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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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잖아도 요 네스뵈의 명품 스릴러들은 21세기에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페이지 터너들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맥베스"라고 해서 그 오래된 비극 고전의 (또하나의) 현대역, 개역인가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요 네스뵈가 대체 "맥베스"라는 간판 아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고 말이죠.

그가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우리가 다 잘 아는 해리 홀레 반장입니다. 대개 수사물 장르에서 그렇듯, 우리 독자들이 미친 듯 지지를 보내는 주인공들은 권위를 무시합니다. 반 세기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멋지게 소화한 더티 해리 형사도 그렇고, <다이 하드> 시리즈에서 정말로 좀처럼 안 죽고 자신보다 더 지적이며 더 매력적인 악당들 속을 어지간히 태우는 잔 매클레인 형사도 그랬지요. 혹은 MiB 시리즈에서의 "제이 요원(윌 스미스)"도 윗사람의 권위를 좀처럼 존중하는 타입이 아닌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승진은 일찌감치 또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장르물 작가들이 첫 3~4편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 이후에는 한번 개발해 놓은 뻔한 트랙, 기믹, 클리셰에 얹혀 거의 날로먹으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르물의 백화점처럼 이 시장이 수요 공급 양면에서 크게 번성한 미국이 특히나 그래서, 한때 열광했던 독자들도 이후 지리하게 이어지는 해당 작가의 매너리즘을 보고 너무 실망해서 바로 발을 끊기도 합니다. 요 네스뵈는 이런 선배들의 나쁜 전철을 보고 뭔가 단단히 다짐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타고난 영감과 말재주 덕에 구태여 슬럼프, 자기 복제를 거칠 필요가 없는 유형인지, 이번에도 이런 박력 넘치는 신작을 내어 놓았습니다.

제목이 "맥베스"인 것만 보고도 기대를 걸었다고 했는데, 다 읽고 그 기대가 조금도 배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저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팬이 아니고 그 나름 그의 스타일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읽는 독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제목만 맥베스인 게 아니라 실제로 이야기 중에 그런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 사람이 이 신작 에피소드의 사실상 주인공입니다. 요 네스뵈가 제목과 타이틀 롤 작명을 그리했다면, 이 책 속에는 셰익스피어의 그 고전 테마를 멋지게 모티브로 잘 살려낸 장중한 사연이 반드시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 기대는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그 고전에서 맥베스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은 바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부인, 즉 "레이디 맥베스"입니다. 연극에서도 이 레이디 맥베스 역이 멋지게 연기되어야만 그 극 전체가 살 만큼, 전세계 무수한 후배 극작가, 문학 애호가들에게 끊임 없는 영감을 준 캐릭터가 바로 레이디 맥베스죠. 요 네스뵈는 심지어 (대담하게도) 이 "레이디"까지 등장시킵니다. 그는 상업 장르 문학의 안전하고 뻔한 길을 거부하고, 청년 시절 문학도로서 불태운 자신의 열정을 조금도 잊지 않은 깨끗한 영혼이었다는 점, 이 무지 재밌는 수사물을 다 읽고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선님의 번역도 언제나처럼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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