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애 따위를 놀 청소년문학 28
방미진 지음 / 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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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 19세 초과 금지 연애 소설.

들어는 봤나~ 19세 초과한 사람들은 읽지 말라는 연애 소설?

 

공부, 성적, 진로... 학생이나 청소년이라는 대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결되는 단어다. 학생의 본분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당연히 성적도 좋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선택된 대학은 곧장 직업으로 이어지는, 아주 강력한 끈으로 묶여 있다. 그러니까,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정해진 법칙 같은 느낌이다. 물론, 공부해야지. 하고자 하는 일, 미래를 위해서라도. 10대, 청소년이라는 그 시기는 공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직 공부’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과감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청소년문학이 나타났다. 그동안의 청소년문학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제목부터 궁금하게 만드는 『어쩌다 연애 따위를』이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게 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연애도 운동화를 닮았다. 이건 꼭 사야 돼! 하는 핫한 신상도 몇 달 안 가 시들해지듯, 아무리 핫한 연애라도 금세 익숙해진다. 미련 없이 버리기 힘들다는 점도 닮았다. 아우, 이거 해외 배송에 완전 힘들게 구한 건데. 그래도 쟤만 한 애 없는데. 그래서 결국은 신발장에 곱게 모셔 두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다.

익숙한 건 편하지만 어딘가 궁상맞다. 함부로 구겨 신은 운동화를 별 수 없이 질질 끌고 다니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에는 바이 바이.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된다.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26페이지, 조신)

 

네 명의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열여덟, 열아홉. 고2, 고3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서 공부에 인한 스트레스나 누군가의 독촉, 성적에 인한 비관 같은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이 아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사랑, 연애.

조신. ‘하... 이 완벽한 비주얼~ 나도 내게 반하겠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조신은 바람둥이다.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만날 수 있다. 자뻑에 빠져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여자들이 뻑이 간다.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알면서도 만나는 여자들이 수두룩. 하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있어도, 그에게는 순정이 있다. 오직 너뿐이라고 외치고 싶은 여자를 가슴에 품고 있다.

서두.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왜 말을 못 해! 왜!’ 오동통 너구리를 연상할 수 있는 몸매에 때론 과격하고 솔직한 여학생이다. 애써 사들인 옷은 며칠이 채 되지도 않아 몸에 맞지 않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다이어트란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 폭식과 과식쯤이야... 그런 서두에게 마음을 품은 이가 있단다. 누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다는데, 왜 당사자는 말을 안 하느냐고!!

안평. ‘다음 생에는 마성의 게이로 태어나겠어!’ 안평은 게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게이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여자 친구는 사귀어본 적이 없다. 안평에게는 우정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품어버린 조신이 있으니까. 아, 떨려...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마성의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조신을 어떡하면 좋을까.

박순. ‘팬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그룹을 좋아하고 멤버 중의 한 명에게 팬으로서의 사랑을 분출한다. 스스로 성공한 팬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과 애정을 담아 팬질을 한다. 그런 박순이 어느 날, 팬질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왜? 미친 듯이 좋아했던 그 시간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거야?

순정. ‘왜 사랑할수록 내가 초라해지는 걸까?’ 조신의 공식적인 여자 친구다. 고3. 공부를 미치도록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조신과의 연애를 그만둘까 싶기도 하지만, 조신과의 연애가 공부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순정에게 연애와 성적은 어떤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신에게 헤어지자 말한다. 너무 잘난 남자를 만나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까지 못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순정에게 조신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상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헤어져!

 

나는 정말 조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모두가 하는 말이 맞다. 우리가 만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연애는 로맨스가 아니라 코미디다.

하지만 원망은 없다. 원망이라니 당치도 않다. 나 같은 여자가 조신 같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조신 같은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하게 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잠시나마 나를 순정 만화 속에 살게 해주어서. (147페이지, 순정)

 

표지부터 순정만화 삘 나기에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가 했다. 상당히 발랄하면서도 정작 이 아이들의 진짜 얘기를 왜 이제야 듣게 되었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공부나 성적은 이 아이들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운명공동체라 여긴다고 해도, 그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나 연애를 솔직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왜냐고? 그러면 안 되는 시기라고 이미 못 박아 버렸기에, 아예 처음부터 차단된 단어이고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만큼이나 중요하고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감정이고 시간이었던 거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연애하고, 가슴앓이하고, 헤어져 보고, 연예인을 향한 팬질이 가져다준 시간은 헛되게 흘러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렇다.

