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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광고 1984에서는 한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모두 앉아 스크린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다.




스크린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 우리는 ˝정보 순수화 지령˝의 영광스러운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순수한 이데올로기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




모든 노동자들이 꽃을 피울 수 있고, 모순된 진실을 전하는 해충들로부터 안전합니다.



우리의 ˝사상 통일˝은 어떤 함대, 군대보다도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입니다, 한개의 바람, 한개의 결의, 한개의 대의만이 있습니다.



우리의 적들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혼란을 통하여 그들을 무덤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그 순간 스크린에 어떤 망치를 든 여인이 망치를 던지며 성우는이렇게 말하고 광고는 끝난다.



‘1984년 1월 24일, 애플은 매킨토시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가 1984가 되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광고는 1984년에 슈퍼볼 광고타임에 방영된 것으로 시점은 조지오웰의 ‘1984‘이다. 광고 속 나오는 군중,스크린,여자, 그리고 그녀를 쫓는 경찰들은 그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조지오웰의 ‘1984‘는 1949년에 출판된 책으로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1984‘에선 3개의 초국가가 출현한다.



그리고 그 국가들 중 주인공 윈스턴이 속한 국가는 ‘오세아니아‘이다.



오세아니아는 영사(영국 사회주의)를 대표 사상으로 하고 빅 브라더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모든 국민들로(노동자 계층 제외) 하여금 그를 절대 복종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또한 필요하다면 역사를 언제나 왜곡시키고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갖지 못하게한다.



그 방법은 다른 2나라와 합의해서 소전투만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그 전투가 엄청나게 큰 것이라 부풀려 적국에 적개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잉여생산물이 생기지 않는 경제체제를 갖춘다.



그리고 나라의 대다수인 노동자층은 아예 교육을 시키지 않는 우민화 정책을 펴 노동자층이 불만을 갖지 못하게 한다.



만약 이 사상에 반하는 이가 있다면 즉각 알고 정신개조 및 후에는 존재를 중발시키기 위해 사람들(노동자층 제외)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현상을 만들었고 텔레스크린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 뿐만아니라 사상경찰, 헬기 등으로 사람들을 감시한다.



이런 체제에 불만을 갖게된 윈스턴은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해 저항자라 생각되는 오브라이언이라는 국가 주요 요직에 앉은 사람을 접촉한다.



그리고는 윈스턴은 그의 여자친구 줄리아와 국가의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국가의 전복을 꿈꾸며 몇년을 보낸다.



그러나 사실 오브라이언은 저항자가 아니고 사상범 윈스턴 적발을 위해 저항자인 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상범 윈스턴과 줄리아를 감옥에 넣는다.



그 감옥에서는 오브라이언 주도의 고문과 협박, 정신개조가 이루어진다.



그런 고통스런 과정 끝에 윈스턴과 줄리아는 서로를 배신하고 정신개조를 받은 결과로 궁극적으론 빅브라더에 대한 증오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변하며 소설은 끝난다.




다시 애플의 1984로 돌아와보자.



애플은 광고를 통해 스크린이 IBM이고 스크린을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사용자들, 그리고 망치를 던지는 여자는 애플 자신이라 한다.



당시 컴퓨터 분야는 IBM이 독식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못마땅했던 애플은 매킨토시라는 제품으로 사람들을 IBM에서 구원해주겠다는 취지로 이런 광고를 만든다.



그리고 이 광고는 매우 성공해 매킨토시를 많이 팔게 했고 광고상 역시 받았다.



이 광고는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와 더불어 애플의 도전적이고 반항아 기질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요즘 애플의 광고에서는 더 이상 반항아나 도전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주로 제품을 소개하는데 더 초점을 둔다.



광고는 기업 스스로를 몇십초안에 소개하는 자기 소개서와 같다.



그리고 애플의 자기 소개서는 많이 달라졌다.



애플이 도전적이던 초심을 잃었는지 아니면 빅 브라더가 되어서 이제 예전과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1984광고를 하던 애플이 가장 애플스럽다.




물론 애플은 전처럼 작은 기업이 아닌 세계를 이끄는 위치에 서있다.



그래서 더 이상 반항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고 안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애플스럼움은 역시나 도전적인 태도이다.



