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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영화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이은선 작가님이 그리고 쓴 이 책은 에피소드와 어울리는 영화와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담아냈다. 다행스럽게도 책에 소개된 28편의 영화 중 4편을 빼고 다 봤고, 눈앞에 그려지듯이 꼼꼼하게 묘사하신 덕분에 그때 그 감정이 훅 올라오기도 했고, 미처 놓쳤던 부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이야기도 참으로 좋았지만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으로서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의미를 쉽게 여기지 않는 작가가 참 좋다. 나는 종일 쫓기며 일하고 퇴근한 날에도 우울한 날에도 맛있는 한 끼 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진다. 여행을 가면 줄 서서 먹는 맛집이나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집하는 이유는 나중에 다른 곳에서 먹게 되면 저절로 여행지와 음식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 자는 것처럼 기본적인 것부터 채워져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 주말엔 라구소스 한소끔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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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69
생각해보면 2020년은 우리가 애써 부정해왔던, 이미 눈앞에 도래한 미래를 더 이상 못 본 척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로 찾아온 해일지 모른다. 전염병은 특정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오만함이 자연에 끼친 결과로 읽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개인을 구부정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마음과 시야의 크기는 역으로 넓어져야만 한다. 배경을 인지하고, 불행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므로.
🖋p. 167
가난은 세상의 유려한 지식과 아름다운 경험에서 사람을 소외시킨다. 그것이 가난의 가장 공정하지 못한 점이다. 누군가를 강렬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경험의 결핍들이 메워지지 않는다.
🖋p. 206
누군가는 고작 차가운 국 같은 것 때문에 느끼는 비참함을 비약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하찮게 느끼게 되는 건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돌봄에 있어 대충은 안 된다. 취향 때문에 식은 음식을 선호할 순 있어도, 누군가가 ‘차가운 국을 내놔도 언제나 불평 없는 사람’으로 나를 대하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자존감을 지키는 비결은 결국 아주 사소한 선택들이 만들어낸다고 나는 믿는다.