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다시 직장이 필요할 때 - 경단녀 1년 만에 남편 연봉 따라잡기 프로젝트
이정미 지음 / 라온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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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라고 하면 아직도 그 말 뜻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맞벌이"라는 패턴 자체를 보기 힘들었고, 남자 혼자 버는 수입으로 가족 부양이 힘든 경우에나 볼 수 있는 "사정이 딱한 집" 정도로 인식되는 게 고작이었다고 할까요. 허나 지금은 남편과 아내 모두 생계의 전선에 나서고, 여성 역시 자영업 운영이나 남편 업무의 보조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기업의 정직원 신분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흔히(혹은, 절박하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취업"이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여성이 일정 연령에 달하거나 기혼자 신분을 얻을 경우 당연히 퇴직하겠거니 같은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조성하는 고용주는 부당노동행위 사유로 처벌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는 자체가, 정규직(그저 "생업" 정도가 아니라 regular job이란, 더 강한 의미입니다) 신분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게 여성들에게도 당연히 보유되는 권리이겠다는 의식이 확산된 결과입니다.

어떤 정책적(혹은 도덕적) 주장을 할 때, 듣기에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말을 꺼내는 자체야 누구에게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 발언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냐 아니냐는 데에 있죠. 예를 들어 "경단"도 아니고 "녀"도 아닌 일개 독자인 저 역시도,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적절히 인용, 편집하여 누군가에게 근엄한 투로 "이래야 하느니라"면서 일장 설교를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주장이 담은 내용의 맥락단절적 개별 타당성보다 훨씬 긴절한 사항은, 말하는 사람과 발화되는 내용 서로가 상호 지지, 조화를 이룬 일체적 설득력, 입체적 정당성입니다. 이 책의 저자 이정미 선생님은 여러 근거와 이유에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여성", "경력 단절로 물리적, 심리적 장애를 겪으며 자책, 번민,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 독자에게, 정말 필요한 조언을 베풀어 주고 있으며, 또한 강력한 설득력으로 독자를 inspire 해 주는 능력자 작가입니다.



저자는 본인 자신이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인데다, 현재 주로 여성 청중들을 상대로 동기 부여라는 과업을 멋지게 수행하고 있는 이름난 강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1)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후 바로 취업에 성공, 2) 결혼 후 일정 시련을 거친 뒤 소위 "경단" 시기를 거쳐 이처럼 재기했다는 점에서, 일반 여성들에게 괜한 위화감만 부르는 특출 케이스가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공감형 롤 모델로 위상을 잡은, 진정 여러 이유에서 "이런 책 쓰시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 자격을 갖춘" 저자입니다.

저자는 여러 시대상의 변화를 언급하며, 1) 기대수명이 증가한 현실에서 정년은 조금도 늘지 않은 상황에선, 과거처럼 퇴직 수당만으로 노후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 2) 전반적으로 고용 불안도가 증가하고 육아비용이 상승하는 추세에서 어차피 남편 수입만으로 가계 운영이 어렵다는 점 3) 결혼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청년 남성층이 점차 싱글로 평생을 보내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여성들에게 현실을 피곤하게 여기지 말고 내가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함이 환경적 필연이자 자아실현임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라고 일단 조언합니다.

문제는 이미 그런 확신, 현실적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결정하며 이를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죠. 저자는 자신을 거듭 소개하기를, "현재 나이 서른 아홉이며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 봤고, 싱글맘으로 홀로 선 이래 지난 10년 동안 안 해 본 일이 없는 여자"라고 털어 놓으십니다. 인테리어업을 영위한 부친의 영향으로 학교 졸업 후 동종업계에 뛰어들어 만족스러운 성취를 쌓고 있던 저자는, 결혼에 대한 환상(저자 자신의 표현입니다) 때문에 소중한 커리어를 중단하고, 전업 주부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성실한 육아, 가사관리 중 틈틈히 문센 수강으로 자아실현의 꿈도 가꾸려던 그녀의 소박한 희망은 철저히 좌절됩니다. 손에 물 한 번 안 묻히고 자란 귀한 댁 따님이 어느새 아빠의 도움을 못 받는 어린 아이와 함께 "막막한 생계"를 오늘 내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 거죠.

