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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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374페이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아니, 특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매일 뉴스에서 보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뉴스의 내용은 역시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 사는 주변의 이야기를 뉴스라는 보도로 다시 듣는 것뿐이었으니까. 프레드릭 배크만이 전하는 또 하나의 뉴스를 듣는 기분이었는데, 뭔가 이상하게, 묘하게 달랐다. 이게 프레드릭 배크만 식의 공감 능력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의 출간작을 계속 읽어왔음에도 이런 느낌은 생소하다. 잔잔한 감동에 훈훈한 마무리가 여운으로 남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게 그동안 그의 작품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프고 씁쓸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 현실인 것만 같아서 서글프게 한다. 사건과 상황에 무력해지는 기분에 내가 내민 손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고개가 숙여졌다. 왜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 싶은 무의미한 질문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보도된 내용 그 이후, 마침표 다음의 이야기까지 듣는 것만 같아서 설명하기 힘든 뭉클함이 다가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의 목소리가 커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돈과 권력이 피해자의 숨을 죽이고, 가해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가는 일. 너무 흔하게 들어와서 새롭지도 않은 이 일이 이곳에서만큼은 다르게 들려온다. 작가가 전하는 문장의 힘이었던 걸까. 어떤 상황을 전하는 이야기인데, 그 사이사이에 작가의 읊조림 같은 문장들에 그들의 상황 속에 독자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아주 가까이서 듣는 분위기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1페이지)

 

의미심장하다.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려는 듯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베어타운,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면서 총소리를 울리게 했는지 듣고 나면 우리 사는 세상을 한 번 더 예리한 눈길로 둘러보게 된다. 비극의 시작인 하키, 하키로 하나가 된 마을, 하키와 마을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익의 산물들, 하나의 집단이 되어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이야기다.

 

베어타운 그곳의 힘이 되는 건 하키다. 케빈은 하키 유망주이기도 하고, 힘 좀 쓴다는 집단의 자녀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자기네 하키 팀이 이기기를 응원한다. 응원의 목소리에 답이라도 하듯 그들의 팀은 승리한다. 그리고 축배를 든다. 이겼으니 무조건 다 된다는, 무엇을 하더라도 용서가 된다는 무임승차 티켓이라도 얻은 걸까. 그날 밤, 축제가 한창인 것 같은 분위기를 즐기며 웬만한 일에는 눈감아 줄 수 있다고 한껏 아량을 품어주던 그 날. 하키 유망주 소년이 십대 소녀를 성폭행한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목격했다. 이야기는 그 이후의 장면에 주목한다. 가해자의 행동, 피해자의 공포, 목격자의 침묵. 힘을 가진 이들이 다수의 목표를 위해서 피해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식의 해결을 위해 모두가 눈을 감고 피해자의 아픔을 모른 척한다.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으려고만 한다. 정작 무엇이 아이를 해치는 일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덮어주기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일인 걸까? 당장 오늘의 안위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봐야 할 순간의 모습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그런 일의 결과는 지나고 나서야 아는 법이니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때(과거의 사건)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되었다는 것을 알고 후회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이미 먼저 세상을 살아온 부모가, 어른이 해주어야 할 일을 망각하는 순간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로 혼란을 품고 성장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알지 못하는 감정을 배울 기회가 사라진 채로. 그러니까 이런 공감 능력.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245페이지)

 

요즘 일어나는 미투운동의 기저에는 이런 감정의 고통이 자리한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지나간 일이고 기억하지 못 하는 일로 흘러갈지 몰라도, 피해자에게는 그 일이 일어났던 순간의 고통 속에서 멈춰 있는 시계를 보는 일일 것이다. 그 순간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지 못한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어떤 오늘을 보내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감추고 누르고, 모른 척하는 일은 비겁하고 이기적인 일에 멈출 뿐이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온 하키에 대한 애정이 자식의 고통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도리를 무시한 채로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물 선생님이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391페이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 각자의 인생이 펼쳐지겠지만, 베어타운에서 벌어진 그 일을 누구나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켜야 할 것들, 간직해야 할 말들이 있는 것이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번에는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아포리즘처럼 가슴에 와 닿아서다. (그렇다고 그의 전작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유독 이번 작품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의미다.) 쇠락한 작은 마을이 버티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데 필요한 무언가가 있겠지만, 그 무언가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뭉침이겠지만, 적어도 불의 앞에서는 정의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마을의 안위를 위해서라는 비겁한 변명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

 

특히나 이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건, 결말이 의외였다는 거다. 나는 마지막에 피해자가 말했던, 단 하나의 총알만 필요하다고 말했던 부분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예상했다. 그렇지. 피해자와 가해자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끝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내가 많이 극단적이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마야가 그 하나의 총알을 사용하던 목적을 알고 나서다. '아, 꼭 누군가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고서도 증오를 표현하고, 복수의 감각을 갖게 되고, 가해자를 벌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첫 페이지 첫 단락의 문장들이 담은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의 이마에 댄 방아쇠가 어떤 답을 제시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집단 속에서 사는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 피해자가 되어서도 정당한 목소리를 내가 어려울 때, 인간의 이기심을 누를만한 답을 찾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버거울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되는 태도이기에 의미가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식의 철학적 사유에 감동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인간다움이 뭔지 또 한 번 생각할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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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21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일어나는 미투운동이 떠오르는 소설이군요 마침 이런 소설을 쓰다니... 아니 예전이라고 이런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니겠습니다 작은 마을이 하키로 더 알려지는 것보다 작은 마을에 함께 사는 피해자 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그런 결정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될지... 피해자는 자꾸 피해만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을 다 읽어 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지금까지 나온 것하고 조금 다른 것도 같지만, 아주 다르지 않겠지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희선

구단씨 2018-04-23 00:13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라는 이름을 달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많이 안타깝고, 아픈 일이었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을 저도 한두권 읽어봤는데요. 전작보다 이 작품이 훨씬 무게감 있고 좋던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