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이쿠야,어머나, 이를 어째!!!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제는 같이 사는 조카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하긴 이건 잊은게 아니라 미처 챙기지 못해 생긴 일, 유구무언!

 

신간평가단 10기 마무리 작업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문자만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허겁지겁 늦은 감사를 드리네요.

 

바빴고 바쁜 중에 숙제 처럼 읽어야 하는 책읽기가 기껍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공공의 장소에 내 글이 올라있고, 내가 내 글을 봐야 하는 것이 몹시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아주 혼이 났습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하지만 또 잊혀질까봐 두려운 것이 사람인지라... 내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니 이게 다 보석이네요.

 

그중에서도 최고의 책을 한 권 고르라면 나는 <16인의 반란자들>!

'지성'과 '현실'이 한 몸으로 뿜어내는 열정은 충격과 기쁨이었지요. 무엇보다 내가 고르지 않은 책이라서 기뻤던 책. 어쩌면 결코 읽지 못했을 책이었지요. 크, 아찔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함께 책읽는 기쁨을 만끽했지요. 에세이 평가단 여러분들이 이 책을 골라주지 않았더라면 못읽었을 책. 함께 활동했던 에세이 평가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그리고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 <꿈꾸는자 잡혀간다><오래된 새책>을 골라 봅니다.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숱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그 미지의 세계 때문에 책을 다시 들겠지요. 그 기다림과 설렘의 순간은 늘 짜릿합니다. 누군가 보내주는 책을 기다리던 순간을 한동안 기억하겠지요. 

 

오늘 아침, 우리집 베란다는 아이 학교 과제로 심은 강낭콩이 곧 만개할 것 같은 떨림의 순간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모두가 이 순간에 계시길. 건강하게^^

 

 

               

 



 
 
 
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은밀한 사귐의 시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해 애달퍼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확 끌어당김의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밀당의 시간.

책 밖에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세워놓는 매정한 '주름'의 시간도 있다. 인연이 아니면 그만 두면 될 일이건만 구애의 시간은 고통 조차 추억할 사건으로 만든다.   

 

김영민의 <봄날은 간다>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책 밖에서 그의 기척을 탐지하기 위해 온 몸의 촉수를 뻗쳐들고 있어야만 했다.

무수한 산책길에 동행하면서 그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불화'하면서 '이드거니' 스며드는지 눈 똑바로 뜨고 하나 하나 지켜보고 더러 더러 따라해 보기도 했다.  

그가  찔레꽃을 들여다보면 나또한 찔레꽃을 들여다보고, 걷기를 통해 만나는 우연이  불가능한 내 동네를 한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닫는다. 산이 아니라고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걷지 않는 내가 문제다. '해넘을녘'의 강가의 는개를 볼 수 없다고 해도 세상 모든 곳에 황혼은 존재한다.  

이렇듯 순간에 집중하려는 나의 노력은, 그러나 휘딱 부는 바람한점에 흔들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의 책 마디마디마다 끼어있는 숱한 이론(혹은 철학)의 역습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구애자를 한방에 훅 보내버릴 만큼 막강한 제 삼자(들)다.  

듣다보다 처음인 우리말도 얄미운 방해꾼이고 일상적 말이 한자말로 떡하니 세워지니 독자는 그 또한 어려운 사람 앞에 선 아이나 촌사람이 된 것 같다. 참 어려운 상대다. 

 

그동안 읽었던 저자의 책들이 이 책과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대해 급한 마음이 든 건 이 책이 그 중 가장 개인적인 글들이기 때문이다. 철학가이기 전의 생활인으로서의 그를 엿볼 수 있는 기회. 전주와 밀양에서 산책하며, 가르치며, 만나며 궁글린 그의 생각들이 푸짐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가가기 힘든 것은 그만큼 여기 실린 글들이 짧은 만큼 여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많고 내면은 거울 같다.  여백은 독자의 자발적인 이해와 고찰, 생각으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다.  

 

간신히 한 발 다가가면 슬쩍 나 앉는데 그게 저만치다. 갈테면 가라지 하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인데, 사랑은 그럴수록 힘이 더 세진다. 그러니 때로는 꼭 그에게 가고 말리라는 심정으로 여백을 채워가기도 했다.  그렇게 놓아주지 않는 것이 <봄날은 간다>의 매력이고 저자의 힘이다.

미처 알아듣지 못해 민망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이런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여전히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 내 공부에 절망했다.