애플이 더 이상 도전자가 없다고 느껴져도 애플 스스로를 경쟁 상대라고 여겨 2010년 아이폰 4처럼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다시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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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http://naver.me/GrxXPfNY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주인공(아마리)은 20대 후반 여성으로,살아가며 무엇을 열렬히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삶에 목표도 없이 살아갔다.



그렇다고 주변에 진지한 얘기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녀의 삶은 살아있으니까 사는 삶이었다.



그러다가 29살 생일잔치를 혼자 하다가 갑자기 슬퍼져서 자살을 하려 하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없어 실행하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티비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1년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호화롭게 살며 마지막엔 도박으로 돈을 모두 쓰고 호텔에서 30살 생일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그녀는 돈을 모아야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닥치는대로 돈을 벌어야했다.



그녀는 낮에는 파견직으로 회사를 다녔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을 하며 주말엔 누드 모델을 했다.



그런 업을 처음 할 때는 부끄러워해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어차피 죽을껀데‘하고 꺼리낌 없이 당당히 일을 했다.




그런 마음이 지속되다 보니 그녀는 전에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만들었고 여러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삶이 전보다 활기차서 일을 줄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목표가 있었기에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일만 하며 살은 아마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최대한 호화를 누리며 마지막 도박을 한다.



그녀는 일본에서 미리 연습을 해갔기에 어느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녀는 약 1만5달러를 벌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순 이익은 5달러. 비록 그녀의 순이익은 달러지만 그녀는 기뻐했다.



처음으로 목표를 이루기위해 살았고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이 5달러였다.



그녀는 그 5달러를 새 시작으로 인식했고 죽기로 한 계획을 버리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기존의 일을 다 정리해 새 직장을 찾아 정착했다 .



그리고 소설 끝부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인생의 마법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늘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과연 오늘 하려는 일을 하고 싶어 할까?‘


그리고 너무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때는 뭔가 달라져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제가 곧 죽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기대, 자부심, 좌절, 실패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을 안는 척 하는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죽을껀데 대충해. 열심히 해봤자 어차피 죽을거 아냐?‘



그렇지만 그들은 죽음을 알지 못한다.



아직 죽음이라는게 번뜩 다가오지 못해서 느끼지도 못하고 자각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두었던 잡스와 아마리는 죽음이 정말 눈 앞에 다가오자 이대로 죽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을때 무언가를 끊임없이 한 것이다.




‘늦바람이 무섭다‘라는 관용구도 있다. 그들이 늦바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지금 아니면 다가올 미래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보다는 더 늦기전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울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해야 삶을 보람차게 살고 나중에 죽기 전에 엄청난 후회를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문학적 가치도 있지만 인생 교훈도 주는 책이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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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me/5bFK6U3Z



저 링크는 블로그인데 정리가 도 잘 되어 있어요!

완전 오랜만에 글 쓰네요!!ㅋㅋㅋㅋㅋ

요즘 사회는 무한경쟁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을 끝낼수 있다.




무한경쟁 속 사람들은 뒤쳐지기 않기 위해 항상 남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한다.



그래서 항상 그들의 목표는 자신이 세우는 경우는 없으며 항상 타인을 바라보는데 그 과정 속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저 사회의 일부분으로 남겨진다.


이런 삶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은 나름대로 쇼핑을 하거나 게임과 같은 행위를 하며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외부에서 온 것으로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사람들의 지침과 공허를 해결할 근본적 수단이 절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내면을 채워야 하는데 그 방법은 명상이다.



사람들은 명상하면 경직된 자세, 금욕, 단식과 같은 고행을 생각해 꺼려한다.



사실 저런 방법은 매우 틀린 명상의 방법이다.




금욕이란 욕망을 참는 다는 것이다.



성욕을 예로 든다면 잘못된 수행자들은 명상을 한다고 성욕을 참는다.



사실 성욕을 참는다면 계속해서 성적인 생각만 들 뿐만 아니라 그 억압된 것을 식욕으로 해결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옳은 명상을 한다면 성욕을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단식 역시 옳지 못한 방법이다.


육체는 우리가 명상을 하는데 돕는 도구인데 그 도구를 적이라고 말하며 혹사시키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단식은 절대 옳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가끔 명상에 매우 깊이 들어가 음식을 먹지 않는 수행자도 있다.



