 그러면 그 할머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싸가지가 바가지라는 둥 끊임없이 욕사포를 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지까지 유유히 그렇게 서 있다가 내린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나쁜 년인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의아해서 둘러보니 와~ 대박.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살짝 엄지를 추켜드는 사람도 있었다. 아하~ 이런 마음이 나만 드는 건 아니었구먼. 결론은, 나는 나쁜 년이 아니라는 것. 뭐 이건, 나도 한껏 화가 났기에 했던 행동이었지만, 지나고 살짝 후회와 웃음을 함께 삼켰지만... , 조금은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싸가지 바가지가 한 번쯤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긴 하더라.

 

공감해서 웃음도 나고 조금은 달라서 오버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저자의 에피소드를 곰곰이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절반쯤은 공감하고 절반쯤은 공감하기 어려운 정도다. 그건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하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생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성격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저자가 발끈했던 일이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듯 무시하는 일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의 성격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화가 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화를 내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도 좋고 조금은 무겁게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우리 사는 동네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 사람들이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속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내 끝장토론 한번 해보자, 하는 의미가 아니니 부담 없이 즐겨도 좋을 이야기다. 속이 좀 시원해질지도 모를 수다 한바탕 즐기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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