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3
김창회 지음, 강윤정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손영운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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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없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의 세계를 무대 위에 마음껏 펼쳐 놓고, 자신과 같은 시대 청중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예능인이었다는 점에서 융합인재의 첫손에 꼽힐 만합니다. 표현과 비유가 천재적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말재주의 세련되었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물과 관념을 그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알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풍성한 색깔을 띤 언어로 가르칠 수 있었다는 뜻도 되죠. 신기하게도 셰익스피어는 아직 근대 영어가 제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현대 영어 원어민들이 (고어[古語]에 대한 지식 없이) 읽어도 그 생동하는 활기와 천재적 영감이 주는 전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읽히고 여전히 사랑 받는 모습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과연 현대적 의미의 창의인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이유에서 셰익스피어는 닮고 싶은 인재의 대표, 모범이겠지요.



주희도 격물치지(사물과 자연, 인간 사는 모습을 연구하여 그로부터 진리를 깨우침)를 강조했습니다만, 어린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온 에이번)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풀밭에 날아다니는 풍뎅이의 모습 하나에도 그에 알맞은 표현을 떠올릴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우리도 큰 인물은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성장해야 감수성이 자극 받고 다양한 상상력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지닐 수 있다고들 하죠. <한여름밤의 꿈> 등에 나오는 다채로운 표현은 이런 어린 시절의 자극으로부터 든든한 창작 소양을 갖추게 된 보낸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솜씨라는 게 저자님의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한 방식으로 아들을 가르쳤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분뿐 아니라 이 시절 잉글랜드의 많은 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애들을 키웠다고 하는데요. 윌리엄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문법 학교"에 입학시켜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합니다. <좋으실 대로>에 보면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 마지못한 태도로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이게 아마 이 시절 자신의 추억을 회고하며 창작에 반영한 게 아닐지 하는 작가님의 추측이 책에 나옵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후엔 다시 "킹즈 뉴 스쿨"에 다녔는데, 여기서 그는 라틴어, 그리스 어 등 유럽의 고전 문학에 접할 필수 수단일 여러 언어를 배웁니다. 라틴어는 그저 과거의 문예가 기록된 언어일 뿐 아니라, 그 엄정한 문법과 체계적인 어법을 배우면서 말과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표현이 기발한 것 외에도, 고급스럽고 규범을 (알고보면) 정확히 지키는 양식적 우월함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린 윌리엄은 특히 오비디우스의 작품을 해석할 때 반에서 가장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이 때문에 젠킨스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이 자자하군요. 삽화를 봐도 총명한 그의 모습이 잘 나와서 보는 독자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친구와 하굣길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윌리엄은 커서 훌륭한 극작가가 될 꿈에 부풉니다. 친구는 걱정이 되어 이렇게 말하네요.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다 머리가 터지면 어쩌려구 그래?" 으악! 다행히도 셰익스피어는 머리숱이 좀 적어지는 정도에 그쳤지만 말이죠. 작가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 윌리엄은 그저 신화나 고전 속의 이야기를 즐겼던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 방식, 가치관" 등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할 줄 알았다는군요. 훗날 셰익스피어가 희곡 속의 인물 그 성격 창조에 대해 탁월한 솜씨를 보인 건 모두 이 시절의 깊은 생각과 교육의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네요.

여기서 작가님의 말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존재하는 지식을 상황에 맞게 고치거나, 다른 분야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면, 그런 어려운 일도 척척 해 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p53)