 

책 한 권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시한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한 권에 대한 독서가 어떤 식으로든지 내 삶에 '주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저자가 사랑하는 찔레꽃이 내 주변에도 피기 시작했다. 나 또한 특별히 아끼는 꽃이다. 그는 꽃에서, 은행나무에서 신을 보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 꽃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시대와 창의적으로 불화하면서 사는 것, 알면서 모른체 하기의 진경을 나는 아직도 가늠할 수 없어서 저자의 책 밖에서 서성대는 외로운 혹은 애처로운 구애자다. 스승이 너무 커서 올려다보다가 목이 꺾이게 생긴 늦되다 못해 될 성싶지 않은 제자마냥, 그또한 과분하니 '독애'하는 저자에 대한 독자의 짝사랑이다.

  



 
 
자운영 2012-05-18 18:04   댓글달기 | URL
글 속에 녹아 있는 수수꽃다리님의 감성을 읽어내고 공감하며 기뻐하는 사람,
때론 문득문득 느껴지는 치열한 좌절에 마음이 아린 사람,
자학하지 못하게 옆에서 응원하고 싶은 사람,
수수꽃다리님에게도 열혈독자가 있다는 걸 잊지마시길......
아! 담백한 생각과 섬세한 표현! 멋지고도 다정한 그것을 느낄 수 있어
열혈독자는 행복합니다
 
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월든>을 다시 읽었다.

 

<월든>을 읽었지만 소로우를 비로소 만난 것이 즐겁다.

누가 누가 읽었더라는, 누구의 서재에 이 책이 있더라는 말에 기대지 않고도 이제 이 책은 나의 책에 꽂아둘 수 있어서 기쁘다.

 

소로우가 전하는 메세지는 간소하게다.

옷도 가구도 집도 자연의 모습에 가깝게 사는 것이 간소한 삶의 본질이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그가 지은 그의 오두막은 비를 피하는 나무 그늘이거나 인디언의 천막이다.

문앞까지 자연을 끌어다놓고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 수 있음을 실험하고 성공한다.

 

<공자> <맹자>가 대표하는 동양의 고전,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 인도, 인디언의 삶까지 소로우가 닿아있는 지적 깊이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밑줄 그을 데가 많아서 옮겨적다가 말았다는 것.

그만큼 <월든>은 알뜰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번역을 하고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월든>은 네 권의 책이 한 권에 들어있다.

모험기, 자연을 묘사한 에세이, 풍자서, 자서전인데, 그만큼 <월든>은 내면이 풍요롭다. 그 말은 읽지 않고 보기만 하거나 풍문으로 들어서는 결코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그가 느끼고 겪은 체험을 묘사한 글은 그의 말대로 '선택된 말'(고전, 좋은 책)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가 붉은 개미와 검은 개미의 싸움을 묘사한 글은  한편의 스펙타클한 영화를 본 것 처럼 흥미진진했다. 그의 글은 때로는 유머가 넘치고,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더러는 비유와 풍자로 독자를 골치아프게도 하지만 인간이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소로우처럼 숲 속으로 들어가 살 수는 없다.

내가 사는 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월든>을 읽으면서 도시에 사는 우리가 자연에서 멀리 떠나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도시에 살지만 자연에 가까운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

채우기 위해 소비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아까운 시간,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단지 채우기 위해 소비되고 낭비되는 것이다.

 

오늘도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남들이 읽는다고 덩달아 사들인 탓이다.

내가 눈을 돌려야하는 것은 세상 밖이 아니다. 그곳은 온통 나에게 자기를 가져달라고하는 곳이다.

소로우가  전하는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 속에 여태껏 발견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소이진 2012-05-07 16:41   댓글달기 | URL
엄마가 꼭 읽으라며 <월든>을 쥐어주셨는데 이년 전에 받은 걸 아직도 안 읽고 있답니다.
호기심에 첫 페이지를 펼쳤다가 기겁을 하고는 놔두었던 게 기억이 나요.
너무 어렵습니다...

수수꽃다리 2012-05-09 09:20   댓글달기 | URL
이진씨에게 <월든>을 건네신 어머니가 궁금해지는군요^^ 읽은 사람들끼리 느끼는 동지의식?!
기겁할만한 첫 페이지가 맞아요.
저도 역시!
언젠가 만날 때가 있겠지요.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슬픈 시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아이들이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지만  안전한 곳은 없다.

길을 찾아 헤매나 길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쉰 두명의 아이들은 사라졌다.

