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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의 필란트로피 - 필란트로피의 역사, 제도, 가치에 대하여 사랑의 열매 나눔총서 6
롭 라이히.루시 베른홀츠.키아라 코델리 엮음, 이은주 옮김, 최영준 감수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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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philantrophy를 "자선"으로 번역하며, 영한사전을 찾아 봐도 이 외에 별다른 뜻은 잘 안 보입니다. 형태를 분석하면 phil-은 "사랑[愛]"이요, anthrop-는 "인간"이라는 어원을 지님은 고교 과정 정도에서 무난하게 다루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p8의 일러두기에서 편집진은 이 단어를 "자선" 등으로 번역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에서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점을 고려하여 "필란트로피"로 그대로 놓아 둔다며 표기 태도를 밝힙니다. 이는 단순히 편집상의 한 지침일 뿐 아니라, 어느 정도 학제적 논문 모음의 성격도 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주제어, 키워드에 대한 큰 오해 없이 독해가 가능할지에 대해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도 있는 셈입니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일단 필란트로피를 "정의(definition)"합니다. 자선, 아니 필란트로피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이처럼이나 다양한 관찰 방법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행위로서의 자선은 그닥 모호함 없이 비교적 쉽게 그 외연과 내포가 확정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거론하는 정의상의 난점 중 대표적인 것만 여기 적어 보자면 예컨대 기부금 입학 전형에서의 기부 같은 것도 과연 필란트로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냐는 거죠. 대뜸 "무슨 소리?"라며 반문이 나올 만하지만 사실 미국 유수의 명문대에서 그 돈은 널리는 인류 전체를 위해 유익히 쓰인다 할 만큼 기초학문 연구 용도로 요긴히 활용됩니다. 기업으로부터 이뤄지는 지원은 어떤 명시적인 상품 개발에 연계되지 않을 경우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그저 자신의 자녀에게 명문대 학벌을 얻어 주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라고 해도 이를 쉽게 결격 판정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p24 이하에서 저자들은 구조적, 설명적, 규범적 관점에서 필란트로피를 입체적으로 정의하려 애 씁니다. 개인적으로 독자인 저는 여태 규범적 관점 같은 것은 법학에서나 쓰이는 방법론인 줄 알았습니다만, 법학 역시 철학에서 그 여러 유용한 도구를 차용하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여튼 이 서문 파트에서는 필란트로피의 기원, 제도적 형태, 도덕적 근거와 한계, 등을 고찰한다고 미리 밝힙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1, 2, 3부에서 각각 다루며 서문 후반부에서 소제목으로 뽑은 "과정"은 필란트로피의 과정이 아니라 이 책이 나오게 된 제작, 편집 과정을 가리킵니다. 책이 워낙 흥미로운 편제와 내용이므로 독자에게는 이 대목 역시 흥미를 갖고 읽힙니다. 또 필란트로피는 주로 중세 이래 귀족과 종교 단체 중심으로 이뤄진 행태, 제도였으나 이 책은 저자들이 미국인들인 만큼 미국적 관점에서 미국의 현실, 현상을 중심으로 논의한다고 역시 서문에서 밝힙니다. 하긴 기여입학 같은 것도 지극히 미국적인 시스템의 일환이긴 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이른바 라버 배론(robber baron) 즉 강도 나으리들의 행태는 당대에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 나아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이 범죄와 윤리적 타락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19세기 미국 경제사는 암담한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도 바보가 아닌 만큼 그런 불리한 평판을 잘 알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자손들이 앞으로 상속 받을 재산으로부터 별 무리 없이 기쁨을 향유하려면 자신들 살아생전에 어느 정도 조치를 해 놓고 죽을 필요가 있음도 인식하고 있었죠. 그래서 시작된 게 자선행위였으며 이 책 1부에서는 주로 이 점에 대해 역사적 개관을 진행합니다.