그들은 단식을 하는게 아니라 깊은 명상에 빠졌기에 육체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단식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옳은 명상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선 뇌는 의식과 무의식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우리의 열망인 궁극적 축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은 명상하기 전 마음속에 결심하는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천천히 폐를 숨으로 가득 채우며 ‘난 명상을 체험하리라. 난 깨어있으리라’를 반복해서 되뇌인다.



그리고 폐가 가득 차면 숨을 몇 초간 참으며 역시 되뇌어본다.



그리고 내쉰다.



내쉴때 역시 되뇌이는데 폐에 숨이 없을 때 텅빈 느낌을 관찰해 보아야 한다.



이 과정이 1번인데 이 것을 5번 반복한다.



5번의 반복후 감정에 초첨을 맞춰 자신이 매우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며 모든 세포의 생생함과 같은 기쁜 상상을 2분간 한다.



2분간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 뒤 본격적인 명상을 시작한다.



우선 등을 펴고 몸의 동작을 멈추며 긴장을 푼다.



그리고 고요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 마쉬는데 이 숨의 출입을 관찰해야 한다.



관찰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장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배 윗부분을 보거나 코 주변에서 호흡이 나가는 것을 보는 방법이 있다.



편한 방법을 택하면 된다.



이렇게 10분간 호흡을 한다.



이렇게 한다면 마음은 더 고요해지고 기뻐진다.




명상을 통해 얻은 평화와 기쁨을 24시간 유지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이 날 때 호흡을 천천히 하며 코 아래에 의식을 모으며 명상을 하며 느낀 감정을 다시 살려 본다.



이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한다면 이것이 쌓여 언젠간 24시간 동안 명상의 에너지에 쌓인 상태로 살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잠자기 전 누워있는 동안 명상을 하는 것이다.



역시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도 되고 둘 다 해도 좋다.



그러나 이 방법을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불타는 마음을 가진 자들인데 그들이 명상을 한다면 마치 화살에 돌을 매달아 놓은 것과 같은 이치라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가라 앉히기 위한 3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육체의 정화 둘째는 사념의 정화 셋째는 감정의 정화이다.




우선 육체의 정화는 에너지부터 알아야 한다.



사람은 감정이 있고 감정은 에너지인데 그것은 사회로부터 자제를 할 것을 요구받고 억압을 받는다.



억압된 에너지는 육체에 일종의 블록이 돼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블록의 정화를 위해선 이렇게 한다.



우선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육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소리를 지르든 울든 춤을 추든 지칠 때 까지 육체가 원하는대로 한다.




그리고나서 육체가 지친다면 그것을 관찰해본다.




이것이 쌓인 블록을 날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살면서 블록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쌓이도록 방치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 때 부터 창조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교육 받아왔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에너지가 있어 에너지를 사용하고자 꽃을 꺾길 원했지만 그것을 하지 말도록 제제를 받아왔다.



그 제제는 억압을 낳고 결국 에너지 블록을 생성시킨다.



그럼 창조적 사용은 무엇일까?



만약 아이가 꽃을 꺾길 원한다면 못 꺾게 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고 대신 종이를 쥐어주며 꽃과 같이 만들어 보라 제안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시를 써 본다던지 작곡이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은 다양한 창조적 행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여러 예술가들이 독신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성에 대한 감정은 창조로 인해 다 날라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창조적 활동을 하며 우리는 블록들을 날려야 한다. 그래야 육체의 정화가 일어나고 명상을 할 수 있다.




육체의 정화 후엔 사념의 정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의 정신없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과 정신신없는 생각을 무엇일까?



정신없는 생각은 바로 불순한 사념이고 세가지가 있다.



돈, 섹스 , 권력이다.



그리고 좋은 생각은 순수한 사념 즉, 진리,선,아름다움이다.



우리는 보통 불순한 사념을 머릿속에 넣고 산다.



생각해 보라.


언제 진리,선,아름다움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그래서 명상을 위한 사념의 정화는 3단계이다.




첫째는 자신의 사념이 어디에 초점을 두었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순수한 사념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면시간이 날 때마다 선,아름다움,진리에 대해 명상하고 자신의 일을 하기 전에 그 3가지와 조화를 이룰수 있는지 사색해 보아야한다.




