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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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한국의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은, 산사를 잘 모르는 나도 들뜨게 했다. 우리나라의 산사만이 가지는 특징, 혹은 느낌이 전해지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다. 지난봄에는 금산사에 갔었다. 노래와 흥으로 무장한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막상 걸어 올라간 금산사에서 본 것은, 제법 큰 법당에 모여든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면서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종교의 의미를 떠나서, 절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고요하게 하며, 마음속 간절함을 표현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여러 나라에 그 나라 고유의 그런 장소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산사를 따라올 곳이 있을까 싶다. (내가 본 곳이 우리나라만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 오래전부터 산사를 예찬해왔다는 유홍준 작가의 마음이, 이번 산사 순례 답사기로 다시 확인하는 것만 같다.

 

이미 만나본 독자도 있을 테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너무도 유명한 베스트셀러이고, 마니아 독자는 1권부터 주제별로 따로 출간된 것까지 다 만나봤을지도 모른다. 이미 선보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뽑아낸, 한국의 산사 20여 곳을 소개한 책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념으로 출간된 책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산사만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요점정리 해주는 느낌이기도 하다. 산사만을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처럼 각 산사의 특징과 매력을 이야기하듯 펼쳐 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를 포함해서,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놓치면 아쉬울 산사를 빼곡히 담아냈다. 특히 북한의 산사를 소개한 부분은 의외였다. 통일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장소까지 소개해주다니!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조경적 의미를 지난 산사의 얼굴이다. 약 반 시간 걸리는 이 5릿길 진입로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속세와 성역을 가르는 분할 공간이자 완충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사에는 반드시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진입로가 있다. (73페이지, 순천 선암사)

 

저자는 산사의 진입로부터는 걸어서 간다고 했다. 요즘에는 길을 많이 정리해놔서, 절의 입구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다리가 아프니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자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산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입로 따위는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그곳'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쌩~ 지나가 버리는 일이 참 가벼워 보이지 않았을까 싶은? 어딘가로 들어갈 때, 대문이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혹은 똑똑 노크를 하는) 일을 생략한 것만 같다. 그곳을 방문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주 많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여기서부터는 구석구석 잘 보고 들어가야 여기를 제대로 보는 거다'라는 의미를 담고 말했다. 이곳과 저곳의 구분 짓는 선을 넘어서 들어가니,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확실히 알 것이라는 예고, 혹은 충고 같은 말. 이 문장을 들으면서 다짐했다. 다음에 다시 산사에 가게 된다면, 절대 진입로를 걸어서 들어가리라.

 

 

수덕사는 결코 볼거리가 많은 절은 아니다. 문화재를 찾는다면 대웅전 하나로 끝이다. 그 밖에 오층석탑이니 뭐니 있지만 대수로운 것이 못 된다. 그러나 덕숭산의 사계절과 그 자연 속에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와 전설이 있기에 우리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감성의 환기가 있고 이성의 일깨움이 있다. (186~187페이지,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사람들은 국보나 보물이라는 명칭 때문에 문화유산의 가치와 멋을 그런 데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봉암사에서 진실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절집의 자리앉음새이다. 경내 어디에서 보아도 우뚝 솟은 희양산 준봉들이 봉암사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깊은 산속에 이처럼 넓은 분지가 있다는 것이 차라리 이상할 정도다. (247페이지, 문경 봉암사)

 

뭔가 유명한 볼거리가 없어도, 우리가 산사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해주는 것 같아 많이 공감했다. 이름 있는 문화재나 특징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산사 특유의 고즈넉함과 침잠하는 분위기 때문에 찾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산에서 뿜어대는 사계절의 바람과 변화하는 색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줄기 하나에도 우리는 종종 특별함을 느낀다. 아니, 오히려 그 고요함과 자연이 그대로 있는 곳을 찾아가는 목적일 때도 있다. 이건 뭐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아니면 그 마음 조금은 다독여주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배치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 자리한 구조들이 특이하기도 하다. 아니면 저자가 말한 봉암사의 위치처럼, 주봉들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배치라니 참 놀랍다. 오랜 시간, 그 중심에 있는 봉암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산사를 유지해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북한에도 절이 있고 스님이 있다는 데서 조금 놀랐다.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인데, 나는 '북한'이란 나라에 많은 부분이 폐쇄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절과 스님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북한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시간 같이 해온 역사가 있었을 텐데, 그 안에서 자리한 절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먼저 떠올리다 보니 다른 종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저자가 1997년 9월에 찾아간 보현사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들린다. 보현사가 북한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 한다.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한 곳인 표훈사가 금강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찰이라는 것도 놀라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표훈사는 금강산의 핵심처고, 금강산의 복부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책으로 수없이 보아왔고, 해마다 한국미술사 시간이면 슬라이드로 비추며 보아온 이 보현사 8각13층석탑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준수하게 잘생겼다. 생각만큼이나 크고 세부의 묘사에도 게으름이 없고 마감질에 불성실은커녕 추녀마다 풍경, 북한말로 바람방울을 무려 104개나 달아매는 치밀성을 보여주고 있다. (372페이지, 묘향산 보현사)

 

작가가 전국을 돌면서 본 많은 산사 중에서도 특히 애정이 묻어나는 곳을 이렇게 들려준다.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볼 게 없는 산사는 없을 터였다. 전국 어느 산을 가더라도 만나게 되는 게 산사다. 우리나라만의 전통인 산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나마 전달하면, 이 내용을 접한 독자는 알아서 더 많은 산사와 절의 자태, 산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우리나라의 산사가 등재된 게, 세계에 우리나라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가 산을 찾을 때 절의 모습, 지붕의 이음선 하나, 기둥 하나, 배치, 그 땅에 뿌리내린 나무 등 산사를 이루는 많은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기를 바라게 된다. (나부터!) 종교를 떠나서 그냥 그곳에 자리한,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되어온 산사를 느끼는 것이면 충분하다. 저자가 이 책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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