일단 자선이라 함은 공적(公的) 행위가 아니라 사적인 행위입니다. 법인의 경우 우리 법제에는 그저 재단법인, 사단법인 두 가지 형태만 있을 뿐이며 그나마 후자는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 등이 실질적으로 대부분을 이룹니다. 영국의 오랜 법제를 그대로 계수(繼受)한 미국에서는 종전에 여러 법인의 형태가 있었고 이들 중 일부가 상속재산 등을 관리하며 필란트로피를 본연의 기능으로 삼았다고 책에 나옵니댜. 영국식 시민법인과 자선법인을 합친 게 "민간 사단법인"이라 하여 미국 고유의 제도가 되었는데, 이에는 "공화주의 법인"이란 당대 미국식 개념이 그 기저에 자리했습니다. 책 저 뒤 p339 같은 곳에서 "공화주의적 전통", "공화주의 원칙" 등이 다시 거론되는 것처럼 이 개념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위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대중 문학 작품인 <키다리 아저씨> 같은 곳에만 봐도, 코믹하게 사화사업가와 사회주의자라는 용어를 헷갈리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저 무렵의 미국은 "자기 일에나 신경쓰기(to mind your own business)"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이타주의 내지 개입주의 사이에 매우 첨예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자선이란 개인이 개인에게 진정성 있는 선의로 행해야 하지, 어떤 전문 단체가 대횅하는 자선에 대해 깊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p120의 "법인은 변종에 불과"라다거나,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역사적) 논의는 이런 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또 이는 "집단은 본래 책임이 없다"는 오래된 서유럽의 개인주의 책임 개념과도 통합니다. 반대로 p128 이하에는 재단 옹호론이 나오는데 사실 이런 입장의 대립은 우리 시대에서도 결코 효력이 다한 게 아닙니다.


이 저자들이 이런 논쟁의 역사적 정리(와 해석) 다음에 재미있게 덧붙인 건, 이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법인 제도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의 논의입니다. p155의 표에는 도금시대(gilded age)와 현대의 "필란트로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잘 정리됩니다. p161에는 놀랍게도 필란트로피의 역사에도 1930년대에 "혁신주의" 운동이 일어났다고 기술합니다. 여기서 혁신은 주로 자선 시스템상의 비효율 제거 등을 가리킵니다. 또 이 지점에서부터 과학과 필란트로피 간의 결합이 흥미롭게 이뤄집니다.


5장부터는 애플의 CEO 팀 쿡이라든가, 혹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처럼 현대적인 주제가 더 자주 거론됩니다. 우리도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CSR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정도는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더욱 깊이, 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분석됩니다. 앞선 장에서는 "필란트로피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혹은 그럴 수 있다)"는 주장도 다각도로 분석되었는데, 바로 여기서부터가 이 책만의 재미(물론 학문적인 책이지만)가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필란트로피가 시스템화하고 나아가 이익극대화의 원칙마저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들면 종래의 자본주의, 나아가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작동하겠냐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있는 거죠. 사실 깊은 연원을 따지자면 필란트로피는 중세 귀족제 사회라든가 신성 불가침의 영역을 유지해 왔던 가톨릭 등 종교단체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필립 코틀러라든가 많은 학자들은 이미 CSR이 단순한 마케팅이나 PR을 넘어 기업의 이익극대화와 공존할 수 있다거나, 아예 필요조건이라는 입장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 p224 이하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CSR은 기업의 재무가치를 감소시킨다는 건데.. 여기서 요즘 핫한 MSG에 대한 재고찰도 다시 등장하네요. 찬이든 반이든 일류 학자들의 논쟁은 실증과 통계에 바탕을 둔 것이라 그 추이가 참으로 볼만합니다. 데이비드 엥겔 같은 이는 기업이 "처벌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갈(go away with) 수 있을 때에는 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경제학에서 예전부터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주요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건 "정보의 비대칭성 극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이 일정 집단이나 계층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책의 제7장에서는 도서의 저작권을 둘러씬 구글의 소송을 집중 분석합니다. 이는 법률적 관점에서 봐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과연 우리 시대 필란트로피의 한계와 근거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압축적이고 극적이며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또 이제 "필란트로피"의 개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는지도 독자들이 비로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자선"이라 범주를 한정하면 이 사건은 논의 대상이 아니지요. 예전에 화제였던 카피레프트 이슈도 다시 떠올려 볼 만합니다.