셰익스피어는 가게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많은 직종, 직업의 사람들을 접하고 그들이 쓰는 언어 습관, 행동의 특징을 눈여겨 관찰했다고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 등에서 그가 그처럼 법률 용어와 관행, 제도의 운영 원리를 잘 알고 작품에 배경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가 컸다고 하는군요(법률가, 혹은 송사에 휘말린 손님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경청함). 꼭 천재라서 이런 재능의 계발이 가능했다기보다, 주어진 시간과 집중력을 알차게 사용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할 수 있는 창의융합인재의 길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봐요 젊은이, 연극이 어린애 장난인 줄 아쇼?(극장을 처음 찾아온 셰익스피어에게 어느 단원이)" (p61)
"여봐, 극장이 너무 더러우니 정리 좀 해 주지 않겠나?" (p63)
"뭐야, 저 얼굴 좀 봐! 벌게진 게 꼭 으깬 토마토 같지 않나? 하하하 (대사를 잊은 초보 배우인 그에게 관객들이) (p66)

이처럼 배우로서 셰익스피어는 무대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대사를 까먹는 등 초보 시절 부족한 점도 너무 많았다네요. 그러다가 단역, 조연 배우로나마 차츰 자리를 잡아갔는데요. 이때 그의 뛰어났던 결단이라면 "다른 영역"에도 눈을 돌릴 마음을 과감히 먹었다는 점이겠습니다. 확실히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그 고비에선, 학벌이라든가 인맥이 경험 없는 젊은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이 책에는 이른바 "대학 재사(university wits)"라고 해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를 갓 졸업한 젊은 인재들이, 셰익스피어 같은 저학력 경쟁자가 나타나면 조소를 퍼붓곤 했다는 일화도 나와 있습니다. 창의인재의 꿈도 좋지만, 학과 공부도 열심히 병행해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 것도 때로 필요할 것 같아요!



"이보게, 오늘 공연도 매진이야!"
"관객들이 소리 지르고, 울고 웃고, 아주 반응이 대단했어!" (p74)

이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능을 갈고닦았던 셰익스피어는 불과 스물 여덟의 나이에, 극장가 최고의 스타 극작가로 대중 사이에 각인됩니다. 이때 로버트 그린이란 문인은 "우리들의 깃털로 아름답게 치장한, 벼락출세한 까마귀"라며 호되게 셰익스피어를 비난했는데요. 이런 태도는 어린이들이 본받아선 안 되지만 왜 그렇게 엘리트 그룹이 그를 싫어했는지 책에 실린 그린의 원문을 읽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어요(설령 온당치 못한 이유라고 해도).

흑사병의 유행,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집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성공, 창작 소네트가 (특히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받은 열띤 호응 등으로, 이제 그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죠. 리처드 버비지, 윌리엄 켐프 등과 협력하여 로드 체임벌린즈 멘 극단을 크게 키운 그는, 이제 경영인으로서도 여왕에게 인정 받는 두드러진 거물이 됩니다. 여기서 작가는 그를 가리켜, "많은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평가합니다. 이 역시 창의융합형 인재상과 통하는 부분이죠.

이런 그에게도 작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으니, 아들 햄닛(Hamnet)의 때이른 죽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술집에서 서로 크게 다투는 젊은 극작가(이제는 그가 이런 젊은 인력들을 건사하고 육성해야 할 위치가 되었어요)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연극이나 문예로서의 각본이 추구해야 할 바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크게 고민합니다. 이런 고뇌의 산물이 바로 그의 커리어 후반에 창작된 여러 비극들입니다. 희극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만, 생의 본질과 영혼의 심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비극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님의 결론은 이거네요. "경험과 관찰을 결합시킨 창의력". 확실히 그의 작품은 일찍이 대중 문예, 본격 문학이 짚거나 꿰뚫지 못했던 여러 국면을 생생히 잡아내었고, 말년에는 기교를 떠나 주제와 극 전개에 있어 여태 없던 성숙함과 심오함까지 보였습니다. 벤 존슨의 유명한 애도사로 책은 마무리되네요. "나의 셰익스피어여 일어나시오! 그대는 한 시대의 인간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위인이었소."

세익스피어의 시대에 대한 친절한 설명, 어려운 말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나오는데다, 여러 도판에 대한 출처까지 다 달려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창작 일러스트가 더 비중이 높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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