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인생 계획
마이클 하얏트, 대니얼 하카비 지음, 소하영 옮김 / 에스파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계획을 잘 꾸리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어느 회사이건 최고의 두뇌가 곧 기획통으로 키워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죠. 하지만 19세기 독일 통일의 주역 大 몰트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전투 한 번만 거치면 살아남는 작전안이란 거의 없다." 아까 낮에 마이크 타이슨 특집 방송에도 잠시 그 비슷한 "명언"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사실 현장에서 직접 여러 상황을 진두지휘해 보면, 어떤 완성된 안(案)이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돌발상황에서 얼마나 잘 돌아가는 머리로 즉흥 대처법을 잘 꾸리는지가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갱요가 준가르를 평정하고 귀환했을 때도 옹정제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짐짓 게을리하며 말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었는지 그저 정치 투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너 따위가 알 리 없다"는 무언의 시위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행력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도출된 그 어떤 시안이나 아름다운 알고리즘보다 중요합니다. 직접 성과를 내어야 하는 인재에게, 실행력은 그가 가진 역량이나 잠재력 모두라고 할 만큼 중요한 tool입니다.

목표의 수립 역시 중요한 단계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가진 역량 모두를 투입함에 있어, 전략적 목표의 바른 설정이 선행되어야만 괜한 헛수고를 방지할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안이 중요하고 전략의 자체완결성이 필수적이라도, 이를 현실에서 어떻게 매 단계의 성취와 검증으로 연결시킬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행이 없으면 성과가 없다"라는 명제는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지만, 필드를 뛰어 보면 그 우수한 두뇌를 보유한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계획 곧 성과"로 착각하는지 놀라울 만큼입니다. 그만큼 기안의 완전무결함에 도달하기가 어렵기에, 인간의 본성인 자기 평가에의 biasedness를 떨칠 수 없음의 실증이지만, 많은 기획이 자체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휴지통으로 향하는 게 다 이런 실행력에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실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이게 참 뼈아픈 지적입니다. 부장에게 과장에게 깨지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하죠. 대개 이런 경우 뭣 때문에 지적을 받을까요? 안건을 검토해 보면 부실하게 넘어간 중간 과정이 있거나, 숫자 처리가 부정확하거나, 심지어 맞춤법이 틀려서(ㅎㅎ) 이런 걸 못 참고 넘어가는 깐깐한 상사에게 박살이 나는 겁니다. 지금은 많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예전 세대 부모님들이 왜 자식을 기술자, 노동자로 키우지 않고 책상 앞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직 직원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이처럼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지 않고 육체적으로 축나지 않고 책상 물림으로 호강하는 녀석들이, 그 알량한(아니지만) 사무 처리 하나 못 하냐면서, 너 같은 건 그냥 공사 현장에나 나가서 뛰어야 한다는 듯 다그치던 풍조가 현재에까지 이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엔 현대 등 대기업들도 건설업 따위가 성장의 추축이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요즘엔 전세가 역전되어 현장 근로자들이 툭하면 파업한다고 상전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사실 사무직도 실행을 점검하는 알고리즘, 피드백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고, 아직 중국 같은 데서 한국을 못 따라오는 부문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한참 윗세대이니까 이런 아쉬움을 책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대기업에서 그런 요소 관련 업무 혁신이 안 이뤄졌을 리가 없죠. 기안의 완결성 못지 않게, 실제로 집행 과정에서 개별 단계와 과업이 얼마나 현실화되고, 각 단계가 얼마나 정밀하게 성과가 계측되는지도 이미 일부 대기업에선 눈에 띄게 실무화, 정량화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정작 실무에서 중요한 게 이 단계인데 지난 시절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거나 "알아서 하라거나" 느낌으로 점검하고 말던 관행이 분명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결코 못 따라잡을 것 같은 게 이런 세밀한, 업무 과정의 미세한 정신적, 비가시적 알고리즘의 빈틈입니다. 첫째는 여자처럼 세밀한 살핌과 꼼꼼한 뒷마무리가 요구되며, 둘째 남의 시스템을 통째 베껴 적용할 때 이런 부분이 자기네 조직의 체질과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전체가 망하는 게 비일비재하며(따라서 설사 다른 걸 베끼더라도 이 부문만큼은 자기 회사 체질에 맞춰 재 세팅을 해야 합니다), 셋째 기본적으로 창의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함은 "야,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 같은 무식한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체질과 역량에 대한 정확한 SWOT 분석이 이뤄진 후에 달성 가능한 과업이고, 기안이나 기획과는 또다른 차원의 영역임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죠. 우리도 모르던 사이에 발전시켜 온 강점을 잘 유지하고, 이로부터 지속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혁신을 추진해야겠습니다. 진짜 혁신은 기술 분야에서라기보다, 경영 섹터에서 이뤄져야 그게 지속적입니다. 기술은 금방 남이 따라할 수 있고,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쫓아갈 수(삼성이 그만큼 빨리 스마트폰 양산 체제를 갖춘 게... ㅎㅎ)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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