경제학에서 또하나의 오랜 동안 치열한 논쟁거리가 바로 "무임승차자 문제" 혹은 외부 경제 이슈입니다. 8장에서는 바로 무임승차 문제가 집중 조명되며, 그동안 경제학개론 수준에서 피상적인 공부를 했던 이들은 비로소 이 문제가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통째 흔들 수 있는지 확인 가능합니다. 요즘 진보 진영에서는 영리법인의 대안으로 "조합"을 자주 거론합니다. 또 이 파트(논문)의 저자인 에릭 비어봄 하버드대 교수는 p350 같은 곳에서 "국가의 이미지=상비군을 보유한 비영리단체"로 규정하곤 합니다.


"민주주의적 평등"은 어떤 개념 요소를 필수로 삼을까요? p369에는 이것이 보기 좋게 도시화됩니다. 사실 평등이라는 절대적 이념가치를 떠올리면 필란트로피, 비상 수단을 통해서라도 평등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인용되는 중 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무상공여를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볼 수밖에 없죠.


기부에 있어 기부자 자신의 "재량"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책에서는 "재량적 관점"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특히 국제단체를 통해 기부를 실천하는 쪽에서 보면 무제한 재량은 도리어 필란트로피를 휘청이게 만듭니다. 아니 내 돈으로 내가 좋은 일 좀 하겠다는데 그걸 (돈을 직접 대지도 않는) 타인들의 의사 결정에 따라야 한다니 이런 불힙리가 있냐며 반발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 전체를 다 읽고 자선, 나아가 필란트로피의 문제가 순전히 미국으로 분석 대상을 한정하여 봐도 얼마나 복잡미묘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만큼, 이런 입장의 차이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지성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무엇이 도달 가능한 최상의 공동선인지 깊이 숙고하고 합의점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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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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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의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라 함은, 주인공인 네레오 코르소가 일생을 두고 찾아 헤매는 어떤 영웅을 가리킵니다. 그 이름은 "웨나"인데, 무슨 뜻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인간인지 신인지는 네레오 자신도 모릅니다. 네레오는 어떤 미신,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생을 낭비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현실에 적응을 잘 하며 체력도 강건하고 성실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의 시대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숙련도가 만만치 않은 직업은 가우초였는데, 네레오는 타고난 가우초라 할 만큼 소년 시절부터 일을 잘했습니다. 그를 고용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 성실성과 기술에 감탄하게들 되었죠. 이랬던 그였고, 얼마든지 안온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타는 목마름과도 같이 다가온 그 "웨나"에 대한 동경을 거둘 수 없어서 정처없이 아르헨티나 일대를 떠돌게 됩니다.


소설 속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식탐이 지나쳐서 마을 전체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어느 소년의 사연 같은 것입니다. 그는 마을로부터 축출되어 초원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이 미각에 대해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고 들판에 널린 풀로부터도 얼마든지 양분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말이나 소도 풀을 가려먹는데 사람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없는 셈입니다. 사랑했던 소녀에게 애정 표현을 하려 들다 입에서 나온 불길 때문에 그 소녀를 죽이고 말며, 이로써 그는 사람 사는 세상에 영원히 복귀할 길이 끊깁니다. 재능은 소중한 것이고 인류 전체의 자산이나, 정작 당사자는 그로 인해 미움을 받는다는 모티브는 영화 <엑스멘> 등 여러 매체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이 소설은 확실히 단편 <큰바위얼굴>이라든가, 동화 <파랑새>라든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든가,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 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네레오는 어느 늙은 가우초에게 인생 저편 너머에 자리한 진리에 대해 암시를 들었고, 열두 살 때에는 자신이 상상한 웨나의 이미지에 매우 근접한 후안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후안은 과학 지식에 아주 밝은 이였고, 네레오가 말하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지도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후안과 헤어진 후에도 네레오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심어진 웨나의 원형적 심상을 계속 간직하게 됩니다.