그 아이들이 생존했었다는 것은 개 한 마리가 목에 걸고 있는 메세지가 전부. 그 개조차 죽고 만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비극이다. 전쟁의 비극이 어린 아이들에게 펼쳐지자 그 비극은 더 큰 비극이 된다. 그런데 전쟁 속 아이들의 모습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다. 아픈 아이를 돌보고 글자를 가르치고, 사랑을 하며, 함께 길을 찾고 죽은 아이를 묻는다. 나치 당원도, 폴란드인도, 독일인도 아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두려움 앞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일상은 늘 두렵다. 가난이 두렵고 경쟁에 밀릴 것이 두렵고 친구가 가하는 폭력이 두렵다.  힘 있는 자가 있는 대로 휘두르는 힘의 주먹이 두렵다. 그런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두손 들고 설설 기며 빌게 될까봐 두렵다. 그러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고개 돌리게 될까봐 두렵다.

고약한 상황이 내 아이 세상 때가 되었을 때 더 안좋을까봐 두렵다.

 

책은 포탄이 터지는 순간만 빨간색으로 표현될 뿐, 검은 색 싸인펜으로 스케치된 그림으로 아이들의 불안하고 두려운 피난을 보여준다. 색을 입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하고 곧 사라질 것 같더니 결국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극적인 생환을 기대했지만 문학의 힘은 비극일 때 더 크게 작용한다.

 

이래도 전쟁을 계속 할 것인가.

어리석은 뻘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독자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비극이 주는 울림이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화와 문명의 시대가 어디에서 갈라지는 지 잘 알지 못한다. 적어도 알래스카 선주민들은 신화의 시대 마지막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할 뿐이다.

 

인간위주의 시대가 문명 시대라면 신화의 시대에는 모든 것의 시대였다. 바람과 돌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인간은 그 모든 것의 일부분이었다. 문명은 오래된 것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 힘에 밀린 신화 시대 사람들은 이 책속의 밥 샘의 처지가 되었다. 백인(문명인)의 옷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고 린치를 당하지만 끝내 그들 세계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사라지는 것이 신화 시대의 운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신화의 시대를 취재한다. 큰까마귀 신화로 묶인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알래스카 선주민의 먼 조상이 아시아에서 건너간 인류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는 현존 하는 원로들이 사망하면 끝날 것 같다. 신화의 시대는 입에서입으로 전해지는 시대다. 시간을 이어주던 원로들이 세상을 뜨면 그 시대는 막을 내린다.

자연을 파괴하고 시간을 파헤쳐 욕을 보이는 문명이 야속하지만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다. 더 좋아지든 더 나빠지든 시대는 가고 오는 것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신화의 시대가 완전히 사라지면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우주의 시대에 진입했다고들 하지만 고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보다 우주를 훨씬 강하게 의식하지 않았을까?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깊이 맺어진 신화적 차원에서 말이야.” (169쪽)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구분이었다. 큰까마귀의 신화 안에서 오랜 시간을 겪어온 사람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들의 토템도 밥 샘의 말처럼 20년 안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사라짐을 바라 보는 것이 현재다. 다만 신화의 시대, 즉 영혼의 시대가 문명의 시대에 눌려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서글프다.

밥 샘과 저자가 주노 대빙원에서 오로라를 보면서 나눈 대화.

 

 

“어떤 시대가 올까.......”

“그러게 말이야......어떤 시대가 오려나?” (176쪽)

 

 

빙하와 고래, 곰과 어둠, 큰까마귀 전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곳이 알래스카다.

저자의 표현은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지켜본 사람의 깊이가 있다. 함께 실린 사진 속 알래스카의 이끼긴 원시림에 오래 눈길이 머무른다.

 



 
 
자운영 2012-04-26 17:22   댓글달기 | URL
우연한 기회에 수수꽃다리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쩜 글을 이토록 잘 읽고, 글을 맛있게 잘 쓰시는지 부럽고 샘이 나네요. 앞으로도 수수꽃다리님의 울림이 있는 글들 잔뜩!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수수꽃다리 2012-04-26 23:28   댓글달기 | URL
자운영님!
혹시 이 댓글을 보실까요?
제가 이런 감사의 말을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알라딘에서 책을 사고 읽고 짧게라도 메모라도 할 요량으로 적기 시작한 책읽기 였어요.
그동안 많은 독서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턱없이 모자라는 제 글에 심한 좌절을 하였습니다.
그만 나갈까도 생각하던 중이었지요. 그래도 내가 산 날들의 흔적인데 용기를 못내고 미적대고 있었지요.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자운영님께서 적어주신 응원의 말씀이 가뭄 끝 단비처럼 달고 맛있어서 잠시 취해있고 싶을 정도입니다.
얼떨떨해서 이게 뭔일인지^^
봄날이 간다고 안달나 있었는데, 자운영님 덕분에 저의 봄날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