이 말은 돈. 섹스. 권력에 대해 생각을 중지 시키라는게 아니라 아름다운에 대해 생각을 한다면 돈,섹스와 같은 추한 마음의 상태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차츰 불순한 사념이 약화 될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사념을 지켜보는 것이다.



첫번째 단계에서 불순한 사념을 약화 시켜도 문득 불순한 사념이 생겨날수 있다.



그런 우리는 관찰을 해서 불순한 사념을 거부하고 순수한 사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계속 순수함을 유지한다.



세번째 단계는 진리,선,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불꽃속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순수한 사념에 다가가기와 순수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에 다가가기이다.



자연은 결코 불순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이나 폭포를 보며 머릿속 쓰레기를 치울수 있고 나무들과 같이 서있음으로 우리는 수많은 나무 중 하나라는 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사념을 순수히 유지한다면 나무를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알게 되는 것처럼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감정의 정화를 해야한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 불리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기 보다는 감정(증오,분노,사랑)을 토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시 순수한 감정과 불순한 감정을 알아야 한다.



순수한 감정이란 존재의 상태이며 내면에서 나온다.



즉 사랑과 같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누가 시키거나 아이가 자신이 준 사랑을 보답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준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르는 정욕은 사랑이 아닌 불순한 감정이다.



불순한 감정은 외부에서 오는데 정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은 자신 것이어야 한다.



가령 자신은 누군가 자신에게 욕이나 칭찬을 해도 감정이 같아야 순수한 감정이다.


이 순수함을 갖춰야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순수한 감정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알아야 한다.



사랑의 범주에는 친밀한, 자비, 기쁨, 감사함이 있다.



친밀함은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해보는 것이다.




사람은 어려우니 먼저 나무, 강과 같은 자연에 사랑을 주며 차츰 사람에게도 사랑을 나누면 친밀함이 성장해 적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친밀함과 같이 사랑의 범주에 속한 자비심은 사소한 말, 행동으로부터 기를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을 증가시키는데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비심을 기를수 있다.


자비심을 통해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면 그 행복은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범주의 마지막인 감사함은 태양에 대한 감사함, 공기에 대한 감사함, 하늘에 대한 감사함, 흙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감사함을 해야 역시 사랑이 솟는다.



사랑은 명상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도 중요하다. 사랑은 기쁨을 낳는다.



기쁨은 슬픔과 같이 슬픔이다.



절대 무언가 일이 있어야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컵에 물이 반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반이나 있다고 기뻐할 수도 어떤 이는 반 밖에 없다고 슬퍼할 수도 있다.


기쁨과 슬픔은 단지 인지의 차이이며 습관이다. 이 습관을 기쁨 쪽으로 기울이면 삶이 더 행복해지며 사랑을 할 수 있다.



이 3가지의 정화 작업과 명상을 한다면 충분히 삶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육체,마음,감정의 텅 비어있음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스승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각자의 삶이 있기에 명상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더 깊은 체험을 하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고 여기에 제시된 내용만 읽고 싶은 사람은 역시 여기만 읽어도 좋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만 해도 삶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명상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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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인데 읽기 더 편하게 사진도 있고 문단도 정리해 놨어요..‘ㅋㅋㅋ)



국화와 칼

국화와 칼은 1934년 Ruth Benedict(루스 베네딕트)라는 인류학자가 출판한 책이다.


책의 출판 계기는 2차세계 대전의 막바지였던 당시,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국무부에게 일본을 연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자에게 요청한 까닭은 미국은 2차세계 대전을 참가중 이었는데 미국의 적인 추축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중 일본만이 유일한 동양권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서구권이라 미국과 어느 정도 문화가 비슷해서 전시에도 서로 이해가 맞았지만 유일한 동양권인 일본은 문화가 매우 달랐기에 일본군의 행동이 미국 입장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구권 병사가 포로가 되면 즉시 생사를 알리거나 승산이 없는 전투에선 항복을 하지만 일본군은 포로가 되면 자결을 시도하거나 질게 뻔한 전투라도 천황의 이름을 걸고 목숨을 바쳐 전장에 나간다.