남미는 우리가 상상 못 할 만큼 어둡고 치열했던 과거사의 질곡에 시달려 왔으며 그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긴 우리도 민주화의 장정 동안 가슴 아픈 일이 많았으나 남미는 훨씬 더했다고도 보겠죠. p87 이하에는 네레오의 어린 시절이 잠시 회고되는데 여기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과격한 행동이라든가 포퓰리스트였던 후안 페론(에비타의 남편) 대령, 그리고 극우 군인들의 반동 등 실제 역사가 등장합니다. 무정부주의는 1920년대에만 해도 공산주의와 함께 좌파 진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이념적 동향이었으며 이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도 공화파에 가담하여 일정 역할을 합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 무척 충격적인 일을 겪었기에, 소년 네레오가 저처럼 성장 과정이 순탄치 않았겠구나 하는 짐작을 우리 독자가 할 수 있습니다. 


네레오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난교를 벌이며 궁극의 희열을 맛보는 사람들 틈에 끼기도 하고, 나병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성자 곁에서 삶의 극한 참상을 동시에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그는 마침내 "웨나"가 부질없는 환상임을 깨닫고, 십자고상 앞에서 침식도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이 일을 겪고 그는 어느 대농장에 취업하여 소년 시절처럼 성실한 가우초로서 자격 증명을 한 후 농장 관리인으로 부임하여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을 하고 다리를 저는 얌전한 부인까지 맞아 그 사이에서 아들도 봅니다. 그런데 이 소설 어느 대목이나 그런 개성을 갖지만, 여기서도 느닷 생각도 못한 극적인 계기가 찾아오는데(시대상을 반영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부인의 친정이 석유 개발 덕분에 느닷 갑부가 됩니다. 네레오가 취업한 대농장 따위는 한순간에 우습게 보일 정도가 되었으며, 더 놀라운 건 그 온순하던 부인의 외양, 태도 모든 면에서의 변화입니다. 영양 섭취가 갑자기 늘고 나서(?) 부인은 다리도 더 이상 절지 않고 비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느닷 세상사를 속물적으로 냉철히 통찰하는 사업가로 변모합니다. 이제 남편 네레오는 그녀의 눈에 그저 촌스럽고 소박한 가우초일 뿐인데, 어느날 네레오딴에는 필생의 소명과 지난 방랑 이력에 대해 큰 마음을 먹고 부인 앞에서 고백을 하지만 한순간에 속물로 변한 부인은 그저 비웃거나 측은히 여길 뿐입니다.


암소들에게도 인기가 좋던(?), 또 편안히 먹고 잘 수 있는 농장과 초원이라는 유리한 공간을 버려 두고 무엇에 홀려서인지 벼랑 끝 늪지대를 향하던 어느 수소(수컷 소). 특히 네레오는 녀석이 그 가파른 벼랑길을 마치 곡예 하듯 기껏 타고내려가 늪에 빠지는 모습, 또 이를 밤새 슬퍼하는 암소 들을 보고 마침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마치 한국 드라마 <무인시대>에 나오던 목각인형 두두을을 연상케 하는, 고대 용감한 원주민 오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웨이나가 웨나의 정체임(p250)"을 깨닫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삶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그는 또하나의 "웨나"가 되어 다른 역마살들린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 구실을 합니다. 


이 소설 작가님은 한 번도 남미 현지를 답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처럼 현지 풍속이라든가 신화, 전설, 혹은 역사 이야기가 생생히 녹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칸의 내력을 설명할 때 시베리아 일대에서 동북아시아인들을 만나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대목도, 요즘 DNA 추척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와 거의 일치하는 데서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소설은 슬프고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도 기본적으로 비극인데 다만 소소한 중간지점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애써 찾는 게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일생을 걸고 찾아나갈 그 무엇이 있는 인생이라면 그건 차라리 축복이겠고 말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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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때문에 산다 한국프로야구단 시리즈 5
김은식 지음, 조덕희 그림 / 브레인스토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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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해태 타이거즈 구단에 대한 책으로도 많은 독자에게 그 이름이 친숙한 그분입니다.


