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설가의 글쓰기 - 위대한 대문호의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리차드 코헨 지음, 최주언 옮김 / 처음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아무리 소설을 즐겨읽는다 해도 그런 우리들 독자 모두가 소설가가 되거나 소설가처럼 글을 쓸 필요는 당연히 없겠지만, 멋진 소설 영감어린 작품이 어떤 이유로 그처럼 우리를 신나게 혹은 감동에 빠져 들게 하는지 그 비결을 수다떨듯 되새겨 보는 건 여튼 소설읽기 못지 않게 재미나기도 합니다. 리차드 코헨(이하 이 책의 표기법을 따릅니다)은 셀 수 없이 많은 기념비적 명작에서 숱한 사례와 인용구를 따 온 후, 무엇이 그토록 (때로는)수백 년 넘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눈물 핑 돌게 만들었는지 그 비결을 분석합니다.. 보다는, 재미있게 수다를 떨어줍니다.

알파고가 아무리 기존의 놀라운 기보를 학습(논란의 여지가 있지만)하여 프로 기사들을 상대로 백전백승을 이어가도 "그"는 오로지 승부의 법칙에 따라 냉연히 행보를 이어갈 뿐 어떤 질(質)이나 미학이나 철학을 바둑판의 전투에서 발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습작 소설을 써 예심을 통과했다고도 하지만, 그게 그럴싸한 문장을 랜덤으로 늘어놓은, 행위자 자신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장난에다 대고, 어리석은 인간만이 의미 과대평가를 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아무리 높은 수준까지 발전해도, 명 에디터(겸 사장님) 리차드 코헨처럼 불후의 명작들을 추려 놓은 후 잘 뽑힌 구석, 신들린(혹은 속어로 "약빨고 쓴 듯한") 구절,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삶과 영혼과 사랑과 미움의 본질이 뭔지 두고두고 곱씹게 만드는 주제와 표현을 "질적 기준"에 의해 궁시렁궁시렁 주절대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산(神算)"에 의해 불리한 판세를 한번에 뒤집는 천재적 수리 능력보다, "캬 이거 죽이지 않냐, 응?"하며 눈금의 미세단위가 측정 못하는 감정의 자그마한 요동에 깔깔대고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의 실없는 장난질(문학은 본질적으로 유희의 산물입니다)이 훨씬 위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설에서 서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강조가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만, 이 책은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 외에 다른 무수한, "불후의 서두"들을 첫 장에서 제시합니다. 사실 "가장 유명한 서두"는 제가 제 블로그에서 자주 꺼내는 화제지만(가장 유명한 마무리는 하디의 <테스>라는 것까지), 이 역시 지난 시절 일본인 호사가 그룹 일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당시 기준 자기네들끼리는 매우 운치 있었을) 천박한 순위매김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두 작품의 해당 구절들이 그런 불후의 가치를 실제 지닌다는 건 별론으로 하고라도). 이 책은 그런 화제 말곤 "서두"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이들에게 그 지적 빈곤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 방대한 작품들로부터 코믹, 휴머니티, 에로, 동심, 냉소, 달관 등 실로 다양한 예를 꺼냅니다. 구구단만 아는 사람한테 미적분과 해석학, 프랙털과 위상기하학 문제를 풀어 주는 식이라고나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의 원제부터가 "톨스토이처럼 글쓰기"이며, 바로 이 1장에도 (딴작품도 아닌)<안나 카레니나>의 상당부분이 인용되지만, "그 서두"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남들 다 하는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라도)안 하겠다는 코헨의 "취향, 태도"를 엿볼 수 있죠.