 

안평과 나는 그 전쟁으로 인해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집단도 언젠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특성을 약점으로 규정하며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마음이 나를 지독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사랑은 추악함을 부르기도 한다. (129페이지, 박순)

 

그룹의 팬질을 하던 박순이 팬질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안평에게 하는 얘기들은 서늘했다. 미친 듯이 집중했던 대상, 그 대상 하나로 똘똘 뭉쳤던 팬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박순에게 남겨준 것은 허탈감이었다. 서로의 마음 하나씩 생채기를 만드는 건 순식간, 그 일에 인해 상대를 할퀴고 헐뜯고 한 사람 매장하고 떠나보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팬질의 경험이 박순에게 가르쳐준 것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감정으로 나 하나 살겠다고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결국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내내 지우지 못할 불편함일 것이다. 물론 그것 하나 때문에 팬질을 그만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시간이 경험하고 배우게 한 어떤 게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아이돌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박순의 사랑. 그 파릇파릇한 열정과 집중이 부러웠다.

 

사랑과 연애를 했던 네 사람, 조신, 순정, 안평, 서두. 이 아이들에게 사랑은 상대를 향한 감정이자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자존감을 낮게 하는, 그 낮은 자존감을 확인하는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바람둥이라 부르는 조신이 바라는 것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었다. 분명 내가 좋아해서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 나를 더 사랑해주는 그 마음과 애정을 바라는 것으로 바람둥이가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예쁜 여자가 아닌 그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에 인해 상처받는 한 사람, 조신의 여자 친구 순정은 잘난 조신으로 인해 더 주눅이 들고, 조신의 바람기를 전해주는 소식들로 아파하다가, 선택한다. 더 이상은 조신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리라. 항상 같이 있으면서 조신에게 저절로 마음을 줘버린 안평은 민감한 시기에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게 된 남학생을 보게 한다. 그런데 안평의 모습만 보면 그게 염려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 되는 것, 마음이 가는 대상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비록 상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건 어떤 사랑에서도 볼 수 있는 단면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연애라는 것을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안평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가장 귀여웠던 인물이 바로 서두. 서두의 외모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읽게 하는데, 서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로 자신이 하는 오해로 흐르게 내버려두는 이들의 어긋난 마음이 가장 재밌게 펼쳐진 대목이었다. 통통하고 귀엽고 말발 좋은 이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야...!

 

밤 12시. 슬픔도 허기도 달랠 길 없었던 나는 식탁에 쪼그리고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밥을 비벼 먹으며 청승을 떨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

울고 먹고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 장면이 무척이나 전형적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꼭 이런 것만 드라마 같지, 이런 것만! 식상해도 괜찮으니까 연애도 좀 드라마틱하면 안 되겠냐? 어? (68페이지, 서두)

 

각 인물의 시선에서 화자는 ‘내’가 되어 서술한다. 같이 모여 있을 때의 그 객관적인 장면이 아닌, 오직 그들 각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기회였다. 비록 말할 수는 없었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끝까지 그 유쾌함을 놓지 않고 풀어간 이 아이들의 연애가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한다.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님을 보게 한다. 틀에 박히고 뻔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 친구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데, 곧 성인의 대열에 합류할 이 아이들에게 사랑이나 연애가 빠질 수 있겠냐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봐줄 건 봐 주자. 그래야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

 

한 가지 더,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건 저자 방미진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의 전작 두 편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참 서늘하고 어둡다는 거였다. 두 편 모두 청소년소설이었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말일 거로 생각했다. 그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고 방미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네.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밝고 재밌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였네. 그래서 더 읽는 재미가 있었던 듯하다. 전작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긴 저자에 대한 선입견을 확 깨트려줘서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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