LG 트윈스는 서울에 현재 많은 팬을 거느린 구단입니다. 요즈음은 코로나다, 또 올림픽이다 해서 일정이 순연되는 일이 잦았고, 고척에 돔이 생겨 늦게까지 포스트시즌을 이어가곤 하지만 1990년대에는 대개 9월이면 모든 일정이 끝났더랬습니다. 이 1990년대에도 가장 많은 우승횟수를 기록한 구단은 해태였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자주 우승도 했고 또 포스트시즌에도 많이 진출한 구단, 무엇보다 팬들을 많이도 확보하고 열렬한 성원을 받은 구단이 또 LG 트윈스 아니었겠나 생각합니다.


LG 트윈스는 그 이름으로 원년부터 참여한 구단은 아니었고, 프로야구 출범 당시에는 MBC 청룡이라는 네임을 걸고 시작했었습니다. 방송사가 당시 둘밖에 없었던 시절 MBC라는 소속은 흥행(중계 등)에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예상보다 프로야구가 훨씬 큰 인기를 끄는 바람에 구태여 방송사 소속이라는 뒷배도 필요 없었습니다. 어차피 거의 모든 경기, 더군다나 서울 연고 팀의 경기는 다른 방송사에서도 중계를 했을 테니 말입니다. 


제 주변의 어떤 분은 개인적 기억으로 말하기를, 강북 지역은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후에도(그저 서울일 뿐 강북/강남의 구분이야 당연히 없었습니다만) 여전히 해태 타이거즈가 더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강남이라고 해태가 인기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여튼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원년부터 MBC를 응원해 온 분들은 여전히 서울의 적자(?)가 이 청룡을 계승한 트윈스라고 여깁니다. 사실 트윈스 기준으로는 OB보다 역사가 짧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LG는 1990년대초에 대대적인 CI(기업 이미지 통합 작업)를 마무리짓고 야구단까지 인수하여 그전부터 오랜 역사와 강한 시장 지배력을 자랑하던 럭키금성 그룹의 다소 산만한 이미지를 극복하였습니다. 구단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도 있었으나 여튼 야구단 인수 첫해에 서울 연고를 갖고 바로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뤄낸 건 대단한 쾌거였습니다. 삼성은 당시 그룹 총수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구단주 이건희씨가 신경을 많이 썼으나, 정규시즌 4위부터 올라갔고 도중에 해태 타이거즈 같은 강팀도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LG에게 힘 한 번 못 써 보고 패했습니다. 이 충격으로 당시 정동진 감독이 경질당했죠. 정 감독은 태평양 돌핀스 감독에 취임하여 4년 뒤 한국시리즈에서 LG와 다시 만나지만 역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고배를 마십니다. 


MBC 청룡은 출범 당시 캡에 MS라는 로고를 새겼는데 이는 방송사 이름과 연고지 서울의 머릿글자를 각각 따 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니폼 가슴에도 SEOUL을 새기고 나왔다고 하죠. 원년 감독은 백인천씨였는데 선수도 겸하여 출전하고 4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백인천씨가 1990년에 감독으로 컴백하여 기어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입니다. 1994년의 우승은 자율야구의 대명사였고 원년 OB 코치였던 이광한씨가 이끌었는데 특히 LG의 팀컬러가 되어 버린 "신바람"과 잘 어울려 서울 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큰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20년 가까이 한국 시리즈에 진출 못하고 암흑기를 지내는 LG이지만 올해는 성적이 좋고 다시 한번 서울 팬들의 큰 호응을 맞는 중흥시즌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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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2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지가 올해 우승하면 얼마나 좋을까요!ㅎ

빙혈 2021-09-21 12:17   좋아요 1 | URL
ㅎㅎ 많은 분들의 소망입니다!
 