가장 재미있게 읽은 파트는 2장입니다(제게 9장의 "섹스"는 매우 유익했지만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수준이 낮건 높건 작가의 세계로 초대된 독자가 일단 눈을 줄 곳은 당연히 등장인물, 캐릭터들입니다. 캐릭터가 1)최초로, 2)재미있게 3)강렬하게 (이상은 서평자의 정리입니다) 제시된 작품은 구조상 문제가 있거나 주제의식이 시대에 뒤떨어져도, 심지어 장르문학이라 해도 오래 살아남습니다. 셜록 홈즈가 이처럼이나 세계적으로, 또 끊임없이 리뉴얼되는 양상으로 사랑받는, 또 뤼팽이 현대에 들어 외면되는(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만난 최초 각인이 그처럼 중요하겠고, 또 저는 캐릭터를 넘어 르블랑의 스타일까지 좋아하죠) 이유도 아마 여기 있을 겁니다. 이 2장에서 비로소 <리옹 도르의 여인>(국내에도 번역되어 있죠)의 작가 세바스천 폭스(출판사에 따라 표기가 다릅니다)의 대화가 인용되어, "톨스토이처럼 쓰란 소린가?"라는 그 알려진 한 마디가 나옵니다(이 책의 영어 원제가 바로 여기에 근거를 뒀죠). 키플링의 그 작품(<배서스트 부인>)에 나오는 비커리 씨의 별명을 이 책은 "딱딱 비커리"로 옮기는데,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허풍을 즐기는 돼지 같은 늙은이들을 비꼴 때 "틀딱(틀니 딱딱의 준말로 치아, 눈 등 신체 기관이 부실해진 상태를 조롱)"이란 말과 통해서 재미있습니다. 책에 안 나와 있으나 원어는 "Click"입니다.

3장은 뜻밖에도 "표절"이 주제입니다. 코헨은 독자인 제 기대보다는 다소 느슨하게, 이 부도덕한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동정심까지 표시하면서 문학사상 무수히 빚어진 표절의 사례들을 거론합니다. 영미권에서는 국어(영어) 교과서에, 작문 파트에다가 특별히 plagiarism을 주제로 거론하고서는, 어떤 경우에도 이런 수치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된다며 (국어 교과서에다가) 윤리적 훈령을 이례적으로 내리는 게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바른 가치관을 함양해야 한다는 의도죠. 알만큼 뭘 아는 성인 대상의 이런 책에도, 너무 표절 이슈를 너그럽게 다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혹 재미로 다양한 사례를 거론할 수는 있지만, 장 말미에는 쓰디쓴 한 마디 독설로 파렴치한 돌머리들을 조롱이라도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시점(퍼스펙티브) 이야기를 끄집어 내면서 이만큼이나 해명되는 주제가 많습니다. 인물, 화자가 광인일 때, 모험가일 때, 성인(聖人)일 때, 철없는 유아일 때, 여성일 때에 따라 다 각기, 같은 1인칭 3인칭이라고 해도 이후 작품이 취하는 구조나 노선부터가 달라집니다. <뻐꾸기 둥지..>(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하지만, 책에 나오듯이 소설 발표 연대는 몇 십 년이나 앞이죠)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 사건에 참여하지 않는 관찰자 시점이라 해도 그 화자는 전개되는 이후 사건(이전이라 해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이런 의미에서 "화자에의 거리"와 시점이 얼마나 불가분의, 결정적인 관계를 가지는지 시원한 해명이 돋보였습니다. 표현은 평소에 못했지만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겠다 싶은 독자의 공감을 이처럼 전폭적으로, 그러면서도 자분자분 끌어내는 저자 코헨의 말솜씨가 탁월한 게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대화"는 가장 사실적인 묘사 같으면서도 전혀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실제의 대화를 충실히 재현한 기록이 사람이 읽기 가장 어려운 류라고 지적해 왔죠(신문 기사에 난 "녹취록" 같은 걸 떠올려 보십시오. 이런 걸 짧은 시간에 정확히 해독하려면 민완 검사쯤이나 되어야 합니다).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바로 앞 장에서 거론된) 의식의 흐름(내면의 "대화'라는 점에서)이라든가, 혹은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브루클린으로..>만 봐도 이 타당성이 확인됩니다. 저는 이 장에서 <캐치22>의 그 미친 듯한 문장이 인용될 걸 기대했는데 안 나왔고, 대신 앞 앞 장 "캐릭터"에서 저 작품이 이런저런 토픽의 근거로 쓰입니다.