이런 행동을 목격한 경험이 없는 미국은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독일, 이탈리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 방식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서양의 눈으로 보았을 때 기이한 행동을 하는 원천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그들은 루스 베네딕트 교수에게 연구 요청을 했고 그 결과로 이 책이 출판이 되었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일본인의 행동과 그런 행동의 뒷받침이 되는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사실 일본은 한반도(현 대한민국)와 중국, 서양 등등 교류를 많이 했다.


그 과정은 친선과 문화 전파를 위한 교류도 있었고 일본의 욕심에 의해 발생한 전쟁으로 생긴 교류도 있고 타국의 무력에 굴복해 문호를 개방하며 발생한 교류도 있다.



이렇게 일본은 다양한 문화와 교류를 해왔다.



특히 중국, 한국과 교류를 많이 해서 같은 동북아시아권 나라끼리 문화가 닮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매우 다른 점도 많다.


오히려 일본은 타국에서 받은 문화를 취한 후 그것을 일본만의 형태로 전환시켜 일본 고유문화를 발전 시켜왔다.



그 고유문화는 매우 일본적이어서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중국, 대한민국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일본 문화는 서양인 뿐 아니라 동양인 역시 이해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두고 혹자들은 그런 문화를 미개 하다고 평가를 해 버린다.



그러나 미개한 문화는 없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인데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이 본인들에 있어 편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방식이 불편했다면 사람들은 다른 방식을 채택 했을 것이고 불편한 방식은 퇴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평가할 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평가의 주체는 서구권 국가들이다.



인정하든 안 하든 그들이 세계 문화의 주도자인건 틀림없다.



그들의 음악기술을 배우고 패션을 카피하고 의학 기술도 따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기에 서구권이 세계의 주도자인데 이런 평가자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일본의 문화는 항상 인정 받아왔다.



특히 일본의 문화를 두고서 미개하다는 평가보다는 아름답다, 평화롭다, 착하다 등등 침착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평가 받았다.



심지어는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지는 우리는 궁금증을 가져 봐야한다.



우선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추축국으로 참가해 용납할 수 없는 비인간적 행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야만적 행위를 벌였다.



즉 착함과는 멀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개개인은 지나갈 때만 해도 ‘ 실례합니다 ’를 연발하거나 인사성도 밝아 매너가 있고 착해 보인다.



이런 애매한 태도 때문에 그들이 착한지 나쁜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들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물론 개개인이 착함과 나쁨이 없는 로봇과 같이 감정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도 생각을 가지지만 그것을 숨긴다.



이는 일본인은 타인의 시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것은 매우 병적이어서 마치 일본인이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결혼 하는 것도 꼭 결혼을 하고 싶어서 라기 보단 부모가 자식이 대를 잇지 못하면 잇지 못했다고 사회에서 일종의 조롱을 받는 게 두려워 자식을 결혼 시킨다.



그리고 나서 자식이 결혼하면 일종의 안도감을 얻는다.



이 눈치 보는 행위가 심화되면 전쟁에서 패잔병이 끝까지 천황을 위해 싸우려 하다가도 천황이 그만 하라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 지는데 이 것 역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일종의 획일화라 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전쟁에서 포로가 자결하는 이유도 본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이 두려워 자결하는 이유이다.



이를 보고 왜 서구의 일본에 대한 판단이 평화롭고 조용한 나라라고 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미국에 의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에서 농업국가로 탈바꿈 해 전쟁이 가능하지 않은 나라로 탈바꿈 할 것을 강요 받았다 (물론 후에 한국 전쟁 발발 후 군수물자를 팔며 농업 국가를 탈피 했지만).



그런 요구를 받고 일본은 수용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눈치 보기에 바뻐 반발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 마치 평화로운 나라인 것처럼 생각이 들게 착각을 부른다.



하지만 서구권은 그런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눈치 보기에 바쁜 국민성을 가진 나라라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 하나가 전쟁을 하자고 선동을 하고 그것이 여론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고 조작만 한다면 일본인은 눈치를 충분히 본 후 전쟁에 열렬히 지지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를 지닌 일본을 알아야 그들이 왜 우리가 보았을 때 기이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더 수월할 것이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일본과 문제없이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고 더 나아가선 과거 문제도 청산 할 수 있다.