퓨처 프렌드
데이비드 바디엘 지음, 김송이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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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SF치고는 미래사회의 구조와 기술에 대한 통찰도 깊이가 있었고,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포라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2014년작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무리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소설 초반부에 핍이라는 11살짜리 아이가 등장하는데 얘는 서기 3020년에 살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로 보아 남자애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에는 이처럼 성별 구분이 잘 안 되는 외양으로 다니는가 봅니다. 핍이 1000년을 거슬러와 우리 시대로 (뜻하지 않게) 뛰어든 후 다른 사람들(즉 우리와 동시대인들)이 그를 가리켜 "여자아이"라고 부르는 데서 비로소 우리 독자들도 주인공 핍이 여성임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핍이 여성이라고 분명히 정해 준 건 다른 주인공 소년(우리 시대 소속) 라훌이며 어른들은 그전까지 핍을 남자애로 착각합니다. 하긴 이런 생각 역시 "여성은 이러이러하게 꾸미고 다녀야 해!" 같은 성차별 편견이고 미래에는 그런 생각들이 다 극복된 상태라는 암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토론거리로 자주 삼는 화제가, 과연 우리들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천재 노릇을 하고 살 수 있겠냐는 겁니다. 여기서 핍은 천 년을 거슬러와서는 거의 초인으로 군림합니다. 먼저 그녀는 중력 부츠를 신고 다니기에, 마치 예전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에 대한 도시전설처럼 공중에 붕 떠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현대의 (어린이) 축구 시합에서 경기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는 그렇게만 나오지만(이 작품이 영국 작가분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축구가 화제지만) 미국이었다면 단연 농구나 아메리칸 풋볼이었겠죠. 


또 핍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G안경과 마인드링크(머리에 심는 일종의 칩입니다)를 이용해 가능하며 핍이 딱히 엄청난 지식이나 지능을 가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게 가능합니다. 책 후반부에는 건터라는 (희한하게도 독일식 이름인) 애가 등장하는데, 이 아이가 아주 못됐습니다. 마치 극우파나 혐오 경향애 찌든 무리들을 풍자하려는 의도 같습니다만 여튼 얘가 자꾸 핍을 못살게 굴자 핍이 마지못해 실력을 한번 보여 준 겁니다. 이 능력은 소설 끝나갈 때쯤 우리 시대로 온 OO이 OO을 상대로 또 선보이는데, 이게 이 작품에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p104를 보면 우리 시대의 학교에서 소수(素數)를 가르치는데 핍은 뫼비우스 반전공식, 제타함수까지 들먹이며 선생님을 무안하게 만듭니다. 저는 처음에 이것이, 천 년 뒤의 초등학교 커리큘럼에서는 이런 걸 다룬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천 년 뒤에나 밝혀진 내용은 아닙니다. 21세기 현재에도 학부 저학년에서 얼마든지 가르치죠), 마치 2300년 전 최첨단 지식이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을 우리가 초4~중3 수준에서 배우듯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독일어(고대언어!)에 대해 전혀 모르던 핍이 마인드링크를 통해 해당 언어를 술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기에, 이 역시 기본 지식이 아닌 도구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이 소설에서 아주 큰 비중은 아니지만, 미래에서는 앵무새, 고양이 등이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압니다. 마치 <둘리틀 선생>에서처럼 말입니다. 이는 천년이 지나는 동안 진화한 결과라고 하며, 그 미래에서는 돼지가 이미 노벨상을 탔으며, 닭들은 인간 중심의 사회에 저항하여 무력 투쟁을 펼칩니다. 이러니 앵무새가 천년 전인 현재로 왔을 때 가장 놀란 게 닭들이 온순하게 길들여진 모습입니다("닭들이 마침내 항복했나봐!"). 또 어떤 개가 목줄에 묶여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가는 걸 보고 핍은 "이러시면 안 된다"며 항의하기도 합니다. 


천 년 후의 미래가 좋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바깥 세상은 너무 뜨거워진 데다 생화학무기 부산물로 잘못 만들어진 온갖 유해한 미생물 때문에 이미 나갈 수가 없고 사람들은 실내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핍은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 있으나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력 부츠가 있긴 하나 바깥 세상에 나갈 수가 없는 핍은 언제나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천 년 전 과거로 와서 펄펄 날아다닙니다. 축구 경기를 라이브로 현장에서 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그러니 천 년 전으로 온 핍이, 우리 시대에는 흔해 빠진 야외 스포츠 경기를 보고 감격할 밖에요. 


