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평

, 개선점

- p259  밑에서 다섯째 줄의 10할

원문에는 10%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1할 이 바릅니다.

내용상으로도, 이 이자율이 로마 상류층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뒤에서 부연하고 있습니다. 10할 이면 100%인데, 그런 가혹한 조건을 상류층에게 은행업자 따위가 적용할 수는 없죠. 제가 이상해서 원서를 뒤져 봤습니다.

 

- 이 1권에는 서한문 직접 인용이 자주 나옵니다. 단조로운 구성을 피하고, 우아한 만연투의 대사를 등장인물의 입에서 직접 나오게 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교유서가의 이번 판은, 서간문 내용에 대해 한 줄 들여쓰기 체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어가면, 들여쓰기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됩니다. 편지가 다시 서사로 전환되기 전에는요.

 

예전 한국어 번역본(대략 20년 전에 출간됨)에서는, 폰트를 아예 다르게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도 CTS 제작 시스템이 도입되었던 터라 가능했습니다.

 

-p348 맨 마지막 줄 울릭세스

저는 이 용어는  오디세우스로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들은 물론 울릭세스라고 불렀고, 아프로디테가 아닌 베누스, 그리고 제우스가 아닌 유피테르로 부르듯,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라틴어식 표기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신격(deity)은 치환 과정을 거치고, 인명이나 캐릭터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즉, 둘은 경우가 다릅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이타카) 사람(물론 가공의 캐릭터이지만) 사람이므로, 한국 독자에게 친숙한 오디세우스로 적는 게 좋다는 게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  p 176 하단에 히페르보레오이 는 고유명사라기보다, 우리식의 서방 정토(靜土)처럼 대유적 보편 명사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원어 그대로를 노출하고 그치는 건 좀 읽기에 껄끄럽습니다.

 

보밀카르 (아니면 전지적 화자)가 구태여 이 말을 쓴 의도가 뭔지, 역주를 통해 설명이 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 의도는, 이 무지한 자에게 마우레타니아에서 왔든 아니면 저승에서 왔다고 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정도를 포함하고 있거든요. 참고로, 요즘 한국인이 많이 진출해 있는 모리타니가 저 고대의 마우레타니아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도 독자가 알면 더 흥미로울 겁니다.

 

- p285: 10 에서 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란 인명.

여기서 딱히 제가 이의를 제기한다기보다,

Gnaeus는 고전 라틴어 발음상 그나이우스에 가깝습니다.

어두의 g가 묵음이 되지 않죠.

 

나이우스는 영어식 발음이겠는데, 엄밀히 말하면 나이어스이겠으므로, 사실 저 표기는 이도저도 아닌 절충형에 불과합니다.

 

여기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나중에 3부 <행운의 총아들>에선 폼페이우스가 본격 등장할 텐데, 그때도 나이우스라고 하실까요? 한국인들에게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꽤 익은 표기인데요.

 

- p38 맨 위를 보십시오.

일 년이 지나면 왜 나이를 십 년씩 먹을까요?

노년에 접어들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주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마흔 일곱 이후에는 1년이 지났나 했는데 어언 10년이 흘렀더군,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 듣기에는 문맥상 보조 표현이 그 주위에 없어 일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원문도 Next Year이라고만 되어 있어, 이게 오역은 아닙니다.

다만,

그 윗 줄 진부한, 원서에는 the same old라고 나옵니다.

이걸 진부한이 아니라, 좀 다르게 번역하면, 왜 1년이 어느새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만 10년이 되어버리는지, 독자들이 좀 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똥돼지는 원어가 piggle-wiggle인데, 이 말은 작가가 창조해 낸 표현으로, 뒹굴거리는 돼지란 정도의 의미겠습니다. 똥돼지,메텔루스가 돼지 우리의 똥더미에서 뒹굴었으니 어느 정도는 원어와 통하겠지만, 그래도 좀 유치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 구판도 똥돼지라고 해서 거슬렸는데, 이 교유서가판도 같은 태도라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 교유서가 신판만의 멋진 점

-아무래도 더 깔끔하고 윤문이 잘 되어 가독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는 구판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다만……

저는 책 앞부분 등장인물소개코너가 활자를 좀 키우고 독자들(특히 로마식의 긴 이름에 안 익숙한 이들) 이 수시로 찾아 볼 마음이 들게끔 편집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한테 구판이 남아 있지 않아 장담을 드릴 수는 없어도,

제 기억으로는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더 적었고,

가문 구별도 한 눈에 들어오게 하는 처리를 했던 것 같아요.

 

- 이건 꼭 지적하고 싶었는데, 예를 들어 메트로비오스 같은 이름은 이 자가 그리스출신이니, -오스라는 어미를 취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거죠.

원서에는 분명 ius 거든요. 이건 그리스 인명 표기를 영어식 고유 맞춤법(일단 라티나이즈한 후 다시 영어식변형)으로 지키는 거라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거고, 다만 우리는 구애 받을 전통이 없기에, 얼마든지 그리스식으로 다시 고쳐 쓸 수 있죠.

구판에는 메트로비우스였습니다. 구판이 잘못이고, 교유서가판은 섬세하게 영어 원문의 오류(까지는 아니고 한계)를 바로잡은 거라 정말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 원작 자체의 장점 (제가 생각하는)

문장력과 내용적 깊이가 탁월합니다.

보밀카르가 살인 청부를 시도하며, 살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다짐을 주자, 장님 이발사에게 윙크든 고갯짓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되묻죠.

염려 놓으세요, 히힛. 이런 상투적인 처리보다, 얼마나 캐릭터의 개성이 잘 전달되는 표현인지 모릅니다, 끝에 가서 수부루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라고 덧붙여 주면서, 약속한 바는 확실히 이행한다능 다짐까지 두는 장면.