특히 양자 간의 관계 회복은 한 쪽이 일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된다.



그 모든 과정의 기초인 상대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 이 책은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일본인의 문화와 그 문화의 발생 배경을 다루기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갸우뚱 하다가도 배경을 읽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출판 당시 저자가 집필한 내용이 모두 참이 아닐 수도 있고 또한 서양인의 관점으로 쓴 내용이기에 동양의 철학이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필과정에서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은 벌써 2017년인 지금으로부터 83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니 그 말을 따르면 벌써 8번이나 바뀌었다.



일본 역시 83년 동안 여러 변화가 있어 이 책의 내용이 현재의 현상과 모두 부합하다고 말 할수 없다.



그들의 문화는 전에 없었던 자발적 저출산이나 점점 많아져 가는 소외되는 사람들, 인구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노인의 증가와 같은 여러 현상들이 발생함에 따라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한 큰 틀을 다루고 큰 틀은 수십 혹은 수백세기 동안 진행되어 오며 형성이 된 것이다.


갑자기 그것이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뀐 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경우다.


그리고 아직 일본인의 태도를 보면 83년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보인다.



그 예로 아베 총리가 헌법을 바꾸려 해도 일부만 그에 반대하고 나머지는 침묵을 지키는 행위나 국제 사회에서의 위치도 자발적으로 먼저 의견을 제시하는 것 보다는 미국의 의견에 동조해 따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일본에 과거에 없던 사회 현상이 생기고 있지만 그것이 일본인의 습성을 바꿀 정도의 수준은 아직 아니기에 과거나 지금이나 갖고 있는 태도는 유지되고 있다.



물론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이 조금씩 모여가 일본인의 큰 틀을 바꿔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없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본인은 83년 전의 틀을 유지하고 있음으로 이 책을 읽음으로서 현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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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져스 2: 에이지 오브 울트론


http://naver.me/xcPePY9x


어벤져스는 여러 히어로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막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어벤져스 1에선 외계인들의 침략을 막았고 2편에선 인공지능과 대결하게 된다.


이 인공지능의 이름은 울트론이고 이를 만든 사람은 어벤져스의 멤버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다.

토니 스타크가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울트론을 만든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역시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울트론이라는 인공지능으로 실현 시키고 싶어했지만 울트론이 그의 소망과는 반대로 자의로 스타크를 배반해서 인류를 해칠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어벤져스는 다시 결합해 울트론을 물리치는데 그 과정에서 동유럽에 있는 가상의 국가 ‘소코비아’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산산조각이 단순히 그 국가가 전투의 배경이 되서 건물 몇개가 무너지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면이 하늘로 들려 바닥으로 떨어져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버린다.


이 파괴적 행위는 울트론이 했지만 그의 창조자 아이언맨이 없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것이다.


게다가 어벤져스 2이후 영화를 보면 아이언맨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스크린엔 나오지 않았지만 국가에 의해 일종의 벌금이나 형을 살았다 할 지라도 그 강도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벤져스 2 이후 영화들에서 스타크는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사는데 그것을 보면 그는 책임을 아예 지지 않았거나 강제성에 의해 대가를 치루었어도도 강도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례가 아이언맨이 아니라 구글이고 소코비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었다면 어떘을까?


구글이 무기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폭발시켜 한국 절반을 날려 버렸다.

그러나 구글은 여전히 건재하다.


만약 이렇다면 한국 국민들은 기가 차서 제대로된 사죄와 엄청난 보상금을 요구하는것은 물론, 일종의 구글 불매운동을 했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아이언맨으로 돌아와서 아이언맨은 큰 책임을 지지 않았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울트론을 제압했다는데 만족하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죽인 무죄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고 정의의 대변인으로 앞서 지구를 지키는데 그런 인격의 소유자가 영웅 축에 속할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다.


어벤져스는 지구를 지키라고 결성된 조직이며 영웅이라 불린다.


영웅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때려 부수는 것을 좋아할 뿐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사람을 죽여도 죄책감이 없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가졌기에 때려 부수는 대상을 인류로 돌려 인류를 해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런 태도는 영웅의 태도보다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과 다를게 없다.


그래서 아이언맨을 영웅의 위치에서 제명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

사실 저도 아이언맨 좋아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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