"아이러니"는 천재적 단편 작가로 손꼽히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왜 명작으로 남게 했는지 그 비결을 가르쳐 주는 단서입니다. 챕터의 제목이 따로 "비밀문"으로 붙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다. 문학이란 현실의 모사(模寫)가 아니라 재현(리프레젠테이션)인데, 우리가 특이하다 싶은 풍경, 구조, 형상을 구경하는 것도 단지 그 외형을 시각적으로 익히기 위해(범죄 수사관이나 스포츠 경기 판독관이 아니므로 이런 훈련은 필요 없죠) 시간을 쏟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시각적 이미지들이 부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과 영감을 통해, 고정된 현존의 제약이 아닌 다른 가능성(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 만약 이게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문학이 비관주의 염세주의 허무주의가 되는 거고)을 모색해 보는 겁니다. 화제 미드 <웨스트월드>에서도, "황홀경(trance)"에 빠져드는 호스트들을 두고 버그라고 진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다른 가능성을 꿈꾸는 건 역시 인간만의 특권이죠. 왜 아이러니가 트랩도어(이 책에서 "비밀문"으로 번역)냐면, 전혀 맞닿아 있을 것 같지 않은 두 지점이 문 하나로 연결되어 "결국은 같은 것이었군!"의 경악, 허탈, 구원을 안기는 기능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 소설을 읽는 우리 모두는 이런 아이러니의 미친 불의타를 맞아 보기 위해 빠져든다고 해도 됩니다. ("황홀경" 토픽도 저 2장, "캐릭터" 편에 다른 맥락에서 잠시 언급되더군요)

"픽션" 챕터에서는 사실상 플롯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에서 플롯이 차지하는 의의를 감안하면 분량이 좀 짧습니다. 하긴 플롯 이야기를 앞 장들에서 수다 떨다가 다 해버렸으니 할 말이 안 남기도 했겠죠. "산문의 리듬(왜 산문이냐면 제목부터가 "소설쓰기"이고, 저자분의 주전공이랄까 관심사도 한계가 있어서지 싶습니다)"은 사실 이런 번역책에서는 전달에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원문을 찾아서,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게 좋겠네요. 사실 아무리 산문이라도 최소한 내적인 리듬이 있는 터라, 낭독이 결여된 책읽기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 문학에서는 (당연히 한국인 독자를 상대로 하면서도) 이런 문학의 기본기를 염두에 두는 예가 많지가 않다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9장 제목 "조로"는 물론 早老가 아니라, 제가 두 주 전 책프에서 다루기도 했던 의적 캐릭터 Zorro를 뜻합니다. 정작 해당 챕터에는 조로 이야기가 없고, Som en Zorro에서 그대로 따온 것 같네요(이 코헨의 책은 따끈한, 무려 2016년작입니다). (글로 쓰는) 섹스를 조로 스타일로 하라는 말은 해당 쳅터를 다 읽고 나서도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그냥 영화 속 조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10장과 11장의 "보고 또 보고"는 재미있는 번역인데(십 몇 년 전 드라마 제목도 연상되고), 퇴고를 가리키는 "리비전"을 어원으로 푼 것이겠습니다. 12장은 당연히 "전설적인 엔딩들"에 대한 수다이며, 당연히 일개 독자인 제가 이런 유명한 출판인과 기량을 겨룰 수는 없겠지만 닉 혼비의 위트 가득한 에세이집(그러니 얼마나 많은, 소설 외의 문학 작품들이 이 책에서 거론되는지 짐작될 겁니다)을 예로 드는 대목에서 참 어지간하시다 하고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런 책의 해악(?)이라면, 정말 수천 년의 문학사가 낳은 걸작들을 채 읽지도 않고, 이런 멋진 책의 감상이나 취향만 흉내내면서 다 읽은 양 허풍을 치는 엉터리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문학사는 따분할 수 있지만, 이런 안목 높은 편집자가 늘어놓는 책수다는 본격 연구서보다 문학의 무궁무진한 성취에 대해 더 많은 걸 독자에게 가르쳐 줍니다. "지대넓얇"을 정말 "지대로" 함양시켜 주겠지만, 그 무엇도 원작이 주는 감동과 교화, 쾌락에는 비길 수 없고, 심지어 이런 책도 원작들을 읽은 독자에게나 제대로 그 가치를 전달해 줄 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