저자가 우리 시대의 경단녀들에게 우선 강조하는 바는, "스펙, 학벌, 나이"에 스스로 위축되지 말라는 겁니다. 전 몰랐는데 저자께선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지 않다시는 군요. 하긴 이 나이 또래 분들이면 현역 고3의 1/4도 안 되는 수효만이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그러니 스카이 들어가기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지나고 생각하니 정말 꿈만 같군요 ㅋ). 대개 자수성가형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그 양친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지만, 사람의 실제 능력이 중요하지 서류상의 번듯한 자격 증명 사항이 뭔 대수냐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영락없는 경단녀 처지로 이곳저곳에 지원을 시도할 때, "대학 졸업란"을 기재하는 단계에서 많은 좌절감을 느끼셨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한 건, 책에 기술된 저자의 그 태도였습니다. "아, 여기서 나는 안 되는 거구나." 보통 경단녀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고졸 학력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지 않은 4년제 출신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 나온) 반응은, "아니 내가 일하겠다는데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저자 역시 "무대뽀로" 고졸 스펙을 밀어붙인 건 아닙니다. 이후 "대졸" 결격 사항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학위 취득으로 공란을 채웠습니다. 사실 저 상태로 너무 일관하면 고용주가 딱히 학력 차별을 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은 구직 과정에서 최소 성의를 안 갖추는 무례한 인성이거나, 사회의 실정을 너무 모르는군." 같은 생각으로 커트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건 지혜와 열정이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심지어, "당신이 성실한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 왔다면, 가사와 육아 과정에서조차 남달리 배우고 터득한 바가 있을 것이다." 면서, "그 지혜를 일에다 얼마든지 결합시켜서" 나만의 업무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절절한 사연으로 인생을 물들인 저자만이 할 수 있는 힘있는 조언입니다. 심지어 나이조차 경단녀에게 결정적 장애가 아니라고 합니다. "먹은 나이가 있으면 원숙함이 같이 있을 것 아니냐?"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책으로만 읽고 마는 것보다, 저자의 강연장에 직접 찾아가서 기(氣)를 받고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냥 의욕과 정열만을 무기로 도전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저도  인터넷 서핑 중 "민간자격증"이란 말을 자주 접하는데, 저자 역시 경단녀들이 아무 자격 증명 사항 없이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다는 전제로 이 화제를 꺼내고 있습니다. 미래의 고수익이란 표현은 다소 막연하게 들리고, 솔직히 제가 보는 바에서는 "이거다!" 싶은 유망자격증이 눈에 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처한 환경과 적성이 다 다르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한 분이라면 리스트를 보는 즉시 뭔가 확연한 친화력으로 다가오는 분야가 있을 겁니다. 저자는 경단녀 탈출의 지름길이 "부지런한 정보 탐색"에 있음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나하고 있어 줄 수가 없어요?" 딸 시연이에게 이런 말을 듣자 저자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시연이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능력이 있잖니? 능력 없으면 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며칠 후 딸은 손수 그린 그림에다 응원문구를 같이 써서 엄마에게 보여주는데, 뭐 전 잘 모르지만 맘들은 이런 일에 엄청 감동하시지 싶습니다(엄마라는 말 외에 실명도 같이 사용하는데, 철이 없어서라기보다 미국식 사고방식, 즉 관계, 신분 외에도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부모를 대하는 소이가 아닌지 생각했어요). 근데 전 이 저자분의 말에서 다른 점에 주목했습니다. "능력 없으면 일도 못한다."

여기서 능력이란 뭘 말할까요? 스펙은 능력이 아닙니다. 보통 보면, 경단녀, 아니면 취준생분들은, 능력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스펙, 나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백이면 백 답니다. 이 책의 저자 이정미 선생님은, 고졸자에다 (출발 당시) 서른을 넘긴 나이에다 애까지 딸린 처지였습니다. 이 정도면 재도약을 위해선 여자로서 아무 가망이 없는 현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죠.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당신이 능력계발에 그토록 절실한 인생이라면, 사회는 결코 당신의 몸짓을 외면하지 않는다"입니다. 능력 있는 여성을, 사회가 한가하게도 학벌을 핑계 삼아 거절하겠습니까? 문제는 당신이, 서 푼 짜리 자아가 상처 입을까봐 몸을 던져 능력을 키울 생각, 일에 뛰어들 생각은 않고, 손쉽게 겉치장 스펙만 채우려는 안이한 마음만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알아주는 스펙은 명문대 졸업장 뿐인데 그건 당신에겐 이미 10대때 지나가버린 사항 아닙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능력 계발에 헌신해서 스펙의 공백을 채우는 거고, 사회 생활이 장난이 아닌 이상 몸을 던지고 영혼을 바쳐서 해결할 과제죠. "당신에게 부족한 건 차라리 스펙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책의 본지와는 무관하지만, 한국이란 시스템 자체가 빨리 정상으로 회복궤도에 들어서야 합니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만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남자도 버티기 힘든 생업 전선으로 언제까지 여자를 내몰겠습니까? 와이프가 무슨 번듯한 기업에서 밑에 남직원 부려가며 과장님 대접 받는 거라면 또 모를까, 외간남자인 사장 밑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지시 받는 모습을 그거 남편된 입장에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한국 같은 나라는, 여자가 그저 수입만 바라보고 직장 생활 꾸역꾸역 이어가는 거지, 자아실현 이런 건 턱도 없는 소립니다. 이게 남자 입장에서 응당 가져야 할 자세고, 여자가 경단녀니 뭐니 가외의 걱정을 하지 않게 더 정신차려서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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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2015-07-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