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사랑은 완전했던가? 아니.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세상 그 어떤 사랑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세상 그 모든 사랑이 완전했다면, 우리는 평생 한 번의 사랑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완전한 그 사랑 하나만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13페이지)

 

누군가의 사랑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듣게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노 작가가 기억을 소환해 써 내려간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인생의 회한이 차지하는 게 많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때쯤 되면 그때의 사랑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그의 인생도 같이 들려올 것이다. 그의 평생을 통틀어 그때의 사랑이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테지만, 처음 사랑을 겪었던 그 순간만큼의 크기나 무게는 아니리라. 18세의 소년이 이제는 죽음과 가까워진 나이가 되었을 텐데, 몇십 년 전에 겪은 사랑을 온전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기억이란 것이 때로 희미해지고, 항상 온전하게 불려오지 않는다. 삭제되고 첨가되어 새로운 기억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기억을 불러오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변형되었다고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사자 양쪽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확인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폴은 부모님의 권유로 테니스클럽에 참가한다. 혼합 복식의 상대로 수전을 만난다. 18세의 폴과 48세의 수전은 그렇게 테니스 파트너가 되고, 운동 이상의 감정을 나누는 상대가 된다.

 

생각해보자, 서른 살의 나이 차이 커플의 모습을. 어머니라고 불려도 좋을 여자와 누가 봐도 아들이라고 생각할 관계의 연인이 상상되는가? 아니다. 내가 너무 과한 참견을 하는 것 같다. 누구나의 사랑은 지극히 사적이고 그들만이 아는 감정을 나누는 것일 텐데, 겉으로 보이는 연인이란 관계는 다 비슷비슷할지 모르지만, 개개인의 사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며 읽게 된다. 폴과 수전이 어떻게 사랑을 해나가는지 지켜보고 싶어진다.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이는, 도덕적으로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그 어떤 비난도 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모습 대부분과 비슷했다. 폴은 수전을 만나고 속절없이 빠져든다. 그가 하는 처음 사랑의 모든 것을 수전과 함께한다. 이제 좀 세상을 알아도 좋을 나이의 순수한 폴, 스스로 닳아버린 세대에 속한다고 믿는 수전.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안해 보였다. 이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 사랑이라면 이 사랑은 얼마나 지속할까? 생각해보면 나는 이 모든 상황에 불안과 의심부터 생겼다. 어쩌면 나는 폴이 아니라 지금 수전의 세상과 같은 느낌으로 사랑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내가 마흔여덟에 열여덟의 남자를 만날까?’라는 가정을 해보고, 혹여 만나더라도 ‘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할 테지. 결국, 나는 이 상황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사랑이 아니며, 사랑으로 보일지 모를 이 선택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며, 타인이 이 사랑을 선택한다고 해도 모른 척하며 한 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한 마디로, 나는 이 사랑의 주체도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인이 하는 이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 아닌 척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이들의 사랑을 처음부터 불안하게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디를 봐도, 이들의 사랑은 세상의 눈으로 보는 ‘보편적인’ ‘평범한’ 사랑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그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랑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과 세상은 그런 시선을 고정해버렸으니까.

 

삶의 슬픔. 그것은 그가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또 다른 난제였다. 어느 것이 올바른-또는 더 올바른-공식이었을까. ‘인생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니면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어느 것이라고는 결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368페이지)

 

하나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감정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닿으면 폴이 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건, 비단 폴만의 경험이, 폴의 나이에 사랑해서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는 사랑의 과정이 그대로 닮은 채로 서술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수전과 멀리 떠날 정도로 폴의 사랑은 열정적이었지만, 현실이 주는 불안과 결핍은 두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것이고,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이 결국은 우리의 온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술을 싫어하는 수전이 술에 위로받으려고 했던 게, 수전의 머릿속에 잠식한 몹쓸 것들이, 결국은 수전에게 소홀한 일상을 보내는 폴을 나무랄 수 없는 이해를 품는 내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어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상대의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 사랑의 이해를 방해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폴의 입장에서 듣는 그의 사랑은 특별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일흔 즈음의 그가 굳이 기억해내고 싶은 느낌을 알 것도 같다. ‘그때, 나는 이런 사랑을 했었지.’ 수전 이후로 그가 다른 사랑을 안 한 건 아닐 것이다. 때로는 현실에 맞는 사랑을, 어쩌면 수전과 같은 상대로 미친듯한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처음 수전과 나누었던 사랑만큼 특별한 것은 없다고 믿어오지 않았을까? 느지막한 나이까지 그가 혼자인 삶을 이어온 것을 보면, 굳이 다른 사랑을 결혼으로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뭐,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그가 기억하는 수전과의 사랑만으로도 그는 평생 담아두며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추억을 충분히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소설은 장마다 시점이 다른데, 첫 번째 장에서는 폴의 1인칭 시점으로 그가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며 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의 열정적인 사랑과 그의 진실한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 번째 장에서는 사랑이 시들고 그가 느낀 행복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면 찾아오는 고통을 2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가장 읽기 괴로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남의 일처럼 지켜보는 시선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세 번째 장에서는 모든 것이 고통이다. 누가 봐도 그들의 사랑이 끝난 것 같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분위기가 더 씁쓸했다. 심지어 3인칭(‘그들’이라고까지 했다)으로 표현하면서 ‘이제 완벽한 이별만 남았군!’ 싶은, 마치 할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상태. 사랑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그가 이 사랑을 다르게 기억하는 건 아닐까? 그 어떤 질문을 더 한다고 해도, 우리는 완벽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들려주는 누군가의 기억이 맞고 틀림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그가 들려준 그만의 사랑이 맞지 않는다고 틀렸다고 생각되더라도 미워하거나 오해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다, 아직은. 이제까지 우리가 들은 건 ‘폴’의 사랑이지, ‘폴과 수전’의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아직 수전의 사랑까지 듣지 못했음으로, 폴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들었으니까, 그저 폴의 사랑은 이렇게 흘러갔구나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싶다. 그 사랑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사랑을 들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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