저는 처음에 핍의 부모가 "바깥 세상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구절, 또 이 소설 제2의 주인공 라훌이 꼬마 발명가라는 설정이 왜 등장했는지 궁금했는데, 낭비되지 않고 이 설정이 소설 전체를 꿰뚫으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장치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또 주인공들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각종 연극을 하거나 지혜를 짜내 그들을 편안히 속입니다. 어른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을지, 어른인 독자인 제가 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가급적이면 폭력과 비합리적인 감정적 반응, 대립을 회피하려 드는, 많이 문명화한 미래에서도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결말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책이 시리즈로 계속 나올 줄 알았는데 결말을 보니 이 단권으로 아마 완결을 지으려나 봅니다.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작품에는 넌지시 떡밥만 던져졌을 뿐 그대로 묵히기 아까운 설정이 이미 많이 등장을 했습니다. 속편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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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차 게임 개발 - 아마추어들의 게임 프로젝트 관리와 기획, 게임 디자인 이야기
김다훈 외 지음 / 성안당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네 분의 게임 개발자가 이 책의 공저자들입니다. 연령대는 다양한 듯 보이며 처음부터 게임 개발을 천직으로 여긴 듯한 분, 나중에 게임학과에 입학한 분 등 동기와 경력 들도 각기 차이가 나는 듯했습니다.


게임 개발은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핫한 직업 중 하나로 떠올랐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크래프톤, 넥슨이나 NC 등이 투자자들의 큰 주목 대상이었으며, 직접 게임 관련은 아니지만 소위 네카라쿠베, 혹은 네카쿠야 라고 해서 IT 기업 소속 개발자군이 선망 대상임이 분명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게임 개발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해당 직업의 자부심과 보람, 혹은 애환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p20에 보면 용어 해설에서 "개발자"란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널리 게임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을 널리 포함한다고 합니다. 이에는 2D 아티스트도 포함되는데 예를 들면 이 책 저 뒤 p192, p194, p196 등에 그 작업이 소개되는 엄수영 씨, p209의 곽연정 씨 같은 분들이겠습니다. 


<괴도 앙팡>은 수업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였으며 이 부분은 박소현 저자가 집필했습니다. 교내 프로젝트이므로 우리 같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게 당연한데요. 이 부분을 읽고 완전한 문외한이었던 독자로서 아 이런 식으로 게임 하나가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아주 어렴풋한 감이나마 잡을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는 일단 시각적으로 인식이 쉬워야 하는데, "맵 크기의 최대치를 정했더니 맵 구성의 범위가 좁아지면서 퍼즐이 매우 한정적으로 되"는 문제가 발생(p31)했다고 합니다. 개발자는 전혀 아니고 일반 유저의 입장에서 이 대목을 읽었으나, 아마도 대개 무슨 의미인지 정도는 감이 올 것입니다. 이 "맵"에 대해서는, 책 저 뒤의 pp.184~190에서, 같은 저자가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또 "포털"이라는 게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p31)도 처음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건, 게임 개발도 일반 제품 디자인이나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상황에 대입하여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시장에서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꼴을 갖추고 출시된다는 점 정도이겠습니다. "앙팡"은 물론 enfant의 불어식 발음이며,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혹은 지면 만화 캐릭터인 "괴도 루팡(뤼팽)"이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두 단어 발음의 유사성(하나는 프랑스 출신일망정 일어, 하나는 불어 발음이긴 하나) 때문에 나온 이름이겠습니다. 


pp.36~40에는 제작 or 작업 목록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개별 연속동작 구현을 뜻합니다) 목록, 연출효과, UI 작업 목록 등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는 개발자들끼리의 소통을 위한 것도 있고, 나중에 출시 후 유저들에게 알려 줄 튜토리얼로 활용할 전단계 자료도 있습니다. <괴도 앙팡>이라는 게임을 해 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으나(앞으로도 영원히?), 아 이런 식으로 게임이 만들어지는구나, 또 이런 동작 이런 효과를 낳기 위해 이런 토론과 고민이 이뤄지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상상하게도 되었네요. "UI 아티스트에게 다소 강하게 내 의견을 전달했는데 그가 공과 사를 잘 구별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p42)."라든가, "결과물이 좋고 나쁨과 상관 없이 협업의 경험과 사례를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의 발전에 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p7)" 같은 대목은, 아무래도 커리어상 본격 협업보다는 프리랜서로서 개인 작업이나 프로젝트 참여가 더 많을 젊은 개발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격려 같습니다. 