나중에 어린 카이사르의  어머니가 수부루에서 임대업 하는 이야기도 나오죠. 체면 따지지 말고 재테크(!)를 해야 아들을 출세시킬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요.


 

 

 

이 수부루는 현대 미국의 브루클린 같은 빈민가를 상징합니다. 돈만 주면 빵을 사듯 사람을 살 (매수할) 수 있는 나라 역시, 현대 미국을 비꼬는 표현이고, 1년에 한 번 두 사람이 뽑히는 집정관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 표현하는 것도, 겉으로 내세워지는 대표자가 누구든 간에, 숨어 있는 실세, 구조는 불변이라는 의미에서 미국을 풍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69 바윗돌처럼 차갑고 파르티아의 태수처럼 교묘한

이런 표현은 너무나 멋진, 매컬로 여사의 문장에서만 볼 수 있는

절묘한 수사입니다.

대분열 시대 로마 황제가 어느 편지에서 구사한

고트 족의 눈처럼 차가운 네 마음으로는.과 맞먹는, 로마 풍의 레토릭의 멋이 뭔지 안 매컬로 여사만의 장기입니다.

 

老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지근거리에서 보고 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 건, 신약성서에서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의 고사를 연상케 합니다. 비록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예수의 시대보다 한 세기도 넘게 앞서지만.

 

(3) 매력 있는 캐릭터와 그 이유

1권에서는 아직 가이우스 마리우스 (2부 넘어가면 그는 노환과 정치적 불운 때문에 광인이 되어 버립니다) 가 매력 있습니다.

타고난 천재이지만 현실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선을 넘지 않는 자제력을 보이고. 훌륭한 상대방이라면 그 참뜻을 바로 알아 주는 안목과 선의를 지닌, 나무랄 데 없는 인격자입니다.

 

그리고 카이사르 가문의 가장(家長) 老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마치 동양이나 조선의 유서 깊은 가문의 양반처럼, 금도와 예절, 체면과 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결단할 때 결단할 줄 아는 모습.

그 매너라든가, 둘째 딸을 키울 때 엄격한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네 양반 가문의 절도와 미덕이 그대로 연상됩니다.

 

 

(4)

가장 몰입도 높은 부분은

술라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의 알리바이, 무혐의를 완벽하게 조작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건 본격 추리 장르에 써먹어도 될 만큼, 작가가 공을 들여 구성한 솜씨입니다.


사실 전 이 소설에 완전히 빠진 마니아라서, 저거뿐 아니라 모든 장면에 다 몰입했다고 해도 됩니다.

 

(5)

위에 다 적었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딱 시오노 나나미 수준에 맞추어 로마를 정리하고 말았기 때문에, 좀 복합적인 내용이 나온다 싶으면 이 정도 수준까지는 내게 필요 없어.라고 외면할 지도 모릅니다. 수준 높은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지못한 시황에 비추어 이 책의 강점이 바로 약점인 셈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설 주인공 하나하나가 (일단 정만 붙이기 시작하면) 바로 몰입할 수 있는, 훨씬 깊이 있는 피조물이란 걸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등장 인물 소개란을  더 개선해야 한다고 앞에 적은 겁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위대한 작품이, 20년 동안 한국에서는 외면 받아 왔다는 게 진정 개탄스럽고요.

 

사실 한국인에게 로마는 인기가 없습니다. 1959년 헐리웃 영화 <벤허>, 그리고 동인녀, 부녀자 할머니의 어이없는 "대하 일기장"이 일으킨 1990년대의 붐 말고는, 한국인에겐 로마를 가까이할 매체 자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미드 <로마>, <스파르타쿠스>도 한국에선 시청률이 높지 않았죠.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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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빙혈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으며 느낀 점들인데 10할과 울릭세스는 몰랐네요. 모리타니와 마우레타니아의 연관성도 덕분에 알게되었어요, 감사합니다. 10년 후, 이 부분은 여러번 읽고 영문으로 고쳐 이해했고요 똥돼지도 처음엔 마리우스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젊은 시절을 생각하니 적당히 상스럽고 좋더라고요. 아마 팬심으로 극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가이드북에 참고되지 않을까 합니다.. 로마 공부중인데 참 매력적이고 체제 자체의 완성도가 꽤 높더군요.. 매컬로 여사의 작품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빙혈님 글도 로마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빙혈 2015-07-10 14:38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안녕하세요^^ 로마사와 이 소설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신, 내공 깊으신 분을 만나게 되어 제가 기쁩니다. ㅎㅎ 말씀 하신 대로, 팬심으로 극복해야 했던 여러 부분도 있었지만, 이런 책이 다시 산뜻한 번역과 고증을 거쳐 한국어판으로 나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기쁠 뿐입니다.

여러 번 읽고 영문으로 고쳐 이해하셨다는 말씀에서, 진지한 독자로서의 고충과 애로가 확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텍스트 외적 장애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당분간은 극복이 어려운 현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출간되는 가이드북은 이런 모든 우려를 일거에 날릴 수 있는 예쁜 동반자로 우리에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답방 드릴게요^^

비로자나 2015-07-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정오표로군요. 감사합니다.

이하 생략~ 이하에 생략된 부분이 혹시나 더 있으면 보고 싶군요 ^^

namudle3 2015-08-1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인지 꼼꼼하게 읽고 책에 표시해두면서 다시 한번 새겨봤습니다.
로마에 대한 공부도 없이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의 식견과 글 구성력에 매 장마다 감탄하며 읽는 중이랍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것도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