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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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이란 단어 뒤에 ‘타령’이란 단어를 하나 더 붙여, 사랑이란 것이 어떤 노랫가락처럼 들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진중하고 아름다울 그 ‘사랑’이 ‘타령’을 만나니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가끔 그 사랑이 하찮은 느낌으로 들려올 때가 있다. 흘러가는 일상에서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리는 허밍처럼,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질 것만 같은, 살아가는데 1순위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대상으로 보인다. 아주, 부정하지는 않겠다. 속된 말로 사랑이 밥 먹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밥을 굶게 하기는 한다. (웃음) 내가 경험한 이별의 아픔에서 밥맛이 떨어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엄청나게 웃음)) ‘오직 사랑’이 아닌, 그 사랑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도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으니까. 그런 환경 앞에서 사랑이 선택되지 못하는 결과를 보면, 분명하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조건 1순위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사랑은 빠지지 않는다. 빠질 수가 없는 화두이자 일상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부터 완전한 타인이 만나 기적처럼 인연을 만드는 이성 간의 사랑까지. 삶을 주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사랑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신체 일부처럼 가깝다.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 간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 생명을 다하는 순간 사랑도 같이 끝난다. 그래서 살아가는 순간에 온전한 사랑을 바라게 된다. 그 사랑을 저절로 알면 좋겠지만, 또 그러지 못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사랑이 어렵다고 말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 책 『사랑의 역사』의 저자는 우리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어렵고, 좀 더 일찍 사랑을 알 수 있다면 삶이 더 쉽게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중요한 공부라고. 정말, 그럴까?

 

나와 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정말 탐구해야 할 학문이자 공부인 게 맞느냐고.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사랑의 본질을, 사랑의 본질을 모른 체하는 백 번의 사랑보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하는 한 번의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고 말한다. 1597~2012년까지, 거의 4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서른네 편의 문학을 통해서 그 사랑을 연주하게 한다. 사랑을 명작으로 만들어준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시작한다면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얘기한다. 우리가 만나는 문학, 그 문학을 통해서 배우는 타인의 삶과 성공, 실패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랑의 연습으로 삼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와 많이 닮았다. 그 소설을 포함하는 문학이 들려주고자 하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그 문학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소나기》를 통해 비밀스럽고 순수했던, 처음 사랑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오직 사랑 하나만 보이게 했던 그 짧은 순간이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높고 두꺼운 장벽보다 절절하고 슬픈 사랑을 보여준다.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게 된 사랑을 그린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눈빛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말한다. 문학에서 녹아든 그런 사랑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그 사랑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살짝 숨겨놓듯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들춰냈던 《오만과 편견》은 요즘 말로 ‘밀당’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실상은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는 것이 그 용기의 기본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춘향전》의 춘향이가 변학도의 수청 요구에 목숨을 걸고 거절한 것은 기다리는 자신의 사랑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과 사랑이 같은 맥락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사랑이 음식이라는 인생을 채우고 있음을 말한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인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87페이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사랑이 만들어주길 바라는 또 하나의 로망은 ‘너 때문에’ 내가 달라졌다면, ‘너’로 인해 나의 오늘과 내일이 그려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건 뚜렷한 어떤 목적을 가진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진 시간이 만들어낸 어느 한순간의 모습일 수 있다. 지나고 보니 현재의 내 모습이 상대에 인해 완성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한 여자의 꿈을 이루어낸 《연인》이 그렇고, 자신이 가진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뀌게 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어긋나고 실패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도덕의 잣대에 비추어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아내의 불륜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인생의 베일》은 두 번째로 찾아온 사랑을 인정하게 한다.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푸념하다가도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담담하게 바라보게 하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갖고 싶었다는 욕망에 가슴 속의 뜨거움이 꿈틀거리게 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폭풍의 언덕》의 부서진 사랑은 곳곳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관계의 어긋남이 어떤 모습인지 보게 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담 보바리》는 사랑을 몰랐던 그녀의 시행착오를 분명하게 보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사랑과 결혼이다. 사랑했고 결혼했으나 그게 행복과 동의어가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시선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랑이 만들어낸 소유, 당연한 과정처럼 여겼던 결혼. 그게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상대에게 관심 가질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결혼이며, 결혼을 유지하는 길인 것 같다. 물론 그 결혼생활을 위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랑일 것이다. 《오피스 와이프》를 통해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고, 육체가 나이를 먹어가듯 사랑도 시간과 함께 늙어가고 있음을 《위기의 여자》를 통해 말한다. 나에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배우자가 과연 있을까 싶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던 《결혼의 변화》였다. 사랑과 결혼이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버리게 하고 있었다. 결국은, 만들어가는 그 과정과 자세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가지는 가장 부정적인 면이, 그 사랑의 실패에 인해 다시 사랑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돌아서게 만드는 불안과 절망이 아닐까. 이번 사랑이 또 실패하면 어쩌나, 어차피 끝날 사랑인데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시행착오가 시간 낭비가 아닐까, 싶은 여러 가지 우려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 그에 인해 나에게 다가온 사랑 앞에서조차 주저하게 하고 뒷걸음치게 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서 빠진 단어로 고정하는 것.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말들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결핍된 것이 그러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랑의 실패에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랑에 인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결국에는 나를 사라지게 할 순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순간을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 사랑에 인해 나를 발견하고 찾는 것일 테다. 이건 저자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를 사랑함으로써 알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 결핍을 채워주면서 갖게 될 성장. 결국은 내 안의 그 부족함으로 이해 다시 찾게 되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사랑에 주어진 임무이자 사랑이 가진 힘이 아닐까.

 

결국 사랑이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너를 통하여 나를 알아가는 과정. 너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 나의 오만과 편견, 네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깨진 그릇같이 날카로운 질투와 분노, 너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발현되지 않았을 나의 허영심. 너는 나의 거울. 그러므로 사랑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누님의 거울’이다. (346페이지 에필로그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해 저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열심히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해야 할 것 같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꼭꼭 씹어야 함은 기본일 테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리 인생에서 연습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인생과 사랑 앞에서 연습이라 불러도 좋을 배움은 가능하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도 그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조금은 배우고 시작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 문학에 담겨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그 사랑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갈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려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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