프로젝트 <나이트베리>에 관한 두번째 개발 사례의 집필자는 김다훈 저자입니다.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개발하는 게임은 취업의 관문이 되기 마련이고..."라든가 머리말 중의 "팀 개발에서 불화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존재하며,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팀이 해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p5)" 같은 대목에서 이 저자가 지금 이 책(의 해당 집필 부분)을 통해 무슨 말을 주로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게임 개발자도 개발자이지만 프로젝트 관리자(p69, p71)로서의 고충이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참고로 다른 대학도 사정이 비슷하겠으나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학교"는 저자들이 속했거나 현재 속해 있는 청강문화산업대를 가리키며, 작품은 미대생들처럼 "졸업 작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게임 <나이트베리>는 넥슨GT에서 선정한 우수게임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눈에는 아쉬운 점들이 여전히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합니다. 


독자로서 저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사례 <캣칭>에서 보다 생생한 개발 과정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듯합니다. 특히 pp.78~81까지의 서술에서는 개별적인 완성도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을 할 뿐 아니라, 아예 방향성까지 수정되곤 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게임은 이렇게 만드는구나, 또 프로그램의 지식이 게임이라는 시각적 UI에 이렇게 적용되거나 접점이 생기는구나 같은, 아주 어설픈 문외한의 감각이었지만 말입니다. 또 p91의 테이블 엎기 게임안 문서를 보고, 이 부분 집필자인 이재호 저자 같은 분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감이 욌고 말입니다. 팀명이 잔다르칸이라고 나오는데 그 작명 동기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아마도 게임 개발자들이 현실적인 관심을 특히 느낄 만한 부분은 p109 이하의 step2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발자라면 step1의 내용은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작업들이며, step2에서는 팀빌딩이라든가 일정관리,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이 나오는데 개발자로서는 설령 실무 능력이 뛰어나도 오히려 이런 부분이 낯설거나 서투를 수 있기 때문이죠. 반대로 게임 개발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하는 독자는 이 대목이 당장 읽기는 가장 편하지 싶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회 생활에서 으레 겪게 마련인, 소통과 인간 관계, 혹은 조직론의 각론과 디테일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도 있고, 또 아 이런 부분은 공통점이구나 싶은 면도 있었습니다. 일정관리에 대해서는 pp162~165의 표가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개별 프로젝트에서 적용할 만한 여러 기법들을 알아 둬야 하며, 이 중 어떤 것을 해당 스테이지에 적용시킬지가 바로 개발자의 역량 척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p197에 나오는 FSM 같은 것입니다.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하고 무한하게 만들 수 없으므로 유한한 상태를 가진 기계가 된다(p197)." 


"학생들의 개발에서 교수님의 피드백은 위험하면서도 달콤하다(p229)." 즉 교수님들은 "상용화까지 가 보신 분들이므로" 장단점이 한눈에 보이기 마련인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 "위축되고 활기가 사라지거나" "아예 팀이 붕괴되는 경우"도 잦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부 피드백(교수님은 당연히, 당해 프로젝트의 구성원이 아니므로 외부겠죠)은 어떤 경우에나 필요하며 게임이란 상용화를 전제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내부의 책임자이기 때문(p240)"에 이 외부 피드백은 양날의 칼이라 할 만합니다. 


게임뿐 아니라 일반 회사라고 해도 요즘은 어떤 천재적 기안자의 주도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물론 팀장 역량이 뛰어나서 각 분야의 최고들을 한 데 모아 드림팀을 꾸릴 수는 있지만, 오히려 이 경우 아폴론의 역설처럼 더 분위기가 융화 안 되기도 합니다. 게임이란 더군다나 각 분야의 겸직이 어려운, 다채로운 개성과 역량이 팀 안에서 잘 조화되어야 최종 프로젝트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점, 그 디테일에서 기술적으로 이러이러한 난점이 있겠구나 하는 점들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었네요. 이런 점은 역시 IT 서적에 다년간 깊은 노하우를 쌓은 출판사에서 책에 잘 구현할 수 있었겠다는 점도요.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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